<<

87

2013년 봄호 동향과 전망 2013년 봄호 통권 87호

발행인 박영률 편집인 박영호

동향과 전망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 이일영(한신대) 편집위원 남궁곤(이화여대) 남기곤(한밭대) 박규호(한신대) 유종성(UC SanDiego) 조석곤(상지대) 조형제(울산대) 홍석준(목포대) 편집자문위원 김영범(한림대) 김용현(동국대) 김종엽(한신대) 백욱인(서울과학기술대)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교) 오유석(성공회대) 유철규(성공회대) 이건범(한신대) 이남주(성공회대) 이영희(가톨릭대) 이인재(한신대) 장홍근(한국노동연구원) 전병유(한신대) 전창환(한신대) 정대화(상지대) 정건화(한신대) 정해구(성공회대) 조효래(창원대) 허상수(성공회대) 홍장표(부경대) 편집간사 양예정 ([email protected])

발행일 2013년 2월 1일 등록번호 제1-2136호 출판등록 1997년 2월 13일

박영률출판사([email protected])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7474-001 팩스 02-736-5047

지식재산권 이 책의 지식재산권은 한국사회과학연구회와 박영률출판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 용과 형식을 사용하려면 지식재산권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 편 집위원장, 출판사에게 전자우편으로 물어주십시오. 편집자의 글

2012년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은 ‘안철수 현상’을 불러왔고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총 결집하여 치열한 선거전을 펼쳤다. 그러나 야권의 실책과 진보정당의 퇴조라는 4·11 총선의 흐름은 계속되었다. 이 때문에 야권 지지자는 충격과 우울감에 빠져 있고 야당의 미래는 미궁을 헤매고 있다. 돌이켜보면 󰡔동향과 전망󰡕이 창간되었던 1988년의 분위기는 2013 년 지금의 분위기와 흡사한 데가 있다. 1988년은 매우 침울했던 시기였 다.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지만 야권의 분 열에 의해 군부정권 연장으로 귀결되었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는 형 식적 민주화가 진전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학술단체들이 조직되었다. 󰡔동향과 전망󰡕은 구체적인 현실 분석을 토대로 한국형 이론과 대안을 생산하자는 문제의식으로 출범했다. 󰡔동향과 전망󰡕이 25년을 이어왔지만 ‘87년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경제모델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목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동여매고 한발 한발씩 나아가자는 다짐을 새로이 할 때다. 진보개혁 세력이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 󰡔동향과 전망󰡕 에는 새로운 기대가 주어지고 있다. 구체적 현실 분석에 충실하고 작동 가능한 대안을 형성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이번 호 특집은 ‘새로운 대외-남북관계의 모색’이다. 이명박 정부 의 문제점 중 두드러지는 것이 대외-남북관계에서의 균형과 일관성 결여다. 이명박 정부가 대외-남북관계에서 제대로 된 보수 정책을 실 행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보수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에서 일정

편집자의 글 3 한 방향 수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에 따라 세 편의 특집 논문을 기획 했다. 김양희는 FTA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미국·중국 간, 중국·일 본 간 세력전이가 중첩되어 있는 조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수 있 는 양자 FTA의 도미노보다는 이를 피할 수 있는 다자주의의 복원에 노 력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양문수는 남북한 경협 의 실마리를 풀 방안을 제시했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써 개성공단 에 대한 기존의 남북간 합의의 ‘이행’을 위한 당국간 회담을 시작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남주는 평화국가로 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안보 기구에 대한 시민적 통제와 평화권, 남북연합, 평화적 복지국가를 위한 군비축소 등을 평화로의 길을 열 수 있는 중간 경로로 논의했다. 한편 이번 호에서는 18대 대선의 의미를 긴급히 분석해 보았다. 18대 대선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둘러싸고 백가쟁명식의 논 의가 전개되고 있지만 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분석결과 가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번 호 에서는 논의의 단초를 여는 수준에서 2편의 시론적 논문을 게재했다. 안병진은 한국의 대선을 미국 1968년 대선과 비교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18대 대선의 의미는 이 민주주의 운동 정치질서의 퇴조와 이를 적절히 활용한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이라는 핵심 주장을 내놓는다. 허 상수는 ‘마음의 체제’와 진정성의 정치라는 틀로 민주진보진영의 실패 를 분석했다. 민주진보진영은 유권자의 심성 또는 ‘마음의 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과 조정 미숙으로 선거 판도를 유리하게 이끌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일반논문은 다섯 편을 실었다. 이상호는 노령화와 환경문제를 고려 하면서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다루었다. 조효래는 이명박 정부의 노동 정책을 검토하고 이것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하였다. 이성로는 공

4 동향과 전망 87호 공정책에 대한 평가란 시각에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 였다. 백욱인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빅 데이터의 사회경제적 성격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였다. 조돈문은 스페인의 파견노동에 대한 규제방 식과 그 효과를 정리하였다.

2013. 1. 25. 󰡔동향과 전망󰡕편집위원장 이일영

편집자의 글 5 차례

3 편집자의 글

특집 • 새로운 대외-남북관계의 모색 9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김양희

35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 경제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양문수

76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 평화국가의 가능성과 경로를 중심으로 이남주

기획 • 18대 대선 분석 105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 정치질서론의 시각 안병진

152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 18대 대선을 중심으로 허상수 일반논문 194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 인구문제의 딜레마를 중심으로 이상호

224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 변화와 연속성? 조효래

264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이성로

304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백욱인

332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 파견노동의 규제 방식 및 효과를 중심으로 조돈문

특집 [새로운 대외-남북관계의 모색] 특

집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1)

김양희*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1. 서론

동아시아에는 국경을 넘어서는 긴밀한 역내 생산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어 이를 바탕으로 역내무역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이므로 범지역적 FTA 형성에 공통의 이해기반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국 간 소득격차, 높은 역외시장 의존도, 상이한 정치체제, 명확한 통합 의 리더십 부재, 미약한 지역적 정체성 등 유럽과 다른 특성이 이를 더 디게 하는 걸림돌로 지적된다. 이에 더해 본 연구는 최근 부각된 새로운 특징을 이른바 ‘이중의 세 력전이(dual power transition)’로 규정한다. 즉 동아시아에는 글로벌 차원의 미국-중국 간에 더해 지역 차원의 중국-일본 간 세력전이가 중 첩되어 있다는 점 또한 지역경제통합의 주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의 세력전이는 동 지역에서 경제와 안보의 협력공간 불일 치, 경제적으로는 금융부문과 실물경제의 협력공간 불일치라는, ‘이중

* [email protected]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9 의 협력공간 불일치(dual mismatch of cooperation space)’를 배태하 였다. 먼저 경제와 안보의 협력공간 불일치를 살펴보자. 경제와 안보의 협력공간 불일치를 살펴보면, 지역차원에서 중국에의 의존도 강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며 역내국간 상호의존은 날로 심화되어 왔다. 그러 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및 역내국)의 부상과 일본의 상대적 침체로 중·일간 댜오위다오(센카쿠) 분쟁, 한·일 간 독도분쟁과 교과서, 위 안부문제, 중국과 동남아국간 남중국해 분쟁 등 첨예한 영토 분쟁과 역 사 갈등이 상존한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이 아닌 역외의 미국과 긴밀한 안보동맹관계이며 특히 이중의 세력전이로 인하여 일본과 ASEAN의 중국견제심리가 강해져 미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과의 안보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는 경제협력 공간과 안보협력 공간 이 불일치한다는 특성이 최근 더욱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금융협력의 제도화는 상대적으로 진전되어 온 반면 실물경제부문은 협력의 제도화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양자의 협력공간이 불일치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양자 간 통화스왑장치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를 필두로 하는 일련의 동 아시아의 금융협력은 착실히 제도화의 결실을 보고 있다. 외환위기 재발 방지와 위기 시 유동성 지원을 위하여 2000년 5월 CMI를 도입하고 2010 년에는 이를 다자화하여 CMIM(Chian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zation) 으로 진화시키고 역내거시경제감시기구(ASEAN Macroeconomic Research Office)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김진영, 2012). 아울러 역내 채권시장 육성을 위한 제반 제도화 노력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추세다(이용 욱, 2012).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점화된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동 지역에 강력한 공통의 역사적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역내국간 경쟁 심

10 동향과 전망 87호 리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협력의 유인이 작용한 것이다. 특 이 때 주목해야 할 점은, 역내 금융협력 공간은 ‘ASEAN+3’ 즉 기존의 동 집 아시아라는 점이다. 반면 실물경제통합은 이중의 세력전이로 인하여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을 띠면서 양자 간 협력공간의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그것이 초래한 기현상으로 동아시 아란 지역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고 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통상 동아 시아를 지칭하는 범주로 자리 잡은 ‘ASEAN+한·중·일(APT)’ 13개국 이 2005년 출범한 지역협력체가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다. 그런데 일본의 중국견제 의도가 다분히 반영되어 여기에 2009년 인 도, 호주, 뉴질랜드가 합류하였다. 급기야 2011년에는 러시아와 미국도 가세하여 이제 EAS는 더 이상 동아시아 지역만의 정상회의가 아닌 것 이 되어 버렸다. 이 와중에 정작 APT의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처럼 이중의 세력전이가 이중의 협력공간 불일치를 초래하여 동 지역에서 협력과 경쟁이 복잡하게 공존하는 가운데 최근 실물경제부문 에서 FTA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그 추동력은 금융부문에 서 볼 수 있는 협력에의 공감대가 아닌, 이중의 세력전이가 낳은 견제와 배제의 논리다. 이를 필자는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로 규정한다. 세계적인 FTA의 만연현상을 설명하는 논의는 무수히 많으나, 특히 동아시아의 그것은 경쟁국간의 ‘전염적인 FTA(contagious FTA)’ 체결 도미노 효과로 설명 이 가능하다(Jaimovich & Baldwin, 2010). ‘FTA의 도미노 효과 (domino effect)’란 A국이 B국과 FTA를 체결하면, A 및 B와 수출시장 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C국은 A-B간 FTA로 인한 무역전환효과(trade diversion effect) 발생을 우려하여 A나 B와 연쇄적으로 양자 간 FTA를 체결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FTA가 새로운 FTA를 촉발하 면서 경쟁국 간에 FTA가 연쇄적으로 맺어지는 것을 바그와티(Bhagwati,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11 1991)는 ‘편승효과(bandwagon effect)’로, 볼드윈(Baldwin, 1993)은 FTA의 ‘도미노 효과’로 설명한 바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접근에 동의하 며, 동아시아에서는 그 요인에 이중의 세력전이라는 정치경제학적 요 인을 추가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의 FTA를 둘러싼 최근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로 부터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 정책의 추진방향에 주는 정책적 함의 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경제와 외교안보를 연계하 는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하며, 실물경제와 금융부문을 아우르는 통섭 을 시도한다. 그렇게 접근할 때 비로소 동아시아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 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 정부의 FTA 정책이 통합적 시야와 현실성을 담 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세계에는 EU나 남미의 다양한 지역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NAFTA 와 같이 미국식 신자유주의 이념의 확대재생산 공간으로서의 FTA도 있 듯이 매우 다기한 FTA 유형이 존재한다(김양희, 2007b). 본 연구는 FTA를 동아시아의 공통 현안을 해소할 수 있는 경제통합의 한 방편으 로 보고 궁극적으로 실물경제와 금융부문을 통합한 경제공동체 형성의 유용한 수단임을 논한 김양희(2011b)의 논의를 계승한다. 암묵적으로 이중의 세력전이를 논하는 이태환(2012)이나 동아시아 금융통화협력 관련 주요 논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용욱 편(2012)과 같이 경제통합 관련 기존연구는 경제와 외교안보 그리고 경제 또한 실 물경제와 금융으로 분절되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의 차별성은 동아시 아 경제통합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단, 본 연구는 논점을 명확히 하고자 경제와 안보 중 전자에 초점을 두 고, 특히 실물경제에 관해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본 연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 동아시아의 FTA 추진 현황 과 특징을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 효과’에 착목하여 재조명한다. 3장

12 동향과 전망 87호 에서는 한국의 FTA 정책을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시각에서 평가하고 차 특 기 정부의 복합대외정책수단으로서의 FTA 추진방향을 제언한다. 마지 집 막으로 4장의 결론에서는 이상의 논의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 추 진에 주는 정책적 함의를 도출한다.

2. 동아시아의 FTA 추진 현황과 특징

1)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 국내외 학계는 물론 정부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대다수가 간과하고 있 는 듯하나, 동아시아에서 근래 FTA의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 출발점은 다름 아닌 한·미 FTA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림 1>에서 잘 드러나듯 한국이 2006년 미국과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자 이는 즉각적으로 미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의 한국에 대 한 FTA 논의 개시 요구를 초래하는 한편 2007년에는 미국과 또 다른 경 쟁관계에 있는 EU와 한국의 FTA 협상 개시로 이어졌다. 이뿐 아니라,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이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 TPP)’에 가입하는 구상을 촉발 시켰다. 일본이 한·미 FTA로 인한 미국시장 내 자국기업의 한국기업 에 대한 경쟁열위를 만회하는 동시에 동아시아 경제통합 주도권을 둘 러싼 중국 견제를 위하여 미국과 공동전선을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1) 2010년에는 한·EU FTA에 자극받은 일본의 일·EU FTA 논의 개시를 몰고 왔고 이윽고 2013년 내 협상개시로 이어졌다.2) 한·EU FTA 협상이 2011년 발효되고 이듬해 3월에는 한·미 FTA 도 발효된다. 이에 더해 일본의 TPP 참가 구상도 점차 가시화되는 듯하 자,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미국의 중국 포위망이자 ‘아시아로의 전략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13 적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의 일환으로 읽은 중국은 마침내 같은 해 5월 한국과 FTA 협상 개시로 맞불을 놓는다. 이는 2003년 이래 진척이 지지부진했던 한·중·일 FTA 논의를 협상개시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된다. 한·중·일 FTA는 미국의 TPP에 조바심이 난 중국, 한중 FTA로 인 한 불이익을 상쇄하려는 일본, 더 이상 지체 명분을 못 찾은 한국의 이

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동상삼몽(同床三夢)’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한· 중·일 정상은 2012년 11월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EAS 계기 삼국간 재 무장관회의에서 2013년 협상개시에 합의하게 된다. 한·중·일 FTA에 뒤질세라 ASEAN도 2012년 EAS 무대에서 ‘ASEAN+’ 형태로 역내 6개국(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과 각기 체결한 6건의 양자간 FTA를 통합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협상개시를 선언한다. 표면적으로 RCEP은 ASEAN이 주도한 듯 보이나 그 이면에 는 중국과 일본의 타협의 소산이라는 측면이 있다. 2011년 8월 ASEAN+6 경제장관회의 당시 만난 일본과 중국은 ‘EAFTA 및 CEPEA 구축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이니셔티브’라는 공동제안에서 중국 주도의 EAFTA(ASEAN+3 FTA)가 되든, 일본 주도의 CEPEA(ASEAN+6 FTA) 가 되든 공통분모가 될 무역투자 자유화를 논의하는 작업반(상품무역, 서비스 무역, 투자) 설치를 제안하여, 차기 EAS에서 정식으로 작업을

개시하기로 합의한 것의 일환이기 때문이다(経済産業省通商政策局, 2011. 12. 5). 이는 동아시아 FTA 논의에서 양국이 주도권 경쟁을 하면 서도 정작 상호 이해관계가 충족되면 한국을 제쳐두고 대국 간에 언제 든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이 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냉철한 고민이 필요하다. 동아시아 FTA 도미노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미국과 EU다. 이들 또

14 동향과 전망 87호 <그림 1>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 특 집

출처: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필자 작성. 주1: KUSFTA: 한·미 FTA, JEUFTA: 일·EU FTA, J-TPP: 일본의 TPP 참가, KEUFTA: 한·EU FTA, KCFTA: 한·중 FTA, CJKFTA: 한·중·일 FTA, USEUFTA: 미·EU FTA 주2: 각 FTA의 ( )안은 추진단계로서, 논의는 논의 개시, 협상은 협상 개시, 발효는 발효 완료를 각각 의미함.

한 양자 간 FTA 논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하여 세계 무역질서의 지각변 동이 될 특종을 제공하였다(New York Times, Nov. 26. 2012). 이렇듯, 미국, EU, 중국, 일본, ASEAN 등 세계 거대경제권이 급작 스럽게 FTA 도미노에 합류하기까지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했겠으나 필자는 그 중 특히 이중의 세력전이에 주목한다. 동아시 아에 존재하는 이중의 세력전이로 인하여 이 중 한 나라의 FTA 체결은 그로부터 배제되는 경쟁국에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어 결국 경쟁 국 간 연쇄적인 FTA 체결을 불러온다. <그림 1>에서 보듯이 한·미 FTA는 분명히 동아시아 FTA 도미노의 도화선이 되었다.3) 즉 한·미 FTA가 체결되는 순간 FTA의 도미노는 이미 예고된 것이라 하겠다. 그 렇다면 동아시아의 FTA 도미도의 끝은 어딜까.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15 2)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의 향후 전망 동아시아 FTA의 도미노는 종국에 미 주도의 FTA인 TPP와 중국과 일본 그리고 ASEAN의 이해관계가 절충된 RCEP이 서로 타협 가능한 하나의 광역 FTA로 수렴되어 일단락될 것으로 전망한다. TPP는 애초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 4개국이 체결한 FTA(일명 P4)4)를 지금의 12개국(호주, 브루나이, 칠레, 말레이시아, 뉴 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미국, 캐나다, 멕시코, 태국)까지 확대 시킨 것으로, 참가대상은 APEC회원국으로 제한되어 궁극적으로 APEC 회원국 간의 FTAAP(Free Trade Area of the Asia-Pacific)를 추구한다. TPP는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개방을 목표로, 협상이전에 특정품목 의 개방예외를 요구하는 나라에는 아예 참가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TPP를 주도하는 미국의 전략은 ‘아시아로의 전략적 중심축 이동’을 위한 핵심수단으로써 FTA를 활용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를 통해 동 아시아 우호국과의 경제 및 안보 동맹을 강화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동 시에 자국의 경제적 이득 또한 확실히 챙기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바필드와 레비(Barfield & Levy, 2009)가 TPP를 미국에 의한 동 아시아 경제통합의 ‘새판짜기(wholesale reconfiguration)’로 표현한 데서 잘 드러난다(김양희, 2011a). 이와 같은 연유로 중국은 이를 자국 포위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 주도의 TPP와 중 주도의 역내 FTA가 대립구도 하에 놓여 역내국이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으리 라고 본다. 중국 또한 APEC 회원국이며, 미국이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좌시하지 않는 경제적 이유가 중국을 포함하는 동 지역의 성장 잠재력 활용에서 배제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결국 언젠가 미국도 중국 과의 FTA 체결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현 시 점의 양국 간 주도권 경쟁을 장차 양국이 하나의 광역 FTA로 수렴할 경

16 동향과 전망 87호 우에 대비한 ‘템플릿 경쟁(template contest)’이라고 보는 페트리와 플 특 럼머(Petri & Plummer, 2012)의 견해에 깊이 공감한다. 제조업보다 서 집 비스업의 경쟁력이 강력한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제조업 위주의 낮 은 수준의 FTA가 자국 기업에 불리하리란 판단 하에, 지식재산권, 경쟁 정책 등을 포괄하는 높은 수준의 FTA 체결로 중국과의 템플릿 경쟁에 서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는 것이라 하겠다. 패트리와 플럼머(2012)는 또한 동아시아의 FTA를 TPP 트랙, Asian 트랙, 양 트랙을 동시에 추진하는 Two 트랙의 세 유형으로 나눠 각각이 해당국에 미칠 소득을 추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자국이 배제된 TPP 체결 시 기준점 대비 2025년 소득이 0.27% 감소하는 반면 동아시 아 내 FTA에서는 1.35% 증가한다. 미국은 자국이 포함되는 TPP 체결 시 기준점 대비 2025년 소득이 0.38% 증가하나, 자국이 배제되는 Asian 트랙 체결 시는 동 수치가 0.01% 증가에 미친다. 그러나 중국이 FTAAP 에 참여시 2025년 중국의 소득은 3.93% 증가하여 동 수치가 1.31%인 미국을 크게 능가한다.5) 패트리와 플럼머(2012)뿐 아니라, 중국의 이 해관계를 반영할 개연성을 지닌 중국계 연구자 리와 월리(Li & Whalley, 2012)도 마찬가지로 TPP에 일본보다 중국 가입 시 미국의 경 제후생 및 생산, 수출입의 증가율이 더 크다는, 일본에겐 불편할 수 있 는 추산 결과를 내놓는다. 위의 두 연구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FTAAP가 APEC 회원국에 의한 광역 FTA로서 세계 최대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최대의 구매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합류하는 FTA인 만큼 그 경제적 효과는 단연 그 어떤 FTA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FTAAP에서 일정 정도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면 중국도 미국도 중국으로의 문호 확대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17 3) TPP와 한·미 FTA 그렇다면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 FTA와 TPP는 어떤 관계일까? 현재 총 21개 분야 24개 분과에서 진행되고 있는 TPP 협상 내용을 들여다보 면 이에 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은 TPP 템플릿으로 P4보다 한·미 FTA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과 미국의 역내 FTA를 둘러싼 ‘템플릿 경연장’에서 미국은 가장 최근 체 결한,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한·미 FTA를 TPP의 템플릿으로 삼는데 이해관계를 지니는 것이다. 현재 TPP의 24개 협상분과 중 협정문의 개별 장(chaper)으로 흡수 될 21개를 각기 <표 1>에서 P4 및 한·미 FTA와 비교하면 그 구조가 전 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예컨대, TPP의 상품무역 분과는 농업, 공산품, 섬유의류 등으로 세분되어 있고 서비스 또한 금융, 통신, 전자상거래로 나뉘었으며 노동과 환경이 추가되었다. TPP의 섬유의류 원산지규정6) 도 미국은 한·미 FTA와 같이 섬유사 가공단계부터 원산지에서 제조 해야만 원산품으로 인정하는 ‘Yarn Forward 규정’ 추가를 강력 희망하 고 있다. 미국이 TPP의 템플릿으로 P4보다 한·미 FTA를 원한다는 점은 미 국의 ‘아시아로의 전략적 중심축 이동’의 맥락에서 TPP와 한미 FTA가 별개가 아니라 밀접한 연관을 지님을 내포한다. 즉 미국의 TPP 참여 동 기는 한·미 FTA와 거의 일치한다. 미국에 한·미 FTA가 동아시아 FTA에의 개입을 위한 출발역이었다면 그 종착역은 FTAAP이며 TPP는 중간역 정도라 하겠다. 이에 필자는 2011년 한·미 FTA가 발효되면 다 음 수순으로 미국이 한국에 TPP 참가를 요청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 다(김양희, 2011c).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한국에 직간접으로 TPP 합류 를 요청하고 있다.7) 미국의 영향으로 TPP 템플릿이 P4보다 한·미 FTA에 유사해 만일

18 동향과 전망 87호 <표 1> P4, 한·미 FTA, TPP의 협정문(작업분과) 구성 비교 특 P4 TPP(협상분과 구성) 한·미 FTA 집 최초규정 최초규정 및 정의 일반 정의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상품에 대한 내국민대우 및 시장접근 농업 농업 상품무역 섬유 및 의류 섬유 및 의류 공업 의약품 및 의료기기

원산지규정 원산지규정 원산지 규정 및 원산지 절차

관세 절차 관세 및 무역원활화 관세행정 및 무역원활화

무역구제 무역구제 무역구제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

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국경간 서비스 국경 간 서비스무역 임시 입국 서비스 무역 금융서비스 금융서비스 임시 입국 전기통신 통신 전자상거래 전자상거래

투자 투자

경쟁정책 경쟁 경쟁 관련 사안

지적재산권 지적재산권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정부조달 정부조달

노동 노동

환경 환경

투명성 분쟁해결 투명성 분쟁해결 제도적 사항 제도 규정 및 분쟁해결 행정 및 제도 규정 분야횡단적 사항

전략적 파트너십 협력

일반 규정

일반 예외 예외

최종 규정 최종규정

자료: P4 협정문, 한·미 FTA 협정문 및 外務省(2011)를 토대로 필자 작성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19 한국이 TPP에 참가할 경우 그 참가비용은 크지 않고 규범제정 시 의외 의 어부지리를 얻으며 미국과 함께 주도권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는 현재 TPP 참가국 대부분과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이 진행 중 이므로 TPP 참가에 따른 실익이 그다지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유보 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4장에서 논하기로 하자.

3. 한국의 FTA정책 추진 방향: 복합대외정책수단 FTA

외교통상부는 2003년 수립한 ‘FTA 로드맵’에서 FTA 정책목표를 지역 주의에 대응하는 동시에 시장개방과 자유화를 통해 국가 경제시스템을 선진화하고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밝힌다.8) 이를 위한 전략 은 ‘거대선진경제권과, 동시다발적으로,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 추진’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FTA의 경제적·정치적 효과 극대화를 위해 거대·선진경제권과 FTA를 우선한다. 둘째, 상품분야 에서 서비스, 투자에 이르기까지 높은 수준을 추구하며 무역규범 및 제 도의 조율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FTA(comprehensive FTA)’를 지향한 다. 셋째, 동시다발적 FTA 추진전략은 이것이 다자주의에 근접하고, 협 상력 면에서도 유리하리란 판단에 기초한다(김양희, 2006a). 한국은 2004년 한·칠레 FTA 발효를 시작으로 2012년 11월 말 현 재 미국, EU 등 45개국과 8건의 FTA를 발효하고 2건의 FTA를 타결하 였다. 중국 등과 8건의 FTA를 협상 중이며 한·중·일 FTA와 RCEP 협 상이 2013년 내 개시될 예정이다. 즉 향후 예정된 중요한 FTA는 한·중 FTA, 한·중·일 FTA 그리고 양자 FTA를 잇는 동아시아의 FTA와 같 은 역내국과의 FTA다.

20 동향과 전망 87호 <표 2> 한국의 지역별 국가별 FTA 추진 현황(2012. 11월 말 현 재 ) 특 발효 ① 칠레 ② 싱가포르 ③ EFTA ④ ASEAN(10) ⑤ 인도 ⑥ EU ⑦ 페루 ⑧ 미국 집 타결 ① 터키 ② 콜롬비아

① 캐나다 ② GCC ③ 멕시코 ④ 호주 ⑤ 뉴질랜드 ⑥ 인도네시아 ⑦ 중국 협상 ⑧ 베트남

협상준비 또는 ① 일본 ② 한·중일 ③ MERCOSUR ④ 이스라엘 ⑤ 몽골 ⑥ 중미 ⑦ 말레이시아 공동연구 ⑧ RCEP

주1: 각 상대국 앞의 번호는 각 단계별 추진순서를 의미 주2: 통상 양자 FTA 추진은 공동연구 → 산관학 공동연구 → 정부간 협상 → 체결 → 국회비준 → 발효를 거침 자료: 외교통상부 홈페이지(http://www.fta.go.kr/new/ftakorea/ftakorea2010.asp) 자료를 토대로 작성

한국의 FTA 체결 속도와 상대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 적으로 한국과 같이 세계 15위권 경제 규모의 나라 중 4대 거대경제권 (미국, EU, 중국, 일본)과 FTA를 발효했거나 협상중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한국은 양적확대에 치중해 왔으나 질적 측면에서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필자는 한국 FTA 정책의 세 가지 문제점으로 FTA와 국내경제의 괴리, 낮은 FTA 실익 체감, 외교안보적 시각 미비를 꼽는다. 이하에서 그 중 세 번째에 초점을 맞춰 차기 정부의 FTA 정책 방향을 논하기로 하자. 이는 한국의 역내 FTA 추진과 밀접한 연관을 지 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FTA 로드맵’의 수출증대와 무역수지흑자에 집착하는 중상주의적 통상정책 기조를 넘어서는 제2기 FTA 정책을 정립할 것을 제언한다. 이는 ‘FTA와 국내경제의 선순환구조 창출, FTA를 통한 대내 외적 호혜주의 실현, FTA를 통한 외교안보적 실익추구’라는 3대 원칙 에 기반한 것으로써, 기존의 3대 전략기조에 기반한 FTA 정책의 한 단 계 진화를 의미한다(김양희, 2012c). 이처럼 향후 FTA 정책은 통상정 책뿐 아니라 국내외 경제를 연계하고 경제와 외교안보를 아우르며 글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21 로벌 공존을 모색하는 복합대외정책으로의 탈바꿈이 필요하다. 한반도가 속한 동북아의 지정학적 특성상 우리의 주요 외교상대와 의 FTA는 통상정책적 맥락을 넘어서야 한다. 여전히 북핵문제가 우리 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중의 세력전이가 전개되는 공간에서 추진하는 FTA 정책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정착에 기여하는 복합대외 전략의 한 방편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명시적으로 표방하지 않으면, 외교안보적 실익 추구형 FTA에 대한 국내적 지지 확보가 곤란하다. 가령, 러시아의 WTO 가입을 계기로 2007년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다시금 주춤해 진 한·러경제동반자협정(BEPA, Broad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은 양국 간 통상관계 심화에 더해, 중국의 대국 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에너지, 철도, 극동시베리아 개발 등을 통한 남· 북·러 삼각협력의 기반 조성의 시각에서도 접근해야 한다.9) 남·북 경협의 중심축인 개성공단 발전에 우리의 FTA 정책을 활용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현재와 같은 북미 간 대립국면이 대화국 면으로 전환되면,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여 남·북 경협과 FTA를 연계 한 남·북 경협 활성화와 한반도의 평화촉진을 도모하는 것이다. FTA 정책을 활용한 2단계 개성공단 발전방안을 제시해 보자. 1단 계로 한국의 기체결 FTA 상대 중, 이곳을 역외가공지역(Outward Process Zone)으로 지정하여 개성산 제품을 한국산 제품으로서 수출 할 수 있도록 한 싱가포르, ASEAN, EFTA로의 개성산 제품 수출에 노력 한다. 한·중 FTA 협상에서도 개성 등을 OPZ로 지정하고 해당품목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개성공단의 OPZ 지정을 위한 입법절차가 불필요 한 한·EU FTA에서 이를 속히 관철시켜 한·미 FTA에서의 입법적 승 인을 위한 유리한 여건도 조성해야 한다. 남·북 경협이 본궤도에 오르면, 2단계로 OPZ로 지정된 기체결 FTA 상대국 기업에 파격적인 우대조건을 적용하여 이들의 개성공단 내

22 동향과 전망 87호 투자를 적극 유치한다. 자칫 외국기업 우대정책이 국내기업에 대한 역 특 차별로 비칠 수 있으나 외국기업의 존재는 장기적으로 남·북 경협의 집 심화․발전의 안전핀이 될 것이란 점을 들어 설득해야 한다. 개성공단에 외국기업이 많아질수록 이곳이 남북 양자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평화추 구형 경협거점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북한이 국제규범을 익히는 계기가 되어 장차 북한의 WTO 가입 등 국제무대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동아시아 FTA를 매개로 역내 생산네트워크에서 일 익을 담당할 여건 마련되기도 한다. 한·일 FTA나 한·중 FTA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점증하는 역 사갈등과 영토분쟁을 완화시키는 방편으로 인식할 수 있다. 단, 경제외 적 효과는 경제적 효과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의 의의를 지역통합의 시각에서 재음미해 보자. 한·미 FTA는 매우 복잡하고 껄끄러운 존재이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사회 시스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분명 직시해야 하나 그로부터 촉발된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가 우리의 애초 의도와는 무관하게 급박 하게 형성되는 새로운 지역질서 또한 외면하기 힘들다. 1950년대 이후 서유럽에서 지역통합이 진전될 당시, 미국은 소련견 제를 위해 서유럽의 통합을 지원하였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경쟁상대인 중국이 지역통합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동 지역은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이므로 이러한 동아시아에의 개입에 미국은 사활적 이익관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동 지역 의 통합에서 배제될 경우 미국은 결코 지원자가 아닌 방해자 될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가 FTA를 거쳐 지역통합에 원만히 이르기 위해서는 미국 의 개입을 일정 정도 용인해야 한다는 지역 차원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물론 그것이 곧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통합에의 교두보가 반드시 한국 이어야 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으로서도 그 상대로 분명 중국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23 은 아니고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과 허약한 농업 경쟁력이 공존하는 일 본도 쉽지 않으니 결국 적정규모의 경제력을 지닌 안보동맹국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을 제외한 역내국의 미국에 대해 태도는 어떨까? 지 난 20년간 동아시아의 역내무역의존도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으나 역 내국의 최대 수출시장이 된 중국은 오히려 동 기간 역외시장 의존도를

높여왔다(金良姬, 2011; 2012). 이는 동 지역이 미국과 EU를 배제한 폐 쇄적인 무역블록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니와 경제적 효과 도 제한적임을 시사한다. 결국 동아시아는 미국과 함께 지역통합을 설 계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통합의 시각에서 볼 때 한·미 FTA의 불가피성은 일정 정도 인정되나, 그것이 반드시 한·미 FTA와 TPP를 매개로 한국과 동 아시아의 경제사회시스템을 미국화해야 한다는 당위성마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점에서 한국은 애초부터 동아시아경제통합에 대한 시야를 갖지 못함에 따라 지역 거버넌스의 표준으로 삼기 어려운 과도히 높은 수준의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전략적 우를 범한 것이라 하겠다.

4. 결론

지금까지 필자는 최근 동아시아에서 부각되는 ‘이중의 세력전이’를 지 역의 경제통합을 저해하는 핵심적인 특징으로 규정하고, 이로 인하여 동 지역에서 경제와 안보의 협력공간이 불일치하며, 경제적으로는 실 물경제와 금융부문의 협력공간이 불일치하는 ‘이중의 협력공간 불일치’ 현상이 나타나며 ‘동아시아’란 지역적 구분 자체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

24 동향과 전망 87호 다고 진단하였다. 최근의 급속한 양자간 FTA 체결 양상도 이중의 세력 특 전이가 실물경제 부문에서 촉발한 ‘FTA 도미노 효과’로 파악하고 그 출 집 발점이 한·미 FTA였음을 보여주었다. 한국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중의 세력전이로 인하여 한·미 FTA가 체결되는 순간 이미 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주변국과의 FTA 도미노는 예고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이중의 세력전이’ 가 존재하는 한 ‘이중의 협력공간 불일치’도 변수가 아닌 상수로 간주해 야 하며,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 정책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충분 히 고려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한국정부에 의 정책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와 안보의 협력공간 불일치’가 주는 함의다. 우리는 이로 부터 경제협력의 제도화로 외교안보적 불확실성 해소를 촉진하는 기능 주의적 접근의 유용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는 분단국가인 우리 와 세력전이의 와중에 패권국간 갈등이 첨예한 동 아시아에서 시종일 관 견지해야 할 전략적인 관점이다. 가령 우리가 구축한 FTA 네트워크 를 적극 활용하여 북한의 개성공단을 동아시아 생산 네트워크에 편입 시키고자 노력하며, 한·중 FTA 및 한·러 FTA를 남·북 경협 활성화 의 장으로도 활용해야 한다. 한·일 FTA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한·미 FTA를 지역경제통합의 시각에서 재조명해 보고 이미 발효된 한·미 FTA의 부작용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우리 스 스로 설계하는, 우리에게 유익한 지역 FTA의 동력으로 활용하고자 하 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경제와 외교안보의 협력공간이 불일치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TPP 합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TPP에서 배제되 는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미·중 틈바구니에서 스스로 운신의 폭 을 좁힐 수 있다. 일본의 TPP 가입 방침은 미국 편승 전략을 의미하는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25 바, 일본은 이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적 역할을 기대하기 곤란한 이해당사자의 한 축이 되었으므로, 중·미 간 이해조정자가 필요한 상 황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경도되어 있고 미국은 전통적인 안보동맹국으로서 어느 한쪽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미국과 중국 중 어 느 한 편에 편승하거나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역내의 공통이해 기반을 찾아내고 양국이 이를 위한 협력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TPP 합류에 신중해야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TPP가 동아시아 적 특성에 부합하는 거버넌스인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개도국 대부분은 TPP와 같은 고강도 상품시장 개방에 적응하기 어려우 며 네거티브 리스트나 랫칫 조항이 포함된 서비스와 투자 시장 개방도 시기상조다. 지재권, 경쟁정책, 정부조달, 기술표준 등도 아직 감내하 기 어려운 수준이다. 우리는 우리의 특성에 맞는 지역 거버넌스를 상상 할 수 있지 않을까. 둘째, ‘금융과 실물경제의 협력공간 불일치’가 주는 함의는 무엇일 까. 제도화가 진전된 금융협력부문에서 한국은 그 결실을 소중히 하며 주요 이해당사자인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여 금융협력의 제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는 금융통합 자체의 진전뿐 아니 라 실물경제통합도 촉진시키는 토양이 될 것이다. 나아가 차기 정부는 FTA 추진 시 금융협력 의제를 적극 발굴하여 양자 간 시너지 효과가 최 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TPP 가입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 다. 특히 일본에 이어 한국마저 TPP에 가입할 경우 기축통화국이자 IMF 의 맹주이며 금융 시스템이 역내국과 판이하게 다른 미국이 주도하고 호주, 뉴질랜드 등 비아시아권 금융선진국이 포함된 TPP가 ASEAN+3 중심의 금융협력과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지녀 혼란이 가중되어 그 이

26 동향과 전망 87호 상의 진전이 더딜 수 있기 때문이다. 특 금융과 실물경제 협력공간의 불일치를 초래한 요인인 이중의 세력 집 전이가 단기간에 해소될 것이 아니므로, 역내국들은 당분간 각 공간에 서 협력의 제도화를 도모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이렇 게 본다면 동아시아 외환위기라는 공통의 역사적 트라우마의 소산인 ASEAN+3는 그간의 제도적 성과물도 존재하여 금융협력의 주 공간으 로서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반면 역내 광역 FTA의 주 공간은 한·중· 일 FTA, RCEP, TPP의 세 공간으로 다층화되어 당분간 상호 길항하며 병존하는 양상이 지속될 것으로 조심스레 전망한다. 셋째, 실물경제부문에서는 FTA 도미노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고, 지금과 같은 동시다발적 중복적 FTA 추진을 막고 최종 통 합비전과 추진원칙에 대한 주요국간 기본합의를 도출하고 순차적 추진 에 나서야 한다. 지금과 같은 여러 상대와 동시다발적이다 못해 동일 상대와의 중복 적인 FTA 추진은 현실적으로 협상에 참여하는 주무부처에 과도한 부담 을 주어 협상이익 극대화를 저해할 수 있다.복잡한 양허일정 및 원산지 규정 등은 오히려 역내 기업의 생산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거 래비용을 높일 수 있다. 발효 직후인 한미 FTA, 한·EU FTA의 영향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토대가 될 FTA를 경쟁 에 떠밀려 추진하는 것은 우리 경제와 외교안보의 불확실성을 증폭시 킬 뿐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동아시아 FTA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동아시아 각국의 국내경제와 선순환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지역통합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과 같은 중진국의 입장에서는 고용창 출형 지역통합이 되어야 한다.10) 둘째로 호혜주의적 지역통합이어야 한다. 중국과 캄보디아의 1인당 GDP는 각기 일본의 1/10, 1/70 정도에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27 지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동아시아의 지역격차를 반드시 완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촉진하는 FTA이어야 한다. 넷째, 이중의 세력전이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불가피하게 어느 패권국으로의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수 있는 양자 FTA의 도미노에 매몰되기보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다자주의의 복원에 노력하는 것이 전 략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역내 중견국과의 연대도 시야에 두 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한계와 향후 연구과제를 도출하는 것으로 본 연구를 매듭짓고자 한다. 이 연구는 금융협력과 실물경제 협력을 동 일 시야에서 파악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금융협력 자체에 대 한 논의 및 구체적인 양자 간 연계방안은 논하지 않았다. 마찬가지 이 유로 경제와 외교안보의 구체적인 연계방안도 다루지 않았다. 필자의 전문성에 비춰볼 때 이는 해당 전문가의 혜안에 기대고자 한다. 필자에게 스스로 던지는 향후 연구과제는 한국경제와 FTA의 관계 규명이다. 이 연구가 동아시아 FTA를 둘러싼 최근 흐름으로부터 한국 의 동아시아 FTA 정책에의 함의를 도출하는 것이나, 그 출발점이 되어 마땅한 한국경제와 FTA의 관계는 아직 전자에 미칠 후자의 영향 파악 은 시기상조라는 판단 하에 생략하였다. 이는 곧 각국 경제와 동아시아 FTA의 관계 규명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어 앞으로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위에서 시론적으로 제언한 동아시아의 FTA 추진 원칙도 향후 각 국 경제와 동아시아 FTA와의 관계 규명을 토대로 깊이를 더해야 할 것 이다.

2012. 12. 04 접수/ 2012. 12. 23 심사/ 2013. 01. 02 채택

28 동향과 전망 87호 주석 특 집

1) 일본의 TPP 참가구상 배경 중 한국의 FTA 추진에 자극받은 점에 대한 논의는 김양희(2011a)를 참고하라.

2) http://www.foxbusiness.com/news/2012/11/29/wsj-update-eu-japan -to- start-talks- on-free-trade-agreement

3) 동아시아의 중복적 양자 FTA 추진의 급진성은 NAFTA의 형성과정과 비교해도 확연하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에 체결된 NAFTA는 미국-캐나다 FTA (CUSTA)를 모체로 한다. 양국은 1986년 5월 협상을 시작하여 1989년 1월에 FTA를 발효하였다. 1990년에는 미국과 멕시코도 FTA 논의를 시작하고 1991 년에는 캐나다가 삼국 간 FTA를 요청함에 따라 1994년 1월 NAFTA가 발효되 었다. CUSTA 발효에서 NAFTA 발효까지 5년이 걸린 것이다.

4) 초기의 4개국이 체결한 것이 TPP이나, 이후 그 참가대상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 양자를 구분하고자 초기의 FTA는 태평양 4개국의 FTA라는 의미에서 Pacific4 (P4)라 하고 이후 회원국이 추가되면서부터 TPP라고 칭한다.

5) 참고로, 한국은 2025년의 소득 변화율이 TPP와 동아시아 FTA 참가 시 각각 2.16%, 4.12%이나 FTAAP 참가 시에는 6.11% 증가로 나타나 중국을 능가한 다. 일본의 경우도 동 수치가 각기 2.24%, 1.93%, 4.27%로 나타나 FTAAP 참 가 시 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다.

6) WTO 「원산지규정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Rules of Origin)」 제1부 제1 조에 따르면 “원산지규정이란 회원국이 상품의 원산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법 률, 규정 및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행정적인 판정으로 정의된다.” 원산지규정은 목적별로 관세상 특혜를 부여하는 특혜원산지규정과 비특혜원산지규정으로 나 뉜다(김양희·정성춘·이형근·김은지, 2008: 107).

7) 토머스 도너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2012년 7월 16일 방한 중에 한국의 TPP 참가를 촉구하였다(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 &no=440295). 또한 2012년 12월 태국의 방콕 포스트지는 지난 11월 1일 미 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TPP 참가를 공식 요청했다고 보도했으나 우리 정부는 이를 부인하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20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29 32105075&code=920100).

8) 한국의 FTA 정책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김양희(2006a; 2012c)를 참고하라.

9) 필자는 이러한 시각에서 한·러 FTA를 ‘한·러경제동반자협정(CEPA)’로 명명 하고 그 필요성을 외통부 관계자에게 설득하는 한편 한·러 경제포럼에서 Yanghee Kim(2005)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통상교섭본부의 FTA 담 당자는 러시아가 WTO 미가입국이므로 한·러 CEPA는 FTA가 아니어서 통상 교섭본부의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러시아 또한 당시 그 의미를 충분 히 인식하지 못하여 한·러 CEPA 구상은 무산되었다.

10)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를 자국의 고용창출기회로서 자주 언급하 고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 한·미 FTA는 자국 고용창출의 맥락에서 중시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30 동향과 전망 87호 참고문헌 특 집

김양희(2006a). 한국의 FTA정책의 비판적 검토와 대안 모색. 󰡔동향과 전망󰡕, 67호. 김양희(2006b). 일본의 FTA 정책의 특징과 전망. 󰡔동북아경제연구󰡕, 18권 3호. 김양희(2007a). 󰡔한반도경제론󰡕. 서울: 창비. 김양희(2007b). 󰡔한국형 개방전략󰡕. 공저 창비. 김양희(2011a). 일본의 환태평양파트너십협정(TPP) 참여전략의 정치경제학. 󰡔일본 공간󰡕, 9호, 서울: 국민대일본학연구소. 김양희(2011b). 󰡔일본과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공동체 구상󰡕. 동아시아연구원. 김양희(2011c). 미국, 한·미 FTA 발효되면 TPP 참가 요청할 것. 󰡔TPP와 동아시아, 분석과 제언󰡕2, 서울: 코리아연구원. 김양희(2012a). 지역통합 추구형 한·일 CRIA 추진을 위한 제언. 하영선·오코노기 마사오. 󰡔한·일 신시대와 경제협력󰡕, 서울: 한울. 김양희(2012b). 일본의 TPP 참여구상과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 효과. 한·일경상 학회 2012년 학술대회(2012. 8. 17) 발표문. 김양희(2012c). 공존의 대외정책.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편. 󰡔한국형 네트워크 국가 의 모색󰡕. 서울: 백산서당. 김양희·정성춘·이형근·김은지(2008). 󰡔일본의 기체결 EPA 분석과 한·일 FTA 에의 정책 시사점󰡕. 서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진영(2012). 글로벌 금융거버넌스와 아시아 금융 협력. 이용욱 편. 󰡔동아시아 금융 지역주의의 정치경제: 제도적 발전과 쟁점들󰡕. 서울: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 구소.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2003. 9). 자유무역협정(FTA)추진 로드맵.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2012. 11).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체결 계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2012. 11). 한·중·일 FTA 체결 계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2012. 11). 한·중 FTA 협상 추진 동향. 이용욱 편(2012). 󰡔동아시아 금융 지역주의의 정치경제: 제도적 발전과 쟁점들󰡕. 서 울: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이태환(2012). 󰡔동아시아 경제와 안보: 미중의 패권경쟁과 대응 전략󰡕. 서울: 세종연 구소.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31 経済産業省通商政策局(2011. 12. 5). 東アジア経済統合に関する背景資料. 金良姬(2010). グローバル経済危機と韓日·日韓経済協力の枠組みの再構築. 󰡔東アジア経済経営学会誌󰡕, 第3号. 金良姬(2011). 󰡔北東アジアのエネルギー政策と経濟協力󰡕. 京都: 京都大學學 術出版會. 金良姬(2012). 地域統合型日韓CRIAに向けて. 󰡔日韓新時代と經濟協力󰡕. 東 京: 慶義義熟大學. 外務省(2011). TPP協定交渉の概括的現状.

Armstrong, Shiro(2010). Interaction Between Trade, Conflict and Cooperation: The Case of Japan and China. Asia Pacific Economic Papers, 386. Baldwin, Richard(1993). A Domino theory of regionalism. NBER working Paper, 4465. Baldwin, Richard & Dany Jaimovich(2010). Are Free Trade Agreement Contagious?. CEPR Discussion Paper, 7904. Barfield, Claude & Philip I. Levy(2010. 28 January). Tales of the South Pacific: President Obama,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and US leadership in Asia. VOX. Bhagwati(1991). The World Trading System at Risk. Princeton university Press. USA Jack Ewing(Nov. 26, 2012). ‘US-EU free-trade pact gains favor’ New York Times, http://bostonglobe.com/business/2012/11/26/plan-for-europe-free-trad e-agreement-gains-momentum/mI7l1TC4UhLYsZt1BDQuqI/story.html Li, Chunding & John Whalley(2012). China and the TPP: A numerical assessment of the effects involved. NBER Working Paper, 18090. Kim, Yang hee(2005). Korea’s Northeast Asian FTA Policy and the Institutionalization of Korea-Russia Economic Cooperations: A proposal on a “Korea-Russi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CEPA)”. proceeding presented to The Korea-Russia Economic Forum(January 31 2005). Moscow. Petri, Peter A. & Michael G. Plummer(2012).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and Asia-Pacific Integration: Policy Implications. Policy Brief PB 12-16. Washington DC: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32 동향과 전망 87호 초록 특 집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김양희

본 연구는 동아시아의 ‘이중의 세력전이’가 ‘이중의 협력공간 불일치’를 초래했다고 진단하고 최근의 급속한 양자간 FTA 체결 양상도 이로 인 한 ‘FTA 도미노 효과’로 파악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지역적 특 성을 토대로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 정책에 주는 함의를 다음과 같 이 도출한다. 첫째, 경제와 안보의 협력공간 불일치로 인해 한국정부는 경제협력의 제도화로 주변국간 외교적 긴장완화에 노력해야 한다. 둘 째, 경제부문에서는 금융과 실물경제의 협력공간 불일치로 인해 한국 의 TPP 합류 여부는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셋째, 금융협력시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는 한편 FTA 추진 시 금융협력과 의 시너지 제고에 노력해야 한다. 넷째, 실물경제부문에서 광역 FTA에 대한 합의에 기반한 양자 FTA의 순차적 추진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한 국과 같은 중견국에는 양자주의보다 다자주의가 전략적으로 유리할 것 이다.

주제어 ∙ 자유무역협정, 한국 FTA 정책, 동아시아, FTA 도미노, 이중의 세력전 이, 이중의 협력공간 불일치

동아시아의 ‘FTA 도미노’와 차기 정부의 동아시아 FTA정책에의 함의 33 Abstract

FTA’s Domino Effects in East Asia and Implications for The Forthcoming Korea Government’s FTA Policy

Yang-Hee Kim

This study figures out ‘dual spatial mismatch of cooperation’ caused by ‘dual power transition’ and recent rapid bilateral FTAs surge in East Asia as aspect of the ‘FTA domino effect’ resulted in it too. Therefore, based on such as new regional characteristics, some implications on East Asian FTA policy in the forthcoming Korea government are as follow. First, it needs to ease dip- lomatic tension between neighboring countries by means of institutionaliz- ing economic cooperation owing to spatial mismatch of cooperation be- tween economy and security. Second, due to spatial mismatch of coopera- tion between financial sector and real economy in terms of economy, South Korea should carefully adopt if to join the TPP. Third, in the financial sec- tor, South Korea endeavors to serves as a bridge of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Japan while enhancing the synergy between financial cooperation and FTA. Fourth, in the real economy sector, the government may be better off to complete bilateral FTA in sequence based on a consensus for re- gion-wide FTA rather than doing simultaneously. Moreover, for a middle power just like South Korea, multilateralism is likely to be strategically bene- ficial rather than bilateralism.

Key words ∙ FTA, Korea’s FTA policy, East Asia, FTA’s domino effects, dual power transition, dual spacial mismatch of cooperation

34 동향과 전망 87호 특집 [새로운 대외-남북관계의 모색] 특

집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1)

2)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1. 머리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및 남북 경제협력 여건은 크게 악화되 었다. 남북관계는 오래 기간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남·북 경협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중 밀착 현상은 심화되고 있으며, 북·중 경협은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3년 이후 남북관계 및 남북 경제협력 여건 변화 가 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본격 가동, 한 국의 박근혜 정부의 출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2기 출범, 중국의 시진 핑 체제 출범 등 한반도 및 주변 국가들의 새로운 정권 등장을 계기로 향후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은 2012년 12월 발생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그리고 한국 대선에서 보수적 성향의 박근혜 후보의 당선 등으로

* 본 연구는 2012학년도 북한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장려금 지원으로 이루어졌음. ** [email protected]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35 크게 흔들리고 있다. 남북관계는 당분간 현재의 경색국면에서 벗어나 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조차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완전 소멸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 권의 출범은 기존 정책에 대한 재점검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대 선 당시 유력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는 남북관계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데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2013년 2월 남 한의 신정부 출범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계기를 제공할 가능성이 없지 는 않다. 물론 남북관계란 한국정부의 정책 구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대

북정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對) 북한, 대(對) 국제사회, 대(對) 국 내 등 3차원적인 관계가 맞물려 가는 것이다. 우선 북한이라는 매우 까 다롭고, 다루기 힘든 상대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아울러 미국, 중국 등 주변국 및 국제사회로부터 어떻게 지지를 받고 조 율해 나갈 것인지도 중요하다. 끝으로 국내적으로 상이한 이념과 관점 을 가진 정치세력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시민사회의 동의를 어떻 게 획득해 나갈 것인지도 중요하다.1)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로부터도 대북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새로운 정부는 대북정책을 어떻게 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이 글은 남북 간 경제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에서 대북정책 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토론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 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36 동향과 전망 87호 2. 이명박 정부 시대의 남·북 경협 현황 특 집 1) 이명박 정부 시대의 대북경협정책 개관 이명박 정부의 대북경협정책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경협 정책에 대한 강력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 간의 대북정책에 대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비 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통일부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기존 대북정책 효과의 미진한 부분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스스로 지적했다. 첫째, 북한에 끌려 다닌다는 인식 을 갖게 했으며, 둘째, 경협의 진전에 비해 평화·안보 분야의 진전은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지 못했으며, 셋째, 국민과 국제사회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시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2) 이 러한 ‘고해성사’적 자기비판은 향후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방향을 설 정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대북경협을 추진하는 4대 원칙으로 △북핵문제 의 진전, △경제성, △재정부담 능력, △국민적 합의를 제시했다. 이 가운 데 특히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북핵문제의 진전이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에서 합의한 핵심 경협사업들을 대부분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대북 경협사업을 북핵 진전과 연계해, 대규모 경협사 업은 북핵 문제가 진전되기 전에는 이행을 유보하겠다는 점을 누차 강 조하곤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남북대화가 단절되면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핵심 경협사업을 비 롯해 남북 당국 간 합의사항의 이행은 계속 미루어져 왔다. 이와 관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부시 행정부 1기의 ABC(Anything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37 But Clinton) 정책을 연상시키는 ABR(Anything But Roh) 정책이냐, 아 니냐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공식 명칭은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 지만 국민들의 기억 속에는 ‘비핵 ·개방·3000 구상’이라는 단어가 훨 씬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이 구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남 북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공약이었는데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대북정책 에서 핵심적 지위를 유지했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북한의 1인당 소득이 10년 안에 3000달러가 될 수 있도록 적 극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구상은 대북 지원 규모의 면에서는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고, 또한 매우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제지원 정책이지만 북한의 핵포기 및 ‘개혁개방’ 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 서 북한의 핵포기 및 ‘개혁개방’은 진전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남·북 경협도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2009년 7월 금강산에서 관광객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이라는 초강수로 대 응했다. 나아가 2010년에는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제 제재라는 강력한 카드를 들고 나와 북한에 대해 개성공단을 제외한 교 역과 교류를 사실상 전면 중단시킨 5·24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25년의 역사를 가진 남·북 경협은 갑작스럽게 사실상 중단되는 사태 를 맞이했다.

2) 남·북 경협의 사실상 중단 상태 5·24 조치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일반물자교역, 위탁가공교역 등이 중 단되었고, 또한 그 여파로 금강산관광 사업의 중단 상태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 경협 상황은 5·24 조치만으로는 전부 다 설

38 동향과 전망 87호 <표 1> 유형별 남·북 교역액 및 남·북 교역 총액 추이 (단위: 백만 달러, %) 특 구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1. ∼ 7. 집 일반교역 461 (51.7) 399 (-13.4) 256(-35.9) 118(-54.0) 0.2(-99.8) 0.3(91.8)

위탁가공 330 (30.4) 408( 23.8) 410(0.3) 318(-22.5) 4(-98.8) - (-)

개성공단 441 (47.5) 808( 54.5) 941(16.3) 1,443( 53.4) 1,698(17.7) 1.100(13.0)

기타 566 (14.6) 204 (-63.9) 73 (-64.4) 34 (-53.2) 12 (-64.0) 3 (-23.2)

남·북 교역 1,798(33.2) 1,820(1.2) 1,679 (-7.7) 1,912( 13.9) 1,714(-10.4) 1,103 (12.4) 총액

주1: 기타는 금강산 관광 관련 반출입, 인도적 지원 등. ( )는 전년동기 대비 증감율. 자료: 통일부, 한국무역협회

명이 되지 않는다. 5·24 조치가 취해지기 이전인 2008년부터 남·북 경협의 상황은 이미 악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이는 남·북 경협에 직 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표 1>에 나타나 있듯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교역 총액은 정체 및 감소 추세를 보였다. 남·북 교역 총액은 노무현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해인 2007년에 17억 9,8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3.2%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에는 18억 2,000만 달러로 전년대비 1.2% 증가에 그쳤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16억 7,900만 달러로 전년대비 7.8% 감소를 기록했다. 이는 5·24 조치가 취해지기 이전의 상황이다.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순수 남·북 경협 가운데 가장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었던 부문은 일반물자교역이다. 일반물자교역은 2007년에 51.7% 증가했던 것이 2008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이 해 13.4%, 2009 년에 35.9%의 감소세를 보였다. 5·24 조치가 취해진 2010년에는 전변 대비 54.0%, 2011년에는 99.9%의 감소 실적을 기록했다. 위탁가공교역의 경우, 2007년에 전년대비 30.4%의 증가를 보였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39 2008년에도 전년대비 23.8% 증가의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2009년에는 전년 대비 0.3% 증가에 그쳤으며, 5·24 조치가 취해진 2010년에는 22.5% 감소했고, 2011년에는 97.0% 감소를 기록했다. 한 편 5·24 조치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나 다름없는 개성공단은 지난 2010년 생산 및 반출입액이 오히려 크게 증가했고, 2011년, 2012년에 도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다(<표 1> 참조).

3) 5·24 조치와 남·북 경협 기업의 피해3) 갑작스럽게 실시한 5·24 조치로 우리 기업의 큰 피해가 발생했다. 남·북 경협피해조사단이 지난 2011년 1∼3월에 실시한 실태 조사 결 과4)에 따르면 손실 관련 조사에 제대로 응답한 기업 104개사가 5·24 조치로 인해 입은 손실액은 총 4,030억 원, 1개 업체 당 평균 38억 7,500 만 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5) 또한 조사에 응한 금강산지역 투자 진 출 기업 30개사가 관광 중단 이후 발생한 매출손실액은 1,178억 원에 달했다. 또한 정부가 취한 5·24 조치가 자사의 대북경협 사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66.9%에 달하는 기업이 “아주 크다”, 12.3%의 기업이 “큰 편이다”라고 응답해 전체의 79.2%가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5·24 조치 이전에 반출되었거나 계약, 발주된 원부자재의 반출입을 허용하여 업체들의 숨통을 틔워 주기는 했지만 이는 일시적 조치에 불과했다. 정부의 유예조치가 지난 2011년 2월로 종료됨에 따 라 장기적으로 업체들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졌다. 업체 입장에서 가장 큰 것은 대안을 찾을 수 있느냐, 아니냐는 것이었다. 업체들은 구조조 정, 축소경영 등을 통해 나름대로 생존을 모색했으나 뚜렷한 출구를 찾 을 수 없었다.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24 조치 이후 2년간

40 동향과 전망 87호 (2010. 5. 24∼2012. 5. 24) 폐업한 남·북 교역업체는 일반물자교역 특 160개사, 위탁가공교역 43개사 등 모두 203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 집 되었다. 이는 5·24 조치 이전 2년간(2008. 5. 24∼2010. 5. 24) 폐업한 남·북 교역업체(일반물자교역 117개사, 위탁가공교역 39개사) 156개 사에 비해 무려 30.1%나 늘어난 것이다. 남·북 경협이 20여 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대북사업이 생계수단으로 정착하게 되었는데 졸지에 기존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야 하는, 하지만 대안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봉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 의 투자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거래선과의 관계 유지 등을 위해 열악한 환경의 제3국 위탁가공생산지를 지속적으로 물색할 수밖에 없 지만 대안 마련이 결코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4) 금강산 관광사업 현황 금강산 관광사업은 지난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5년 가까이 장기간 중단된 상태다. 그동안 북측의 책임 인정과 재발방지 약속 등을 둘러싼 남북 간 대치가 계속되었다.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에 합의 했지만 정부는 당국 차원이 아니라며 외면했다. 이어 지난 2010년 2월 남북당국은 개성에서 관광재개 실무회담을 열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 고, 북측은 4월 금강산 특구 내 남측의 정부 자산을 동결시키고 관리인 원을 추방했다. 게다가 한국정부가 5·24 조치를 발표한 이후 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더욱이 북한은 기존 사업구도의 무효화 및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해 남한과 마찰을 빚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11년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 제정이라는 새로운 입법조치를 단행해 2002년에 제정한 금강산관광지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41 구법의 사실상의 무효화, 현대아산의 독점권 취소를 단행했다. 나아가 북한은 지난 2011년 8월, 금강산 지구 내 우리 측 자산에 대한 법적 처 분을 단행한다고 발표하고 우리 측 인원을 모두 추방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 지구에는 남측 인력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울러 북한은 금강산관광사업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한편 중국, 해 외동포 등 제3의 사업자를 통한 해외관광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섰 다. 이에 따라 중국여행사가 중국인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실시하면서 금강산 내 온천장 등 남한시설을 사용하고 있는 것 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태가 꼬여도 너무 많이 꼬여 버렸다.6)

5) 개성공단 사업 현황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악화는 개성공단의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측은 총론적으로는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남측의 정책 기조 에 반발했지만, 각론적으로는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남측 정부의 의지 가 약화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과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08년 겨울부터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통행 제한 및 차단 조 치, △현대아산 직원 억류, △기존 계약의 무효 선언 등 일련의 압박조 치를 취하면서 개성공단 사업의 위기적 상황을 초래했다.7) 그러던 중 북측이 2009년 8월부터 남한에 대해 미소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개성공 단의 경영여건은 다소 회복되기 시작했다. 남북관계 악화, 북한의 압박조치 등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가장 큰 것은 바이어들의 이탈 및 주문 감소 등으로 인한 가동률 하락, 생산 위축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생산액 은 연간 기준으로 보면 2008년까지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다 2009년 에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되었다(<그림 1> 참조). 가동기업수는 2008년 말 93개사에서 2009년 말 117개사로 25.8% 증가했으나 총생산액은

42 동향과 전망 87호 <그림 1> 개성공단 제품 생산 및 북한 근로자 추이 특 집

자료: 통일부

2008년 25,124만 달러에서 2009년 25,647만 달러로 2.1% 증가에 그쳐 기업당 평균 생산액은 270.2만 달러에서 219.2만 달러로 무려 18.9%나 감소했다. 다만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조치를 철회한 2009년 9월부터는 상황이 다소 안정되기 시작해 연간 기준으로는 2010년부터 실적이 다소 회복되었다. 기업당 평균생산액으로 보면 2008년 수준을 거의 다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2011년의 경우, 연간 생산액은 40,185 만 달러로 전년의 32,332만 달러에 비해 24.3%나 증가했는데 특히 2010년의 5·24 조치 이후에도 생산액이 크게 증가한 것은 주목할 만 한 점이다. 또한 2012년에도 생산액은 큰 폭의 증가세를 지속해 1월부 터 7월까지 생산액은 27,423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0% 증가했다. 한편 개성공단의 최대 현안의 하나가 북측 근로자 공급부족 사태8) 다. <그림 1>에서 보듯이 북한 근로자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다 지난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43 <표 2> 개성공단 북측 근 로 자 1인당 월평균 생산액 및 보수 추이 (단위: 달러)

2012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1/4분기

1,061 1,259 901 579 632 708 757 월평균 생산액 (18.7) (-28.4) (-35.7) (9.2) (12.0) (6.9)

68.1 71.0 74.1 80.3 93.7 109.3 127.1 월평균 보수 (4.3) (4.4) (8.4) (16.7) (16.6) (16.3)

주1: 1인당 월평균 생산액 = 당월 생산액 / 당월 생산가동 기업 소속 근로자수. ( )는 전년대비 증감율. 자료: 통일부

2008년 말부터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가동기업수의 증가세를 북측 근로자수가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동력 공급 부족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성공단은 어느덧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으로 변모하고 있다. 즉 노동력 공급자인 북한당 국이 노동력 수요자인 남한당국 및 입주기업에 대해 절대적인 힘의 우 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에 남북한 합의 및 ‘제도’에 의해 운 영되던 개성공단에 북한당국의 자의성·일방성이 점차 확대되면서 시 스템에 균열이 가고 있다. 북한정부가 지난해 8월 세금세칙을 일방적 인 개정·통보 사례, 이른바 ‘세금폭탄’ 사례도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 했다. 게다가 북한당국은 노동력 공급을 무기화해 실리주의를 극대화하 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표 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개성공단 근무 북측 근로자들의 월평균 보수는 2010년부터 매년 16% 이상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근로자들의 월평균 생산액 의 증가속도를 크게 웃돌고 있다.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에서 남한정 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44 동향과 전망 87호 3.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에 대한 평가 특 집 1) 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 보수적 시각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에 대해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정부· 여당 및 보수 진영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남북 관계를 정립하고자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는 점 이 가장 큰 성과라는 것9)이다. 북한이 대남 강경정책을 폈지만 이에 흔 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으며, 특히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 발전 을 위해 일관된 대북원칙을 견지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 이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 촉진하기 위해 비핵·개방·3000을 제 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신평화구상,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등을 제안했다. 개성공단사업의 경우, 북측이 임금, 토지임대료 등에 대해 기존 합의를 파기하며 무리한 요구를 할 때 우리 정부는 국제규범 확립, 경제원리 추구, 미래지향적 발전 등 ‘개성공단 발전 3원칙’에 따라 북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금강산관광사업도 관광재개에 대한 안팎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안전보장 등 3대 선결요건이 충족되지 않으 면 관광사업을 재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이에 따라 남한은 북한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게 되었으며, 북한 에 대해 할 말은 다 하는 당당함을 보여주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남한 에게 협박을 하고 생떼를 쓰는 종전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일종의 학습효과인 것이다. 또한 천안함 사건 과 같은 북한의 도발 이후에 그에 합당한 응징을 함으로써 도발과 같은 나쁜 행동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일관성 있 는 태도는 중장기적으로 우리에게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10)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45 결국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정책적 오류로 인해 남북관계가 잘못되어 있던 것을 이제야 바로 잡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남북관계도 정상화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대로 된’ 남·북 경 협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2) 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 진보적 시각 반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에 대해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야 당 및 진보진영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과정’으로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과’로서는 낙제점이라는 평가다. 특히 정부정책이 라는 것은 결과, 즉 성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 다고 한다. 보수 진영의 주장처럼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이 북한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냈는지, 나아가 남한의 차기 정부 들어 북한의 행동에 변 화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 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지만, 앞으로는 이명박 정부 또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울러 통상 대북 경협정책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설정하는 정책의 목표를 이명박 정부에 대해 적용하면 △남·북 관계 개선, △남·북경 제공동체 형성, △북한의 개혁개방, △남한경제에 대한 기여 등 모든 면 에서 초라한 성적표다. 물론 남한 정부는 북한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과연 남한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미지수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이 가져온 가장 큰 문제점은 남· 북 관계의 후퇴, 남·북 경협의 위기다. 지난 10년간 대화와 화해협력 정책을 통해 남과 북이 힘들게 신뢰를 쌓아놓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간의 대치, 대립으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졌고, 남·북

46 동향과 전망 87호 관계는 냉전 시대로 회귀했다. 특 아울러 남·북 경협은 25년의 역사 속에서 현재 최대의 위기를 맞 집 고 있다. 남·북 경협은 이제 개성공단 하나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 모 든 사업은 궤멸된 상태다. 남·북 경협의 현장에서 뛰는 당사자들, 즉 민간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아산은 관광사업 중단이 장기화되면서 5천억 원이 넘는 매출 손실을 기록했고, 수차례의 구조조정으로 직원수도 관광 중단 전에 비 해 무려 70% 이상 줄었다. 현대아산의 협력업체들도 상당수가 사실상 파산상태에 놓여 있으며, 금강산 관광의 남쪽 관문이었던 강원도 고성 지역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남·북 경협 기업들은 갑작스런 5·24 조 치로 큰 피해를 입었다. 도산한 기업도 있는가 하면 매출 격감, 적자 누 적으로 신음하고 있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물론 우리 정부는 특별자금 융자 대책을 내놓았으나, 기업에 대한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 명해, 정부와 기업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관광중단 자체도 문제지만 이후의 사태전개가 추가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북측은 기존의 사업구도를 무효 화하고 자신들의 주도로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낫다고 하는 개성공단도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다. 노동력 공급 부족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성공단은 어느덧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으로 변모하고 있다. 더욱 더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부정적 학습효과이다. 대북사업이 그 속성상 남·북 관계, 남·북 당국의 정책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최근의 경험은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이른바 부정적 학습효과 가 크다. 남·북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남·북한 당국이 어떤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사업당 사자인 기업임을 절감했을 것이다. 설령 의욕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47 5·24 조치로 인한 장기간의 경영난으로 인해 대북사업을 재개할 ‘여 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3) 북·중 경협의 확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남·북 경협이 침체의 늪에 빠진 반면 북한과 중국은 더욱 밀착, 북·중 경협은 확대일로를 걷 고 있다. 게다가 남한의 5·24 조치로 남·북 경협은 거의 중단된 반면 북·중 경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북한에서는 중국 일변도의 기형 적 교역구조가 고착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전체 무역(남· 북 교역 포함)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의 57.0%에서 2011 년에는 70.1%로 껑충 뛰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는 남·북 경협과 북·중 경협이 동반 증가 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2008년부터는 반대 방향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

<그림 2> 남·북 교역과 북·중 교역 추이 (단위: 억 달러)

60

50

40

30 북중교역 남북교역

20

10

0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자료: 통일부

48 동향과 전망 87호 했다(<그림 2> 참조). 특히 5·24 조치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2011 특 년의 경우, 남·북 교역액은 17억 1,400만 달러로 전년대비 10.4% 감소 집 를 기록한 반면, 북·중 교역액은 56억 2,900만 달러로 전년대비 62.4% 증가라는 폭발적 증가세11)를 나타내어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아울러 남·북 교역액과 북·중 교역액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면서 많은 사람 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또한 북·중 접경지대의 경제협력이 계속 활기를 띠고 있다. 우선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과 관련된 중국의 대북투자 소식은 지속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지난 2011년부터는 황금평·위화도 및 라선 경제 특구의 개발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같은 해 6월 이 두 지대의 착공식 이 개최되었다. 또한 같은 해 4월 시작된 나진항-원정리 구간 도로보수 공사는 2012년 9월에 완공되었다.12) 아울러 중국 지린성에서 생산된 석탄이 북한 나진항을 통해 중국 남방지역으로 수송되는 물량이 이미 10만 톤을 넘어섰다는 보도13)도 있다. 북·중간의 유대 강화, 경제협력 강화를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 표는 인적교류이다. 중국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에 북한을 방문 한 중국인은 19만 3,900명으로서 전년대비 47.9%의 증가율을 기록했 다. 아울러 같은 해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은 모두 15만 2,300명으로 서 전년대비 31%의 증가율을 나타냈다.14) 지난 2011년 12월 말에는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이 제정, 공 표되었고, 같은 시기에 기존의 라선 경제무역지대법이 전면 개정, 공표 되었다. 이들 법은 2002년 말에 제정, 공표된 개성공업지구법보다 훨씬 기업친화적, 시장친화적 요소를 담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15) 북·중 경 협은 이제 경제협력의 제도화가 상당히 진전되었고, 개혁개방적 요소 도 진일보한 면이 있다. 최근 2∼3년간 북·중 경협의 폭발적 확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49 것인가. 2009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대북정책이 크게 변화했으며, 특히 포용정책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중 경협이 종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발전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 제는 중국 중앙정부가 직접 개입하면서 종전과는 차원이 달라졌으며, 따라서 남한으로서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그런데 북·중 경협은 단순히 경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국제관계적 함의를 가진다. 예컨대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초래한다는 것, 이에 따라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 구상이 순조롭게 진 행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또한 중국정부가 북한의 현 정권과 결탁하려 는 것, 따라서 북한의 현 정권을 강화시켜주는 역할도 수행할 것이라는 점인데 이는 과거 보수적 시각에서 한국정부가 남·북 경협을 통해 북 한의 체제를 강화시켜 준다고 비판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의 사안이다. 아울러 북·중 경협은 북한의 자체적인 경제개발을 저해한다는 점이 다. 동시에 북·중 경협은 한국의 사업 기회 축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4) 종합적 평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을 종합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원 칙과 일관성의 견지를 통해 북한의 대남 인식에 변화를 발생시키고 이 에 따라 남·북 관계, 남·북 경협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초석을 놓 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학습효과도 있을 수 있 다. 그리고 이는 차기 정부에게 물려줄 귀중한 플러스의 유산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악화, 남·북 당국 간 신뢰 상실, 남·북 경협의 위기적 상황, 나아가 북·중 경협 확대 및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라는 비용을 치렀다. 이는 차기 정부에게 물려줄 상 당한 부담, 즉 마이너스의 유산으로 평가될 수 있다.

50 동향과 전망 87호 물론 이렇게 성과와 비용을 구성하는 제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특 얼마만한 가중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플러스 마이너스를 다 따진 합 집 계, 즉 전체적인 평가는 상이해질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관점, 철학, 때로는 당파적 입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종합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경협정책에 대해서는 칭 찬보다는 비판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16) 물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 책은 큰 흐름으로 보아 안보우선 정책이었고,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 부의 대북정책이 교류협력 우선정책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17) 즉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 경협은 안보보다 우선순위가 낮은 것이었기 때문에 경협의 위축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지나치게 경직적이었으며, 남·북 경협 은 필요 이상으로 위축되었다. ‘비핵·개방·3000 구상’은 처음부터 지 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밀어 붙이다 사실상 좌초했다. 물론 안보상의 이유로 5·24조치의 불가피성 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으나 5·24조치는 과도한 조치였다는 비판이 조 금 더 우세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 의지도 약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결국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유력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남·북 관계를 지금과 같이 유지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8)

4. 남·북 경협의 필요성과 목표, 원칙

1) 남·북 관계와 남·북 경협의 필요성 남·북 경협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 경협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한 재검토, 재정립이 불가피하다. 남·북 경협의 필요성과 의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51 미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 따라서 무조건적인 남·북 경협의 복원 에 반대하는 입장의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 경협의 필요성 과 의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필요성과 의미부터 시작해 야 한다. 북한의 미래는 북한이 결정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사실, 하지만 엄 연한 진리를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극단적으로 북한이 내전 내 지 무정부 상태에 돌입한다 해도, 정권이 껍데기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 한다 해도,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국제사회 가 북한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 PKO와 같은 조직이 북한에 주 둔할 수는 있어도 이는 과도기적 상황에 불과하다. 결국 북한 주민의 선거에 의해 북한 스스로의 정권을 수립하고, 이 정권이 주권 국가 북한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의탁할 것 인지, 홀로서기를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남한이 북한과의 통일을 지향한다면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 다고 하면 결국 북한 주민이든, 북한 지도부이든 그들의 마음을 여는 것 이 남한으로서는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남한과 북한의 신뢰가 중요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이 국제사회에 대해 남·북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남한 스스로의 의지와 자세를 인정받아야 한다. 단순히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국제사회가 수긍하기 어렵다. 과거에 동일한 민족이었지만 지금은 남남으로 살고 있는 국가는 이 지구상에 한둘이 아니다. 요컨대 한반도에서 북한에 대한 남한의 특수한 지위를 국제사회에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 다. 한반도의 운명이 주변 열강에 의해 타율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남과 북이 일정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52 동향과 전망 87호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유지, 발전이 필수적인 조건으로 된다. 특 이러한 남·북 관계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그런데 당분간은 경 집 제적 측면이 핵심적이다. 최근 남·북 관계에서 경제 분야의 교류·협 력은 정치·군사 등 다른 분야의 남·북 관계들, 나아가 남·북 간 전반 적인 화해·협력을 선도하는 기능을 부여받았다. 물론 이러한 ‘선도성’ 에 다소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우선성’을 부인할 정도는 아니다. 경제 분야의 교류·협력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은 남·북 관계의 안정·발전에서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완화가 우선적 과제로 등장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남·북 경협의 목표 향후 남·북 경협의 복원과 발전을 위해서는 남·북 경협의 목표에 대 한 성찰 및 토론 과정을 통해 국민적 합의수준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불가피하다. 이는 남·북 경협의 필요성, 의미에 대한 논의와 맞물려 있다. 통상적으로 남·북 경협은 여러 가지 목표를 설정해 왔는데 남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목표의 우선순위와 강조점이 다를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목표가 제시되었으나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 가능 하다. 첫째, 위험 관리다. 이는 북한이 남한에 대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극소화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경제적 붕괴를 방지함으로써 대량 탈북, 북한 내 소요사태, 남·북 간 (국지적) 군사적 충돌 가능성 등 예기치 못한 위험을 억제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북한경제의 한 국의존성 심화라는 레버리지를 통해 남·북 간 정치적 군사적 긴장을 완화, 관리하는 것이다. 달리 보면 한반도 정세 및 남·북 관계를 안정 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제2의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막기 위해서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53 남·북 경협의 이러한 경제외적 효과를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경제의 발전이다. 즉 북한이 남한에 대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 남한과 좋은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 으로는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남한경제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 지 하자원, 지리적 장점 등의 경제자원을 활용함으로써 남한경제의 성장 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하락 하고 한국경제가 자칫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남·북 경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이다. 남·북 경제공동체는 기본적으 로 통일의 한 과정으로 파악되고 있다. 통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고, 이들 각 분야의 통 합과정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독립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제 분야의 통합이 상대적으로 빨리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기존에 한국 내 남·북경제공동체 논의는 점진적·단계적 통일방안에서 핵심요소의 하나였는데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공동체를 우선적으로 건설, 그 기반 위에 정치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예컨대 ‘민족경제공동체 건설 방안’에서는 화해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통일국가완성단계라는 3 단계를 설정했는데 두 번째 단계인 남·북연합단계에 경제공동체 건설 을 상정하는 것이다. 남·북경제공동체는 한국의 어느 정부라도 소홀 히 할 수 없는 목표이다. 이처럼 남·북 경협의 목표는 △위험 관리, △한국경제의 발전, △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으나, 향후 5년간 중

54 동향과 전망 87호 단기적으로는 한국경제의 발전과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에 우선순위 특 를 부여해야 한다. 물론 위험 관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 집 다. 다만 위험관리는 소극적인 목표설정이며, 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목표를 설정, 한국경제의 발전과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위험 관리 및 한국경제의 발전이라는 목표도 보다 전향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위험관리라기보다는 남·북 관계의 개선, 나아 가 한반도 평화의 추구다. 또한 한국경제의 발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한 경제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북한주민의 기초 생활 보장이라는 목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주민의 삶의 질 향상 을 위해 의식주, 보건의료 등의 분야에서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 이다.

3) 남·북 경협의 원칙 향후 남·북 경협의 추진을 위해서는 남·북 경협의 원칙에 대한 재점 검도 필요하다. 첫째, 정경분리다. 이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을 분리하는 것으로서 남·북한 경제협력이 북핵문제, 남·북 관계 등 정치적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원칙이다. 정경분리 원칙을 현실세계에서 지켜내기가 용이하지 않은 것은 분 명하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경우, 과도한 정경연계 정책이었다는 평가 를 받고 있다. 북핵문제와 남·북 경협의 철저한 연계도 그러하지만 5·24 조치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 사 등을 배경으로 박근혜 정부 시대에도 정경연계 정책이 펼쳐질 우려 가 있다. 따라서 향후 최소한, 민간차원의 경협에 대해서는 정경분리 원칙을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55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정치군사적 여건을 이유로 민간차원의 경협에 직접적인 제약을 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정부차 원 경협의 경우,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일정 수준의 정경분리 노력이 필 요하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여건과 사안에 따라서 는 남·북 경협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다. 남·북 경협은 기본적으로 공 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경제적 비경제적 외부성(externality)이 존재한 다. 여기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의 필요성이 도출된다. 또한 정부의 정 책은 남·북 경협에 대한 ‘시장의 실패’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 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정부정책은 여러 요인들에 의해 시장의 힘만 으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만큼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남·북 경협에 대해 제반 시장적 비시장적 장애를 제거하고 필요한 정책적 지 원을 제공함으로써 경협이 효율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다는 데 역점을 두게 된다. 특히 정부는 제도적 환경 구축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민 간이 나서기 어려운 분야에 정부재정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각 에서는 민간의 대북사업에 대해 철저한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기업의 자기책임만을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 만 북한과 같이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 대해 시장경 제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얼마나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일정 수준 의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다. 또한 일정 정도는 대북정책뿐 아니라 중소기업 정책 차원에서도 민 간을 지원해야 한다. 물론 정부 개입의 정도, 수준, 방식 등에 대해서는 사전적으로 원칙과 기준을 설정해 둘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민간의 도 덕적 해이 현상을 막기 위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56 동향과 전망 87호 5. 차기 정부의 대북경협정책 과제 특 집 1) 당면 과제 (1) 5·24 조치 해제 문제 5·24 조치의 해제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공감대가 상당 정도 형성되 어 있다. 하지만 전제조건 및 방법에 대해서는 정부·여당과 야당 사이 에 상당히 큰 견해차가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 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겠지만 “(남·북 대화를 한다고) 5·24 조치를 해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북한이) 아무 변화도 없는데 아무 일 없다는 식으로 할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19) 5·24 조치의 해제 는 천안함·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포함해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인식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반면 야당에서는 5·24 조치가 실효성이 없으며 우리 기업의 피해 만 크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이 즉각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 다. 그런데 북한은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는 사과할 용의가 있으나 천안 함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연관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 에 사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문제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여러 가지 정책적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우선 국회 공 론화 과정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자는 의견20)도 나오고 있다. 국회가 5·24 조치의 해제를 결의하고 이를 정부에 건의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5·24 조치는 그대로 둔 채 정부가 새로운 방침,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 문제를 우회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여당 일각에서는 “5·24 조치의 해제를 반드시 선언적 (방법)으로 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주목되 고 있다. 공식적 해제는 정치적 부담감이 크기 때문에 곤란하고 따라서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57 실질적 해제가 차선의 방안 혹은 과도기적 방안으로서 추진될 수 있다. 아울러 전면적 해제가 아니라 부분적·단계적 해제도 검토의 대상 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유연화 조치’를 확대해 나가는 방안21)이다. 물론 여기에도 수준과 범위의 문제는 남겠지만 방향성 자체에 대해서는 공 감하는 의견들이 어느 정도 있다. 한편 향후 5·24조치가 해제되더라도 남·북 경협 기업들이 즉각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은 사업재개를 모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특히 5·24조치 이전과 같은 사업환 경을 조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존의 북한 파트너가 여전히 유효한지가 불분명하고 기존에 북한에 투자했던 설비나 장비들도 개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기투자분 의 회수와 개보수 및 추가투자를 둘러싸고 남·북 간, 또 남한 내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전망이다. 5·24조치 이후 중국 및 동 남아시아 등으로 거래선을 옮긴 위탁가공업체들은 다시 북한으로 거래 선을 변경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업체들은 5·24조치로 인한 피해보상을 주장하면서 현재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업체들은 5·24조치로 자금사정이 매우 어려워졌고 교역재개를 위해서는 손실보상과 더불어 금융지원 등의 정 부지원이 필요함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정부 의 전향적인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2)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 또한 5·24 해제와 유사 하게 관광 재개의 전제조건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 내에 대립적인 견해 들이 존재한다. 핵심은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진상 규명, △재발 방지 책 마련, △관광객 신변안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3대 전제조건

58 동향과 전망 87호 의 충족과 관련된 ‘수위’의 문제다. 특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3대 전제조건의 충족을 지속적으로 집 요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신변안전과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이 관광객 신변안전을 보장하고 재발방지를 확약해야만 관광 재개가 가능 하다고 주장해 왔다. 박근혜 당선자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북 한당국이 지금이라도 재발방지 등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 있 는 조치를 취한다면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22) 반면 야 당에서는 2009년 북측이 최고 지도자의 발언이라는 형태로 신변보장 에 대해 의사표현을 했다는 점, 그리고 2010년 당국 간 실무접촉에서 관광객의 신변안전을 ‘문서’로 보장했다23)는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측의 견해차를 좁히기는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여기에서 도 정책적 아이디어들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우리가 요구 했던 3대 전제조건을 김정일 위원장이 약속했다는 큰 틀을 인정하면서 우리의 요구조건을 구체화하는 협상을 추진하는 방안24)이다. 아울러 사건이 발생한지 상당한 시일이 흘러 진상조사는 실질적 의미가 크지 않고, 북측이 이미 간접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사과를 표명했으므로 향 후 신변안전보장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구축을 전제로 관광 재개를 추 진하는 방안25)도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 재개는 3대 전제조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 광대가라는 현금이 북한당국에게 직접 유입됨으로써 북한의 군사력 강 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우리 정부에 남아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 면 남·북 간에는 일체의 경제 교류협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아직은 미지 수이다. 한편 관광사업을 재개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재개한다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59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미 2011년에 금강산국제관 광특구법 제정이라는 새로운 입법조치를 단행해, 2002년에 제정한 금 강산관광지구법을 사실상 무효화시키고 사업자인 현대아산의 독점권 을 취소했으며, 금강산 지구 내 우리 측 자산에 대한 법적 처분을 단행 한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뒤엉켜 버린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도 고민 거리이다. 또한 향후 우리가 북측에 대해 원상회복을 요구할 경우 북측 은 관광중단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3) 개성공단 사업 개성공단 사업의 최대 현안은 노동력 문제다.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당분간은 근로자 숙소 문제가 최대 과제인 데 이것과 관련된 핵심 쟁점의 하나가 소요재원을 각 주체별로, 즉 한국 정부, 한국기업, 북한정부 간에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근 로자 숙소 문제가 핵심 현안이기는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철도, 도로 등 교통망 확충을 통해 근로자 출퇴근 여건 개선 을 통한 근로자 공급 확대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다 근원적으 로는 노동력의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 특히 기업들의 과잉수요를 제어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야 한다. 노동력과 더불어 가장 큰 현안은 통행, 통신, 통관 등 3통 문제이다. 이는 기존에 남·북 간에 논의되고 합의된 내용을 구체화하고 수정· 보완해 실천할 필요가 있다. 한편 남·북 당국은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동년 12월 개최된 개성공단 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노동력 공급 문 제, 3통 문제 등 개성공단의 핵심 현안의 해결에 대해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이러한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2008년 1월에 실무 협의를 했

60 동향과 전망 87호 <표 3> 개성공단 관련 남·북 간 주요 합의사항(2007.12) 특

① 남·북 군사당국이 합의한 시행일부터 연간 매일 07:00∼22:00까지 상시통행 보장 집 ∙ 일요일 통행 시 48시간 전 통보 ∙ 남·북 간 출입업무, 출입심사를 전자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전자출입체계(RFID)를 2008년 상반기 중 본격 운영 ② 통신센터 건설, 인터넷, 유무선 전화 서비스 제공을 위한 실무협의를 빠른 시일 내에 개최 ③ 통관방식을 선별검사로 빠른 시일 안에 시행 ④ 1만 5천여 명 규모의 북측 근로자 숙소 착공(2008년 상반기) ⑤ 2008년 개성공단 통근열차 운행 ⑥ 개성공단협력분과위 제2차 회의는 2008년 2월중 개성 개최

으나 결국 협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여기에는 정권 교체기라는 사정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개성공단 문제를 둘러싼 남· 북 당국 간의 공식접촉은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의 최대 현안인 노동력 공급 문제, 3통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5년이 경과했다. 한편 5·24 조치 해제 이후의 개성공단 추진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향후 남·북 관계 개선 국면에서는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여부가 핵심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개성공단 사업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1단계 사업에서 끝내고 2, 3 단계 사업은 유보하면서 다른 지역에 제2, 제3의 개성공단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 단 사업은 이미 성과가 입증되었고, 인프라에 이미 투하된 자금이 충분 해 추가적 소요 자금이 그다지 크지 않아 적어도 2단계 사업까지는 확 대되어도 경제성이 충분하며, 따라서 개성공단 2단계 사업도 추진하는 것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제2, 제3의 개성공단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61 주장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지나치게 앞서간 논의들이다. 현재 개성공단은 1단계 사업이 진행 중으로 필지기준으로 210개사(아파트형공장을 포 함하면 300개사 전후)가 입주할 예정인데 현재는 123개사만 입주해 있 는 상태다. 입주예정기업의 40%만 입주해 있는 셈이다. 이들이 모두 입 주하면 개성공단 근로자 수는 13만∼15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는 123개사에 5만 명의 근로자가 근무 중인데 입주기업의 요구만 놓고 보 더라도 2만 명이 모자란다. 따라서 향후 추가적으로 8만∼10만 명의 근 로자가 필요한데 이들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그런데 북한지역에서 인프라에 대한 추가적 투자 없이 동원할 수 있는 개성지역 및 인근 지역 근로자들은 사실상 바닥난 상태이다. 한국 정부가 근로자 숙소 건설 등에 재정을 투입한다고 해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결국 3통 문제 해결 등 개성공단의 제도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북한당국의 노력이 필요한데 북한당국이 얼마나 협조적일지 아직은 미 지수이다.

2) 중장기적 과제 (1) 경협의 제도화 수준 제고 남·북 경협에 있어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적용이라는 관점에서든, 남·북 경협의 불가역적 구조 창출 차원에서든 경협의 제도화 수준을 제고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황금평, 라선 개발을 둘러싸고 북·중 경협에서 나타난 제도화 수준 향상 현상은 남·북 경협에도 시 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상사분쟁 해결, 청산결제 등 에 관한 이른바 4대 경협 합의서가 조속히 가동될 수 있도록 노력을 경 주해야 한다. 법·제도의 구축 노력과 함께 남·북한 합의사항을 이행

62 동향과 전망 87호 할 수 있는 신뢰의 구축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 집 (2) 기반조성용 사업과 직접적 상생 사업의 병행 추진 현재 북한은 대외경협을 하기에는 내부적 경제적 여건이 너무 열악한 상태임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북한은 현재 식량, 보건의료 등 주민들 의 기초 생활 보장조차 어려운 상황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남한의 대북투자 → 북한의 경제회복 → 남한의 경제발전이라는 선순환 구조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종 중간 고리의 구축이 선결요건이다. 남· 북 경협에 대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반조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한 농업협력, 보건의료협력에 대해서는 이러한 관점이 필요 하다. 즉 단순지원이 아니라 투자의 기반 조성을 위한 일종의 초기투자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물론 남·북한 농업협력에는 상생적 요소 도 있다. 이러한 기반조성용 사업과 함께 남·북한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 하는 상생(win-win)의 경협을 적극 추구해야 한다. 즉 남·북 경협이 북한경제의 재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아울러 남한경제에도 실 질적으로 기여하는 경협모델의 창출이 중요한 과제다. 이는 남·북 경 협에 있어서 남·북한 경제적 보완구조를 십분 감안한 경협사업을 발 굴하고, 이의 추진을 통해 남·북한의 경쟁력을 재고하고 궁극적으로 는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3) 남·북 간 신규 경협사업 모색과 10·4 공동선언 향후 남·북 간 신규 경협사업 모색에 있어서 10·4 공동선언이 출발점 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남·북 대화 재개 시 어차피 기존 합의사항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함은 매우 당연하다. 당시 경협분야에서의 주요 합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서해평화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63 협력 특별지대의 창설로 이는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해주 경 제특구 건설, 해주항 활용,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포함한다. 아울러 남·북한 철도 도로 연결 및 공동이용인데 여기에는 개성공단용 문산-봉동 간 철도 화물수송,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 평양 고속도로 공동이용 등이 포함된다. 개성공단에서는 1단계의 조속 한 완공 및 2단계 착수, 3통 문제 등 제도적 보장 장치가 합의되었고, 기 타 분야에서는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 관광,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협력사업 추진 등이 합의되었다. 다만 2007년 당시의 남·북 경협 여건과 지금의 여건은 상당히 다 르다. 변화된 오늘의 여건에 비추어 사업들을 재검토하는 것은 불가피 하다.

(4) 협력거점의 선택, 집중, 확산 전략 남·북 경협은 당분간 협력거점을 중심으로 한 전략이 불가피하다. 북 한은 개혁개방의 점진성에 비추어 볼 때 경제특구 중심의 대외협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남한을 비롯한 해외자본의 입장에서도 특구 를 중심으로 한 거점 개발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 경협은 향후 협력거점을 선택, 집중, 확산시키는 전 략이 필요하다. 선택은 협력 유망 산업 및 협력 가능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다. 집중은 선정된 유망 산업 지역에 대해 정부 차원의 자원 배분 을 집중시켜 거점으로써 정착시키는 것이다. 확산은 경협 거점 지역을 순차적으로 확산하는 것으로서 남한의 입장에서는 향후 개성, 금강산 이라는 제한된 거점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5) 남·북 경협과 동북아 경제협력의 연계 추진 남·북 경협과 동북아 경제협력의 연계 추진은 종전에도 논의되었던

64 동향과 전망 87호 바이다. 이는 단순히 재원조달 측면에서의 불가피성만은 아니다. 남한 특 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존재 및 미개방 상태로 인해 상실한 동북아 경 집 제협력 공간의 복원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을 경제 교류확대 및 상호의 존 확대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남한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중국 등 주변국들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양자의 연계 추진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었다. 앞에서 언 급했듯이 북·중 경협의 확대,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중요 한 배경요인이다. 또한 북·러 간 대외채무 문제 해결로 양국 간 경협 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건 변화를 배경으로 향후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 TSR-TKR 연결사업 등에 대한 재조명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라선, 황 금평 등 북·중 협력 경제특구, 나아가 북·중 접경지대에서의 한국의 참여 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6. 맺음말에 대신하여: 남·북 경협의 복원을 위한 첫 단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 등으로 인해 중단기적으로 남·북 경협의 여건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남·북 경협은 이른바 남·북 관계의 핵심적 인 토대를 제공한다. 게다가 남·북 경협은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 리 및 남·북 관계의 개선,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한국경제에 대 한 기여 등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남·북 경협 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남한의 새 정부는 어떤 대북 경 협정책을 펴야 하는가. 원론적으로 보면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65 남·북 경협에서 단계적 접근의 필요성은 여러 차원에서 제기된 바 있 다. 이는 주로 경협의 여건과 관계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외적인 군사안보적 차원의 문제다. 북핵문제 해결 수준이 가장 중요하고 남· 북한 군사적 긴장관계 수준을 포함한 남·북 관계의 수준도 주요 변수 이다. 이와 함께 남한 내 여건도 중요한데 특히 남한 내 여론의 향배가 핵심 요인이다. 현재는 남·북 경협의 활성화 및 발전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이에 앞서 남·북 경협의 복원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는 남·북 경 협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 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협정책, 나아가 5·24 조치는 남·북 경협의 시계바늘을 2008년 2월, 2010년 5월에서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상황이 중 립적인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되었음을, 특히 실타래를 더욱 꼬이게 만 들었다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남·북 경협을 복원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복원의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복원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남·북 경협의 복원을 위한 첫 단추를 어디에서 꿸 것인 가.26) 앞에서 보았듯이 5·24 조치 해제든 금강산관광 재개든 한국 내 이른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견해차가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올 초에 남측이 기대하는 수준의 ‘행동’ 또는 ‘변화’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신정부 출범 초기에 북한은 ‘간보기’ 또는 ‘기싸움’을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관광 재개같이 어려운 문 제를 남·북 경협을 푸는 첫 단추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용이한 개성공단 문제에서부터 출발하는 방안을 검토 해 볼만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2007년 12월 개최된 개성공단 협력분과

66 동향과 전망 87호 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남과 북은 노동력 공급 문제, 3통 문제 등 개성 특 공단의 핵심 현안의 해결에 대해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그런데 이후 집 남·북 관계의 악화 등으로 합의는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결국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써 기존 합의의 ‘이행’을 위한 당국 간 회담을 시작하고 이의 ‘이행’을 남·북한당국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방 안을 검토할 수 있다. 더욱이 이 합의는 북한이 남한에 대해 지난 5년 동안 줄기차게 이행을 요구했던 10·4 공동선언의 일부다. 물론 오늘 날의 변화된 여건을 감안해 당시 합의한 모든 사안을 이행하는 것은 현 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핵심적인 사안은 남한당국이 15,000명 근로 자 숙소를 건설하는 대신 북한당국은 3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 인데 이에 대한 이행 여부는 남·북한 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행동’ 또는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고, 나아 가 ‘신뢰’를 쌓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해서 서로가 조금씩 신뢰를 쌓게 되면 5·24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본격 논의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방안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일부터, 실천 가 능한 일부터 시작한다는 데는 우리 사회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2012. 12. 05 접수/ 2012. 12. 22 심사/ 2013. 01. 02 채택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67 주석

1) 박종철(2012). 세 후보의 대북통일정책 비교: 신뢰구축, 남북경제연합, 북방경 제 블루오션의 변주곡. 󰡔한반도 포커스󰡕. 2012. 11·12월호.

2) 󰡔연합뉴스󰡕, 2008. 1. 7.

3) 5·24 조치 이후 남·북 경협 기업의 상황에 대해 보다 자세한 것은 양문수 (2011. 5). 5·24 조치 1년과 남·북 경협. 󰡔KDI 북한경제리뷰󰡕. 참조.

4) 남·북 경협피해조사단의 실태조사는 2011년 1월 24일부터 3월 25일까지 실 시되었다. 당초 실태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업체는 모두 1,017개사였으나, 연락 처의 부정확, 업체의 폐업, 업체의 조사 거부 등으로 154개사가 설문조사에 응 했고, 이 가운데 13개사에 대해서는 방문 조사가 실시되었다. 국회 외교통상통 일위원회(2011. 8). 󰡔남·북 경협 실태 조사보고서󰡕.

5) 물론 이 수치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제 시하는 손실 규모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남·북 경협피해조사단측 은 밝히고 있다.

6) 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에 따른 각종 문제점에 대해 보다 자세한 것은 예컨대 신 용석(2012). 󰡔남북관광 현황 분석 및 정책대응방안󰡕.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 원. 22∼24를 참조.

7) 이명박 정부 시절 개성공단이 겪은 각종 위기적 상황에 대해 보다 자세한 것은 예컨대 개성공단기업협회(2012). 󰡔개성공단에서 통일경제의 희망을 본다󰡕. 서 울: 웃고문화사. 제4장을 참조.

8) 통일부 관계자는 기업들의 요구만 놓고 보면 아직도 2만 명의 노동력이 추가로 필요한 상태라고 밝혔다.

9) 통일부(2012. 2). 󰡔대북정책, 이렇게 해왔습니다󰡕(이명박 대통령 취임 4주년 대북정책 설명자료).

10) 조남훈(2012). 이명박 정부의 남·북 경협 평가와 향후 바람직한 남·북 경협 방향. 󰡔KDI 북한경제리뷰󰡕. 2012. 12월호, 35∼36.

68 동향과 전망 87호 11) 북·중 교역의 급격한 증가세는 2012년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1월부터 5월 까지의 북·중 교역은 25억 9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9%나 특 증가했다. 이 가운데 북한의 대중수입은 14억 5,900만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집 27.1% 늘었고, 북한의 대중수출은 10억 4,900만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29.0% 증가했다.

12) 북한과 중국의 주요 경제협력 통로로 떠오른 나진항-원정리 구간의 도로보수 공 사 완료로 운행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고 화물수송 및 관광산업에 기여할 것으 로 북한 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 구간의 도로 길이는 50여 km이고 너비는 8m (최대 16m)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2012. 9. 4)

13) 자유아시아방송(2012. 5. 16).

14) 자유아시아방송(2012. 11. 2).

15)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과 개정 라선 경제무역지대법이 개성공업지구법보 다 훨씬 기업친화적, 시장친화적 요소를 담고 있는 구체적 사례들에 대해서는 예컨대 이영훈(2012). 북·중 경협 확대 현황 및 전망, 정책적 시사점. 북한연 구학회 2012 동계학술회의, 󰡔전환기 한반도 정치경제의 동학: 구상 ·정책·실 천󰡕2012. 12. 7을 참조.

16) 김석진(2012). 남·북 경협의 이상과 현실. 󰡔KDI 북한경제리뷰󰡕. 2012. 12월 호, 8.

17) 조동호 편(2012). 󰡔공진을 위한 남·북 경협전략: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고민하 다󰡕. 서울: 동아시아연구원. 제3장 참조.

18) 현대경제연구원이 2012년 8월 북한 관련 전문가 1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 문조사에서 차기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기존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50.0%, ‘전면 수정은 아니더라도 유연하게 수정해야 한다’는 응 답은 전체의 50.0%였다. 홍순직 외(2012).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과제: 대북정 책의 전환 요구 높다. 󰡔현안과 과제󰡕. 2012. 9. 19.

19) 󰡔조선일보󰡕, 2012. 12. 21.

20) 박근혜 당선인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윤병세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의견. 󰡔동아일보󰡕, 2012. 2012. 12. 21.

21) ‘유연화 조치’란 5·24 조치의 원칙을 지키면서 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정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69 책적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것으로 기업의 대북 경영활동을 부분적으로 재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이다. 예컨대 2010년 5월 당시 개성공단에 공장을 새 로 짓거나 증축하던 중에 5·24조치로 공사가 중단된 12개사에 대해 2011년 10월, 공사의 재개를 허용한 것이다. 또한 2012년 3월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에 대해 설비반출, 대체건축을 시급성·규모 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허용하 고 있다. 통일부(2012). 개성공단 업무현황. 통일부 출입기자단 테마 브리핑 자 료. 2012. 6. 5.

22) 󰡔조선일보󰡕, 2012. 12. 21.

23)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지난 11월 26일, 2010년 2월 개성에서 열린 ‘금강산관광 및 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북남실무접촉 합의서’ 초안을 공개, 북한은 “관광에 필 요한 모든 편의와 관광객들의 신변 안전을 철저히 보장하기로 했다”고 문서로 약속했음을 밝혔다. 이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의 신변안전을 ‘문서’로 보장하지 않아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고 하던 정부 주장과 배치된다. 󰡔한겨레󰡕, 2012. 11. 27.

24)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2011). 󰡔통일·대북정책 추진에 관한 건의󰡕. 2011. 10: 30∼34.

25) 조동호 편(2012). 󰡔공진을 위한 남·북 경협전략: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고민하 다󰡕. 서울: 동아시아연구원, 제10장 참조.

26) 충남대 김학성 교수는 “차기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수준 및 속도는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가에 좌우될 것”이며 “김정은 체제와 국제환경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의 기본철학과 방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 는 것이 일차적 과제”라고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김학성(2012). 남·북 관계 전망과 대북정책 추진방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화정평화재단 주최 제9회 남·북 관계 전문가 초청 대토론회. 󰡔차기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과제󰡕. 2012. 11. 16.

70 동향과 전망 87호 참고문헌 특 집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2011). 󰡔남·북 경협 실태 조사보고서󰡕. 개성공단기업협회(2012). 󰡔개성공단에서 통일경제의 희망을 본다󰡕. 웃고문화사. 김석진(2012). 남·북 경협의 이상과 현실. 󰡔KDI 북한경제리뷰󰡕, 12월호, 8∼11. 김학성(2012). 남북관계 전망과 대북정책 추진방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화정평 화재단 주최 제9회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대토론회. 󰡔차기정부의 대북정책 방 향과 과제󰡕, 65∼84. 2012. 11. 16.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2011). 󰡔통일·대북정책 추진에 관한 건의󰡕, 10월. 박종철(2012). 세 후보의 대북통일정책 비교: 신뢰구축, 남북경제연합, 북방경제 블 루오션 의 변주곡. 󰡔한반도 포커스󰡕, 11·12월호, 13∼18. 신용석(2012). 󰡔남북관광 현황 분석 및 정책대응방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양문수(2011). 5·24 조치 1년과 남·북 경협. 󰡔KDI 북한경제리뷰󰡕, 5월호, 3∼ 22. 이영훈(2012). 북·중 경협 확대 현황 및 전망, 정책적 시사점. 북한연구학회 2012 동계학술회의, 󰡔전환기 한반도 정치경제의 동학: 구상·정책·실천󰡕, 70∼ 98, 2012. 12. 17. 조남훈(2012). 이명박 정부의 남·북 경협 평가와 향후 바람직한 남·북 경협 방향. 󰡔KDI 북한경제리뷰󰡕, 12월호, 34∼38. 조동호 편(2012). 󰡔공진을 위한 남·북 경협전략: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고민하다󰡕. 동 아시아연구원. 홍순직 외(2012).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과제: 대북정책의 전환 요구 높다. 󰡔현안과 과제󰡕, 1∼20, 2012. 9. 19.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71 초록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양문수

이 논문은 남북 간 경제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 과 제를 도출하기 위한 토론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북한 의 장거리 로켓 발사,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을 강조하는 한국 새 정 부의 출범 등으로 인해 중단기적으로 남·북 경협의 여건은 그다지 좋 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남·북 경협은 이른바 남북관계의 핵심적인 토대를 제공한 다. 게다가 남·북 경협은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 및 남북관계의 개선,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한국경제에 대한 기여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남·북 경협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다만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는 남·북 경협의 활성화 및 발 전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이에 앞서 남·북 경협의 복원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단계다. 현재는 남·북 경협의 복원 그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으며 복원의 전제조건으로서 북한의 ‘변화’를 요구하 는 사람도 적지 않다. 따라서 남·북 경협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시간

72 동향과 전망 87호 과 노력이 예상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특 그렇다면 남·북 경협의 복원을 위한 첫 조치를 어디서 어떻게 취 집 할 것인가. 이른바 5·24 조치로 불리는 대북 경제 제재의 해제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내에서 이른바 보수진영과 진 보진영의 견해차가 상당히 크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용이한 개성공단 문제에서부터 출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즉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써 개성공단에 대한 기존의 남북 간 합 의의 ‘이행’을 위한 당국 간 회담을 시작하고 이의 ‘이행’을 남북한당국 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서로가 조 금씩 신뢰를 쌓게 되면 5·24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본격 논 의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방안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일부터, 실천 가 능한 일부터 시작한다는 데는 우리 사회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주제어 ∙ 남북관계, 남·북 경협, 대북정책, 복원, 개성공단, 합의 이행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73 Abstract

The Direction of The New Government’s North Korea Policy

A Focus on Economic Cooperation

Moon-Soo Yang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ovide basic information necessary for the development of major agendas for North Korea policy, particularly in eco- nomic cooperation sector, for the South Korea’s newly elected government.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serves as a critical foundation for the entire inter-Korean relations. Moreover, economic cooperation is mean- ingful on many levels as it plays positive roles in stable management of the Korean peninsula, improved relation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for- mation of inter-Korean economic community, and contribution in the South Korean economy. Thus, economic cooperation must be pushed for- ward even during the most severe circumstances. However, it must be pursued in a step-by-step approach. At the present time, it is still premature to discuss revitalization and development of in- 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Prior to this discussion, restoration of economic cooperation must take place. There are still antagonistic opinions against economic cooperation with North Korea in its entirety and ‘change in North Korea’ is placed as a precondition for any type of exchange or cooperation. Therefore, it may take longer than expected to resume the dia- logue on restoring the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Then, what should be the first step to restore the economic cooperation? The first step should be taken with resolving the relatively simple issue first, which is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74 동향과 전망 87호 Once new dialogue is resumed to discuss Kaesong Industrial Complex and fulfillment of previous agreements reached between the two countries, both 특 parties can start the talks as a starting point to resolve the issues at hand and 집 explore new ways to implement agreements. Through this effort, both sides can build and it can naturally precede to the more difficult phase of ending May 24 Measures and resumption of Mount Kumgang tours.

Key words ∙ North Korea Policy,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restoration, Kaesong Industrial Complex

새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75 특집 [새로운 대외-남북관계의 모색]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평화국가의 가능성과 경로를 중심으로

1)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1. 한반도평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최근 수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왔다. 2009년 이후에만 북한은 한 차례의 핵실험과 세 차례의 로켓발사 를 감행했고, 남·북 간에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이 상대의 영토를 겨냥한 공방전도 발생했다. 냉전체제가 해 체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에서는 오히려 열전의 가능성이 높아 지고 있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수록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국가안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안보논리가 평화적 방식으로 문제 를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압도하기 마련이다. 분단체제 하에서 안보논 리가 국방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 [email protected]

76 동향과 전망 87호 그러나 최근의 한반도 상황은 위기에 대한 관습적인 대응이 평화를 특 보장하기 어렵고 위기를 증폭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집 냉전해체 이후 미국과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확 보했으나 이것이 한반도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1) 북한은 핵능력과 비대칭적 전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한반도 위기는 더 고 조되었다. 북한의 이러한 대응은 다시 미국과 남한의 군비증강을 위한 명분이 되고 있다. 군사력에 기대어 안보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안보딜 레마를 심화시키는 전형적인 상황이 한반도에서 출현하고 있는 것이 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단체제 하에서 적대적 관 계가 유지되지만 이것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 던 정전체제가 효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1994년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하면서 정전협정의 법률적 효력을 부정해 왔 고 북방한계선(NLL)처럼 정전협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갈등 요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평화체제 가 건설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안보담론을 넘어선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 다. 그 핵심은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추구 하는 것이다. 갈퉁(Johan Galtung)은 전쟁의 반대로서의 소극적 평화 가 아니라 간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없는 적극적 평화를 목표로 삼 아 이러한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Galtung, 2000: 17∼33). 그리고 이러한 평화개념을 한반도평화 논의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시작되고 있 다(구갑우, 200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제기가 우리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그 주요한 원인이 여전히 보편적이고 이상 주의적인 평화담론과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하고도 냉혹한 현실 사 이의 거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평화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사회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77 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실천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거리를 좁힐 필 요가 있다. 이 글은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평화담론을 한반도의 현 실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이고 그 경로를 제시하기 위한 시도다. 2장에서는 먼저 안보담론과의 비교를 통해 평화담론의 의의와 핵 심내용을 제시할 것이다. 3장에서는 분단체제와 평화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분단체제의 동요로 정전체제가 최 소한의 평화유지 기능을 하기 어렵게 되고 이것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과 이러한 위기에 대 처하기 위해서는 평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청되고 있음을 보일 것 이다. 4장에서는 평화국가론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아 보편주의적인 평화담론과 한반도 현실을 결합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다. 특히 평 화국가론이 우리 사회에서 실천적 기획이 되기 위해서는 평화와 국가, 평화와 통일, 평화와 복지 등의 세 가지 관계를 우리 현실에 맞게 풀어 갈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시도했다. 5장에서는 앞의 논의를 요약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주의적 접근 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할 것이다.

2. 안보담론과 평화담론

현실세계에서 안보논리를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전쟁과 평화’의 문 제는 항상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중요한 정치문제이자 윤리문제 였다. 그렇지만 자연상태를 만인대만인의 투쟁으로 본 홉스(Thomas Hobbes)는 물론이고 자연상태의 인간을 평화로운 존재로 여긴 루소 (Jean Jacques Rousseau)도 문명의 발생으로 전쟁을 피하기 어렵게 되

78 동향과 전망 87호 었다고 보았다. “영구평화론”을 저술한 칸트(Immanuel Kant)도 “전쟁 특 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 들어 있는 듯하다”며 평화에 대한 비관론을 내 집 비쳤다(김재명, 2011: 32∼33). 이러한 이유로 국제관계이론에서는 국제정치가 힘, 특히 군사력을 추구하는 국가행위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하는 현실주의(Morgenthau, 1985)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현실주의는 안보담론에 인식 론적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현실주의를 정교화한 왈츠(Kenneth N. Waltz)의 신현실주의는 국제사회가 무정부적 성격을 극복하기 어렵고 국가 간 협력을 통해 세계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세력균 형이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Waltz, 1979). 세력균형에는 내적 균형(internal balancing)과 외적 균형(external balancing) 등의 두 유형이 있는데 각각 군비증강과 동맹이 주요 수단 이 된다. 왈츠의 현실주의는 모겐소(Hans J. Morgenthau)의 현실주의 가 힘을 향한 의지라는 인간의 본능에서 국가행위의 원리를 찾는 것에 반해, 무정부상태의 국제정치체제의 구조가 국가로 하여금 힘을 추구 하게 만들지만 국가는 무한히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균형이 라는 현상유지적 목표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방어적 현실주 의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미어셰이머(John J, Mearsheimer)는 무정부 상태라는 국 제정치 체제의 구조가 국가들로 하여금 힘을 추구하게 만든다는 점에 서는 왈츠의 현실주의와 공통점을 갖지만, 국가는 현상유지를 목적으 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힘을 최대화시키고자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왈츠의 현실주의와는 다른 공격적 현실주의를 제시했다 (Mearsheimer, 2004: 68∼70). 그렇기 때문에 공격적 현실주의는 자신 의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한 행위가 상대국의 안보를 해치고 이들로 하 여금 다시 최악의 상태에 대비하도록 만드는 “안보 딜레마(security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79 dilemma)”, 그리고 전쟁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Mearsheimer, 2004: 95∼96). 여기서 현실주의와 안보논리의 비극적 양상이 드러난다. 패 권국이 될 때만 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을 뿐인데 그마저 일시적인 승 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에 기초한 안보담론 이 여전히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논의를 지배하고 그 결과 안보 딜레마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안보담론에서 평화담론으로의 전환을 위한 이론적 근거 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국제관계이론 내에서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최근에 는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가, 국제제도의 활성화 등이 국제사회의 무정 부적 속성을 약화시키고 국가 간 협력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들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어 왔다(Rosecrance, 1986; Koehane, 1984). 그리 고 냉전해체로 한때 이러한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처럼 보 였다. 그러나 2001년 9·11사태 발생 이후 네오콘(neo-con)이라고 불 리는 더 극단적인 현실주의의 영향력이 증가했다. 이라크전쟁의 실패 로 네오콘의 기획도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상호의존이나 국제기 구의 발전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것 이 작금의 현실이다. 한반도에서도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의 남·북 경협이 활성화됨에 따라 자유주의적 접근을 한반도에 적 용하기 위한 시도들이 등장했다. 남·북 경협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제 적 상호의존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네트워크와 제도의 발전이 남과 북이 안보딜레마에서 벗어나 협력을 통한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김연철, 2006). 이러한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 다. 최근에는 남·북 경협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남과 북의 경제가 상생발전하기 위한 전략으로써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80 동향과 전망 87호 (서동만, 2007; 이남주, 2012). 특 그러나 국제적 차원은 물론이고 한반도에서도 경제적 상호의존이 집 안보 딜레마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들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한반도와 같이 남과 북 사이에 이념적, 정치적 대립이 고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제이익만으로 안보논리를 극 복하는 것은 더 어렵다. 안보논리가 경제이익을 따르기보다는 경제이 익이 안보논리에 의해 희생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 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남·북 경협은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 이 되었다. 자유주의적 접근만으로 한반도 평화를 실현시키려는 시도 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평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특히 평화적 수단에 의해 평화를 실현시키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안보논리 자체를 극복하거나 최소한 그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키지 않 고서는 평화로 향하는 길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안보담론을 우 회하는 것이 아니라 안보담론 자체를 문제로 삼고 안보담론을 평화담 론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2) 2006년 참여연대 평 화군축센터 3주년 발족기념 심포지움에서 제출된 바 있는 평화국가론 도 이를 위한 시도 중의 하나다. 평화국가론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 화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담론과 결합된 새로운 국가 만들기로, “선군 축”과 같은 비도발적 방위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 남한사회의 구조변화 를 추동하고, 그 변화를 토대로 한반도에서는 북한을 국제적 차원에서 는 동북아국가를 평화국가로 바꾸어가려는 정치적 기획을 의미한다 (구갑우, 2007, 31∼32).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상대방에게 안전감을 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나 평화로 가는 길을 여는 열쇠라 는 것이다. 남북 간의 적대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접근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81 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상황에서는 군비증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거 의 없다.3) 그보다는 남한이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통상전력의 축소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한반도에서 위협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평화담론 으로의 전환은 이러한 한반도 현실을 고려한 기획이며 단순히 이상주 의적이고 윤리적인 요청만은 아니다.

3. 분단체제의 변화와 한반도 평화

한반도와 남한에서는 안보논리가 분단체제를 배경으로 사회전반에 깊 게 뿌리를 내렸다. 분단은 정치 세력들 간에 민족국가의 대표성을 다투 는 내전적 상황으로 전쟁과 분리되기 어려운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출현한 분단 상황도 중국과 베트남처럼 협상보다 는 무력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만이 평화적 분단, 분단 관리, 통일에 성공했다. 이는 독일이 침략전쟁과 홀로코스트를 벌인 책 임이 있는 패전국이었던 사정과 관련이 있다. 독일은 분단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독일에서는 민족주의가 정치적 동원이 나 흡인력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이동기, 2009: 165). 분단 시기 서독 은 민족주의적 정치목표보다는 서구와의 통합을 통한 경제발전과 사회 발전에 국가역량을 집중시켰는데 이것이 냉전체제가 붕괴되던 시기 독 일통일이 국제사회의 인정과 지지를 받는 기초가 되었다.4) 한반도의 상황은 위의 두 경우와 모두 다르다. 무력에 의해 분단문 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한국전쟁은 어느 일방도 승리하지 못하고 정 전협정을 체결하는 것으로 중단되었다. 그 이후 전쟁 당사자들 사이의

82 동향과 전망 87호 적대관계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정전협정에 의존한 불안한 평화 특 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이 집 분단과 전쟁에서 비롯된 남과 북의 적대관계를 자신의 통치강화에 활 용하는 “적대적 상호의존” 메커니즘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즉 분단체제 란 정치적 분열이라는 표면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내 에 존재하는 적대적 상호의존 메커니즘이 한반도 전체는 물론이고 남 과 북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백낙청, 1998; 김종엽, 2005). 이러한 분단체제는 한국전쟁을 거쳐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 했고, 남·북 간의 대화가 남·북의 기득권 세력이 정치적 통제를 강화 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으로 북미관계가 더 악화 된 1970년대에 완숙단계로 발전했다(홍석률, 2012: 396). 한반도 주변 의 긴장완화가 한반도에서는 적대관계의 청산이 아니라 긴장고조로 이 어진 첫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대적 상호의존이 대규모 군사충돌로 이어지지도 않았 다. 분단체제가 남·북 간의 적대적 관계에 의존해 유지되지만 동시에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군사충돌의 발생을 방지하는 장치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전쟁의 파괴적 결과로 인해 분단문제를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왔다. 그 결과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평화가 자주, 민족대단결과 함께 통일의 3대원 칙의 하나로 포함될 수 있었다(정영철, 2012: 114∼116). 둘째, 한국전 쟁은 전쟁의 파괴적 결과만이 아니라 어느 일방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도 확인시켜주 었다. 미국도 54,000여명의 미군이 사망하는 등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 었고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5) 마지막으로 냉전시기 동북아에서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사이의 힘의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83 균형이 유지되었고 1970년대부터는 미·중 협력관계가 발전되면서 전 쟁을 방지할 수 있는 국제적 메커니즘도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분단체제는 내부의 적대관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안정 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분단체제가 흔들리면 서 상황이 변화했다. 남한에서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적대 적 의존관계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이 약화되었고 분단체제 에 대한 도전도 거세졌다. 1990년대 들어서는 냉전해체로 한반도를 둘 러싼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분단체제의 안정성은 더 큰 도 전을 받았다(김종엽, 2005).6) 분단체제의 동요는 남·북 간의 적대관 계를 협력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나 이러한 전환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더 큰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었 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전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이명 박 정부의 출범 이후에는 후자의 우려가 현실화되어 왔다. 후자의 위기 는 분단체제의 동요로 인해 정전체제가 최소한의 평화유지 기능도 하 기 어렵게 된 사정과 관련이 있다. 첫째, 정전체제는 1990년대 초반 냉전체제의 해체로 발생한 한반도 를 둘러싼 힘의 균형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전협정이 군사 적 충돌을 방지하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은 양측의 군사력 균형이 유지 될 때 가능하다.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열세에 처하게 된 측은 자신의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되고 자 신의 안전보장을 위한 새로운 조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외교적, 경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평화협정과 같이 정전체제를 대신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핵무기와 비대칭적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군사 력의 열세에 대응해 왔다. 북한은 1994년 4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 해 군사정전위원회 대표의 철수를 선언했고 이에 따라 정전협정은 전

84 동향과 전망 87호 반적으로 기능이 정지되거나 제한적으로만 준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 (제성호, 2002: 107). 그 이후 북한이 평화협정체결 등 새로운 조치의 집 필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해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전협정의 효력에 기대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정전협정은 군비경쟁이 새로운 단계로 상승하는 것을 방지하 지 못하고 있다. 정전협정은 13항 ㉣항목에 “한반도 국경 외로부터 증 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의 반입을 정지한다”는 규 정을 두어 군비경쟁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와 유엔군 사령부는 1957년 6월 이 조항의 폐기를 선언했고, 미국은 1958년 핵탄 두를 달 수 있는 미사일을 남한에 배치했다고 선언했다. 주한미군의 축 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반도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주한미 군을 새로운 무기로 무장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박태균, 2005: 356∼358). 그런데 1990년 들어서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 이미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 역시 군사력의 열세가 커지는 것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남한에서도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핵무장론이 등 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7)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이 이 제 핵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정전협정 자체가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놓은 문제들이 군사충 돌로 이어질 수 있는 갈등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NLL(북방한계선)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는 정전협상에서는 해양경계선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UN사령부의 클라크 장군(Mark Wayne Clark)이 남측의 해군이 넘어가서는 안 될 선으로 NLL을 설정하고 이를 군에 통지했다고 알려져 왔다.8) NLL 문제는 북한 이 1973년 12월 서해5도 주변해역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남북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85 간의 갈등요인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NLL 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히고 북의 어선 등이 NLL을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이 문제로 남북 해 군 간에 두 차례의 해전이 발생했다. 이처럼 분단체제의 동요에 따라 정전체제가 최소한의 평화를 보장 하는 기능조차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고, 한반도는 언제든지 우발적인 군사충돌이 발생하고 이것이 민족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과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되었고 2005년 9·19 공동선언에서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북미관계정상화와 함께 진행하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과 동북아 안보협력의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6개국이 합의했다. 그 내용은 냉전체 제 해체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요인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6자회담은 그 합의를 실행하지 못하고 2008년 12월 수석 대표 회담을 끝으로 중단되어 있고 언제 재개될지도 불분명한 상황이 다. 북미와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주요 당사 자들이 군사력에 의한 안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다. 이에 따라 위기와 협상의 사이클이 반복되었고, 그 사이에 문제 는 더 악화되었다.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상호불신을 해소하 고 안보딜레마를 초래하는 안보담론에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86 동향과 전망 87호 4. 평화국가의 가능성과 경로 특 집 한반도가 안보담론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방의 노 력만으로는 어렵다. 그렇지만 조건을 갖추고 있는 행위자들의 선제적 인 노력이 필요하다. 냉전해체 이후 남북 사이에 군사력을 포함한 국력 에서 격차가 커져왔다는 점이 남한의 선제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객 관적 조건을 제공해 주고 있다. 북의 핵무기와 비대칭전력은 군사력의 우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이며, 통 상전략의 증강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리고 남한 내에서 안보논 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평화운동이 꾸준히 발전해 온 것도 이러한 변화 를 위한 동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990년대 후반부터 남 한에서는 미군범죄, 미군기지 이전, 이라크파병반대 등의 문제들이 평 화운동 발전에 계기를 제공했다(이재철, 2007: 118∼119). 이러한 과정 을 거치며 시민들의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했고, 이것이 평화국가 론의 제기와 같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했 다.9) 그러나 평화국가론이 한반도에서 실현가능한 기획이 되기 위해서 는 보편주의에 많이 기대고 있는 현재의 담론을 우리 현실에 부합하는 실천전략과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과 대 결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국가가 윤리적 명령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현실과 거리가 먼 순진한 접근으로 치부되고 이에 대한 진진한 논 의가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평화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실현 가능한 중간 이정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평화국가론과 관련한 기존 논의에서는 평화와 국가의 관계, 평화와 통일의 관계, 평 화와 복지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87 1) 평화와 국가 평화와 국가의 관계는 안보담론에서 평화담론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데 가장 관건이 되는 문제다. 평화담론은 탈민족주의만이 아니라 탈국 가주의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평화와 국가 는 매끄럽게 연결되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평화국가론에 대해 이러한 비판이 적극적으로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평화국가론을 제기한 논자들 스스로가 평화국가라는 조어에 내재하는 모순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 었다(구갑우, 2007: 68).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근대국가를 “한 특정한 영토 내에 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지배수단으로 독점하는 데 성공한 조직” (Weber, 1920, 32)으로 정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와 폭력은 불 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국가의 합법적 폭력이 자의적인 폭력 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영토국가로의 속성 을 가진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과 영토의 귀속을 둘러싸고 수많은 전쟁 을 반복했다. 이처럼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국가가 폭력의 주요 원 인이 되어왔기 때문에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국가 폭력에 대해 높은 경각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평 화와 국가를 직접 결합시키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 력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당장 국민국가를 넘어서고자 하는 기획은 비현실적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가라는 정치조직체가 스스로를 합법적 폭력의 유일한 원천으로 규정하며 사적이고 자의적인 폭력을 금지시킨 것은 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절차적, 규범적 정당성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자면 현재로서는 국가가 인류공동체의 평화를 보장 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가개혁이 평화

88 동향과 전망 87호 실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경로가 될 수 있다. 특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물리력 사용을 시민의 통제 하에 집 두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때 국가는 평화에 대해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전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평화국가로의 전 환을 위한 일차적인 과제는 안보 관련 기구와 정책에 대한 시민과 국회 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 천안함 사건과 제주해군기지건설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안보기구의 비민주성과 안보논리의 지배가 초래 하는 문제점을 보여주었지만 이와 동시에 정부의 일방주의가 그대로 관철되지 않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평 화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될수록 국가의 안보 기구에 대한 시민 적 통제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를 기초로 국가가 단순히 영토와 주권의 수호를 넘어서 평화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중요한 사명으로 삼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앞의 것보다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평화국가라는 담론은 어떤 이 상적 평화의 지평을 당장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전환을 촉진하는 것을 핵심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현실의 평화국가는 과정으 로서의 평화국가인 것이다(구갑우, 2007: 69). 이러한 전환을 촉진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평화적 생존권” 혹은 “평화권”에 대한 논 의다.10) 시민들이 자신들의 평화적 삶을 보호받고 국가의 행위에 의해 이것이 위협받는 것을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면 국가행위를 평화지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실천이 법적인 수단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권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 헌법은 이보다도 훨씬 추상적인 행복추구권을 헌법에서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화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평화권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된다면 평화와 국가 사이의 개념적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데 큰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89 도움을 줄 것이다.

2) 평화와 통일 남한에서 평화는 항상 통일과 연관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런데 최 근 통일과 평화가 밀접하게 관련되어있지만 평화는 통일의 수단과 방 법만이 아니라 통일과는 독립된 가치와 실현경로를 가진 과제라는 점 에 대한 인식이 증가해왔다. 심지어는 통일과 평화를 대립시키는 주장 도 등장했다. 통일담론과 평화담론이 분기하는 상황이 출현한 것이다 (정영철, 2012: 119∼120). 통일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11) 여기에는 민족주의적 목표를 추구하는 통일담론과 탈민족주의적 지향이 강한 평화담론 사이의 긴장이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더 직 접적인 원인은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북한 의 핵실험과 북한 내부 상황은 북한이 평화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협 력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기 때문이 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통일이라는 목표를 버리 고 남북 간의 평화공존을 먼저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최장집, 2005). 평화국가론도 처음 제기되었을 때에는 평화국가로의 국가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남북관계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대 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았다. 다양한 적대관계가 존재하는 분단 상황에서 한쪽만 평화담론 전환 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화국가론에 대한 비판도 이 러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유재건, 2006). 구갑우는 이에 대해 안보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 안보담론에서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 평화담론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 더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선제 적 군축에 나서는 것이 남·북 간 군사적 불균형이 확대되고 있는 한반

90 동향과 전망 87호 도에서는 북한의 군사주의를 억제하는 더 적절한 접근이 된다는 점이 특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구갑우, 2007: 78∼80). 그 집 러나 이러한 답 역시 평화국가가 남북관계 변화 및 분단체제의 극복에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평화라는 가치를 통일에 종속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제 기는 타당하다. 그렇다고 통일을 평화와 관련한 논의와 실천의 지평에 서 배제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특히 헌법 등에서 한반 도 전체에 대한 통치를 주장하는 내용의 조항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남 과 북이 두개의 정상적 국가 간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는 발상은 분단이 남과 북 내부에도 구조화되어있다는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현실을 무시 하는 것이다. 분단체제 하에서는 평화가 달성되어야 남북통합이 달성 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통합이 되어야 이에 상응해서 달성될 수 있는 평 화의 질도 높아지는 것이다(홍석률, 2012: 404).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접 근으로는 남북 간의 현안을 효과적으로 다루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국 가대 국가의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NLL을 국경선으로 확정해야 하 는데, 이는 통일을 지향한다는 공감대를 전제로 공동개발 등의 방식으 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더 심각한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분단선을 국경선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해결책이기보 다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평화를 위한 분단의 극복은 현실 적으로 통일 이외의 방법을 찾기 어렵다(정영철, 2012: 133).12) 물론 무조건적 통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통일과정에서 통일이 평화 적 가치와 충돌되지 않도록 하는 관리와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가 장 현실적인 대안은 남북연합이라는 복합국가모델(compound state)이 다. 단일국가로의 통일은 현재 남북 간 체제 및 이념적 이질성, 경제적 격차 등을 고려하면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통일이라는 틀 내 에서 평화공존을 제도화시키고자 하는 남북연합은 남한정부의 역대 통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91 일론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이 합의한 유일한 방안 이라는 점에서 실현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이 단순히 단일국가로 향하는 과도적 장치가 아 니라 현재 한반도라는 지역 내의 이질성, 다원성, 분산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최종적인 통일국가의 형식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박명규, 2012: 325).13) 물론 현재 최종적인 통일국가의 형태를 미리 예 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가형태의 새로운 발상은 탈근대와 탈국가 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 이는 근대에 대한 단순한 기각이 아니 라 근대에 대한 적극적인 성찰을 통해 근대극복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실천적 사례가 될 수 있다(이남주, 2009). 뿐만 아니라 단일국가 형식으 로 국민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단위 내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동북아에서 복합국가 모델은 중국의 이른바 양

안문제나 오키나와(沖繩) 문제를 포함해 일본(의 국민국가론)이 안고 있는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참조물이 될 수도 있다(백영서, 2009). 즉 남북연합과 같은 복합국가 모델이 동북아 국가는 물론이고 한반도 통일국가의 최종적 국가모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동북 아에서 국가 간, 국가 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사유의 계기는 던져줄 수 있다.

3) 평화와 복지 평화국가론의 심화과정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평화와 복지의 관계다. 평화라는 것이 구조적인 폭력을 제거하는 것을 지향한 다고 할 때 평화를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 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평화를 구체적인 생활문제와 연관 시킬 때 평화를 위한 실천에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 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복지국가가 평화라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92 동향과 전망 87호 있는 가장 설득력이 있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 그렇지만 평화와 복지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특히 복지국가 집 가 반드시 평화국가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구갑우는 남한의 복지국가 전략에서 ‘평화’ 문제가 빠져 있는 것을 규범 적 문제로 지적한 바 있다. 복지국가의 대표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의 경우는 전쟁국가적 속성도 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4) 더 넓게 생각하면 서구에서 복지국가의 발전과 이들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사이의 관계도 문제로 삼을 수 있다. 다만 우리의 경우 분단체제라는 객관적 현실이 평화와 복지를 더 밀접하게 연관된 과제로 만들고 있다. 첫째, 남북 간 군사적 대결과 이에 따른 안보비용의 증가는 국가자 원을 복지확대에 투입하는 데 제약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북한에서 더 크나 남한의 경우도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한국의 GDP 대 비 국방비 비율은 지난 1980년 6.0%에서 93년 3.5%, 2003년 2.7%, 2010년 2.5%까지 하락했다. 정부재정 대비 국방비 비중도 낮아져 80년 34.7%에서, 2003년 15.6%, 2010년 15%로 하락했다. 냉전해체, 한국경 제의 양적 성장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이를 더 낮추기 는 어렵고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작전지휘 권 환수가 국방예산 증가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고, 미국의 방위비 분 담 요구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방비 증액론자들은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규모가 미국(4.8%), 러시아(2.8%), 이스라엘(6.5%), 사우디(10.1%)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낮으며, 국방비 지출 규모(2010년 기준, 251억 달러)도 미국(6,936억$), 일본(544억$), 러시아(419억$), 중국(764억$), 영국(578억$), 프랑스(520억$), 독일(441억$), 사우디 (452억$)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GDP 대비 국방예산의 비율은 OECD 국가들의 대부분이 한국보다 낮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통계에 따르면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93 2010년 기준으로 이 비율이 한국은 2.7%인데 오스트리아(0.9%), 캐나 다(1.5%), 덴마크(1.4%), 프랑스(2.3%), 독일(1.4%), 스웨덴(1.3%), 스 위스(0.8%) 등이다.15) 그리고 이러한 격차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북한, 앞으로는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비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복지재정에 대한 제약은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 국방비 등의 안보비용을 축소시키지 않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복지동맹의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냉전이데올로기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복지확대에 대한 저항이 서구보다 더 강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 해서는 폭넓은 사회세력의 연합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국방비가 다른 영역의 자원을 침식하게 될 경우 이것이 더 어려워진다. 물론 복지국가 중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국방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경우가 존재 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대체로 군수산업이 발전되어 있고 무기수 출도 많이 한다. SIPRI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무기수출 순위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독일, 영국, 이태리 순으로 많다.16) 한국도 군사 비 지출에 따르는 부담을 군수산업의 성장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의 군수산업이 수출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추세가 이미 나타 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복지국가에 내재된 가치와 충돌하고 평화가 중 요한 의제로 부상해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국제적, 국내적 제약에 직 면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도 더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국가로의 전환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즉 복지국가전략에 서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과정에 부합하는 실행프로그램에 무엇인지를 더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민주적 토대와 평화적 환경을 구축하 지 못하면 복지국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동시에 평화국가의 건설이

94 동향과 전망 87호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으면 평화국가 특 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분단체제 집 로 인해 안보논리의 영향이 더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가 삶의 질의 향상시키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평화와 복지 사이의 선순환을 위한 실천과제로는 앞에서 강조한 것 처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쟁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공 감대를 확산시키고 군비축소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는 남한에만 해 당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더 절실한 과제다. 그리고 세계 다른 어떤 지역보다 군비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과제이기도 하다. 군비경쟁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개별 국가 차원에서 문제로 되고 있는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뿐만 또 다른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 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영토분쟁 등의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군 비축소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군비증강이 안보딜레마를 심화시키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북관계의 개선과 함께 군비축소에 나설 수 있다면 동아시아 차원에서 군비축소를 촉진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 어낼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현재 한반도 평화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분단체제의 동요는 새로 운 평화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고 평화에 더 큰 위협을 제 기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천안함 사건과 5·24조치, 연 평도 포격사건, 그리고 북한의 로켓발사로 남북, 북미 사이의 긴장은 계속 고조되어왔다. 냉전해체 이후 한반도에서의 긴장고조는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협상이 뒤따랐다. 그러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봉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95 책으로서의 협상으로는 평화의 실현이라는 최종적 목표에 도달하기 어 렵다는 사실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냉전체제 이후 분단 체제가 동요하고 정전체제가 최소한의 평화유지 기능을 하기 어려워진 탓에 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교착과 위기 상태를 극복하 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과는 달리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평화국가론은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탐색의 하나다. 예를 들어 평화국가론은 선군축으로 현재 남·북 간의 악순환을 차단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일본의 원로학자인 사까모또 요시까즈

(坂本義和)도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완화시키고 평화적 공동 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대칭적 우위에 선 미국, 한국, 일본이 먼저 긴 장완화의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사까모또 요시까즈, 2009, 393). 물론 이러한 주장이 당장 안보논리를 극복하기 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평화주의적 접근이 확산되고 정당성을 얻을 때 한반도의 평화실현이 가능하고 6자회담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을 것 이다. 평화국가론에 대해서는 한반도 현실에 부합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목표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평화와 국가”, “평화와 통일”, “평화와 복지”라는 세 가지 관계에 논의를 통해 이러한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안보기구에 대한 시민적 통제와 평화권, 남북연합, 그리고 평화적 복지국가를 위한 군비축소 등 을 평화국가론이 추구하는 평화주의의 이상과 한반도 현실을 결합시켜 평화의 길을 열 수 있는 중간 경로로 제시했다.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는 2013년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논 의가 더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시 키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인데 이러한 논의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

96 동향과 전망 87호 서는 안보논리의 자장을 벗어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발상 전환 노력이 특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집

2012. 12. 05 접수/ 2012. 12. 23 심사/ 2013. 01. 02 채택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97 주석

1) 북한이 국방예산을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예산을 알 수 없으나 2011년 남한의 국방예산(31조 4천억 원)이 이미 한국은행이 추산한 북한의 GNI(국민 총소득) 규모(32조 4천억 원)와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북 간 국방예산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갈퉁의 평화연구가 국제관계학에서 현실주의가 안보담론을 지배하는 상황에 균 열을 낸 이후 안보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흐름들이 강화되었다. 국가보다는 개인 혹은 시민을 지지대상으로 삼는 인간안보 개념의 등장도 그 대 표적인 사례다. 이 패러다임은 접근법에 있어서 비군사적 영역의 역할을 중시한 다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적 접근, 국가 이외의 행위자와 위협인식은 구성되며 변 하거나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구성주의와의 공통점을 갖는 다(Tadjbakhsh & Chenoy, 2007: 120∼161). 위협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능 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구성주의적 접근이 자유주의적 접근보다 안보담론의 평화담론으로의 전환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물론 어떻게 위협에 대한 인식 을 전환시키고 새로운 방식의 평화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차원에 서 구성주의적 접근이 갖는 한계를 간과할 수는 없다.

3) 북한에게 중국의 개혁개방을 따르라는 주문이 많지만 이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했던 시기와 북한이 1990년대 이후 처했던 안보환경의 차이를 무시한 발상이 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1979년 1월 1일자로 미국과 수교한 것과 동시에 시작되 었다. 중국과 미국은 1972년 닉슨(Richard Nixon)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이 미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반면 북한은 냉전해체 이후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미국과의 관계는 더 악화되는 등 안보환경이 더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4) 물론 동서독의 빠른 통일은 그 이전의 탈민족적 담론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의외 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 하에서도 서독과 동독 내부에서 민 족적 통합을 추구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 려 당시 독일문제의 탈민족적 해결만을 추구한 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순 진한 발상이었다. 이 시기 독일 내의 탈민족 담론과 민족주의 담론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해서는 이동기(2009: 184∼190)를 참고.

98 동향과 전망 87호 5) 1994년 1차 핵위기 당시 미국 국방부의 한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민간인 사망자 100만 명, 한국군 사망자 49만 명, 미군 사망자 5만 명에 특 달하며 이로 인해 치러야할 비용은 1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것 집 이 당시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시도한 중요한 이유였다.

6) 백낙청은 1998년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책을 출간하며 분단체제가 동요하 고 있다는 판단을 표명하였고, 2006년 출간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이 라는 글의 “책머리에”에서 분단체제가 1987년 6월부터 동요하기 시작했고 2000년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분단체제가 해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시대구분 을 한 바 있다(백낙청, 2006: 5∼6).

7) 새누리당 전대표인 정몽준 의원이 대권도전을 준비하던 2012년 6월 3일 기자회 견에서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하기 위해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 장을 한 바 있다.

8) 최근 서재정은 CIA 보고서(The West Coast Korean Islands January 1974)를 근거로 이러한 통설도 근거가 없으며 1960년 이전에는 NLL이 설정되었다는 사실 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떤 문서도 없다고 주장했다(서재정, 2012; CIA, 1994: 3).

9) 구갑우는 이 시기 발전한 평화운동 중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평화운동을 ‘반 전·반핵·군축운동’, 생태주의적 가치를 평화와 연계하는 ‘생명·평화운동’,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인권운동으로서의 ‘평화운동’, 여성평화운동, 풀뿌리 평화 운동 등으로 분류했다(구갑우, 2007: 200∼201). 평화국가론도 이러한 흐름과 친화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달리 한반도 특수성에 보다 무게를 두는 평화운동으로 ‘북한돕기운동’, ‘반미·통일운동’을 들었다. 반전운동 등에 서는 이 두 흐름 사이의 연합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운동의 목표 와 방식을 둘러싸고 두 흐름 사이에 긴장관계도 나타난다.

10) 2012년 10월 19일 <평화권의 국제적 논의와 한국에서의 수용 가능성>을 주제 로 하는 워크숍(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 서울지방변호회, 평화권 연 구모임 공동 주최)이 진행되어 이에 관심을 가진 법학자, 시민활동가 등이 참여 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에 대한 요약은 김재명(2012)을 참고. ‘세계인 권의 날’ 64주년을 맞은 2012년 12월 10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잘못된 안보갈등과 긴장에 의해 피해를 입은 3개 지역 공동 주민 평화권 선언”을 발표 했다. 한국의 대표적 안보 피해지역인 제주도 서귀포 강정마을, 평택 대추리, 김 포 애기봉 접경 지역 주민들은 “주민 평화권 선언”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마을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자기결정권을 가지며, 국가의 전쟁연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99 습과 전쟁유발에 휩싸이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가 우리의 평화권”이라고 주장 했다.

11) 이에 대한 논의는 구갑우(2007), 박순성(2006), 이남주(2008), 서보혁·박홍 서(2011), 정영철(2012) 등을 참고.

12) 박명규는 ‘평화통일’이 아니라 ‘통일평화’로 통일과 평화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것 이 더 적절하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박명규, 2012: 290∼291).

13) 물론 이러한 점진적 통일방식이 그 내부의 역동성으로 인해 흡수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즉 점진적 통일방식과 흡수통일이 배타적 관계는 아 니라는 주장도 있다(김근식, 2012: 172∼173). 독일의 경우도 이러한 사례의 하나라고 볼 수 있으나 독일에서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이라는 점진적인 과정은 있었지만 국가연합이라는 실험은 없었다. 통일방안에 대한 준비가 없는 상황에 서 민족적 통합을 향한 동력이 강화되자 흡수통일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이 남북연합이라는 제도를 건설하기 위해 협력해간다면 그 결과는 독일과 다를 수도 있다.

14)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형적인 ‘전쟁-복지 국가’ 유형에 속하며, 서유럽의 복지 국가들도 대부분 복지국가가 군수산업의 발전 등의 여러 형태의 군사주의와 결 합되어 있어 전쟁-복지국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주장 이다(구갑우, 2012).

15) http://data.worldbank.org/indicator/MS.MIL.XPND.GD.ZS?page2

16) http://armstrade.sipri.org/armstrade/html/export_values.php

100 동향과 전망 87호 참고문헌 특 집

구갑우(2007). 󰡔비판적 평화연구와 한반도󰡕. 서울: 후마니타스. 구갑우(2012). 복지국가는 평화국가와 함께 가야한다. 󰡔복지동향󰡕, 162호. 김근식(2012). 한반도 통일과정의 정치동학. 이수훈·조대엽 공편. 󰡔한반도통일론 의 재구상󰡕. 서울: 선인. 김연철(2006). 한반도 평화경제론: 평화와 경제협력의 선순환. 󰡔북한연구학회보󰡕, 10권, 1호. 김재명(2012). 󰡔오늘의 세계분쟁󰡕. 서울: 미지북스. 김재명(2012.10.22). 국가폭력에 내몰린 평화권을 생각한다.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1022 140344§ion=05 김종엽(2005).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창작과비평󰡕, 2005년 겨울. 박명규(2012). 󰡔남북경계선의 사회학󰡕. 서울: 창비. 박순성(2006). 북핵실험 이후, 6.15 시대 담론과 분단체제 변혁론. 󰡔창작과비평󰡕. 2006년 겨울호. 백낙청(1998). 󰡔흔들리는 분단체제󰡕. 서울: 창비. 백낙청(2006).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서울: 창비. 백영서(2009). 동아시아론와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 이남주 편. 󰡔이중과제 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 서울: 창비. 사까모또 요시까즈(2009). 21세기에 ‘동아시아공동체’가 갖는 의미.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서보혁·박홍서(2011). 통일과 평화의 운선순위에 대한 사례연구. 󰡔북한학연구󰡕, 7 권 2호. 서동만(2007). 대안체제의 모색과 ‘한반도경제’. 󰡔창작과비평󰡕, 2007년, 가을호. 서재정(2012.3.23).천안함 사건 1주년을 맞아-남북 군사충돌의 뇌관, 북방한계선의 역사적 진실. 󰡔창비주간논평󰡕. 유재건(2006.8.22). 남한의 ‘평화국가’ 만들기는 실현가능한 의제인가. 󰡔창비주간논 평󰡕, 2006. 8. 22. 이남주(2008).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역할과 가능성. 󰡔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101 이남주(2009). 서장: 근대의 이중과제란 무엇인가. 이남주 편. 󰡔이중과제론: 근대적 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 서울: 창비. 이남주(2012). 동북아경제협력과 한반도경제. 이수훈·조대엽 공편. 󰡔한반도통일론 의 재구상󰡕. 서울: 선인. 이동기(2009). 독일 분단과 통일과정에서의 ‘탈민족’ 담론과 정치. 󰡔통일과 평화󰡕, 2호. 이재철(2007). 세계화와 한국의 시민사회-평화운동을 중심으로. 󰡔담론201󰡕, 10권 3호. 정영철(2012).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론의 긴장과 현실의 통합. 이수훈·조대엽 공편. 󰡔한반도통일론의 재구상󰡕. 서울: 선인. 제성호(2002). 󰡔한반도 평화체제의 모색󰡕. 서울: 지평서원. 최장집(2005). 해방 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 민주주의자의 퍼스펙티브에서. 참여 사회연구소 주최 해방 6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역사와 좌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2005. 10. 21. 홍석률(2012). 󰡔분단의 히스테리󰡕. 서울: 창비.

CIA(1974.1). The West Coast Korean Islands. approved for release 2000. 4. 18. Galtung, Johan(1996). Peace by Peaceful Means. 강종일 외 옮김(2000). 󰡔평화 적 수단에 의한 평화󰡕. 서울: 들녘. Koehane, Robert O.(1984). After Hegemony: Cooperation and Discord in the World Political Econom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Mearsheimer, John J.(2001). The Tragedy of Great Power. 이춘근 역(2004). 󰡔강 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서울: 나남. Morgenthau, Hans J.(1985). Politics amon Nations: The Struggle for Power and Peace. New York: McGraw-Hill. Posecrance, Richard(1986). The Rise of Trading State: Commerce and Conquest in the Modern World. New York: Basic Books. Tadjbakhsh, Shahrabanou & Anuradha M. Chenoy(2007). Human Security: Concept and Implication. 박균열 외 옮김(2010). 󰡔인간안보󰡕. 서울: 철학과 현실사. Waltz, Kenneth N.(1979).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New York: McGraw-Hill. Weber, Max(1920). Politik ala Beruf. 전성우 옮김(2007). 󰡔직업으로서의 정치󰡕. 서울: 나남.

102 동향과 전망 87호 초록 특 집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평화국가의 가능성과 경로를 중심으로

이남주

분단체제 하에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국가안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안 보논리가 강하게 작동해왔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한반도 상황은 이러한 관습적 인 방법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고 안보 딜레마만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한반도에서는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 으며 군비경쟁은 핵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분단체제의 동요로 최소한의 평화유지기능도 하기 어려워진 정전체제를 새로운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 않고서는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본고는 이를 위해서 평 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담론은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본고는 평화국가론을 중심으로 이상주의적인 평화담론과 적대관계가 존재하는 분단이 라는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실천방안을 검토했다.

주제어 ∙ 분단체제, (국가)안보담론, 평화담론, 평화국가

분단체제 하에서의 평화담론 103 Abstract

Peace Discourse in The Division System on The Korean Peninsula

Feasibility and Process of “Peace State”

Nam Ju Lee

Owing to the division system in Korean peninsula, the discourse of national security has prevailed over the national policy discussion. It is based on the belief that military power is the most realistic and effective means to cope with the external threats. But these conventional measures have failed to bring peace and have made security dilemma worse in 20 years. The proba- bility of military crash has been increased and the Korean peninsula is head- ing for a nuclear arms race. To overcome these crises, the armistice should be replaced with the permanent peace framework. But it demands the new way of thinking that pursuits peace by peaceful means. These kind of peace discourses could be treated as a naive thinking. For that reason, this article also discusses the feasibility of the “peace state” and mid-term action plans to apply the idealistic peace discourse to the stark reality that still prevails in the inter-Korea relations.

Key words ∙ division system, (national) security discourse, peace discourse, peace state

104 동향과 전망 87호 기획 [18대 대선 분석]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 에 대한 시론 기 획 정치질서론의 시각

1)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부교수*

1. 서문: 정치질서론 접근법의 필요성

2012년 12월 종료된 한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백가쟁명식 평 가가 제기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평가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압축될 수 있다. 하나는 선거전략적 접근법이고 다른 하나는 유 권자 분포도나 선거법 등에 대한 구조환경론적 접근이다. 전자는 민주 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원인에 대해 박정희 대 노무현의 선거 프 레임의 한계, 민생 이슈 주도권 상실, 단일화 과정 관리의 문제, 후보 인 물 경쟁력, ‘친노’ 패권주의, 당의 무능과 혁신 실패, 좌경화 노선 등 다 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후자는 선거 전략 이전에 유권자 분포에서 고령화 구조에 의한 보수 우위의 구조 환경이나 결선 투표제 미비 등 선 거법 등을 중요한 변수로 강조한다.

* [email protected]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05 위의 선거전략이나 구조환경론적 설명은 각각 나름대로는 야권 패 배의 다양한 원인을 드러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최근 선거 흐름에 는 두 가지 접근법만으로는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이한 사실들 도 존재한다. 즉 지난 2007년 대선, 2012년 총선, 2012년 대선 등 일련 의 중요 선거에서 민주당과 그 후신인 민주통합당은 선거전략이나 환 경의 제약을 언급하기 이전에 자신들이 처한 정치 지형에 대한 상식적 판단에서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오판들을 수차례 반복한 바 있다. 예 를 들어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 진영의 일각은 그간 한국사회의 지형 이 보수 대 진보가 51대 49론의 박빙세임을 고정관념처럼 반복하며 이 명박 후보의 ‘대중 보수주의(popular conservatism)’로서의 매력을 인 정하지 않고 선거 중후반까지도 BBK 이슈라는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승리를 장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 되고 대선 직후 이에 충격을 받은 진보 일각의 논객들은 영구적 자민당 집권체제의 가능성까지도 당시 논의하기도 했다. 결국 이 대선 이후 정 치전략가들 사이에서 관습적으로 회자되어온 51대 49론의 담론은 약 화되었다. 당시 제3 후보였던 문국현 후보 진영 또한 자신들이 민주당 을 대체하고 독자적 세력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장담하였 지만 참담한 실패로 종료되었다. 이후 총선에서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체적 현실과의 큰 인식의 괴리라는 행태는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이라는 일부 진보적 시민사회가 합당한 민주통합당은 한·미 FTA 등 주요 이슈에서 기존 노무현 정부 기조보다 좌파적 노선을 주도하고 김 용민 막말 파동에 거리를 두지 못하면서 결국 중도층의 심각한 이반을 초래하였다. 당시 당의 대표가 자신들이 집권 정당 시절 비준을 주도한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며 대사관을 방문한 이벤트는 정당에 대한 신뢰와 책임이란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였다. 기이한 것은 선

106 동향과 전망 87호 거 초반부에 당의 전략본부가 외부 전문 기관 관계자에 의뢰하여 실시 한 한·미 FTA 등에 대한 심층 면접 조사 결과와 그 전술적 시사점은 중 도층에 대한 신중한 접근법을 조언하고 있지만 당의 지도부는 거의 귀

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들은 당시 심층 면접 조사라 기 는 중요한 분석의 장에 핵심 관계자 누구도 참관하지 않은 기이한 행태 획 를 보였다. 이후 이들은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 총선 패배 이후에도 구 체적 지표에 대한 확인 및 그 원인에 대한 심층 진단과 이를 반영한 새 로운 노선을 정립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전개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 대선, 총선에서의 이례적 충격을 겪은 후에도 민주통합당의 현실 인식은 전혀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놀 라운 것은 지난 총선에서 극심한 후유증을 겪은 바 있는 <나는 꼼수다> 진영과 당의 연계성은 이번 대선에서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이 진영 의 핵심 인사인 탁현민 씨가 민주당 주요 선거 유세를 지휘하기까지 했 다는 사실이다. 언론에서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일관된 선거 전략 오류 를 주요 계파의 이익이나 의원 개개인의 이익에 따른 합리적 행동의 결 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간의 중요 선거 과정들을 보면 일부 계파의 이익 계산 이전에 선거를 주도한 이들 전반의 현실에 대한 극단 적 무지와 무관심은 일관된 모습을 보였다. 현실에 무지하기에 이들은 굳이 대담한 혁신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2012 년 선거에서는 특히 일부 민주통합당 관련의 선거 관계자들은 선거 기 간 동안 성찰 없는 ‘집단 사고(group thinking)’의 전형적 행태를 보이 며 대선에서 승리를 확신한 나머지 패배 직후 심한 정신적 공황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 소위 제 3후보로 등장한 안철수 후보는 지난 2007년 문국현 후보 진영의 오류에 대해 거의 아무런 학습이 없었던 채 로 선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안 후보는 자신의 새 정치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07 어젠다(국회의원 축소 및 청와대 이전 등)의 국민 속 영향력에 대한 믿 음과 선거 기간 내내 자신의 압도적 우위 세를 자신하였지만 이후 문재 인 후보 진영에 자신들의 예상외로 추격을 허용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자진 사퇴로 실험은 실패로 종료되었다. 위의 전 과정 동안 상대 정치 진영에 대한 현실 인식에서도 현 야권 진영은 과소평가와 냉소라는 일관된 심리 패턴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 어 이명박 정치인의 보수 포퓰리즘 위력이나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신 뢰와 안정성 브랜드의 위력 등 대중적 현상에 대한 심층 분석의 노력이 나 상대 캠페인의 탁월함에 대해 배우려는 노력은 거의 전개되지 않았 다는 사실이다.1) 오히려 심층 분석은커녕 수첩공주론 등 과소평가의 담론들만 난무하였다. 그리고 수년간 상대 진영의 캠페인에 대한 조롱 이나 냉소가 온·오프라인에서 난무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총선, 대선에 서 탁월한 선거 캠페인을 진행한 것은 현 여권이었다. 심지어 SNS 선거 전략가인 유승찬 대표는 본인과의 인터뷰에서 놀랍게도 진보의 무기처 럼 인지되어 온 SNS 영역에서도 박근혜 진영은 문재인, 안철수 후보 진 영보다 더 치열한 노력을 전개하였다고 통렬히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민주통합당은 투입 예산 비중, 체계적 시스템, 당 지도부의 이해수준 등 전반에서 극단적 무지와 무능을 보였고 단지 일부 명망가들의 조율 되지 않은 메시지에 과도하게 의존하였다. 이는 야권이 주장해온 새로 운 정치, 새로운 혁신 세력이라는 주장이 무색해지는 냉엄한 현실이 아 닐 수 없다. 집권 가능한 주류 정치세력이면서도 이러한 기이하게 반복되는 현 실 인식의 완고한 거부의 패턴들에 대한 근본 원인을 묻지 않고 선거전 략이나 제도환경론적 설명만으로 선거를 접근하는 것은 협소하거나 심 지어 공허할 수밖에 없다. 위의 일관된 패턴이 분명한 객관 현실이라면 그 진단은 단지 선거 전략상 미숙이나 정당의 무능만의 문제로 접근하

108 동향과 전망 87호 기 어렵다. 혹은 특정 정치적 계파의 특권과 이익에 대한 설명도 이들 이 합리적 존재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이들 계파들은 이익 추구 이전에 현실과 유권자 일반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현실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비례대표제 강화 등 구조적 환경이 달라지면 위의 기 문제가 자동으로 극복되리라는 가정은 비현실적이고 문제의 일차 원인 획 에 대한 근본 성찰의 회피만을 낳는다. 이 글은 위의 반복되는 패턴의 근본 원인으로 기존 지속된 정치질 서인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 혹은 부패에서 찾는 하나의 시론적 글이 다. 반면에 이 글은 대선 결과 자체에 대한 심층적이고 과학적 분석을 주요 초점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 글은 정치질서론적 접근법 에 기반하고 선거 과정에 참여한 일부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에 기반 하여 필자의 시론적 문제의식을 주로 드러내는 에세이적 성격의 글이 다. 보다 체계적 선거 분석과 역사적 정치질서 전반의 변천과정은 이후 단행본 분량의 분석으로 후속 작업을 전개하고자 한다. 여기서 ‘정치적 질서(political order)’라는 개념은 과거 근대적 정치 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가 처음 사용한 바 있다. 필자는 이 를 전국적 차원에서 상당기간 일관된 특징을 나타내는 특정 가치, 담론, 문화, 제도, 정책, 주요 정치행위자의 전반적 패턴으로 이해한다.2) 이 정치질서는 집단적 열정과 운동의 에너지 및 새로운 가치에 의해 지탱 되면서 성장하고 일정 시점이 지나면 새로운 현실과 괴리된 채 과도하 게 세력이 확장되고 정체되면서 결국 부패와 퇴조의 사이클을 가진다. 이 퇴조기에는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가진 정치세력들이 맹아적으로 자라나서 일정 시점이 되면 대안적 정치질서가 형성된다. 이 접근법의 강점은 특정 시기 선거나 정치세력들의 패턴을 정세적 이기보다는 거시적 역사 시야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단지 구체적 정치지형에서 특정 세력들의 전략이나 환경에만 분석을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09 집중하게 되면 근본 원인, 미래 전망 등에서 협소한 시야에 국한되게 된 다. 그리고 이 시각의 또 다른 강점은 실천적 해법에서도 근본적 원인 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현재 민주화 운동 체제의 에너지가 거의 소진된 시점에서 선거전략의 진화만으로 이 진영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협소하다 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구조환경적으로 현 야권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비관주의적 분석은 퇴조기 이후 새로운 변혁적 정치질서의 구축이 새 환경을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힘을 과소평가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2000년, 2004년 민주당이 연속으로 패배하자 유권자의 보수화, 정치양 극화의 구조적 환경 속에서 민주당 집권의 불가능성이라는 ‘불임정당 론’이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 전략 지도부 일각에서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민주당 부통 령 후보로 영입하자는 논의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시점에서 보면 2008년 미국은 새로운 민주당 정치질서를 창출하였고 오히려 오 늘날은 공화당 불임정당론이 제기되고 있다. 위의 정치질서론적 관점에서 필자의 전반적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 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김대중 정부 수립으로 그간 민주화 운동을 주 도해온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집권하여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보다 성숙, 발전했지만 동시에 노무현 정부와 그 이후의 기간은 마치 자연의 질서처럼 퇴조의 과정이 형성된 기간이기도 하다(안병진, 2004). 마키 아벨리 등 공화주의적 정치철학 기조에서는 정치가 반성적 혁신과 역 동성을 잃으면 정체되고 부패한다고 본다. 이 민주화 운동 진영을 하나의 일관된 정치질서라 부를 수 있는 것 은 이들이 계파나 당 내·외부를 떠나 일관된 패턴들을 가지고 있기 때 문이다. 이들은 과거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의 시대에서 야당이나 시민 사회의 운동세력으로서 성장해 왔는데 마치 미국의 68혁명 세대와 같

110 동향과 전망 87호 은 저항 정치의 세대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비록 보수 우위의 정치지형 이지만 김대중, 노무현 후보라는 현실과 이상에 대한 균형과 성찰 감각 및 유권자 심리를 이해한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의 정치가 배출을

통해 적절한 선거전략으로 안정적 국정운영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집 기 권에는 성공할 수 있었고 민주주의 정치질서를 만개시켰다. 획 하지만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민주화 운동 정치세력은 과거 권위주 의 정치질서와 저항하던 시대적 맥락이 가지는 제약 속에서 당 내·외 로 전반적으로 공통의 부정적 특징도 동시에 지니는데 이는 두 혁신적 인 정치 지도자의 부재 속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즉 권위 주의 체제에 대한 단순 저항의 과정에서 이들은 사고 체계에서 구체적 현실에 근거한 부단한 성찰과 혁신이 아니라 주관적 이념과 진영의 논 리에 뿌리 깊게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체계는 한국 유권자의 복합 적 특성에의 극단적 무지와 무관심, 특권의식과 학연, 운동권 서클의 연고주의, 상대 정치진영에 대한 무지와 과소평가, 이념적 관성과 21세 기 특성에 대한 무지와 문화적 부적응, 창조적 혁신 능력보다는 관성적 보수주의, 구체적 실행력과 전문성이 아닌 추상적 사고방식 등의 수많 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과거 민주주의 정치질서의 제약 속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두 정치 지도자의 탁월함은 이례적이다. 과거 김대중이란 정치인은 정치인의 자질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항상 강조해 왔다. 노무 현이란 정치인도 평생에 걸쳐 이상과 현실의 중용 속에서 고민해 왔다. 이는 정치철학적으로는 존 듀이나 혹은 더 나아가 로버트 웅거가 주장 하는 영구적 혁신의 실용주의(pragmatism of permanent innovation), 혹은 민주적 실험주의(democratic experimentalism)와 궤를 같이한 다.3) 즉 진정한 실용이란 현실 추수가 아니라 부단히 구체적 현실 이해 속에서 더 나은 진리를 재구성해 나가는 실험정신을 의미한다(로버트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11 웅거, 2012). 이는 흔히 한국에서 실용주의가 우파의 전유물로 이해되 는 것과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민주당내 우파 경향의 정치인들은 현실 속에서 미래 경향의 진보 어젠다를 발굴하기보다는 보수 진영의 논리 에 쉽게 투항하는 현실 추수를 실용으로 포장하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 내 좌파는 구체적 현실과 정치지형, 유권자의 복합성을 떠난 이상을 언 급하면서 중간층과 쉽게 유리되곤 한다. 반면에 과거 민주당의 역동성 을 잠시 복원시킨 무상급식 등의 이슈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적절한 프래그머티즘의 이슈라 평가할 수 있다. 이 무상급식이란 쟁점은 현 한 국의 정치지형을 초월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이 아니면서도 그간 한국의 복지 패러다임을 일보 진전시키고 야권의 이슈 주도력을 강화한 바 있다. 이번 2012년 대선은 이러한 민주화 운동 세력이 위에서 언급한 특 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조응하는 보편적 담론과 가치, 문화, 정 책, 인적 구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보편적 담론의 정수는 과거 권위 주의 정치에 반대하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 정치에서 질적으로 나아가 대한민국 전반을 민주공화국으로 성숙시킬 미래 가치로 과거 세력과 차별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2008년 민주당 오바마 후보는 과 거 민주당의 지나친 당파성과 차별하여 미국을 다시 보수와 진보의 양 극화가 아닌 민주공화국으로 통합하고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제공하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 운동 세력들은 과거 자신들의 민주화 운동이 왜 차원이 다른 21세기 비전과 활동방식, 문화적 감수성으로 성숙하고 혁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 과물들을 내놓고 있지 않다. 과연 이번에 새로운 정치를 내건 안철수 후보 진영이 기존 민주화 운동 정치를 대체한 새로운 정치질서의 맹아인지 이번 선거과정의 모 습만 보면 다소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기존

112 동향과 전망 87호 민주화 운동 정치의 특징과 질적으로 차별화하지 못했고 대안적 정치 세력으로서의 유능함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은 새로운 정치, 시민참여적 정치를 단지 구호가 아닌 선거 과정상의 구

체적 활동방식 전반 속에서 내면화하여 보여주기 보다는 기존 20세기 기 의 상식적 캠페인을 반복한 바 있다. 그들이 내건 국회의원 정수 축소 획 가 과연 새로운 정치의 핵심 수단인가에 대해 선거 과정에서 많은 정치 학자들은 강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질서란 그저 자신의 고정된 위치에 서 선포하고 자동적으로 정치세력과 시민들이 이에 호응하는 것을 요 구하는 과정에서 쉽게 만들어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는 오히려 복잡한 정치 지형 속에 선도적으로 뛰어들어 개입하며 기존 질서를 흔들고, 변형하며 재건할 때 가능하다. 전자를 포고주의(politics by declaration)라면 후자는 재편적 혹은 구성적 정치(reconstructive politics)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에 큰 기여를 한 미국 공화당의 베리 골드워터나 민주당의 하워드 딘 등 역대 걸출한 정 치인들은 모두 이러한 역동적 리더십 구성 과정을 주도한 바 있다. 반 면에 안철수 후보의 선언적 정치는 구성적이기보다는 결국 자신의 협 소한 구호를 선언하는 데 그친 미국의 백만장자 포퓰리스트인 로스 페 로의 1992년 선거전과 유사하다. 당시 로스 페로의 선언주의적 정치는 한국과 달리 탄력적인 미국 주류 민주당의 포섭 능력에 의해 쉽게 사멸 했다. 즉 클린턴 정부는 선거 직후 페로의 핵심 어젠다인 균형예산을 포섭하여 자신 정치질서의 최대 업적으로 만들어 냈고 페로는 오늘날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과연 안철수 후보가 선거과정에서 어떤 교훈 을 배우고 새로이 성장할 수 있을 지 아직은 유동적이다. 이러한 민주화 운동 정치가 새로운 보편적 문법을 창출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과도기에는 이를 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보수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13 정치세력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즉 아직 민주화 운동 정치의 자장이 존재함을 인지하면서 이 정치질서에 순응하고 동시에 그 불안정성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보수 정치세력이 성공하기 쉽다. 필자는 이러한 성공적 유형을 능동적 포섭과 불안의 정치학을 상징하는 ‘닉슨주의’라 칭한다. 닉슨주의란 닉슨이 아직 미국판 민주화 운동 정치질서인 뉴딜 시대의 자장이 남아 있는 상황을 잘 인식하면서 보수의 기조를 약간 완 화시켜 민주당 노선을 능동적으로 포섭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퇴조기와 부패기의 상대 뉴딜 정치질서의 불안정성, 여러 정 치세력들의 신뢰하기 어려운 특성을 잘 부각시켜 안정과 민생의 보수 정치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에 성공한 바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번 대선 에서 박근혜 후보는 바로 이러한 닉슨주의의 성공유형을 정확히 준수 하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는 그녀와 그 주변 정치 블록이 국민들 의 복합적 마음을 잘 이해하고 이를 통치 전략에 반영하는 오랜 세월의 정치훈련을 받아왔기에 가능하고 보수적 미디어 환경들도 이에 크게 일조하였다. 반면에 민주화 운동 정치질서가 이러한 쇠퇴기가 아니라 새로운 보 편적 문법 창출에 성공하는 개막기라면 형세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2008년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68년 집권에 성공한 닉슨과 달리 패배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의 민주당이 새로운 정치질서의 개막기 사 이클에 들어갔고 이 질서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낼 능력 있는 새 정치세 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위기 지속 등 구조적 환경이 극도 로 악화된 속에서도 여유 있게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 났다. 반면에 2008년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 는 보편적 문법을 제시한 오바마 앞에서 능동적 포섭과 안정의 닉슨주 의를 구현하지 못하고 대패하였다. 그는 개혁적 보수주의와 기존 보수 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였는데 이는 단지 보수 결집만으로는 상대

114 동향과 전망 87호 후보인 오바마의 새로운 정치문법을 돌파하기 어려운 선거전략 상 곤 혹감을 반영한다. 반면에 2004년 공화당의 부시는 아직 새로운 정치 질서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인물 경쟁력에서도 뒤진 존 캐리 후보에

맞서 손쉽게 보수 결집으로 승리하였다. 다만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기 하워드 딘 당 대표라는 새로운 정치의 맹아를 구현하면서 결국 그는 획 이후 당 혁신을 성공시키고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이 민주화 운동 퇴조기에 자유주의 정치와 이에 맞서는 닉슨주의 보수의 특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풍부히 이해하기 위해서 이 글은 시론격으로 매우 유사한 특징이 나타난 미국 68년 대선을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이번 한국 대선에 가지는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당시 68년은 미국판 민주 정부 체제인 뉴딜 정치질서가 쇠퇴하며 보수로 이행하는 과도기 선거였다. 이 당시 로버트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등 두 정치지도자가 극단주의자에 의해 비극적으로 암살되어 자유주의 진영은 반드시 승리하리라 믿었음에도 결국 패배한 이후 극도로 충격 을 받게 된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 서거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과 확신이 매우 높은 조건 속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이 민주당 성 향의 인사들에게 준 충격과도 유사하다. 당시 미국 민주당 내 예선에 서 제 3후보 성격의 유진 매카시는 안철수 후보의 경우처럼 맑은 가치 와 신선함을 가졌지만 선거 캠페인의 미숙함을 노출하고 대안적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보다 주류 후보인 험프리에 패배한다. 그 리고 민주당 정권의 부통령 출신인 험프리 후보는 문재인 후보처럼 훌 륭한 인품과 책임감, 안정적 정책능력의 소유자이지만 새로운 미래 희 망을 보여줄 수 있는 비전과 매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결국 그는 본 선 내내 기존 존슨 민주당 정권에 대한 공격에 시달리다가 아쉽게 패 배하고 말았다. 반면에 당시 닉슨 후보는 과거 매우 강경 보수의 아이콘이었지만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15 민주당의 복지와 민생 노선을 능동적으로 잘 포섭하고(뉴 닉슨주의) 민 주당 내외부의 운동세력의 불안정성과 차별화되는 안정과 법질서의 대통 령으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침묵하는 다수’의 표를 얻어냈다. 이는 2012 년 총선,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변화 및 핵심 승리 원인과 일치한다. 이 글은 주로 미국 1968년 선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한국 정치 에 주는 시사점으로 과도기적 정치질서의 성격, 이에 대한 닉슨주의 보 수의 탁월한 순응과 상대에 대한 적절한 균열 전략, 그리고 민생주의 이 미지 구축의 승리라는 함의를 도출한다. 반면에 민주당 주류 후보 및 대안적 후보들이 가진 제약과 인물의 한계들의 시사점을 추출한다. 다 만 이 글이 마치 정치질서에 대한 결정론적 해석으로 오해를 피하기 위 해 다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즉 이 글은 미국 68년이나 한국 2012년 대선이 민주화 운동 정치체제가 필연적으로 몰락할 선거이므로 이미 패배가 예정되어 있었다는 숙명론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질 서는 결정론적 구조가 아니라 주체들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열린 구성적 미이다. 그러하기에 이 글은 경제 위기 분석이나 혹은 구조 분 석에 따른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정치 행위자들의 인식과 대응을 강조 한다. 이 글은 다만 각 정치행위자들의 행위 패턴에서는 각 개별 주체 들의 인식을 넘어 시대 맥락이 만들어 내는 일정한 질서와 경향성이 존 재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2. 미국 1968년 선거의 시사점: 정치질서의 퇴조기와 닉슨주의 성공

1) 닉슨주의적 보수 미국의 1968년 민주당 주요 관계자들은 이전의 일련의 선거에서 실패

116 동향과 전망 87호 한 경력이 있어 이미 한 물 간 패배자(loser)로 간주되었고 그리 매력도 가 높지 않은 닉슨에게 패배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 나 마틴 루터 킹 목사,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 후보라는 두 걸출한 자유

주의 진영 지도자의 피살은 이들로 하여금 닉슨을 누르고 승리할 간절 기 한 이유와 낙관주의가 팽배한 맥락으로 작용하였다. 다만 민주당 정권 획 에 참여한 험프리 후보의 한계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존재하였다. 이 는 과거 한나라당 예비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후보의 경쟁력에 대한 과소평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민주당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절실 함과 낙관주의, 노무현 전 정부의 핵심인 문재인 후보에 대한 불안감의 한국 정치 지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자신들의 현재 행위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기 힘들었 던 그들이 간과한 것은 자신들이 놓인 정치질서가 가지는 과도기의 성 격이었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를 정치질서론적으로 보면 뉴딜 민주당 정치질서의 에너지가 거의 다 쇠진하고 보수적 정치질서가 이미 형성 되기 시작한 이행기적 특징을 가진다. 앞에서 필자는 역동적 운동으로 인한 정치질서의 창출이 점차 정부에의 의존으로 인한 에너지 약화를 지적한 바 있다. 사실 뉴딜 정부의 역할의 확대는 그간 강력한 정치적 힘을 행사해온 지역 정당 조직들의 힘을 약화시켜 왔다. 왜냐하면 자원 배분의 기능이 이들 지역 정당조직에서 연방정부로 이전됨에 따라 지 역 정치조직들이 행사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Plotke, 2006: 143). 이는 마치 노무현 정부 시절 각 유권자나 시민, 직업 단체들 이 극도로 약화된 지역 정당을 매개로해서가 아니라 직접 정부 고위층 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경우와도 유사하다. 이후 루즈벨트를 계승한 민주당 정부인 트루만 시대는 열정적 운동 동원력의 감소와 뉴딜 자유주의 노선 확대의 어려움, 그리고 거대 정부 에의 의존의 경향이 더 심화되어 정치질서 내부 위기가 증가하는 것을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17 확인할 수 있다. 뉴딜 자유주의를 계승한 트루만 대통령이 캐나다식 단 일 지불 체계의 국민 의료보험 개혁에서 실패했던 사례는 이미 뉴딜 자 유주의의 확장이 어려운 현실을 잘 드러내 준다. 당시 미국의학협회 등 은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2억 달러의 액수로 네거티브 광고전을 전개하 여 사회주의화된 의술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특히 트루만 시절 이익 집단의 네거티브 광고가 위력적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인종주의 보루 인 남부 민주당원들이 국민의료보험의 성사에 따라 곧 병원에서의 흑 백 인종 혼합 시설화를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인종적 균열에 의한 뉴딜 진보주의 어젠다의 실패는 크루그만의 지적처럼 이후 뉴딜연합의 붕괴 의 가능성을 미리 생생히 보여준다(크루그만, 2008: 93). 더구나 트루만 정부 시기의 뉴딜 진보주의는 이후 보수주의의 단골 공격 메뉴인 거대정부의 비효율성 담론의 소재를 제공하는 측면이 존 재한다. 즉 콰다나오의 예리한 지적처럼 다양한 지방, 지역 정부의 관 료주의적 저항을 우회하여 직접 풀뿌리 커뮤니티에의 직접 지원을 시 도한 뉴딜 자유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는 당시 보수적 기관을 우회하는 정치적 노련함을 발휘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거대정부의 비효율을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Quadagno, 1994). 하지만 린든 존슨이 강경보수주의자인 베리 골드워터를 1964년 너 무도 쉽게 누르고 뉴딜 자유주의를 연장시켰을 때 많은 이들에게 보수 는 영원히 불임정당으로 전락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뉴딜 자유 주의의 운명은 존슨의 당선과 함께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우고는 곧 급격한 추락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존슨은 아이러니하게도 케네디라 는 걸출한 자유주의가 이루지 못한 진보주의적 개혁을 케네디 암살이 라는 역사적 위기를 활용하여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마키 아벨리스트답게 자신의 진보주의적 개혁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잘

118 동향과 전망 87호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보좌관인 빌 모이어스(Bill Moyers)에게 “자네 나 내가 사는 동안 남부는 공화당 일색이 된 듯하군”(크루그만, 2008: 131)하고 냉소적으로 내뱉은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정치질서론의 시야에서 보면 마치 공화당이라는 존재가 사라질 계 기 기처럼 느껴진 1964년의 참패는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의 르네상스를 획 열어간 주춧돌이라는 점이다. 닉슨은 1964년 강경보수인 골드워터의 이념과 조직적 힘을 흡수하면서 이후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의 초석을 세웠다(Middendorf, 2006). 그는 자신의 강경 보수주의 이념에만 몰두 한 골드워터와 달리 정치질서론적 감각을 예리하게 지닌 탁월한 리더 였다. 즉 그는 뉴딜 자유주의의 자장이 아직도 강하게 남은 현실에서 선거 과정에서 뉴딜 체제를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박 근혜 후보가 그러하였듯이 그는 복지 국가의 확대를 주장하였고 민생 을 아는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그는 자신의 백인 저소득 층 출신 배경을 강조하고 상대당의 귀족주의 가문(케네디)이나 엘리트 이미지(매카시)를 비난하며 대중적 보수주의 소구를 시도하였다. 이후 후술하겠지만 심지어 집권 직후에는 사회보장법의 확대와 전 국민 의 료보험을 추구하였다. 닉슨은 한편으로는 뉴딜 정치질서를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동 시에 당시 시대의 주요 화두이자 본선의 핵심 이슈는 ‘법과 질서(law and order)’의 대통령이라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마치 박근혜 후보가 일반 평범한 국민 속에서의 좌파 엘리트 운동권에 대한 피로감 을 적절히 잘 이용하여 민주당을 공격하였고 텔레비전 토론에서 선보 인 이정희 후보의 극단적 분노의 정치 스타일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과도 유사하다. 이미 1964년에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에 의해 주요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 시대적 화두는 1968년 선거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이는 플롯케가 지적하듯이 이후 성장, 가족의 가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19 치 등과 함께 80년대 이후 대중적 보수주의의 시대를 열어간 핵심 담 론으로 정착되었다(Plotke, 2002). 이미 68년 선거에서 확인된 ‘법 과 질서’ 등의 담론은 미국에서 기존 자유주의에 대해 중산층들의 환 멸감이 커지고 새로운 자유주의 돌파가 필요한 중요한 징후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Gest, 2001). 케네디도 이를 직관적으로 인식하 였기에 캠페인에서 자신의 법무장관 시절 업적을 환기하면서 법과 질서 의 대통령을 공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당시 레이건은 자신들을 따라하 는 케네디를 비꼬기도 했다(Perstein, 2008: 267). 하지만 케네디의 노력 에도 불구하고 법과 질서라는 프레임은 당시 자유주의자들이 가져가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자유주의는 흑인들의 폭동에 대해 우 호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시 험프리 부통령은 흑인 폭동에 대해 “내가 그런 조건에 살아가야 한다면, 나라 도 엄청난 시위를 주도할 것이다.”라고 실언하여 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Solberg, 2003: 297). 더구나 매카시나 케네디의 지지자들은 반전 시위자층이 핵심을 구성하는데 특히 케네디의 경우 ‘급진 행동 프로그 램(Radical Action Program)’ 같은 흑인 급진주의 단체들의 전폭적 지 지를 받고 있었다(Boomhower, 2008: 63). 이들 반전 진보주의자들의 민주당 전당대회 외곽 시위와 시카고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다수 시민 들은 경찰의 편에 섰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컨버스 교수 등에 따르 면 심지어 당시 언론이 비교적 이들 반전 시위에 우호적 보도를 수행했 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해 ‘비둘기 파’ 견해를 가진 백인층에서 조차 도 70% 이상이 공권력의 사용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들 중 40% 는 오히 려 시위를 진압하기위해 충분한 공권력을 사용하지 못했다고까지 지적 하고 있다. 반면에 존슨의 베트남 정책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반전 시위 자들에 공감하는 백인 층(이들은 거의 대부분 매카시 지지층과 중복된 다)은 겨우 12%에 지나지 않았다(Converse, et al., 1969: 1087).이는

120 동향과 전망 87호 당시 법과 질서의 패러다임이 강하게 작용하는 하나의 증거로 인식할 수 있다. 즉 닉슨은 소위 잊혀진 중산층 및 백인 노동자 계급 속에서 공 화당의 정치연합을 구성하고자 한 것이다(ibid, 1994: 122∼123). 이러

한 법과 질서 담론에서의 부정적 낙인은 한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하다 기 가 이후 클린턴, 고어 등 신민주주의자들의 새로운 자유주의 비전이 등 획 장해서야 비로소 깨지게 된다(Harris, 2005). 닉슨이 일부 특권주의적 자유주의 엘리트 및 그들이 비호하는 전투 적 흑인층 대 일반 중산층과 서민 백인 노동자층의 대비를 통해 자유주 의 연합에 효과적 균열을 낸 방식도 그의 정치 전략의 중심을 이룬다. 이는 선거 기간만이 아니라 집권 이후에도 일관되게 이어지는데 예를 들어 그는 소위 필라델피아 플랜이라고 불리는 정부 계약제의 재조정 을 통해 대략 20% 가량을 소수인종에게 배분하는 조치를 공표했다. 이 조치의 배경 중 하나는 민주당 핵심 정치연합인 소수인종계 흑인과 노동 조합 간의 내부 균열을 노리는 정치적 전략이었다(Quadagno, 1994: 80). 미국의 1968년이 뉴딜 민주 정치질서의 강점과 한계와 이를 잘 이 해한 닉슨 보수의 탁월한 정치전략을 보여주었다면 한국의 2012년은 그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정치질서의 강점과 한계를 잘 이해한 박근 혜 보수의 탁월한 닉슨주의 전략을 보여주었다. 우선 박근혜 후보는 그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정부의 성과로 인 해 정치적 민주화만이 아니라 복지와 경제적 민주화, 문화적 진보가 중 대 쟁점으로 부각되는 시대의 성격을 잘 이해하였다. 이에 따라 그녀는 과거 스탠포드 연설에서 선보인 ‘규율 있는 자본주의’와 복지 강화의 방 향이 집약된 ‘뉴 박근혜’ 노선을 제기하였고 이의 상징적 진보 인물인 김종인 전 부총리 영입에 성공하여 총선, 대선에서 전면에 내세웠다. 김종인 전 부총리는 그간 민주당에서도 주요 인사로 영입 1순위를 기록 할 만 큼 진보 유권자 진영에서도 소구력이 큰 인물이기에 이는 매우 성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21 공적 조치라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그녀는 놀랍게도 그녀 지지기반의 확장세에 걸림돌이 되어온 과거사 이슈에서도 전격적 사과라는 태도를 통해 이슈를 제거하였고 이명박 정부를 민생실패 정부로 규정하며 차 별화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야권의 복지와 경제 민주화, 박정희 시대 유산의 공세의 위력을 크게 반감시키고 결국 인물 간 매력도와 신뢰도 대결, 과거식 정치 대 미래 민생 정치 대결로 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 였다. 예를 들어 박근혜 후보가 11월 30일 격전지인 부산의 한 유세에 서 사용한 다음의 어법은 효과적으로 보수층을 파고들었다. “문 후보는 첫날부터 부산에 와서 미래는 애기하지 않고 저의 과거사 공격만 늘어 놓았다. 바로 5년 전 자신들의 엄청난 실정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30년 이 다 지난 과거를 끄집어내어 선동했다. 무책임한 선동만 하니까 정치 가 과거로 돌아가고 국민 삶은 보이지 않는다(최우석, 2012).”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복지와 경제 민주화의 이슈만이 아니라 여성 후보란 프레임은 단독으로는 아니지만 함께 어우러져 과거 시대의 계 승자라는 불리한 이미지를 가진 박근혜 후보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 후 보의 성격을 만드는 데 일정정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 직후 박 근혜 지지에 대한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14% 나 되는 많은 유권자들이 공약 선호도와 동일한 비율로 여성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헤럴드 경제󰡕, 2012.12.25). 이후 심층적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여성 이 슈는 박근혜를 구시대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한 야권의 전략을 무디게 하고 여성 특유의 공감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문재인 후보는 선거 운동 초반에 는 해병대 출신 등 지나치게 남성성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여 네 티즌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이라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삶을 살피는 것”이란 구호가 상징하듯이 민

122 동향과 전망 87호 생이란 이슈에서 박근혜 후보는 야권의 강점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닉슨처럼 안정과 신뢰, 법치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보수 진영은 물론이 고 중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복지와 경제 민주화 등

의 이슈에서 박근혜의 접근에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이 이와 무리하게 기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과정에서 그녀의 온건한 접근법은 중간층을 공략 획 하기에 매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즉 박근혜 후보의 이러한 적절 한 수위의 야권 이슈 포용 시도는 야권이 무상 시리즈와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 등 중도층에게 다소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차별화 의 강박관념을 낳았고 이는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불안감을 조성하였 다. 특히 이러한 온건한 접근법은 그간 박근혜라는 브랜드가 가진 신뢰 라는 가치와 결합하여 상대적 안정감을 부여한다. 한국 갤럽의 12월 19 일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의 이유에 대해 신뢰가 22%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그녀가 줄 곳 견고한 지지세를 유지해온 가장 큰 동력이다. 또한 󰡔한겨레󰡕의 12월 22∼23일자 조사에서 박근혜 지지층에게 투표 이유를 물었을 때 “상대 후보보다 더 안정감이 있어서”라는 항목이 55.5%나 기록하였다. 국가 안보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북방 한계선 등 의 이슈를 공세적으로 제기하여 중산층의 불안 심리를 효과적으로 공 략하였다. 물론 위의 전반적 메시지는 민주통합당과 달리 풀뿌리에 단단히 뿌 리 내린 당의 강력한 지역 조직세, SNS 등에서의 체계적 메시지 캠페인, 종합편성 채널 등 다양한 언론의 유리한 환경 등이 결합하면서 효과적 동원 기제로 작동하였다. 결국 닉슨적인 박근혜의 행보와 이와 대비되 는 야권의 불안정성은 중간층의 불안감을 크게 자극하며 기록적인 지 지세의 결집을 이루어 내었다. 예를 들어 50대의 89.9% 가 결집한 이례 적 투표율은 젊은 세대의 투표율 상승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 리고 수도권과 충청에서 대성공은 결국 문재인 후보를 누르는 결정적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23 동인이 되었다(김대호, 2012). 위에서 필자는 닉슨과 박근혜 후보의 캠페인의 탁월함을 지적하였 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들 두 후보의 닉슨주의 캠페인의 위력을 단지 보수 결집의 결과로만 편협하게 이해하는 경향을 주의해야 한다 는 점이다. 대선 이후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50대에서의 기록적 박근혜 후보 지지세와 유권자 보수화를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 한 분석은 박근혜 후보의 대중적 캠페인을 과소평가하고 싶은 진보적 성향 이들의 해묵은 심리구조를 보여줄 뿐이다. 반면에 유승찬 선거전 략가는 본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12 년 대선 직전의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득표한 비율과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득표한 비율을 보면 모든 계층에서 박근혜 후보는 상승세를 기 록하였다. 예를 들어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전면 지휘에 나선 총선에 비해 20대에서 3.3%, 30대에서 6.9%, 40대에서 10.5%, 50대에서 12% 등 모든 세대에서 골고루 상승세를 기록하였다. 물론 이는 총선과 대선 의 맥락 차이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후보의 대중적 매력에 대해서는 단 지 보수 고정층 결집, 박정희 향수로만 설명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넘어 보다 심층적 분석이 필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2)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자의 한계 1968 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시대정신과 정치질서를 잘 이해한 캠 페인을 전개하였다면 반면에 민주당 후보인 험프리는 새로운 정치 문 법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그간 미국 언론에서는 험프리 후보가 기 존 민주당 특권을 대표하는 후보이기에 필연적으로 패배하였다는 평가 가 있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단순화이다. 단순히 민주당 기득권 후보 로만 단순화하기에는 험프리는 미국 역사상 드문 창조적이며 진보적 정치인 중의 하나다. 그는 사실상 그를 대체하고자 한 유진 매카시나

124 동향과 전망 87호 로버트 케네디보다 더 철저한 60년대 진보적 자유주의의 대변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전기 작가인 솔버그(Solberg)에 따르면 그는 사실 1964 년 민권법의 제정에 가장 큰 공로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노동운동 쇠퇴

에 결정적 전기를 제공한 태프트-하틀리 법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 기 한 진보적 자유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매카시가 때로는 석유 획 자본 등의 이해와 타협해 온 것과 달리 석유자본 등의 금권정치세력과 도 일관되고 외로운 투쟁을 전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2003, 146). 그는 심지어 유럽 사회주의자들과의 활발한 지적 교분에도 앞서서 그 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존슨 대통령을 경악하게 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오늘날 민주당을 집권정당으로 재생시킨 클린턴, 고어 등의 제 3의 길 의 문제의식처럼 이미 그 당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서 국제 곡물 원조, 평화봉사단 등에서 초당적이고 창조적인 입법의 성과를 만 들어내기도 했다. 매카시나 케네디가 그와의 당내 경쟁에서 패배한 것은 단지 신화가 말하듯이 기득권 세력의 조종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이러 한 훌륭한 입법의 성과에 따라 민주당의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는 노동계 등의 강고한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험프리의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한국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도 비 교할 만하다. 문재인 후보 대 그를 대체하고자 한 안철수 후보를 기존 기득권 자유주의 대 새 자유주의라고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기란 어렵 다. 안철수 진영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달리 일자리, 노 동 등 정책에서 문재인이란 정치가는 안철수 후보보다 선거전에서 일 관되게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의 이러한 일관성은 결국 은수미 초선 의원 등 당내 진보적 자유주의자들, 진보정의당 등 당 외부 진보 정치세력과 진보 자유주의 지식인 진영, 노동계 등의 강한 지지세를 이 룩하였다. 또한 그는 과거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 중 가장 정치의 지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25 나친 당파성을 혐오해 온 이들 중 하나이며 국가안보 등 많은 이슈에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초당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서 그를 둘러싼 이들과는 사뭇 다른 정치가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단순히 당의 기득권 보스들의 아바타가 아 닌 험프리의 비극은 그가 대통령으로의 지름길이라고 굳게 믿은 부통 령에 지명되면서 맺은 존슨 대통령에 대한 충성 맹세에서 비롯된다. 그 는 주변의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로에 대한 잘못된 환상 을 한참 동안 믿고 있었으며 존슨은 그의 베트남 침공 외교안보 노선에 대한 험프리의 비판적 입장이 노출될 때 마다 이를 철저히 통제하고자 하였다(Solberg, 2003: 255). 결국 한때 ‘언어의 램브란트’이며 뛰어난 포퓰리스트로 불린 험프리이지만 인기 없는 존슨 정부의 확성기 역할 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험프리는 존슨에 의해 발이 묶이 면서 기득권 후보로 공격받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그리고 그 대 가로 그는 당 대의원들의 충성스러운 표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수 있 었다. 그는 더구나 당 충성파들에 의해 매카시 지지자들이 새로이 당 대 의원으로 선출되는 것을 방해하는 공작의 혜택까지 입었다(Sandbrook, 2004: 212). 한국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과거 험프리만큼은 아니지만 그 또한 소위 친노 계열 당 내외 지지자들의 열정적 지지자층의 핵심 대변자이 면서 동시에 중도층의 과거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에 대한 공감 의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위치를 찾아야 했다. 비록 그는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언급하는 것을 통해 이를 슬기롭게 벗어나고자 했지만 선거 기 간 내내 기존 노무현 정부의 단순 계승자라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그는 선거 후반기에 가서야 주변 노무현 정부 출신 측근 2선 후 퇴 등의 조치를 수행했지만 이는 그리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리고 그는 미숙한 대처과정에서 기존 구세력 이미지인 이해찬, 박지원

126 동향과 전망 87호 당 지도부 체제와의 담합론 공세에 한동안 시달렸고 총선에서 부작용 이 이미 노출된 <나는 꼼수다> 등의 당파적 자유주의 진영과 밀접한 선 거 캠페인 등에서 이미지 손상을 감수해야만 했다.

선거 과정 내내 구세력의 이미지에 시달린 미국의 험프리는 주변의 기 압력 속에서 결국 9월 말부터 존슨과의 거리두기 행보를 주저하면서 시 획 작했지만 이미 상당히 늦은 상태였다(Perstein, 2008: 346). 그는 9월 30 일 솔트 레이크 시티 연설에 가서야 존슨 노선과 분명한 거리를 두면서 폭격 중지와 남 베트남 지원에 대한 재평가를 공약하였다. 이는 베트남 과의 협상에서 힘이 약화될 것을 두려워한 존슨과의 힘겨운 내부 투쟁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시카고 전당대회 직후 지지율이 10% 이상 저 하되었던 험프리는 이 솔트 레이크 시티 연설 이후 다시 지지율이 오르 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대선 행보에 너무도 늦게 뛰어들었고 선거자금의 부족 으로 광고들을 취소하는 등의 어려운 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본선 승리를 위해 그를 지지하리라 예상되던 매카시는 단지 뒤늦게 투 표일 일주일을 앞두고 미적지근한 지지를 표명하여 박빙의 선거전에 사활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해 주지 못하였다(Sandbrook, 2004: 214). 그리고 케네디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반전 진영과 화해하고자 하는 전술도 반전에 대한 형의 대의를 고려한 에드워드 케네디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Kennedy, 2009: 273).4) 이는 한국 대선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안철수 후보도 단일화 과 정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에 크게 실망하며 자진 사퇴 후 뒤늦게 미적지 근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당시 이 캠프 내부에서는 독자 출마로 완주하 느냐 아니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느냐를 둘러싸고 논쟁하느라 며칠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였다. 결국 과거 박원순 서울 시장 후보와의 인상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27 적인 단일화 사례와 달리 미적지근한 봉합의 결과로 그 이후 안철수 후 보의 적극적 막바지 유세 결합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분위기는 결코 고 조되지 못했다. 단일화 효과를 다시 복원하기위해 문재인 후보 진영은 안철수 후보의 어젠다 일부 수용 및 핵심 인사의 전방위 영입을 시도했 지만 이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일부 시민사 회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출신 인사의 입각 포기 선언 등 새로운 정치세 력으로서의 차별화 조치를 제언했지만 문재인 후보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험프리, 문재인 후보 모두 마지막 새 동력을 얻기에는 미진함 이 공통적으로 있었던 셈이다. 물론 기득권 후보인 험프리의 닉슨에 의한 패배를 필연적으로 설명 하는 신화는 사실과 어긋난다. 선거 막바지에 험프리는 존슨과 차별화 에 점차 성공하며 닉슨을 거의 따라잡았고 실제 선거 결과도 닉슨의 압 승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전체 득표율에서 닉슨은 43.42%, 험 프리는 42.72%, 조지 왈러스는 13.53%로 험프리가 석패하였다. 이는 1964년 공화당의 악몽이었던 골드워터의 대참패에서 공화당이 겨우 5% 더 득표한 것에 불과하다(Perstein, 2008: 354). 당시 험프리 진영에 참여했던 정치컨설턴트인 나폴리탄은 단 며칠만 더 있었더라면 역전이 가능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김윤재, 2005). 문재인 후보의 경우에 도 전반적 추세와 적극 투표층에서는 열세였지만 방송 3자 여론조사 등 대선 마지막 TV 토론 직후 12월 17일자 여론조사에서는 비록 오차 범위 이지만 1.6% 역전을 기록하기도 했다(󰡔월간 중앙󰡕, 2013년 1월호: 57). 문재인 후보 진영으로서는 선거 초반에 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거 나 막바지 보다 대담한 행보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는 부 분이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험프리의 뒤늦은 지난 정권 차별화 과정과 점차 닉슨을 따라잡은 과정은 오늘날 문재인 후보의 경우와 매우 흡사

128 동향과 전망 87호 하다. 하지만 험프리나 문재인 후보는 결국 그 당시 선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질서의 선구자로 인지되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가진 후보들 이었다. 험프리 후보가 당 혁신에서 한계를 가지듯이 문재인 후보는 당

을 철저히 혁신하여 새로운 미래세력으로 정립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기 못했다. 그는 총선 기간부터 대선 마지막까지 새로운 정당, 새로운 정 획 치세력의 모습을 대담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과거 김대중 대통 령과 이미지의 큰 차이를 보여준 노무현 후보와 달리 그 자신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 파트너로서 이미지를 여전히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노무 현 후보와 같은 대중적 매력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예를 들어 갤럽여 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 지지의 이유로 든 변수가 정권교 체 열망이 26%, 정책이 20%, 상대 후보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15% 로 거명하고 있다(󰡔헤럴드 경제󰡕, 2012.12.25). 문재인 후보는 심지어 자 신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사상구에서 조차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하였 다는 점에서 후보의 경쟁력에서 다소 한계를 보인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3) 대안적 제 3 후보들의 한계 미국에서 험프리만이 아니라 그를 대체하고자 한 자유주의의 다른 후 보들 또한 오늘날 신화와 달리 당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 한 한계는 당시가 새로운 정치질서의 개막이 아니라 기존 정치질서의 퇴조기임을 잘 보여준다. 특히 유력했던 매카시 후보는 오늘날 한국 대 선에서의 안철수 후보처럼 이념적 모호성과 응집력이 약한 다원적 지 지기반, 민주당에 대한 적극 개입의 실패, 열정을 동원하지 못하는 지 식인 스타일의 선거 캠페인 과정의 미숙함 등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중 간에 피살되어 신화의 영역으로 넘어간 로버트 케네디는 지지기반의 협소하여 본선 승리 가능성에 다소 의문이 드는 후보였다.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29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1968년에 대해 2012년 안철수 현상처럼 많 은 신화가 존재한다. 그 극적 반전의 시기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교차하 였기에 아직도 많은 미국의 미디어 담론이나 심지어 학술적 논문에서 도 68년 대선에 대한 ‘만약(what if)’의 질문들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질문은 “만약 케네디가 그 당시 암살되지 않았다면” 이 다. 더 나아가 존 에프 케네디의 측근이었던 테드 소렌슨은 2008년 회 고록에서 로버트 케네디가 당시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당내 경선에서 최종 승리는 물론이고 이후 매카시와 험프리 지지자들의 표를 결집하 여 본선에서 닉슨을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것이라 강하게 확 신을 표명하고 있다(Sorenson, 2008: 467∼468). 이러한 가정에 기반을 두어 흔히 68년 미 대선에 대한 자유주의적 미국인들의 회상은 다음과 같은 관습적 견해로 요약된다. 당시 매카시 와 케네디는 진짜배기 정치인으로서 당시 부통령인 험프리와 같은 기 득권을 대변하는 후보 ‘정치 머신(보스 정치그룹)’에 의해 부당하게 좌 절당하였다. 더 나아가 만약 케네디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민주당 경 선과 본선에서 승리하여 이후의 공화당 보수주의의 시대를 저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담론은 단지 진보적 성향의 미디어나 정치인의 언어에서만 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학문적 글에서도 자주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기틀린(Tod Gitlin) 교수는 60년대 사회운동을 분석한 그의 대표 저작에서 당시 자유주의 좌파의 열정적 분위기를 반영한 후보가 지명 되었으면 본선에서 닉슨을 누르고 승리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993: 339). 그가 이렇게 지적한 근거는 전체 유권자 수에서 민주당 대 선 후보인 험프리는 겨우 51만의 근소한 차이로 닉슨에게 패배했기 때 문에 만약 좌파 유권자들이 열정적으로 투표장에 나왔다면 승리할 수 있었다는 논거다. 이러한 담론은 진보적 경향의 글들에서 무수히 반복

130 동향과 전망 87호 되곤 한다. 보다 이념적으로 객관적 성향의 글에서도 다소 단순한 분석 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권자 행태 분석의 권위자인 컨 버스 교수는 68년 11∼12월 유권자 성향 조사에서 케네디가 심지어 닉

슨 후보보다 높은 평가(70.4 대 67.7)를 받은 조사를 근거로 케네디가 기 당선될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Converse, et al., 1969: 1090). 획 최근 릭 펄스타인(Perstein, 2008)이나 샌드브룩(Sandbrook, 2004) 등은 풍부한 역사적 리서치나 회고를 통해 보다 복잡하고 풍부한 현실 을 예리하게 드러내 준다. 흔히 1968년 매카시와 케네디는 당시 베트남 반전 운동의 기수로 낭만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최근의 미국 사 례에 비유하자면 그들은 이라크 전쟁을 애초부터 일관되게 반대한 바 락 오바마나 하워드 딘 전 대선 후보와 같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이라 크 전쟁 결의안에 조건 없이 찬성표를 던지며 외교안보에서 강경한 태 도를 취하다가 이후 일부 입장을 뒤늦게 변화한 힐러리 전 상원의원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5) 이들이 오바마보다는 힐러리에 더 가까운 이유는 애초부터 이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한 것이 냉전의 전선에서 공산주의와 전투적으로 대결 하는 ‘자유주의 매파’의 선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에는 매카시나 케네 디뿐 아니라 당시 자유주의의 대표주자인 험프리도 포함된다. 이들은 그간 미국의 자유주의 진영이 지나치게 공산주의에 대해 유약하거나 동조적이라는 당시 보수주의 진영의 치열한 공격에 공감을 표시하거나 지원한 이력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험프리는 당시 자유주의자이 면서 동시에 미국 공산당 불법화 법안을 주도적으로 제출하였고 매카 시는 이 법안 통과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Sandbrook, 2004: 65∼66). 케네디는 특히 오늘날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반공산 주의의 선봉장인 조셉 매카시(이글에서 다루는 반전 후보인 유진 매 카시와 흔히 혼동된다) 의원을 위해 일한 적이 있기에 줄 곳 진보적 자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31 유주의자들의 의혹을 받아 왔다. 반면에 두 차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활약한 애들라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 전 유엔대사는 공산주의 진영과 화해 노선을 취한 ‘자유주의 비둘기파’ 의 대표주자로 분류될 수 있다. 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이러한 자유주의 매파의 전투적 관점을 채택 한다면 당연하게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입장에서 공산주의 영향을 강 하게 견제하기 위한 도미노 이론을 수용하게 된다. 따라서 존 에프 케 네디의 베트남 개입의 핵심 근거가 바로 도미노 이론이었고 매카시 또 한 그 관점에서 베트남 전쟁에 찬성한 바 있다. 물론 케네디 행정부에 참여한 로버트 케네디 또한 형의 정책을 한동안 옹호해왔고 외교안보 이슈에서 흔히 비둘기파로만 알려진 것보다는 강경한 냉전 자유주의 자의 입장을 취했다(Dobbs, 2008). 하지만 점차 좌파 진영들이 베트남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들 스스로도 전쟁의 문제점들을 인식해가면서 이들은 조 금씩 입장을 선회해 갔다. 매카시는 상원 외교관계 위원회에서 활동하 면서 풀브라이트 의원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 비판적 목소리를 강화해 간 것으로 알려진다(Sandbrooks, 2004: 128). 로버트 케네디는 형 케네디의 신중한 개입 정책과 존슨 후임 대통령의 무모한 확전을 대비 하거나 나중에는 아예 형의 개입 노선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시인하면 서 곤혹스러운 입장을 벗어나갔다(Clarke, 2008: 45). 하지만 66년 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의원들을 4개의 그 룹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온건한 측으로 분류될 만큼 입장에 대한 선 회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Sandbrook, 2004: 136). 흥미로운 것은 당시 혼동의 과정은 이들 엘리트들 차원에서만 발생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반전의 기수라는 신화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선택도 매우 복잡하거나 혼돈스러웠다는 사

132 동향과 전망 87호 실이다. 예를 들어 당시 몇 가지 여론조사에서 소위 반전 후보 매카시 를 지지하는 5분의 3의 유권자가 오히려 전쟁의 확전을 지지하고 있다 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Gould, 1993: 40). 그리고 이들 중 상당

수는 매카시의 외교 노선에 대해 거의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기 다. 이는 컨버스 교수의 유권자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그에 따르 획 면 3, 4월 예비경선에서의 매카시 지지자들에 대한 11월 조사에서 과반 수 이상이 극우 후보인 왈러스를 가장 이상적 후보로 평가하고 있다 (Converse, et al., 1969: 1093). 사실 대중적 신화와 달리 68년의 대중적 여론은 복합적 양상을 띠 고 있었다. 당시는 반전의 여론과 전투적 캠페인만이 아니라 참전의 여 론과 이들의 전투적 행위도 광범위하였다(Perstein, 2008: 81). 심지어 당시 뉴 햄프셔 예비경선에 참여한 민주당원의 10%는 투표자 용지에 리스트도 없는 공화당 후보인 닉슨을 대안으로 적어 냈다는 것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Converse et al., 1969: 1092). 그런 점에서 굴드가 지적 하듯이 당시 매카시와 케네디에 대한 열광에는 반전이냐 참전이냐의 문제 보다는 존슨 행정부 리더십 전반의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Gould, 1993: 184). 이는 비유하자면 2008년 반전 후보였던 오바마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단지 이라크 전쟁 으로 환원되기보다는 부시 행정부의 전반적 실정에 대한 반대표의 성 격이 더 강했던 것과도 유사하다.6) 위에서 유권자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사고를 고려해볼 때 이들의 반 전에 대한 일관되지 못한 태도는 패배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하기 어 렵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이들이 신화와 달리 실제로 존슨에 게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의 여부다. 대안으로 성장하는 것에 있어 매카시의 선거운동은 열정적 지지자층을 단단하게 형성시키기 힘든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33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신화화된 매카시의 열정적 사회 운동가 이미지 와 달리 그는 사실상 스티븐슨의 계보를 잇는 지성주의 캠페인의 대표 적 인물이다(ibid., 22).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은 보통 단순화하자면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지성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열정 주의라 하겠다. 전자는 이성적 합리성과 정책을 강조하며 캠페인의 방 식도 차분한 이성주의적 설득을 강조한다. 이는 스티븐슨(1952), 매카 시(1968)에 이어 오늘날 앨 고어(2000)나 존 캐리(2004), 힐러리(2008) 등의 대선후보로 이어진다. 후자는 열정적 비전과 이미지를 강조하고 캠페인의 방식도 마치 종교적 집회처럼 열정적이다. 이는 케네디 (1968), 하워드 딘(2004), 오바마(2008) 등으로 이어진다.7) 위의 두 가지 흐름으로 보면 매카시는 전자의 지성주의적 경향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반전 후보라는 닉네임과 달리 철학적으로 네오 토미즘의 합리주의를 신봉하고 과도한 열정의 포퓰리즘적 요소나 정 치주의적 기질을 매우 혐오하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Sandbrook, 2004: 10). 그는 이러한 기질은 물론이고 정책 이슈에 서도 메디케어나 사회보장제, 민권법 등에서 중도적 성향을 보여 왔 다. 그는 험프리와 같은 전형적인 뉴딜형 자유주의자와 달리 오히려 보수주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의 기질과도 유사하다고 지적된다 (ibid., 2004: 27). 그의 이러한 이념과 기질적 성향은 그의 캠페인 스타일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한 유세에서 엄청나게 고조된 캠페인 의 열기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라앉히려고 노력하여 열성적 지지자 층의 이반을 초래하기도 했다(ibid., 2004: 190). 그는 또한 유세에 서 분배주의적 뉴딜 자유주의와 흑인 등 소수자 지향성에 대한 민주당 의 정체성을 거의 강조하지 않아 민주당 충성파들의 거부감을 조성하 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를 반전 진보 후보로 높이 평가한 기틀린 교수 조차 매카시가 흑인 게토 지역 등에서 유세를 거부한 것에 대해 강한

134 동향과 전망 87호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Giltin, 1993: 297). 이러한 매카시의 경향 과 기질은 케네디 진영이 그에 대한 불신을 품고 출마하게 하는 명분 이나 동기로 부분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그의 전술적 실책

으로 평가할 수 있다(Kennedy, 2009: 263). 기 하지만 이러한 매카시의 기질 때문에 그를 단순히 중도로, 케네디 획 를 좌파로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당시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매카시의 중도적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점은 다 양한 모순이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외교안보에서 그는 케네디 형제 가 줄곧 냉전 자유주의 입장을 취해왔음을 비판하며 자신은 철저한 반 전 후보임을 강조해왔다. 심지어 케네디의 강점인 국내 이슈에서도 비 록 그는 흑인 게토 지역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케네디 후보의 태 도보다 진보적 시각을 취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가 승리한 오레곤 예비경선에서 그는 케네디의 “흑인 게토 지역 재개발 공약이 거대한 경 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건드리지 못하면서 사실상 아파르트 헤이트(인종 격리)로 귀결될 것”이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Murphy, 1990: 412). 그의 이 지적은 흔히 케네디 후보에 대한 일부 좌파들의 낭 만적 묘사와 달리 케네디의 흑인, 빈민층에 대한 정책의 근본 한계를 예 리하게 평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과 복잡성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반적으 로 온건하고 지성주의적 기질은 중도파나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는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는 뉴햄프셔와 위스콘신 경선에서 공화당과 독립파들의 상당한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스티븐슨의 지성주의에 큰 공명을 느낀 학생층, 백인 중 산층에게 그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그의 이러한 중산층 지 식인 위주의 접근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흑인이나 노동층등을 동원 하는 것에는 큰 한계를 가진다.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35 강한 열정이 결여된 매카시의 특징은 케네디의 암살 직후에도 그대 로 나타난다. 그 시기는 이제 케네디의 죽음으로 매카시가 진보파의 유 일한 후보로서 자기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케 네디 암살 직후부터 전당대회까지 일관되게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캠페 인으로 일관했다. 주변 측근들은 그가 케네디 암살로 이미 선거는 험프 리의 승리로 끝났다는 비관주의적 태도에 물들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일부 지지자들은 매카시의 무기력에 실망하여 케네디가의 막내 인 에드워드 케네디 출마 운동을 시도하기도 했다(Boomhower, 2008: 128). 케네디의 캠페인 또한 에드워즈의 긍정적 영향처럼 당시 경선 과정 의 어젠다를 넓힌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캠페인 은 오늘날 신화와 달리 일정한 한계를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오 늘날 국민 통합적 후보로까지 인식되지만 사실은 당시 상당한 비토세 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가 법무장관 시절에서 보인 보수주의적이 고 권력지향의 행보에 환멸을 느낀 진보나 그의 열정적인 흑인과 빈곤 층 대변에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남부 중심의 보수층, 보수나 진보 를 떠나서 그의 화려한 명문 집안 출신에 대한 거부감, 당선 가능성이 보이자 매카시라는 진보 후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로소 출마하는 기회주의적 태도 등에 대한 혐오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실제 그 의 뒤늦은 출마는 진보 후보의 핵심 지지층인 학생층을 이미 매카시에 게 빼앗기는 한계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클라크의 지적처럼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래로 이토록 다양하고 광범위한 적을 가진 정치 인은 처음이라 할 수 있다(Clark, 2008: 25). 그가 오늘날 국민통합 의 후보라는 신화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국가 통합에 대 한 명연설이나 킹 목사 암살 이라는 엄청난 비극적 상황에서 그의 통 합적 연설로 당시 그가 유세하던 인디아나 주의 폭동을 예방하는 데

136 동향과 전망 87호 기여하였던 전설 등에서 기인한다(Perstein, 2008: 257). 하지만 이러한 비토세력의 존재로 인해 신화와 달리 그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 내 온건파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였고 당내 대의원들은 오히려 뉴딜 등의 이슈에서 일관 기 되게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온 험프리를 더 신뢰하고 있었다. 획 물론 케네디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시도한 첫 예비경선지로 보수적 지역인 인디애나를 선택한 모험에서 놀랍게도 77만 6천 표 중 42.3%를 획득하여 1위를 기록했다. 지역 주지사 출신인 브래니긴(30. 7) 이 2위, 이미 오래전 선거운동을 전개한 매카시(27)가 3위를 기록한 것 은 무지개연합이 가능한 후보로서의 케네디 신화가 일정한 근거가 있 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조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케네디 후보의 본 선 경쟁력에 의문을 품게 하기 충분하다. 예를 들어 그는 매카시와의 경쟁인 인디아나 주 경선에서 그가 얻은 전체 표 중 백인층은 단지 15% 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백인 교외지역에서 그는 매카시에게 대패하였 다(Perstein, 2008: 270). 심지어 케네디 후보의 측근들(William vanden Heuvel and Milton Gwirtzman)은 1970년 케네디 자서전 집필을 위해 선거구 투표 결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당시의 신화가 과 장되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당시 케네디 팀이 언론에 그의 무지개 연합을 상징하는 곳으로 예를 든 폴란드 계 선거구들은 실제로 는 겨우 2곳만 승리하였고 게리 지역의 70개 백인 선거구 중 59개 지역 에서 패배하였다. 결국 그들은 자서전에서 백인 유권자들이 더 인종 투 쟁의 양상을 경험할수록 케네디를 흑인 정치와 동일시하고 상대 후보 를 찍는다고 결론내리고 있다(Boomhower, 2008: 116). 이는 이후 유사한 무지개 연합을 추구한 2008년 오바마 후보의 경 우와 비교했을 때에도 한계가 선명해진다. 2008년 오바마 후보는 민주 당 경선에서 백인 후보인 힐러리 후보와의 백인 층을 둘러싼 경쟁에서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37 박빙의 승부를 보였다. 결국 그는 본선에서도 공화당 매케인 후보를 맞 이하여 백인 층에서 약간의 열세를 보였을 뿐 젊은 백인층에서는 오히 려 우위를 기록하였고 히스패닉과 흑인층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더해 승리할 수 있었다.8) 또한 케네디 자체의 문제를 떠나서 그가 본선 승리를 위해 표를 고 스란히 이전받아야할 매카시 지지 진영의 다원성을 또 다른 변수로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매카시 지지층의 다수가 왈러스라는 극우 후보의 지지 성향을 보일 정도로 매카시의 지지층의 다원성을 고려할 때 그의 표가 국내외 이슈에서 보다 진보적 태도를 표출한 케네디로 이 전될 가능성은 적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기틀린 교수의 지적처럼 험프리가 케네디와 같은 자유주의 좌파로서 대선 운동을 전개했다면 승리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나 컨버스 교수의 추정처럼 케네디가 매카 시 등의 표를 결집할 것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매카시 후보의 이념적 기질, 지성주의적 스타일, 지지층의 다원성은 오늘날 한국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와도 흡사하다. 안철수 후 보 또한 이념적으로 상대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비해 모호한 성격을 지 닌다. 그는 이전 이명박 정부의 위원회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한나라당 개혁파 보수인 김성식 전의원과 이명박 정부의 이태규 비서관을 단지 상징적 조치를 넘어 핵심적 인사들로 영입하였고 선거 초반까지도 정 권 교체에 대해 한동안 모호한 태도를 취한 점에서 민주당 진영으로부 터 줄 곳 정체성을 의심받아 왔다. 동시에 그는 󰡔안철수의 생각󰡕이란 자신의 비전을 종합한 저서에서 주주 중심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주 의로 변화라는 유럽적 진보주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성주의적 스타일에서도 안철수 후보는 매카시와 매우 흡사하다. 그는 정치공학과 네거티브 공격을 매우 혐오하고 가치와 원칙, 명분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며 정책주의 및 합리성을 선호한다. 이러한 기질을 가

138 동향과 전망 87호 진 그이기에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 내부적으로 전략이란 단어에 대한 금 지령까지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민주당에 대한 강한 혐오감과 단 일화 과정에서 과도한 민감성을 보인 이유도 권력주의나 정치공학, 네거

티브 공격에 능한 진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기 안철수 후보가 일약 대선 후보의 반열로 상승한 청춘 콘서트나 이 획 후 선거 캠페인 내내 보인 모습도 매카시 후보를 무척 닮아있다. 그의 연설은 열정적 선동이나 분노의 결집이 아니라 차근히 설득하는 대학 교 강의의 스타일을 연상하게 한다. 후보의 특성을 닮아 그의 지지자층 도 문재인 후보의 열정적이고 전투적 지지자층에 비해 훨씬 차분하고 조용한 결집의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의 지지 진영의 폭도 매카시처 럼 새누리당 지지세에서부터 자유주의 좌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면서도 주로 학생과 중산층 지지 기반을 가진다는 공 통점을 지닌다. 기존 정치에 대한 매카시와 안철수 후보의 혐오감은 민주당에 대한 적극적 개입주의 노선을 포기하게 하였다. 이는 민주당과 거리를 두면서 도 전면 부정하지 않고 민주당 지지자층의 마음을 얻었으며 결국 민주당 과의 경선을 승리로 이끈 박원순 시장 후보의 경우와 무척 대비된다. 매카시 후보와 달리 험프리 주류 후보에 대한 당의 충성은 위력적 인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예비경선에서는 매카시는 38. 7%를 득표하 고 30.6%가 케네디, 7.3%가 존슨이며 단지 2.2%만이 험프리에게 갔다. 이런 점에서 매카시나 당시 운동진영에서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분노하 는 것에는 타당한 배경이 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당 바깥의 민심 (예비경선)을 억누른 당심(지구당 당원대회)의 승리라고만 단순화하기 도 어렵다. 왜냐하면 당시 구조적으로 단지 15개 주에서만 예비경선이 치러질 뿐 나머지 주들은 당 대의원들에 의한 결정의 구조를 가지고 있 었다. 이를 대의원 수로 환산하면 2,600명의 대의원 중 단지 900명이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39 예비경선으로 선출되는 것이다. 사실 지금 시각이 아니라 당시 시점에 서 보면 예비경선은 1968년 험프리의 승리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중요 한 비율로 증가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당시 험프리의 승리를 당심에 의한 민심의 도둑질로 여기며 분노한 개혁파들은 1968년 17개 주에 불 과한 예비경선을 80년도에 이르면 36개주로 확대시킨다. 이에 따라 지 구당 당원대회가 아니라 예비선거에서 뽑힌 대의원의 비율이 1968년 38%에서 1980년 76%로 상승한다. 하지만 매카시는 놀랍게도 당시 주어진 구조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 지 않고 예비경선에만 에너지를 집중하였다. 물론 주변 측근들은 이러 한 구조를 잘 알고 있기에 케네디 암살 사건 직후 매카시에게 당의 지도 적 대의원들을 전면 접촉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전당대회까지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Boomhower, 2008: 128). 이는 당시 64년 공 화당의 골드워터 대선 후보가 전면적으로 당 대의원들을 장악하여 보 수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어간 전략과는 상당히 대비된다(Middendorf, 2006).9) 결국 이는 매카시의 선거 전략이라는 측면에서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는 매카시와 다소 유사한 접근법을 취했다. 그는 새로운 정치의 명분과 이에 따라 지지하는 중도 층을 고려하여 민주당의 일반 당원들의 당심과 국회의원들 전반에 대 한 보다 능동적 공세 및 단일화 이슈의 주도권을 전개하지 않았다. 그 의 전방위적 민주당 공격과 정권교체의 절실함에 대한 모호한 태도는 결국 민주당 일반 당원들의 마음을 강하게 장악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 타났다. 결국 그는 이후 민주당의 전방위적 공세 앞에서 고전해야 했고 그의 새로운 정치 어젠다가 생각만큼 지지세를 확장시키지 못하자 에 너지가 퇴조해갔다. 이러한 약화세를 인지한 문재인 후보 진영은 안철 수 후보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했고 결국 그는 자진 사퇴

140 동향과 전망 87호 라는 극단적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사퇴한 직후 저녁 SNS상에서는 “민 주당으로는 정치혁신 못한다. 차라리 박근혜를 지지하겠다.” 등의 부정 적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지기도 했다(󰡔월간 중앙󰡕, 2013년 1월호: 57).

안철수 후보 진영의 다원주의적 스펙트럼이 가진 약점이 전형적으로 기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획 결국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1968년은 기존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퇴조 징후가 노골화함,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한 닉슨주의 보수 전략의 탁월함, 이에 맞선 자유주의 후보와 대안 후보들의 극명한 한계 등이란 점에서 2012년 한국의 정치질서가 드러낸 특징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3. 이후 정치질서의 전망: 닉슨의 운명 대 ‘한국인처럼 말하기’ 의 학습

미국의 1968년 이후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과도기 선거 과정에서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 이후에도 한 동안 불안정한 행보를 보였다. 민 주당 내 자유주의 좌파들은 충격적인 선거 패배 이후에도 구체적 현실 데이터 분석 및 기존 자유주의 정치질서의 퇴조에 대한 근본적 고민 대 신에 자신들의 가치와 이해관계의 본격적 반영을 시도한다. 이는 곧 자 신들의 또 다른 대변자인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으 로 정당 개혁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 정당 개혁 운동의 근저에는 이 논 문이 비판하고 있는 주장인 즉 ‘만약 당심이 아니라 민심을 반영하는 매 카시나 케네디, 맥거번 같은 후보를 지명할 수 있었다면 승리했을 것’이 라는 안이한 가정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 정당개혁에 따라 맥거번은 1968년과 달리 1972년 험프리와 왈러스를 누르고 당 후보로 지명된다.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41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72년 민주당은 당 개혁 이후 야심차게 자유 주의 좌파 후보인 맥거번을 내세워 재선을 노리는 닉슨과 대결하였지 만 겨우 사우스다코타의 선거인단만 확보하는 등 역사상 대참패로 귀 결되었다. 이후 민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 스타일의 닉슨의 워터 게이 트 스캔들로 인한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80년, 84년, 88년 연속으 로 공화당에 패배하면서 보수주의 시대 야당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민주주의 리더십 회의(DLC) 그룹 등의 자유주의 내 중도주의 정치진영은 다시 좌파 그룹의 영향력을 제어하기위한 정당개혁운동을 전개하고 남부 보수적 민주당원, 신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원, 공화당 으로 이탈하지 않은 신보수주의자들의 대연합을 이루어내며 중도성향 의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옹립하여 1992년 민주당을 다시 수권정당 으로 정립하는 데 성공한다(Baer, 2000: 34). 과연 민주주의 리더십 회의의 우경화된 노선이 올바른 정치질서 재편의 방향인가에 대해서 는 아직까지도 논쟁이 존재한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이 열어간 민주 당 정치질서 시대는 단지 민주주의 리더십 회의의 우경적 노선만이 아 니라 스탠리 그린버그 전략가 등이 주도한 보다 진보적 민생주의 노선 과 절충과 융합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소한 이 들은 다시 구체적 현실 데이터에 근거한 실사구시의 정신을 회복하려 고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즉 자신들의 이념적 어젠다 대신에 구체적 현실 이해 및 국민 일반들과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자각했다는 점이 다. 그래서 클린턴 진영은 그들의 노선을 ‘미국인처럼 말하기(speak American)’라 부르기도 했다(Byongjin Ahn, 2002). 이를 위해 클 린턴은 80년대부터 줄 곳 비즈니스 영역과 공화당의 최신 여론 조사 기법들을 선거만이 아니라 국정운영에서도 적극 수용하여 유권자의 복합성 이해에서 공화당을 따라잡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 날 최첨단 여론조사 영역인 빅데이터 분석과 이의 체계적 정치 활용 등

142 동향과 전망 87호 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을 뛰어넘는 탁월성을 보이면서 재선 전망이 불 투명한 오바마 진영을 2012년 승리로 이끈 1등 공신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미국의 자유주의 좌파들에 있어서 클린턴 시대와 달리 진정으로 매 기 카시나 케네디의 부활로 받아들여진 것은 2008년 오바마 후보였다. 당 획 시 그들은 웨스트 윙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진짜배기 정치인’이 드디 어 나타났다고 환호성을 질렀다(Plouffe, 2009). 비록 당시 오바마 후보 가 클린턴류의 중도주의자인가 아니면 케네디류의 자유주의 좌파인가 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크지만 최소한 자유주의 좌파 진영은 예비 경선 비중의 적음과 정당 외곽의 사회운동의 효과가 한계를 가진 68년 과 달리 예비경선의 확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과 과학적 선거전 략을 통해 민주당 경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결국 68년 진보 후보의 가 능성에 대한 낭만적 신화와 달리 케네디류의 후보가 승리하기 위해서 는 그에 조응하는 시대의 결과 그에 조응하는 주체의 오랜 준비와 전략 이 필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닉슨은 1968년 탁월한 선거전략으로 집권 이후에 국정운영에서도 자신이 뉴딜 정치질서의 자장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다. 콰다그노가 심지어 민주당 존슨과 비교하여 공화당 닉슨을 진정한 거 대정부론자라고 평가하듯이 그는 푸드 스탬프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사 회보장지급액을 대폭 증액하며 보장임금제를 추진하였다. 그는 심지 어 비록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장되었지만 오늘날 보수주의가 저주하 는 전 국민의료보험까지 도입하려고 시도하였다(Quadagno, 1994). 그 의 놀라운 진보적 문제의식에 당시 강경보수주의자들은 그를 위장된 보수라고까지 반발하기도 했고 얼마 전 서거한 고 에드워드 케네디 진 보 상원의원은 그 당시 협조하여 입법화하지 못한 잘못을 솔직히 반성 하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43 닉슨은 외교안보 노선에 있어서도 베리 골드워터 류의 교조적 보수 주의자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가 현실주의자인 키신저 국무 장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소비에트에 대한 효과적 견제 조치로 중국 과의 대담한 수료를 마련하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중국은 붉은 자본주의 국가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중국은 소비에트보 다 더 저주받은 ‘빨갱이’의 나라였다. 이후 키신저는 소위 ‘불량국가’인 쿠바를 상대로도 유연한 노선을 시도하였다. 결국 닉슨은 국내외적으 로 미국 보수주의가 새로이 헤게모니를 가지는 토대를 마련한 정부라 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닉슨은 편집증적인 권력의지와 제왕적 대통령 제 스타일의 리더십과 이를 견제하지 못한 측근들로 인해 온갖 정치 술 수를 전개했고 결국 이는 그의 낙마를 초래하고 말았다. 한국의 경우에 2012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주의가 과연 선거 기간에 보여준 닉슨주의를 집권 기간에도 연장시킬 지는 아직은 유동 적이다. 그녀가 닉슨과 같이 민주당의 국내외 어젠다를 포섭하여 기대 치보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이루지만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으 로 실패할지 아니면 닉슨과 다른 경로로 나아갈지 한국 정치 지형의 선 택은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이 놓인 정치질서에 대해 어 떠한 시대적 감각을 가지고 국정에 임하는가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달리 한국의 대통령의 국가안보 노선은 주변 4강 및 북한의 전략적 선 택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야당들의 미래에는 무척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왜냐하면 기존 민주주의 정치 질서의 퇴조가 분명함에도 아직 그 주요 행위자들 은 여전히 왜곡된 현실 감각을 가진 채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에 이를 대체하고자 한 한국판 새로운 자유주의 세력인 안철수 후보 진영 은 선거 기간 매우 미숙한 정치 능력과 선언주의적 정치관을 보여주었 기 때문이다. 민주당 진영 및 이를 대체하고자 한 안철수 진영은 공히

144 동향과 전망 87호 68년 미국 자유주의 진영의 패배 후 프래그머티즘으로의 치열한 고투 나 혹은 2004년 이후 21세기 온/오프 시민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혁신 노력을 아직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이들이 평면적인 차원에서 좌우

선회나 혹은 정당이냐 시민 정치이냐의 논쟁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 유 기 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의 핵심은 좌우가 아니라 프래그머 획 티즘의 복원이다. 이들이 추상적 좌우 논쟁에 머물러 있는 동안 푸르른 현실은 부단히 변화할 것이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핵심은 정당 대 시 민정치가 아니라 이 둘을 융합한 ‘고에너지 민주주의(high-energy democracy)’다. 웅거는 시민의 열정이 제도와 구조를 해동시키고 영구 적으로 혁신하는 ‘고활력의 정치’를 제안한 바 있다(로베르토 웅거, 2012). 미국 자유주의자들은 비록 1968년에는 실패했지만 2008년 선거 과정에서는 프래그머티즘의 가치와 함께 정치 온도를 높이는데 성공했 다. 현재 한국의 자유주의 진영을 주도하는 이들은 프래그머티즘과 고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영구적 혁신 정치의 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 들의 20세기 교과서나 계파 이익에 근거하여 이분법적 사고에 머무르 고 있다. 과연 이들이 비싼 수업료를 치룬 선거과정에서 어떤 교훈을 배우는 가와 자신들이 놓인 정치질서의 성격과 미래에 대해 얼마나 지혜로운 감각과 능력을 배워나가는가에 따라 한국 정치의 역동적 미래가 좌우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제는 야당들의 정치관 전반 에서 21세기 현실에 대한 프래그머티즘과 영구적 혁신 자세의 철저한 복원이다. 그 첫 출발은 그간 선거과정에 대한 전례 없는 심층적 탐구 일 것이다. 이를 통해 이들은 과거 클린턴 진영이 말했던 것에 비유하 자면 ‘한국인처럼 말하기(speak Korean)’를 배워야 한다.

2012. 12. 25 접수/ 2013. 01. 04 심사/ 2013. 01. 10 채택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45 주석

1) 이러한 현실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박근혜 현상󰡕(2012)이란 공저(이철희 외)에서 새로운 진정성의 정치학이란 견지에서 이해를 시도한 바 있다. 2012년 초 한 토론회에서 전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는 박근혜 현상의 견 고함을 지적하며 위기를 경고한 본인에 대해 극단적 언사를 퍼붇기도 했다.

2) 필자는 이를 활용하여 오바마 정치질서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안병진, 2009). 이 개념의 특징과 이와 관련된 쟁점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정교한 논의는 다음 의 책 참조할 것. David Plotke(1996). Building A Democratic Political Order: Reshaping American Liberalism in the 1930s and 1940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 한국에서는 실용주의라는 어휘자체가 타락해 사용되어 오용되었다는 점에서 이 글은 프래그머티즘이란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

4) 그는 비록 궁극적으로 거절하였지만 이 최근 회고록(2011)에서 당시 험프리 후 보의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5) 이러한 힐러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 기초해 오바마 후보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글로는 Kuttner, Robert, Obama’s Chanllenge: America’s Economic Crisis and the Power of a Transformative Presidency, Vermont: Chelsia Green Publishing(2008)을 참조할 것.

6) 이에 대해서는 Kuttner, Robert(2008)를 참조할 것.

7) 물론 필자의 이러한 구분은 이념형에 불과하며 후보자들의 스타일을 극단적으 로 단순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이 두 가지 흐름 어느 하나로 구분하기 어려운 사례들도 존재한다.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정책 토의와 감성 소구에 공히 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Harris, John(2005). The Survival. New York: Random House.를 참조할 것.

8) 이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Todd, Chuck & Sheldon Gawiser(2009). How Barack Obama Won: A State-By-State Guide To The Historic 2008 Presidential Election. New York: Vintage Books.를 참조할 것.

9) 미덴도르프의 이 책은 골드워터의 이러한 전략에도 불구하고 비록 64년 민주당

146 동향과 전망 87호 존슨에게 참패로 귀결되었지만 골드워터 운동은 이후 68년 닉슨 캠페인의 성공 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보수주의 시대의 초석을 놓은 의의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기 획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47 참고문헌

김대호(2012). 󰡔18 대 대선의 교훈과 향후 전망(2): 성찰과 모색의 콘서트를 위한 주 제곡󰡕. 사회디자인 연구소. 김윤재(2005). 󰡔조셉 나폴리탄과의 인터뷰󰡕. 뉴욕. 로버트 웅거(2012). 󰡔주체의 각성󰡕. 앨피. 박미숙·최재필(2012).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패인 분석. 󰡔월간 중앙󰡕, 1월호. 안병진(2004). 󰡔노무현과 클린턴의 탄핵 정치학: 미국적 정치의 시대와 민주주의의 미래󰡕. 푸른길. 안철수(2012). 󰡔안철수의 생각󰡕. 김영사. 이철희 외 공저(2010). 󰡔박근혜 현상󰡕. 위즈덤 하우스. 이철희(2012). 민주당 아직도 질서 있는 수습 타령인가?. 󰡔프레시안󰡕, 2012. 12. 24. 유승찬(2012). 필자와의 수차례 인터뷰. 최우석(2012). 박근혜 캠프 50일간의 전투 상황 일지, 󰡔월간 조선󰡕1 월호.

Byong jin Ahn(2002). The Strategic Employment of ‘Values Appeals’ In Reagan and Clinton’s Presidencies: A Focus on 1984 and 1996. American Studies Institute: Seoul National University. Boomhower, Ray(2008). Robert F. Kennedy and the 1968 Indiana Primar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Clarke, Thurston(2008). The Last Campaign: Robert F. Kennedy And 82 Days That Inspired America.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Converse, Philip et all(1969). Continuity and Chance in American Politics: Parties and Issues in the 1968 Election.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63. Dobbs, Michael(2008). One Minute to Midnight. New York: Alfred A. Knopf. Gitlin, Todd(1993). The Sixties: Years of , Days of . New York: Bantam Books. Gest, Ted(2001). Crime & Politic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Gould, Lewis L.(1993). 1968: The Election That Changed America. Chicago:

148 동향과 전망 87호 Ivan R. Dee. Harris, John(2005). The Survival. New York: Random House. Kennedy, Edward(2009). True Compass. New York: Twelve. Kuttner, Robert(2008). Obama’s Chanllenge: America’s Economic Crisis and the Power of a Transformative Presidency. Vermont: Chelsia Green 기 Publishing 획 Middendorf, J. William(2006). A Glorious Disaster: Barry Goldwater’s Presidential Campaign and the Origins of the Conservative Movement. New York: Perseus Books. Miller, James(1995). Democracy is in the Street. Boston: Harvard University Press. Plotke, David(2002). Democracy and Boundaries. Uppsala: Uppsala Universitet. Plouffe, David(2009). The Audacity to Win. New York: Viking. Sandbrook, Dominic(2004). Eugene McCarthy. New York: Alfred A. Knopf. Sorenson, Ted(2008). Counselor. New York: Harper. Sorkin, Aaron(2002). The West Wing. New York: Pocket Book. The Institute of Politics(2009). Campaign for President: The Managers Look at 2008. New York: Lowman & Littlefield Publishing. Thomson, Nicholars(2009). The Hawk and the Dove: Paul Nitze, George Kennan, and the history of the cold war.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Todd, Chuck & Sheldon Gawiser(2009). How Barack Obama Won: A State-By-State Guide To The Historic 2008 Presidential Election. New York: Vintage Books. Wilentz, Sean(2008). The Age of Reagan. New York: Harper.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49 초록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정치질서론의 시각

안병진

이 글은 정치질서론의 이론적 접근법을 활용하여 미국 1968년 선거를 들여다보 면서 한국 2012년 대선에 주는 시사점을 분석한다. 두 선거의 핵심 공통점으로 이 논문은 이행기에 들어선 민주주의 운동 정치질서의 퇴조, 이에 대한 닉슨주의 보수의 탁월한 순응과 상대에 대한 적절한 균열 전략, 그리고 민생주의 이미지 구축의 승리라는 함의를 도출한다. 반면에 민주당 주류 후보 및 대안적 후보들이 가진 제약과 인물의 한계들의 시사점을 추출한다. 이 글은 결론 부분에서 닉슨주 의 정치질서와 야권의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전망한다.

주제어 ∙ 1968 대선, 2012 대선, ‘닉슨주의’

150 동향과 전망 87호 Abstract

The Declining Political Order of Democratic Movement and The Success 기 of ‘Nixonism’ 획

Byong jin Ahn

Employing political order approach, this article seeks to examine American presidential election of 1968 and draws its implications for Korean presidential election in 2012. By looking into the main charac- teristics of 1968 election campaign, this paper concludes that both elec- tions share common elements of demonstrating declining political or- der of democratic movement and the critical flaws of liberal candidates while Nixon conservatism manages to co-opt liberal strength. This pa- per also makes efforts to predict the fate of new conservative political order and possibility of new Democratic political order in Korea.

Key words ∙ 1968 presidential election, 2012 presidential election, ‘Nixonism’

민주화 운동 체제의 퇴조와 닉슨주의 보수의 성공에 대한 시론 151 기획 [18대 대선 분석]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8대 대선을 중심으로

1)

허상수*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1. 문제 제기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보수의 높은 벽을 진보의 담쟁이는 넘어가지 못 하였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 4,050만 7,842명 가운데 3,072만 1,459명이 투표했다. 이번 투표율은 75.8%였 다. 10년 전이었던 2002년 제16대 70.8%, 2007년 17대 대선 투표율 63%를 훌쩍 뛰어넘었다. 개표 결과 새누리당 후보가 유효투표 51.55%, 15,773,228표를 얻어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61세, 이하 박근혜로 약칭한다)의 과반수 당 선은 보수진영이 주도한 지역주의 선거 운동 결과의 일정한 반영이다. 박근혜는 그녀의 고향인 대구 지역에서만 80%를, 경쟁자였던 민주통 합당 문재인 후보(60세, 이하 문재인으로 약칭한다)는 광주에서 92%의 표심을 얻어냈다. 이번 대통령선거역시 <표 1> 지역별 득표율에 나타

* [email protected]

152 동향과 전망 87호 <그림 1> 지역별 득표율: 2012년 대 2002년 권역별 득표율 비교(’12년의 경우 개표율 99.99%)

기 획

난 것과 같이 지역주의 투표가 당락을 결정하는 일정한 요인으로서 여 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박근혜는 독재자 박정 희 대통령의 고향 경북에서만 1,058,505표를 더 득표함으로써 문재인 과의 전체 득표 차이 1,080,496표와 거의 같은 몰표를 한 지역에서 독점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53 <표 1> 지역별 득표율: 2012년 대 2002년 권역별 득표율 비교(’12년의 경우 개표율 99.99%)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문재인 2012년 이회창+ 노무현+ 득표율(2012 투표인 수 이한동 권영길 박근혜 문재인 년-2002년)

19,999,290 7,405,937 7,463,787 5,157,168 6,285,707 수도권 49.6% 50.0% 45.5% 54.8% -4.8%

대구 4,176,733 2,642,792 625,655 2.63,641 656,799 경북 80.5% 19.1% 75.7% 24.1% -5.0%

부산 울산 6,406,635 2,997,127 1,882,742 2,671,552 1,400,092 경남 61.2% 38.4% 65.5% 34.3% + 4.1%

4,131,195 336,154 2,842,139 151,415 2,786,103 광주 전라 10.5% 89.0% 5.1% 94.4% -5.4%

4,106,611 1,661,318 1,375,451 963,249 1,330,238 대전 충청 54.4% 45.1% 41.8% 57.7% -12.6%

1,235,647 562,876 340,870 403,811 355,444 강원 62.0% 37.5% 52.9% 46.6% -9.1%

451,731 166,184 161,235 106,488 157,042 제주 50.5% 49.0% 40.2% 59.3% -10.4%

30,721,459 15,773,228 14,692,632 전국 (75.8%) 51.55% 48.02%

김대호 2013 18대 대선의 교훈과 향후 전망(2) http://www.socialdesign.kr/news/articleView.html?idxno=6716

하였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지역감정은 여전히 한국정치에서 불가 침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세대투표에서는 20∼30대의 정치적 의지 표출이 무산되는 좌절과 함께 50∼60세대에서 드러난 ‘역선택의 정치’ 현상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동안 소셜 미디어 등 공론장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층과 비교해 볼 때 배제, 소외, 침체된 성향을 보여 왔다고 치부되던 ‘숨은 보

154 동향과 전망 87호 <그림 2> 세대별 유권자 구성 비교

기 획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55 <그림 3> 연령별 득표율

수 성향 표’가 밖으로 고개를 내민 셈이었다(<그림 3> 연령별 투표율). 이리하여 한국정치에서도 세대 간 정치 갈등이 표출되었다. 18대 대선 때까지만 해도 30∼40대는 각각 20.1%, 21.8%였으나 5년 뒤에 맞을 19 대 대선에서는 40대 20.2%, 50대 20.1%, 60대 이상 25.0%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찾아볼 수 있다(<그림 3> 참조). 이런 고연령층의 유권자 분 포는 장래에 투표율의 향배와 함께 다음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주요 지 표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현재의 노장년 세대들은 전쟁과 독재, 급속 한 공업화와 도시화를 체험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민주화와 시민 사회의 공론장을 주름잡았던 세대라는 점에서도 미래 정치의 향배를

논의할 때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표 2> 세대별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20대에서는 문재인이 32.1% 로 앞서고 있으나 60대 이상에서는 44.8%로 박근혜가 앞선 것으로 집

156 동향과 전망 87호 <표 2> 세대별 득표율 비교

기 획

계되었다. 결국 이번 대선은 50∼60대의 높은 투표율과 보수후보로의 높은 지지율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었다. 젊은 생산 노동층의 미래를 연 로한 비생산 연령층이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림 4> 학력별 지지율을 보면 부자정당에 대한 지지가 저 학력 출신일수록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대재 이상 고학력층은 문 재인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에 고졸 및 중졸이하 학력층은 박근 혜 지지가 높았다. 그리고 <그림 5> 소득별 지지율을 살펴보면 월 200만 원이하 소득

<그림 4> 학력별 지지율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57 <그림 5> 소득별 지지율

계층에서 부자정당 후보에게 과반수이상인 56.1%의 지지율을 나타내 어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는 정당의 경쟁후보 지지율보다 2배나 많 은 격차를 보였다. 다시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고소득자는 문재인을, 저 소득자는 박근혜를 선호한 셈이다. 문재인은 전체 유효투표의 48.02%에 달하는 유권자 1,469만 2,632 명의 지지를 받았다. 문재인은 서울 강남구 부자들의 대표적 거주공간 인 타워팰리스에서도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 다. 이른바 강남좌파의 존재를 확인한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출신지역 이기도 하지만 한동안 보수정당의 표밭이었던 부산에서도 40% 득표하 는 선전을 하였다. 더욱이 문재인은 해외 교민 투표와 부재자 투표에서 도 경쟁 후보를 앞섰다. 부재자 투표 개표 결과는 박근혜 46.2% (462,410 표), 문재인 51.4%(513,662표)였고, 재외국민 개표 결과는 박근혜 42.6%(67,319표), 문재인 56.4%(89,192표)였다. 문재인은 개표 직후 ‘1천 469만여 표라는 그동안 우리가 받아 왔던 지지보다 훨씬 많은 지지도를 얻었다.’고 언급하면서 지지자와 당원들 에게 그간의 노고와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선거전 민주통합당 지지도

158 동향과 전망 87호 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문재인은 낙선한 것일 까? 과연 이번 선거는 민주통합당의 석패인가 완패인가? 그리고 왜 978 만 4,411명의 유권자들은 자신의 투표할 ‘권리’를 포기한 것일까? 도대

체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마음의 체제’위에서 투표행동을 한 기 것일까? 획 이 글은 18대 대통령선거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이런 대선 결과를 놓고 볼 때 한편으로 진보개혁진영의 선거실패는 시민정치와 노동정치 의 위기와 몰락, 실패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집 권여당의 승리 요인은 보수진영이 전개한 ‘감정의 정치’에 의한 것이다. 이 글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그 유권자 마음의 정치사회 과정을 살펴 보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지역주의 정치가 계급정치를 압도하고, 국민정치가 대 중정치의 진출을 견제하는 양상이다. 지역연고주의 투표는 지역감정 의 반영이며 지역패권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계급의식이나 계층 감정 을 초월하는 허구적, 이중적 지역감정의 정치적 표출을 누가 선점하느 냐가 지난 선거 결과를 규정하는 주요 변수였다. 이런 기계적 구별이나 대비에 반대하는 논자들은 한국적 특수상황, 예를 들면 민족분단 현실 에서 적합한 규정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다.1) 그래서 정치현실, 선거 과정, 투표행동, 선거 결과 평가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이 글은 분석을 위한 개념틀로 2절에서 ‘마음의 체제’와 ‘진정성의 정치’를 논하고, 3절에서 시민정치와 노동정치 과정을 살핀 다음 4절에 서 보수여당의 ‘감정 정치’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59 2. ‘마음의 체제’와 진정성의 정치

한국은 오랜 식민지경험과 전쟁, 학살과 독재를 거쳐 왔으면서도 도시 화와 돌진적 공업화를 추진하여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반열에 진입 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은 민주화를 이룩하는 정치적 진전을 거두기도 하였다. 이런 정치경제사회과정은 한국인들의 정치적 심성 에 상처(trauma)와 낙인(stigma)을 남기기도 하고, 위기 상황 타개과정 에서 놀라울 만치 뛰어난 역동성과 열정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지역차별과 계급모순, 환경위기와 같은 사회모순과 문제, 그리고 쟁점에 대한 대립과 갈등, 반목으로 말미암아 전국 방방 곡곡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지뢰밭과 같은 ‘위험사회’이기도 하다. 그 래서 이런 모순이나 갈등 발생을 예방, 관리, 해결할 ‘통합의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지점에 와 있다. 문제는 이 갈등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제나 장치가 미흡하거나 부족하여 타협과 통합의 정치, 공존 과 상생의 정치가 지체, 동요, 좌절되고 있다는 데 있다(문용갑, 2011; 박태순, 2010; 서순복, 2005; 정주진, 2010).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이런 역사문화적 배경 위에서 진행되어 보수 후보의 당선과 진보후보의 낙선으로 결말을 짓게 되었다. 이번 선거과 정은 지역균열, 세대와 가치균열 양상을 보이면서 진보-보수진영 투 표의 경향을 나타내었다. 이 대선 결과는 한편에서는 정권연장과 재창 출이라는 승리의 환희를 맛보게 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적, 집단 적, 사회적 상처와 열패감을 낳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 중 일부는 이미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무 력감’, ‘좌절’, ‘원망’ 같은 감정을 표현하면서 선거 패배를 감내하고 있 다. 심지어 자살이나 이민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 다.

160 동향과 전망 87호 위와 같은 선거 결과는 이제 다른 설명체계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 면 부자들은 부자정당을 찍고, 서민들은 서민정당을 선호한다는 통설 로는 이해되지 않는 선거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낳게 된 유권자들이 지니는 감정의 정치현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기 ‘감정의 정치(politics of )’는 유권자 감정과 지지자 감정으 획 로 나눠 볼 수 있다. 유권자 감정은 경쟁하는 정당과 후보, 선거과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 안정감과 불안감으로, 지지자 감정은 적극적 신뢰와 비판적 지지 등으로 나눠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유권자나 지지자의 감정 정치는 마음의 체제위에서 정형화된 합리적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상식적 접근이나 이해를 넘어서는 비합리적 행태를 해명할 수 있다고 보 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종종 비합리적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유 권자는 자신이 존립하고 있는 경제적 또는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 동하지 않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나아가 어떤 유권자는 사실과 믿음 (frame)이 서로 경합하거나 배치되는 상황 앞에서도 특정 사실 또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믿음을 고수한다는 점이다(Lakoff, 2006 /2007: 227∼228; Ickes, 2003/2008: 70∼72). 이런 인지과학적 연 구결과는 한국정치를 이해하는 데 일정한 설득력을 지닌다. 보통 ‘감정의 정치’는 이성정치와 대비된다. 정치현상이나 선거에 관한 사회과학적 이해와 설명은 이성적 정치현상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즉 개인이나 집단은 정치 현실에서 언제나 합리적으로 사고 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부당전제하는 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 서 투표를 한 유권자에 대한 조사는 많지만 기권자나 투표불참자, 무당 파, 부동층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비합리적 정치행동이나 정치적 무관심 또는 참여 거 부 등을 포함한 정치 현상에 대해 기존의 정치사회학적 접근이 아닌 다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61 른 설명 틀을 통해 해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보수우 익성향의 일부 유권자들이 고수하고 있는 틀(frame)에는 나름대로 무 의식적인 내적 논리가 작동한다고 지적되고 있다(Lakoff, 2006). 나아 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취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상식(folk theory), 또는 국민정서를 통해 그 개념체계를 추론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현실을 해명하기 위해 ‘마음의 체제(regime)’ 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김홍중, 2009). 예를 들어 실험사회심리학에서는 ‘공감()’을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본질적 속성이라고 간주한다. 독일 철학자 립스(Theodor Lips) 는 1903년에 심미적 체험을 설명하는 중심개념으로 ‘공감(einfullung)’ 이라는 용어를 도입했고, 셸러(Max Scheler)는 공감을 ‘자신과 타인 모 두의 주관적 경험이 관여하는 독특한 심리상태’라고 보았다. 사회학자 베커(Howard Becker)는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공감적 심리상태를 다 음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Ickes, 2008: 70∼72): 정서적 일치(compathy), 정서적 공감(empathy), 정서적 모방(mimpathy), 정서적 참여(), 정서적 전염(transpathy), 정서적 동일시(unipathy). 개인의 이런 심리상태들은 여러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 들 사이에 겹쳐지고, 비어 있는, 그리고 나누어진 틈이나 영역이 존재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개념사를 놓고 볼 때 인간들 사이의 사회 심리 적 양상은 매우 복잡하고, 중복되며, 다양한 의미가 혼재될 뿐만 아니 라 모호한 특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개인들의 이런 심리상태를 집단적, 사회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마음의 체제’라고 불리는 집합심리의 체계는 대표적으로 에토스 (ethos)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김홍중, 2009: 22∼23). 예를 들어 푸코 (Foucault)의 에토스는 ‘같은 시대의 현실에 관련되어 있는 어떤 존재 양식… 사유하고 느끼는 양식’이며 ‘행동방식이자 행위양식’이다. 한 마

162 동향과 전망 87호 디로 에토스는 집합체가 공유하고 있는 습속(習俗)을 의미한다. 그것은 토크빌(Tocqueville)의 ‘풍속(folklore)’, 베버(M. Weber)의 청교도 ‘윤 리(ethik)’ 또는 자본주의 ‘정신(geist)’, 뒤르켐(Durkheim)의 ‘집합표상

(representation collective)’으로 표현하는 지시 대상과 의미가 엇비슷 기 하다. 이 개념은 원래 인류학에서 발명되었으나 프랑스 아날 학파에 의 획 해 창조된 ‘심성(mentalite)’, 미국 개인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벨라 등 (Bellah, et al.)에 의해 창안된 ‘마음의 습관(habit of the heart)’, 윌리엄 스(R. Williams)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s)’나 세계감( mundi) 개념 같은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2) 이런 개념들은 다른 이론적 맥락과 정치적 입장,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행위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이고 집합적인 마 음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이때 ‘마음’은 사회적 행위자들의 습관화된 행동 패턴이나 사회적 행위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 구조화된 시스템, 즉 ‘체제(regime)’라는 특징이 있다(김홍중, 2009). 이런 ‘마음의 체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진정성(authenticity)’을 이해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 기 때문이다. 다른 개념들은 한 시대의 ‘진정성’을 이해하는데 부적합하 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에토스’와 ‘습속’은 지나치게 일상화되어 있 고, ‘윤리’나 ‘정신’은 관념론에 뿌리를 두고 있고, ‘집합표상’은 근대적 인식론의 함의가 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마음’은 인지, 도덕, 미학적 판단의 총체를 포괄적으로 가리킨다는 점에서 ‘진정성’의 실체를 포착하기에 효과적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진정성’ 체제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 도 구로서 ‘마음의 체제’는 “푸코의 용어를 빌리자면 주체를 형성하는 담론 적 또는 담론이 아닌 요소들의 ‘네트워크’이자, 권력의 특수한 요구에 의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특정 시대에 특정 방식의 인식과 실천 주체 들을 걸러내고, 빚어내고, 결절시키는 구조를 가리키는 일종의 ‘장치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63 (depositif)’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 사회란 이런 ‘마음의 체제’위에 구성된 제도화다.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은 여기서 말하는 ‘마음’에 가깝다. 그는 개인을 통제하는 행위양식, 사고양식, 감정의 양 식을 들고, 특히 감정의 차원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사실의 실례로 ‘군 중의 열정적 운동, 분노, 연민’을 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시기와 국면에서 집단의 정치감정 상태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이 ‘진정성의 체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 면서 ‘후기 진정성의 체제’로 넘어갔다(김홍중, 2009). 그 체제는 도덕 적 진정성과 윤리적 진정성이 분리, 와해되어 불안정한 체제 해체를 거 쳐 나타난 ‘진정성의 상업적 보편화, 진정하지 않은 삶의 반성되지 않은 질주’다. 말하자면 성공과 부의 축적을 아무런 반성이 없이 추구하고, ‘부자가 되라’고 덕담하며 재산모우기 기법과 부동산 투기, 자기계발이 나 개인행복에만 몰두하는 신자유주의적 ‘속물주의(snobbism)’와 ‘동 물성’이다. 다시 말해 ‘속물주의’의 징후는 진정성의 물적 토대가 가능 하지 않은 시대에 진정성을 규범적으로 강조하는 데서 나타난다.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생존하

려는 자폐, 탈정치화, 사사화(私事化), 자기도취의 모습이기도 하다. 바 야흐로 공감 부재의 시대는 사이비 진정성이 발호할 수 있는 조건이 성 숙한다.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유권자들의 ‘심성’은 매우 복잡하다.3) 한국 국민들은 한편으로 정치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권력의 힘과 방향에 의존하고, 다른 한편으로 현실정치에 대해 냉소적이고 냉담하며 심지 어 매우 비판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대부분의 제도정당 들은 겉으로는 많은 유권자의 선거참여나 투표 독려를 아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사회에서는 무관심이나 냉소주의, 정치 허무주의가 정치 불신이나 투표 거부로 나타나 선거 결과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심을 있

164 동향과 전망 87호 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동층이나 투 표 기권자가 많아질수록 그 정치사회의 민주주의는 그만큼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치사회에서는 정

당과 후보, 정책과 수사(rhetoric)의 진정성 유무가 유권자의 선택에 의 기 한 정치현실 변화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쟁점으 획 로 부각하게 된다. 진정성은 ‘자아정치’이자 ‘현실정치’다(김홍중, 2009: 130). 진정성 은 개별 주체의 행위(action)이고, 동시에 진정성을 추구하는 주체들 간 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다. 여기서 주체는 비판적, 내면적, 성찰적 주체이며 상상적 연대의 주체이기도 하다. 진정성은 사회적 연대의 공 적 체험 능력을 갖는 인간형성에 주목하며, 공감력(상상력)을 매개로 한 공동체의 구성능력에 달려 있다. 진정성은 전근대적 도덕적 가치인 신실성(sincerity)과 다르다. 신실성은 자신에게 거짓되지 않은 동시에 타인에게도 진실하게 되기를 원하는 태도다. 이에 비해 진정성은 자신 의 참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로막는 사회적 힘(전통, 규 범, 타인)과의 대립이나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진취적 태도다. 진정성 은 대자적 신실성이라면 신실성은 즉자적 진정성이다. 한국 정치에서 ‘진정성’은 노무현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그 는 ‘지역주의’야말로 한국정치를 퇴보, 지체, 답보하게 만드는 주원인이 라고 판단하고, 이를 해체, 타파하려는 실천을 위해 네 번이나 선거에 출 마하여 낙선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래서 노무현은 대통령 출마를 시도하 는 과정에서 ‘진정성의 정치’야말로 낡은 정치와 거리를 두며, 새 정치를 전개하는 문제틀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는 현역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당내 기반도 없었으며, 시쳇말로 이력(spec.)이 찬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21세기로 넘어가는 역사적 시간대에 ‘변화’와 ‘참여’라는 시 대정신을 구현할 ‘진정성의 정치’로 승부를 걸고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65 <그림 6> ‘진정성의 정치 체제’의 운영 도식

주체

윤리적 성찰 도덕적 압력

내면 공적 지평

참여

을 이끈 ‘진정성의 정치’는 국민참여경선, 붉은악마들이 출몰한 월드컵과 국민축제 분위기,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과 같은 팬덤(fandom) 정치 현상,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피살과 촛불항의시위, 지식정보사회로 의 이행시기와 같은 시대 상황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노무현의 감정정치는 이 ‘진정성의 정치’를 전개, 확산, 실천하는 과 정을 통해 관철되었고, 지지자 규합과 세력 확산과정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가 ‘진정성의 정치’를 전개한 다른 이유는 그 자신 소수자연 합을 통해 다수자연합의 주류 정치를 돌파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 다. 특히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었던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시 대의 청산을 위해선 지역주의 탈피를 추구했던 그가 통합의 정치를 구 현할 새로운 헤게모니 구성요소인 ‘심성’ 변화를 자극했던 게 주효했던 것이다. 이런 ‘진정성의 정치 체제’ 운영방식을 이념형적으로 도식화하 면 <그림 6>과 같다(김홍중, 2009: 31). <그림 6> ‘진정성의 정치 체제’ 운영도식을 보자면 주체는 현실 정 치인, 국민, 유권자, 지지자와 반대자들이다. 이들은 공적 지평으로부

166 동향과 전망 87호 터 암묵적, 직접적인 여러 가지 도덕적 압력을 받게 된다. 주체는 당위 적인 주장에 거부감이나 수용적 태도, 공감이나 거부 감정을 취할 수 있 다. 그래서 유권자는 윤리적 성찰을 하게 되며 ‘마음’, ‘심성’, ‘정서’, ‘감

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리고 주체는 내면 변화를 거쳐 여러 가지 방 기 식으로 공적 지평에 참여(engagement)한다. 참여방식은 적극적 참여 획 에서 불참까지 다양하다. 투표불참과 기권조차 유권자들의 선택방식, 참여의 변종이다. 이들은 공적 지평에서 사회생활을 하기도 하고, 정당 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탈퇴할 수 있으며, 이들이 제공 하는 지식과 정보 수용뿐만 아니라 유세장 참석 또는 아예 정치인 무시 나 반대,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은 유권자와 정당 간에 일방적 관계 양상에만 주목하고, 주체의 성찰과정, 내면의 변화과정을 무시, 경시하거나, 알 지 못하며, 일방적 참여만을 요구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특히 현대정 당은 미헬스(Robert Michels)의 지적대로 관료제라는 철의 법칙에 따 라 유권자에 대해 일방적 태도를 취한다. 기성정치는 기득권이라는 관 성(inertia)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속성을 감추지 않는다. 진정성의 정치를 선거정치에 대입한 연구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정성의 정치연구는 근본적 개인주의와 현대사회의 출현(Berman, 2009), 원주민의 진정성 연구(Lattqas, 1993), 흑인성 연구 (patrick, et al., 2003), 미국 자유주의와 뉴 레프트의 진정성(Rossinow, 1998), 시민의 개인주의(Seidman & Meeks, 2001) 등이 있다. 국내에는 진정성의 철학연구 작업이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Taylor, 1991). 테일러는 진정성을 정서와 느낌이라고 말한다. 진정성 은 “내면의 목소리”이며, “내적 본성과의 접촉”이다. 자신의 삶과 본연 적인 독자성에 진실하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다. 그리고 이 를 위해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가치들을 끊임없이 논의하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67 여, 진정성을 발굴해야 한다. 테일러는 이를 “투쟁”이라고 표현하고 있 다. 이 투쟁은 전투적이거나 논쟁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다양한 지평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다양한 가치를 위 하여 투쟁은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홍중의 연구 등이 있 다(김홍중, 2009). 진보개혁진영은 공적 지평에서 시민정치와 노동정치를 통해 진정 성의 정치를 구현하고자 시도했다. 왜냐하면 구태정치나 보수우익중 심 정치현실의 한계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과 거부감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길만이 주체들이 참여하는 ‘진정성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정하였다. 제도 정당정치의 한계를 극복, 해결하기 위 하여 진보개혁진영은 시민정치로부터 새로운 정치자원을 공급받고, 노 동정치 또는 계급정치를 통해 지지기반의 확장을 도모하며, 연합정치 에 의해 정치 기회를 개방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주 체의 내면, ‘마음의 체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과정의 복잡성과 다 양성, 이질성에 주목했던 것일까?

3.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진보진영은 모든 정치 자산을 총동원하여 보수진영과 맞대결한 첫 싸 움에서 프레임전쟁 실패, 리더십 실종, 50대 소외, 개혁 동력과 조직력 부재, 단일화 매몰, 새정치 현상 소홀, 미완의 단일화와 폐쇄성, 단일화 후보와의 정치문법 차이, 정권심판론의 한계, 불분명한 비전 등의 원인 과 이유로 인해 패퇴되었다. 1987년 이후 이들 양대 정당의 선거결과를 보면 이들 간의 정당 역량의 차이를 직감할 수 있다(<그림 7> 참조). 가상공간인 인터넷상 구글 검색엔진을 통해 나타난 시간흐름에 따

168 동향과 전망 87호 <그림 7> 1987년 이후 주요 양당의 선거 결과

기 획

출처: 민병두 2013. 2012대선 패인 분석과 대안 http://bdmin.net/100176557530

른 관심도 변화를 보면 12월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 문재인은 거의 한 번 도 박근혜를 앞선 것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신문 등 대중매체에서 발표한 18차례의 여론조사에서도 문재인은 1∼2차례 이 외엔 박근혜를 앞선 적이 없었다. 막바지 비공개된 지지도 조사에서 2 ∼3차례 앞섰다고 나왔을 뿐이다. 즉 문재인의 출마 자체는 언론매체 환경만 놓고 보면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 서 진보개혁진영은 선거 승리를 위하여 시민정치와 노동정치뿐만 아니 라 연합정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문재인은 그만큼 언론 매체에 대중적으로 노출되어 있지 않은 후보 였다. 그는 지금부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무심의 정치’ 또는 ‘무위 의 정치’상태에 있었다. ‘무위의 정치’는 ‘지도자가 말을 할듯 말듯 말을 아끼면 지도자가 공을 세워 일을 이루어내었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모

두 자기가 해서 일이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는 노자(老子)의 정치지도 자상을 말한다(임혁백, 2012).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69 문재인은 이미 수년 전부터 주위로부터 본격적 수준의 현실정치 입 문을 요청받고 있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낙향한 상태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부산시장, 김해 보궐선거 등 지방자치와 국회의원 선거 시기마다 지역 유지와 지인들 사이에서는 현실정치인으로 부각될 기회가 있었으 나 이를 거부했다. 그의 출마를 통해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새로운 정치 돌풍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교환되고 있었으나 그는 여러 사정을 들며 정치입문을 사양해 왔다.4) 2009년 이후 진보개혁진영에서는 두 대통령의 연이은 서거와 집권 여당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 연합정치와 시민정 치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허상수, 2011). 연합정치의 도모는 자력에 의한 세력 확장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추진된 것이기도 하지만 이념과 정책부재의 정당정치를 극복하는 제도화와 발전 모색의 측면에 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2010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진보개혁진영은 정 책연합 및 일부 후보 단일화를 통해 보수진영에 맞선 전열을 정비, 승리 할 수 있었다. 2012년 4월 총선의 정당투표에서도 진보진영이 앞섰 다.5) 그동안 1990년대 이래 급속도로 성장한 시민사회운동은 준정당적 수준의 정치 발언과 개입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한 의견 개진과 제도개 혁활동을 통해 사실상의 또 다른 정치를 수행하고 있었다. 길거리 직접 행동 차원의 비합법적, 반합법적 운동을 장기간 전개해 온 민족민주민 중운동세력의 비제도권 운동정치와 다른 길을 개척해 왔다. 시민운동은 제도권 운동정치를 통해 시민사회 내 일정한 도덕적 정 당성을 확보해 왔다. 이런 기반위에서 시민운동세력은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폭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타개해야 한다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시민들의 기대에 직면해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정당정치가 민주적 방 식으로 이를 수용하고 해결하는 데 적극 노력했더라면 시민사회단체는

170 동향과 전망 87호 일정한 자기 역할범위 내에서 고유한 시민운동만을 전개하는 데 자족 할 수도 있었으나 정치사회현실은 그 반대방향으로만 나아갔다. 시민 정치는 한편으로 급진정치, 노동정치, 계급정치, 다른 한편으로 개혁정

치, 제도정치, 정당정치와 다른 무대(arena)를 선택하면서 그동안 길러 기 온 운동역량을 정치사회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은 한편으로 연 획 합정치의 모색, 다른 한편으로 시민정치의 대두라는 조건에서 현실정 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 사후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을 거쳐 노무 현 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장외정치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의 기소침했던 참여정부 지지층을 재규합하여 이를 발판으로 처음엔 연합 정치를 표방하는 ‘혁신과 통합’을 건설하고, 그 다음 이를 기반으로 통 합민주당과 당대당 합당하게 되는 시민통합당의 실세 또는 일원이 되 었다. 그는 2012년 국회의원과 대통령 양대 선거 승리와 2013년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일부 재야인사와 시민단체 원로 협의 기구를 통 해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가운데 공간에서 수평적 소통을 도모하였 다. 이런 시도와 노력들은 2010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부터 이미 시 민정치가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발원한 것이었다. 이 정치공간에서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다. 2010년 9월, 무상급식 반대를 위해 서울시장이 신청했던 주민투표 발의가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시민단체의 저 지운동에 의해 불성립으로 좌절하게 되고, 서울시장이 사퇴하였다. 그 러나 당시 통합민주당 내부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가서 집권여당 소속 현직 여성 국회의원을 상대할 후보가 마땅치 않았다. 이 틈새 정 치공간에서 안철수 교수는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유력한 대항마로 순 식간에 거론, 부상, 추앙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내부에서는 마땅한 유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71 력 경쟁후보가 없을 만큼 인물난에 시달리던 무상급식 추진세력은 이 들의 갑작스런 출현 소식을 반색하였다. 이들 두 사람은 잠시 회동한 다음 즉시 양보와 함께 후보 단일화와 지지라는 극적 장면을 연출하며 언론 매체와 정치사회에 출몰하였다. 안철수는 그동안 스님과 인기 연예인, 시골 의사와 함께 ‘청춘콘서 트’라는 이름조차 새로운 소통창구를 통해 20대 학생과 청년들의 고민 과 꿈을 공유하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의 아이콘으로 부 상하게 되었다. 새로운 정치는 구태 정치를 극복하려는 신인정치였고, 기존 정당에 대한 염증이나 정치적 무관심을 해소하는 적극적 기능을 발휘하였다. 구태정치와 새정치라는 선거구도에서만 살펴보자면 그의 이런 진심어린 비전은 이번 18대 대선 기간 내내 정당정치권을 진동시 킨 큰 쟁점이었다. 그는 대선 기간 동안 양대 후보 못지않게 많은 언론 과 국민의 주목을 받는 정치신인으로써 구태정치의 기득권 해체를 줄 곧 요구하였다. 그가 벌인 ‘경청의 정치’는 타자의 고민과 꿈을 들어주기만 해도 효 험을 낳는 치유(healing)의 기능을 발휘하였다. 그는 곧 기성정당의 구 태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무능, 무기력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대안, 젊은이들의 희망과 열망을 대변할 수 있는 가상의 권력 자본으로 받아들여졌다. ‘안철수 현상’은 정권교체와 정치교체라는 국민열망의 수호천사를 이르는 보통명사였다. 국민들은 보수야당 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에 대 한 정치 염증을 씻어줄 청량제의 구실을 기대하였다. 그 역시 곧바로 정당정치에 입문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남아 있으면서 시민정치와 제도 정치의 어느 선상에서 정당정치로 진입하기 위한 참여 기회를 모색하 게 되었다. 안철수는 1년 넘게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한 고민과 선택의 기회를

172 동향과 전망 87호 지켜보다가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종료한 직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한편으로 구태정치 정리와 새 로운 정치, 다른 한편으로 정권교체를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아

무런 정치경험이나 자산, 공식적인 후원조직이나 지지집단의 실질적 기 형성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지역조직도 결성하지 않고 ‘안철수 현상’의 획 아바타로써 시민정치를 넘어 장외 정치사회로 진입하였다. 그에게는 앞서 4년 동안 정치사회에서 유지되어 왔던 ‘박근혜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린 여론조사상의 높은 지지율만이 떠받치고 있었다. 출마선언이후 안철수는 민주통합당과 문재인으로부터 연이은 단 일화 압박에 시달렸다. 처음에 민주당측은 후보 단일화를 위한 규칙 제 정 등을 안철수측에 일임한다고 말했으나 뒤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단일화 안이 나오자 이를 사실상 거부하였다. 양자 토론회이후 안철수 는 자신에 대한 여론 악화와 함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버리자 11월 23일 한순간에 예비후보를 포기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하였다. 그 다 음 무려 13일만에야 안철수는 문재인과의 관계 정상화와 선거 지원 의 사를 가시화함으로써 많은 국민과 지지자들로부터 진정성을 의심받으 며 답답함과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후 과정에서부터 그의 정치행 보는 새정치 실현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지지자들을 설득해서 문재인 을 지지하도록 방향을 선회하는 데 일정한 능력상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는 지지자들이 제기한 불만이나 아쉬움을 잘 달래거나 다독이지 못 한 셈이다. 안철수의 첫 번째 정치실험 좌절은 비록 문재인과 민주통합 당으로부터 유발된 것이었겠지만 지지자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내보였다. 따라서 그의 지지자들은 문재인의 당선을 위 한 질서 있는 언동을 전개할 수 없었다. 진보는 권력을 쟁취한 다음, 그 정책 집행과정에서 지지자의 높은 기대와 요구를 원활하게 수용하여 그 정치효과의 실질적 극대화에 도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73 달하지 못함으로써 재집권이나 정권유지에 일정한 미숙함을 보이는 한 계가 적지 않은 경향이 있다.6)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은 이런 노무현의 진정성의 정치, 후보 단일화라는 연합정치 의 경험, 참여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고스란히 떠안고 시민정치를 발판 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였다. 그리고 그는 초선 국회의원 신분으로 정 당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유권자들은 그의 진정성을 믿고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여는 첫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를 기대하였다. 역 대 어느 진보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하며, 계급과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 는 전국적 지지를 회복하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정당은 표심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의 협량정치는 그 의 당선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선거운동기 간 내내 문재인은 주체의 내면을 흔들어 댈 카리스마나 결기를 보여 주 지 못하였다. 공적 지평에서 박근혜와의 선거전쟁을 수행하는 데 절대 적으로 요구되는 도덕적 압력을 시도하기는 했으나 유권자를 지지자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주체의 윤리적 성찰이나 공감을 자극, 격발, 선도할 의제 설정이나 프레임 전쟁에서 앞서지 못하였다. 그는 구태정치나 제 도정당의 기득권 내려놓기를 거당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진정성의 한 계를 보였다. 문재인은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 이용실적에서도 박근혜에 밀 린 것으로 선거 후 밝혀졌다. ‘트위터’ 계정의 공식 팔로어에서는 문재 인(34만 명)이 박근혜(25만 명)을 앞섰으나 ‘카카오톡’의 ‘플러스 친구’ 는 박근혜(68만 명)가 문재인(53만 명)을 15만 명이나 앞섰다. 50대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전년 10%대에서 거의 50% 가까이 증가하였다. 그 리고 매체의 양극화 영향도 받았다. 20∼30대는 SNS상에서 진보에 대 해 많은 선호를 보였다면 50대 이상 자영업자들은 밤낮 방영되는 보수

174 동향과 전망 87호 편향의 종합편성 채널을 압도적으로 많이 시청했던 것이다. 이것은 대 중매체 환경과 공론장 구조 또는 정보 유통구조의 판도가 빠르게 양극 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 등이 이런 환경변화에 잘 대응했는지 확

인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 세력은 국민 감동의 정치를 전면화하지 못 기 했다. 획 호남지역은 1988년 이래 줄곧 민주당이 실질적 여당으로 군림해 왔 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당 정치에 대한 반발세력이 항존해 왔 다. 문재인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세력, 그리고 구 민주당 출신 또는 낙 천자들과 같은 집단들의 행태를 우호적으로 전환하는데 공을 들여야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안철수 현상’을 일 으키는 바람잡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당권파의 패권주의는 민주당 지지도 저조현상이 무엇으로부터 기 인하는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지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답이 나 대안이 없었다. 선거 전후에 나타난 유권자와의 공감능력 상실은 국 민감정의 추이와 따로 노는 “판에 박힌(stereo typed)” 기계적 반응, 무 대책, 즉물적 대응, 비생산적 행위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때 65% 에 달하던 유권자들의 높은 정권교체 열망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항정당 인 민주통합당에 대한 낮은 지지도가 계속되어 왔다(<그림 8> 참조). 유 권자들은 과연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 정부 수권능력, 즉 정책 집행능 력(operation)을 의심해 온 셈이다. 의사결정의 과점화, 선거운동자원 의 분산, 무리한 중도층 지향의 모호한 정치성향 역시 혼재되어 당내 민 주주의가 불안한 상황이다.7)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 후보가 유리하다는 통념에 너무 의존하였다. 전국 차원의 선거운동을 지도할 구심의 부재 는 전략 역량 유무조차 회의하게 만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 와 야권 연대는 하나의 선거 전술이었을 지라도 유일한 전략은 아니었 다. 그러나 정당과 후보는 여기에 쏙 빠져들었다. 진보와 보수의 격돌이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75 <그림 8> 2005년부터 현재까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정당지지도 변화

출처: 민병두 2013 대선 패인분석과 대안 http://bdmin.net/100176557530

라는 이번 선거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려면 후보 단일화 이상의 확장 성을 지닌 전략이나 의제 설정, 시대정신의 창출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주체에 압력을 가하는 또 다른 공적 지평의 장 에서 일어난 노동정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11월 17일 여의도광장 에서 개최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주최 노동자대회에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예비후보가 등단하여 차례로 연설하였다. 다른 노동정치 예비 후보들은 연설하지 않았다. 이날 박근혜는 자신의 노동공약을 소개하 며, 한국노총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비정규직 축소를 위해 ‘동 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수용까지 시사하였다. 문재인은 국회 환경노동 위원장과 현직 국회의원 그리고 민주당 최고위원 출신 전직 한국노총 위원장까지 함께 등단하여 민주통합당 후보로써의 공약과 정책을 강조

176 동향과 전망 87호 하였다. 안철수 후보는 단신 등단하여 연설을 한 다음 그때까지 기다리 고 있던 문재인과 함께 퇴장하였다. 문재인은 전태일 분신 42주기를 맞은 11월 13일 오후 전태일 재단

을 방문한 다음 인근 청계천 전태일 다리까지 도보 이동하여 헌화하고, 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잇달아 방문하여 자신의 노동공약을 설명하고 획 지지를 호소하였다. 민주노총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그는 대부분의 민주노총 요구 사항이 반영되었음을 강조하였다. 한국노총 방문에서 는 많은 노총 임직원들의 환영을 받고 연호를 하며 기념촬영까지 하였 다. 이미 한국노총은 위원장이 앞장서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한 상 태였다. 그러나 일부 반대파들은 보수 진영에 줄을 대고 있었다. 이에 앞서 11월 11일,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조원들은 청계천 전태 일다리를 출발하여 시내 가두행진을 한 다음 서울역 광장에서 노동자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이 행사에서는 이들 유력후보 3인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다른 노동자 후보들만 연설하였다. 민주노총은 그때까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상태였다. 민주노총은 2012년 4월, 이른바 ‘통합진보당 선거부정 사태’를 겪으면서 조직적 차 원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식지지 입장을 거두어들였고, 위원장이 사퇴한 상황이었다. 상기한 3개 장면에 나타난 이런 모습은 현 단계 전국적 노동조합 연 합단체들의 노동정치 수준과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노동 정치의 분열과 각개약진은 조직 또는 비조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 들로부터도 조소와 분노와 실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노동정치의 위기를 넘어 진보 그 자체의 존폐를 알리는 적신호를 발령한 것이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예비후보의 사퇴와 문재인과의 연합정치 성사 는 나름대로 노동정치 발전의 가능성과 기회 포착의 계기를 마련한 것 이었다. 왜냐하면 현재 수준의 노동정치에서는 개혁정치 세력과의 연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77 대나 연합정치를 통해 정치기반을 확대하고, 정치역량을 심화할 수 있 는 시간과 경험과 노력을 축적해 나가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지난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25년 동안 노동정치의 역정 은 모험적 도전과 시행착오가 반복되면서 정치사회 내에 시민권 획득 을 위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수반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렵사리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여 국회 의석을 차지하였으나 2008년 내 분 사태를 맞아 분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억압적 국가기구, 반공검사의 입에서도 적시하지 못한 ‘종북좌파’라는 악명을 자당 동지에게 퍼붓고 말았다. 이들이 다시 2011년 12월, 재규합하는 과정에서 이질적 정당과 의 무리한 합당으로 정체성 위기를 겪었다. 개혁주의 정당과의 결합은 진보정당의 내, 외부에서 그 진정성의 정치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급기 야 통합진보당은 2012년 4월 총선거 직후 비례대표 선거 부정 시비사 태를 치루면서 2012년 다시 분당하게 됨으로써 조직노동자뿐만 아니 라 노동자 일반, 국민 대중으로부터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노동자 정당이 범할 수 있는 획일성이 낳은 오류의 연속이었다. 기업별 노조, 낮은 노조 조직률, 노동자계급 일반의 대표성 부재, 노동자 대중 조직과 정당간의 느슨한 관계 등 한국 진보정당은 넘어야 할 장애물과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게 이들 앞에 놓여 있다.8)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노동정치는 이제 변화된 노동시장과 다양하 고 이질적 의식과 요구, 격변하고 있는 세계경제에 직면하고 있는 자본 주의 체제의 변화 양상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직, 투쟁, 연대활동의 전 개를 통해 거듭 나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도 보다 신축적이고 현실적 접근을 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일은 재언 이나 췌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보개혁 정치 세력은 보수 우익의 지배 논리를 혁파할 논리 구성과 담론이 필요하다.9)

178 동향과 전망 87호 이들은 정치세력 실종이나 부재, 노동세계에서의 억압과 착취, 소 외와 차별에 대한 무지나 무시, 무관심이 아니라 자본운동의 현실을 직 시하고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운동양상이

보다 더 다양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변모해 왔기 때문에 조직노동자들 기 은 이들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거부와 반대, 쟁투 역시 세련되고 위력적 획 방식으로 대응해야 마땅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노동정치가 뿌리내려 야 같이 발전할 수 있다. 노동이 없는 민주주의는 미완의, 반쪽의 정치 뿐이다. 진보진영은 신뢰의 위기, 신불안층 무시, 세대 전략의 오류, 지 역전략의 부재, 계층전략의 결핍 등 공당 선거전에서 감당해야 할 지상 전과 진지전, 공중전과 육박전에서 모두 밀린 것이다. 이것은 공당의 주의 의무(sorgfaltspflicht) 불이행과 경계 부실에 해당하여 이에 대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는 공당의 중대 과실로 남겨져 있다. 노동의 주체들은 공적 지평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현상들을 목도 하면서 내면의 상처와 고통, 불신을 수반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선거 나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수동적 참여와 방관, 동조와 거 부의 양상을 숨기지 않는다. 노동정치는 현실정치의 진로에 종속변수 로만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진보‘주의’없는 진보는 설 땅이 없다(사회와 철학연구회, 2002: 15). 선거정치에서 급진적 발언이나 막말, 그리고 악담은 풍자나 은유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정치수사를 희석시켜 도리어 부정적 효과를 불 러온다. 더욱이 그런 말투는 안정논리에 휘둘리는 중산층 유권자와의 소원한 관계 조성, 생계가 불안한 서민층의 반동적 투표행위를 유발한 다. 이 역시 ‘마음의 체제’와 같은 현실세계를 천착하지 못한 데서 비롯 된 허위의식에 근거한 경직된 언술행위다. 막말이나 악담, 네거티브 선 거운동만으로는 유권자의 감정정치를 되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유권 자 역시 살아있는 구체적 주체로써 공적 지평에서 일어나는 기성 정치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79 인들의 언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 담론을 곧이곧대로 동조하기도 하지만 반감하거나 동조를 철회하는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감정 정치 의 주역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더 이상 진보정치인들의 선 동대상이 아니며, 피동체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유권자는 누가 더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민생문제 해결에 골몰할 것인가를 주시, 판단한다. 사회적 약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기 삶 의 고통과 눈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후보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한 마 디로 유권자는 ‘무엇을 위해 투표 하는가’라고 성찰한다. 유권자는 ‘진 정성의 정치’를 추구하는 후보에게 호감을 갖는 법이다. 그렇다면 보수 진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4. 보수진영과 유권자들이 벌인 감정의 정치

박근혜는 ‘잘살아보자’라는 수사로 사이비 진정성의 정치를 감행하였 다. 그리고 정치안정과 경제성장, 국가안보를 선호하는 다수의 주체들 로부터 투표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감정의 정치’는 개발독 재를 강력하게 밀고 간 철권통치자의 딸에 대한 동정심으로부터 발로 한다. 이런 국민감정은 그녀를 대중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게 만들어 왔다. 박근혜는 1979년 10월 27일 새벽 대통령 관저 안방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친구이자 심복의 총격에 의한 아버지의 죽음을 처음 통고받 았을 때, ‘전방상황은 어떻습니까?’라는 첫마디를 내뱉었다고 전해진 다. 그녀는 이 한마디 말을 통해서 자신의 국가 안보관 또는 위기관리 의식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외마디는 구호나 문장에 머무르지 않고 그녀의 정치 생명에서 하나의 전설 또는 스토리텔링을 스스로 만 들어 나갔다. 그녀는 이미 대학 졸업 후 1974년, 프랑스 유학중 8·15

180 동향과 전망 87호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교포 간첩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된 직후 귀 국하여 5년 동안 대통령 곁에서 사실상의 퍼스트 레이디로써의 역할과 소임을 다함으로써 최고 수준의 국정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 두 사건

이후 그녀의 이름은 국민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기 대통령 시해라는 대참극 이후 18년 동안 독서와 집필로 소일하면서 획 도 1974년부터 육영수기념사업회 이사와 육영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사회봉사와 장학사업을 하던 그녀는 1998년 4월 2일, 대구 달성구 보궐 선거 출마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현실정치에 투신하였다. 그녀 는 당 대표를 역임하는 기회 등을 통하여 국민대중과 접촉 기회와 공간 을 확대하였다. 그녀는 5공화국 신군부세력 등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 한 폄하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정치를 개시 한 것이라고 되뇌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그의 아버지가 인권을 침해하 고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한 독재자이며, 자신은 그 독재자의 후손이라 는 점을 전면 부인하는 태도였다. 그녀는 한국 경제성장의 공로가 자신 의 아버지에게 있으며, 그 밖의 통치과정상 한계나 문제점은 안중에 없 었다는 것이다. 그 후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보수적 국민대중의 일방적, 맹목적 지지 는 여전히 현존하고 있었다.10) 그녀의 얼굴을 통해 국민총화를 강력히 추진하여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수난을 당하는 정치인의 상을 동시에 반복하여 연출해 낸 탓이었다. 박 근혜는 권력의지의 화신이었고, ‘당선’만이 정치를 하는 그녀의 ‘존재 이 유’였다. 이를 위해서 말 바꾸기와 비일관성, 획일성, 정책과 비전과 가치 무시는 다반사였고 당 내부에서는 불통의 정치로 불만이 자자했다. 따라 서 그녀의 언동 등은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한 마디로 사 이비 진정성의 정치라고 호칭할 수밖에 없는 다른 규정을 할 수 없다. 박근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국민여론의 역풍을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81 맞아 고사 직전에 빠진 위기 속의 한나라당을 구원할 요량으로 ‘천막당 사’를 짓고, 동정심을 십분 유발함으로써 난국의 자기 소속정당을 되살 려낸 그들만의 ‘잔다르크’였다(임혁백, 2012). 그리고 노무현 참여정부 아래에서 집권 열린우리당에 맞서서 각종 선거에서 40대 0이라는 승률 을 기록함으로써 왜적에 맞서 연승을 거듭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 률을 넘어서는 위업을 달성한 선거전의 명장이자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지닌 노련미가 넘치는 전국적 대중정치인이었다.11) 박근혜의 간결한 말과 절제된 행위는 지지자들에게 안정된 지도자 상을 심어주었다. 매일 아침 요가를 한다는 그녀의 화두는 오로지 ‘선 거’였다. 그녀가 볼 때 선거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오직 정권 획득을 위한 ‘정치항쟁’으로서만 의의를 지닌 것이었다. 이를 통한 범보수의 재결집은 박근혜 주도의 재정복 (reconquista)이며, 1987년 후기 체제의 성립이다. 지역정치를 기반으 로 거점지역을 재장악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경쟁 후보의 핵심 정책을 모방, 답습하는 중도화 또는 중위수 정치를 감행한다. 그리하여 ‘시대정신’에 충실한 것처럼 행세함으로써 보수 재건축(rebuilding)을 완공하였다. 2012년 11월 16일 선진통일당을 흡수함으로써 충청도뿐 만 아니라 인근 경기도와 인천 거주 충청도민에까지 손을 뻗쳤다. 반대파의 막말, 네거티브 선거와 후보 검증이 심해질수록 박근혜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치 감정은 흉탄에 쓰러진 부모의 죽음과 그녀의 수 난과정을 되살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발언이

나 행동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유권자들도 대중적 간지(奸智) 를 발휘하여 반응, 판단하며 ‘정권교체’라는 과거평가적 투표도 하지만 미래선택적 투표도 한다. 문재인은 당내 유력 주자들이 난립한 사이에 떠밀리다시피 출마하 여 선거기간 내내 전통적 지지층을 재결집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공

182 동향과 전망 87호 력을 들여야 했다. 특히 안철수와의 단일화에만 매달리는 행태를 보이 면서 민생과 생활정치의 해결 전망을 제시하고, 경쟁우위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노무현을 넘어서는 국가비전, 고유의 정체성, 대표 브랜드가

없거나 부족했다. 기 이에 비해 볼 때 박근혜는 일찌감치 강력한 당선 가능성을 전면화 획 하면서 문재인의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 의제 등을 일정하게 모방, 수 렴하면서 이런 저런 민생정책들을 하나씩 제시하였다. 나아가 그녀의 정당은 안보와 안정을 선전하며 전국 곳곳에 안성맞춤형 지역공약을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문재인은 민생, 생활정치를 구현할 정책이나 공약을 집중 제시하 고, 전면화하지 못하였다. 보수편향 매체에 의해 조장, 증폭, 확산된 그 의 정책 이미지는 미래정부의 불안정, 가진 자들의 불편 그리고 생활 불 안감만을 투사하게 됨으로써 마지막까지 그를 향한 지지 여부를 놓고 지켜보던 2% 부동층을 자신을 지지하는 쪽으로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보수언론은 입을 모아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여 설파함으로써 문재 인측 지지자 정치공동체에 상처를 내고, 낙인을 찍어댔다. 진보와 보수, 배타적 세계관이 공존, 경합하는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s)들은 1948년체제(반공·분단·냉전·반북체제)가 빚어낸 ‘마음의 체제’와 보수우익·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유스럽지 못하였다. 반면에 박근혜는 사이비 진정성 정치 체제를 통해 동요하고 있는 유 권자의 내면을 파고들며 이들을 포획, 인입, 설복하여 분할지배(divide and rule)하는 데 수사(修辭)역량을 집중하였다. 선거는 이미지 게임이 다. 박근혜는 박정희라는 프리미엄과 보수 안정 프레임을 중심으로 선 거운동을 해서 득심에 성공했다. 결국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 감정적 유권자들은 그녀에게 박정희시절로 되돌아가 또 다른 성장과 발전에 정 치적 도박을 건 셈이다. 이미 세계경제는 저성장, 경제위기시대로 진입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83 한 상태인데 과연 그녀의 정치능력으로 어떻게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 회의적이다. 그녀의 정치는 모호한 수사로 점철된 정치적 기회주의를 특징으로 한다(김종철, 2012). 이 방식이 집권기간에도 힘 을 발휘할 것인지, 아니면 온정주의와 철권통치가 가미된 새로운 의사

(疑似)파시즘체제로 장기집권을 기도할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더욱이 문재인은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 쟁점화 시 도, 북한의 로켓 발사 등 안보 불안 요인 해법에 대하여 미적거리는 사 이에 박근혜는 체제 불안 세력의 재집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수사를 유 권자들에게 반복함으로써 ‘마음의 체제’에 침적된 오래된 앙금을 뒤척 이게 하는데 성공하고, 표심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은 선거 전략이나 캠페인에서도 밀리고, 민심을 읽고 대응하는데 미숙 했거나 숙달되지 못하였다. 선거과정의 박진감은 유권자에게 열렬히 지지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 한다. 이번 대선은 흐름이나 동향(trends)은 있었으나 운동(movement) 은 없었다. ‘진정성의 정치’가 주류가 되어 회자될 공간이 부족한 선거였 다. 3.53%의 유권자들은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보다 박근 혜의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주장을 더 많이 지지하였다.

5. 결론을 대신하며

문재인의 정치 수사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희망적 선택에 초점을 두었 다. 그러나 박근혜의 지지자들은 불행한 현재에 대한 절망적 선택이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각성된 시민들의 이성적, 합리적 판단으로 행복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 국민들의 정치적 선호의 결과였다.

184 동향과 전망 87호 진보세력에 의한 지속가능한 튼튼한 정부의 진로는 일정기간 유보, 차단되었다. 신인정치의 새로운 협치나 신정치를 위한 신생 정치공동 체 건설도 유예되었다. 아마도 문재인 지지자들은 1997년과 2002년 대

통령 선거 승리의 기억 회복이 정지되면서 2007년과 2012년 패배의 기 기 억 망실과 그 학습효과로 인해 앞으로 일정기간 우여곡절과 좌충우돌 획 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이제 연합정치, 시민정치 그리고 노동정치 와 정당정치의 새 질서를 도모, 형성하기 위한 새로운 진로 개척이야말 로 시급한 과제다. 만약 진보진영이 대오각성해서 1500만여 명의 지지 자 정치공동체를 유지, 확장하려면 득심의 정치, 민심회복의 정치과정 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사이비 진정성 체제를 극복, 지양하고 새로운 진정성의 정치 체제 형성으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이 난국타개 를 위해서도 선거 평가를 냉정하고 철저하게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18대 대통령선거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선거실패 요인을 분 석한 것이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첫째, 정치신인들이 정권교체와 새로 운 정치라는 국민열망을 집약, 대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정 권교체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의 높은 여론과 절반의 연합정치 성사에 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심성 또는 ‘마음의 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과 감 정의 정치 조정 미숙으로 선거 판도를 유리하게 이끌지 못하였다. 둘째, 진보진영의 시민정치와 노동정치는 국민감정, 호소력과 콘텐 츠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밀렸다. 시민정치는 좋은 정치신인의 천거,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의 형성 계기를 제공하였으나, 정 치 경험부족으로 인해 중도층의 안정감 획득과 지지표 형성에 실패하 였다. 그리고 시민정치를 하는 정치신인과의 연합정치는 충분한 효과 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노동정치는 진보정당의 분열, 다자 후보, 계급 적 이해관계의 대변 부족으로 진보개혁진영후보로 지지표를 결집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였다.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85 셋째, 새누리당의 감정 정치는 후보의 집중성과 확장성을 통해 선 거막판 지역 및 세대투표에서 지지세 결집으로 이어졌다. 사이비 진정 성의 정치가 진정성의 정치를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경합하는 양대 정당과 후보 진영이 유권 자 ‘마음의 체제’에 대한 이해와 ‘진정성의 정치’라는 접근법에서 차이 를 보인데서 비롯되었다.

2012. 12. 25 접수/ 2013. 01. 04 심사/ 2013. 01. 10 채택

186 동향과 전망 87호 주석

1) 최근 2010년 지방자치 선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욕망의 정치’는 ‘가치 기 의 정치’에 반한다. 보수성향의 지지자는 전자를 선호하고, 진보취향의 지지자 획 는 후자를 추구한다. 한국 현실정치에서는 구태정치와 신생정치 또는 신인정치 로 대별된다. 대체로 한국의 정당정치는 전자에서, 시민정치는 후자로부터 나 온다.

2) 윌리엄스는 그의 문화 분석을 통해 프롬(E. Fromm)의 ‘사회적 성격’(행동과 태 도의 가치체계)과 베네딕트(R. Benedict)의 ‘문화 패턴’(하나의 뚜렷한 조직, 하나의 ‘생활방식’을 만들어내는 이해관계와 활동들의 선택과 설정, 그에 대한 특수한 가치 부여)외에 추가로 ‘감정의 구조(한 시대의 문화, 전반적인 사회조직 내의 모든 요소들이 특수하게 살아 있는 결과, 의사소통이 의존하는 기반)’을 들 고 있다(윌리엄스, 2007: 92∼94).

3) “프랑스어 ‘심성’은 (그 개념이) 모호해서, 부정확한 것으로 악명 높은 용어들인 집단적 재현(collective representation), 역사심리, 집단 무의식 등과 구별하 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Richer, 1995/2010: 150)

4) 문재인은 변호사 개업 파트너이며 민주화운동 동지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돌연 한 서거이후 그의 사회적 위상은 전국적 대중정치인으로 도약할 입지에 들어서 게 되었고, 그의 정치적 ‘운명’은 하루아침에 돌변하게 되었다. 2009년 5월 23 일 낮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문재인의 침착한 표정은 하루아침에 국민 사이에 그의 이름과 얼굴을 각인하는 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전직 대통 령 비서실장이라는 위상에서 대통령의 뒤를 잇는 차기 주자의 위상으로 옮겨간 셈이다. 1979년 12월, 전두환 육군 소장이 텔레비전 앞에 나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발표를 통해 전국적 지명도를 높인 것과 비교할 만한 사건이었다.

5) 4·11 총선거에서 당시 진보세력은 민주통합당 36.5%, 통합진보당 10.3%, 진 보신당 1.1%, 창조한국당 0.4%, 정통민주당 0.2% 등 48.5%를 얻었다. 반면 보수진영은 새누리당 42.8%, 자유선진당 3.2%, 국민생각 0.7%, 친박연합 0.6%, 한나라당 0.9% 등 48.2%를 득표했다. 하기 표에 나타난 것처럼 역대 국 회의원선거 득표율을 들여다보면 개혁주의 정당과 급진주의 정당의 지지율 추 이는 동조현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이 오르면 진보정당의 지지율 도 올라갔던 것이다.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87 <표 3> 국회의원 선거 지지율 추이

선거연도 2000 2004 2008 2012 민주당 35.9% 38.3% 25.2% 36.5% 진보정당 1.2% 13% 5.7% 10.3%

6) 예를 들면 1924년 영국 노동당은 처음 연립정부에 참여하였으나 곧 권력을 내 놓아야 했고, 1929년 제 1당으로 집권한 다음 불과 2년 만에 권력을 내놓아야 했고, 1945년 제 1당으로 재집권하는데 까지 오랜 시간을 투여해야만 했다.

7) 이견의 중요성과 동조 현상에 대해서는 Sunstein(2003/2009) 참조.

8) 남북한을 통틀어 한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 또는 사회주의 실현 가능성을 이미 사라진 혁명적 노동계급에게서만 집착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를 터 잡고 있는 지 모른다. 한 문화연구자는 이런 부류의 마르크스 생각에 대한 오판에서 벗어 나야 한다고 역설한다(Eagleton, 2011/2012: 151). 이제 공업노동자들만이 사회혁명을 희구하고 이를 위해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은 세계노 동운동사 뿐만이 아니라 현실 노동운동의 현주소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9) 미국에서 보수정치세력은 언제나 역효과, 무용, 위험명제를 통해 진보의 진출을 견제, 방해, 반대하며 사회를 지배해 왔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 다.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Hirschman, 1991/2010). 이런 명제를 한국의 다른 경제학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 준다. ‘그래 봐야 너만 더 힘들어진다. 백 날을 해봐라, 아무 일도 안 벌어진다. 복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

10) 2012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은 과반수이상 의석을 차지할 것 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낙관론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주도 아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당명까지 바꾸며 선거운동을 한 결과 영남권 뿐만 아니라 강원도와 충청도를 휩쓸면서 국회 의석 과반을 넘게 차지하는 대승 을 거두었다. 이 선거과정을 고향에서 지켜보며 과거 40여년 가까이 민주화운 동을 벌여왔던 한 재야 원로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그녀가 한번 재래시장이나 5일장을 다녀가고 나면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율이 하룻밤에 몇 %씩 바뀌곤 했다. ‘시집도 가지 않고 나라를 위해 불쌍한 사람이 참 고생을 많이 한다.’며 부녀자들이 쫓아 나와 그녀의 손을 잡아 보기를 원했 다. 그래서 박빙 우세의 지지세를 보여주던 민주당 후보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다.” 이창복 2012. 5. 민주통합시민행동 4월 총선 평가회. 발언요지 발췌.

188 동향과 전망 87호 11) 반면에 같은 시기 열린우리당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가 무려 9번이 나 교체되는 모욕을 당했다. 끝내 당명까지 바꿔 달아야 했다(임혁백, 2012: 211). 더욱이 민주통합당은 4번의 주요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2004년 17대 국회부터 따지면, 21번째 지도부를 맞이하고 있다.

기 획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89 참고문헌

김종철(2012). 󰡔박근혜 바로보기󰡕. 프레스바이플. 김홍중(2009).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문용갑(2011). 󰡔갈등조정의 심리학󰡕. 학지사. 박태순(2010). 󰡔갈등해결 길라잡이󰡕. 해피스토리. 사회와철학연구회(2002). 󰡔진보와 보수󰡕. 이학사. 서순복(2005). 󰡔거버넌스 상황에서 갈등관리를 위한 대체적 분쟁해결제도󰡕. 집문당. 임혁백(2012). 󰡔어떤 리더쉽이 선택될 것인가󰡕. 인뗄리겐찌야. 정주진(2010). 󰡔갈등해결과 한국사회: 대화와 협력을 통한 갈등해결은 가능한가󰡕. 아르케. 허상수(2011). 󰡔참여인가 연합인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시민참여와 연합정치론󰡕. 백산서당.

Albert O. Hirwschman(1991). The Rhetoric of Reaction: Perversity, Futility and Jeopardy. Harvard University Press. 이근영 옮김(2010). 보수는 어떻 게 지배하는가. 웅진지식하우스. Andrew Hermana & John M. Sloopb(1998). The politics of authenticity in post-modern rock culture: The case of Negative land and the letter ‘U’ and the numeral ‘2’. Critical Studies in Mass Communication, 15(1), Taylor and Francis. Andrew Lattqas(1993). Essentialism, Memory and Resistance : Aboriginality and the Politics of Authenticity. Ocenia, 63(3), March University of Sydney. Ocenia Publications. Cass R. Sunstein(2003). Why Societies Need Dissent. Harvard University Press. 박지우·송호창 옮김(2009).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후마니타스. Charles Taylor(1992). The Ethics of Authenticity. Harvard University Press. 송 영배 옮김(2001). 불안한 현대사회 이학사. Doug Rossinow(1998). The Politics of Authenticity: Liberalism, Christianity and the New Left in Americ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E. Patrick Johnson(2003). Appropriating Blackness: Performance and the Politics of Authenticity. Duke University Press.

190 동향과 전망 87호 George Lakoff & the Rockridge Institute(2006). Thinking Points: Communicating Our American Values and Vision. Farrar, Straus and Giroux, LLC. 나익 주 옮김(2007). 프레임 전쟁: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 창비. George Lakoff(2004). Don’t think of elephant!: Know your values and frame the debate - the essential guide for progressives. Chelsea Green Publishing. 유나영 옮김(2006).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미국의 진보세력은 기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삼인. 획 Marshall Berman(2009). The Politics of Authenticity: Radical Individualism and the Emergence of Modern Society. Verso. Melvin Richer(1995). The History of Political and Social Concepts: A Critical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송승철·김용수 옮김(2010). 󰡔정 치사회적 개념의 역사: 비판적 소개󰡕. 소화. Raymond Williams(1961). The Long Revolution. Random House. 성은애 옮김 (2007). 󰡔기나긴 혁명󰡕. 문학동네. Steven Seidman & Chet Meeks(2011). The Politics of Authenticity: Civic Individualism and the Cultural Roots of Gay Normalization. Cultural , December, 5(4), 519∼536. Terry Eagleton(2011). Why Marx Was Right. Yale University Press. 황정아 옮 김(2012). 󰡔왜 마르크스는 옳았는가󰡕. 도서출판 길. William Ickes(2003). Everyday Mind Reading: Understanding What Other People Think and Feel. Prometheus Books. 권석만 옮김(2008). 󰡔마음읽 기󰡕. 푸른숲.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91 초록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8대 대선을 중심으로

허상수

이 글은 18대 대통령선거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선거실패 요인을 분석한 것이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첫째, 정치신인들이 정권교체와 새정치라는 국민열망을 집 약, 대변하게 되었으나 진보진영은 절반의 연합정치 성사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심성 또는 ‘마음의 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과 감정 정치의 조정 미숙으로 선거 판 도를 유리하게 이끌지 못하였다. 둘째, 진보진영의 시민정치와 노동정치는 국민 감정, 호소력과 콘텐츠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밀렸다. 시민정치는 좋은 정치신 인의 천거, 국민연대의 형성 계기를 제공하였으나, 현실정치 경험부족으로 인해 중도층의 안정감 획득과 지지표심 형성에 실패하였다. 정치신인과의 연합정치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노동정치는 진보정당의 분열, 다자 후보, 계급 적 이해관계의 대변 부족으로 진보개혁진영후보로 지지표를 결집하는데 크게 기 여하지 못하였다. 셋째, 새누리당의 감정 정치는 후보의 집중성과 확장성을 통해 선거막판 지역 및 세대투표에서 지지세 결집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 령 선거 결과는 경합하는 양대 정당과 후보진영이 유권자 ‘마음의 체제’에 대한 이 해와 ‘진정성의 정치’라는 접근법에서 차이를 보인 데서 비롯된다.

주제어 ∙ 18대 대선, 시민정치, 노동정치, 마음의 체제, 감정의 정치, 진정성의 정치

192 동향과 전망 87호 Abstract

Crises of the Civic and Labor Politics in The Progressives and 's Politics in 기 The Conservatives 획

Sang-Soo Hur

This article analyzed the result of 18th Presidential Election focused with the cause of the liberal and progressive block’s defeat in the South Korea politics. They failed the civic politics and labor politics in the campaign be- cause of no ideas of mind’s regime of voter, no contents, nor coordinations in despite of the semi success of coalition politics with other independent civil candidate onto the pan-national zeal of power shift by the democratic election. Lawyer Moon Jae-in, Democratic Unified Party’s candidate did not play an irascibility or charismatic leadership in the party politics during the campaign. Ruling Party, New Frontier Party’s candidate Park Geun-hye’s victory in the presidential election is a big boost not only for women in South Korea but also women in many other male-dominated countries in East Asia, where Confucian values are still widely respected. Ruling party’s politics of feelings has been mobilized the older voter’s mind that is the momentum turned to victory by the candidate’s concentration and extendability. I traced this authenticity politics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where the ‘mainstream’ or the established politics has often relied on a voter of beholder of mind’s regime and authenticity that is why she won or he failed.

Key words ∙ 18th Presidential Election, Civic Politics, Labor Politics, Feelings’ Politics, Politics of Authenticity, Mind’s Regime

시민정치와 노동정치의 위기 그리고 ‘감정의 정치’ 193 일반논문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인구문제의 딜레마를 중심으로 1)

이상호*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조교수

1. 서론

1970년대 이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주로 환경문제와 관련된 쟁점이었지만, 최근에는 이것이 또 다른 측면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 상하고 있다. 노령화(ageing)와 관련된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이 그것 이다. 두 가지 지속가능성은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 서 비슷하지만, 원인이 다른 만큼 별개의 사안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일 반적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노령화의 영향은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구 가 노령화될수록 저축율의 하락과 노동공급의 감소를 나타나고, 이것 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기존의 복지제도 는 대부분 성장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성장기반의 약화는 복지제도에 도 상당히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노령화는 연금체

* [email protected]

194 동향과 전망 87호 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사안에 그치지 않고 거시경제 전반의 지 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에 해당된다. 그런데 환경문제도 성장의 지 속가능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두 개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서로 다른 원인에서 출발했지만 매우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고 판단된다. 물론 노령화와 환경은 서로 다른 사안이며, 두 문제와 관련된 지속 가능성의 의미 또한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환경문제가 간과될 경우 ‘지속불가능한 개발’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면, 노령화와 환경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1) 문제는 그 해법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령화의 경우 출산율 상승 일 반 이 궁극적인 해법일 수 있지만, 이에 따른 인구증가는 환경문제의 또 다 논 문 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노령화와 환경을 연결 시킬 경우, 지속가능성 문제가 출산을 장려할 수도, 장려하지 않을 수 도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 ‘인구문제의 딜레마’ 로 정의한다면, 이것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아쉽게도 오늘날 노령화와 관련된 논의는 주로 연금체계에 국한된 사안으로 이해되거나,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환경문제로까지 연결되지 는 않는다. 인구문제의 딜레마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 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도가 오히려 정반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 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구와 지속가능성의 상관성에 관한 한, 노령화 와 환경은 서로 연결시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관 점에서 노령화와 환경 문제를 고려하면서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논의의 효율성을 위해, 노령화에서 비 롯된 지속가능성의 문제는 주로 연금체계로 국한할 것이며, 관련 주제 또한 인구문제로 국한할 것이다. 이 글의 초점은 두 개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필연적으로 인구문제의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195 딜레마에 직면하는지, 만일 아니라면 이러한 딜레마나 나타나는 이유 는 무엇이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 는 데 있다. 아직까지 노령화와 환경문제를 동시에 연구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본 연구는 노령화와 환경문제를 나누어 접근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선 2장에서는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해법이 궁극적으로 출산율 상승이나 여기에 기초한 성장방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 논증될 것이다. 3장에서는 이 해법과 환경문제 의 해법이 충돌하면서 인구문제의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살 펴보고, 4장에서는 인구와 환경의 관계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인 구문제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볼 것이다. 특히 이 딜레마가 단순히 인구문제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기존의 성장방 식과 연결된 사안이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이러한 측면 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 논증될 것이다.

2. 노령화와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

기존의 연금체계는 대부분 급여세(payroll tax)로 재원을 확보해서 노 령 퇴직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pay as you go)에다 기여도 (contribution)와 무관하게 사전에 정해진 연금이 제공되는 확정급여 (defined benefit) 방식이 결합된 형태였다. 이러한 연금체계는 주로 임 금(혹은 소득) 상승률, 인구변화, 실업률(혹은 경제활동참가율)에 따라 재정상태가 결정된다(J. Myles & P. Pierson, 2001: 308∼311). 기존의 경제구조나 성장방식에서 임금상승률과 실업률이 대체로 성장률의 함 수임을 감안하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은 인구변화와 성장률에 따라 결정되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노령화만으로 설

196 동향과 전망 87호 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경우, 노령화 여 부와 무관하게 임금 상승률(실업률)이 지속적으로 하락(상승)함으로써 연금재정이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장률은 인구변화로부터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후자 가 연금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전자의 영향에 비해 훨씬 더 근본적이다. 노령화는 세대 간 자원이전이라는 연금체계의 전제조건을 약화시켜 이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뿌리부터 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노령화를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이 ‘3층 체 계’(three-pillar system)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적용가능성을 인 일 반 구구조가 젊고 일인당 소득이 낮은 경우, 인구구조가 젊지만 노령화 속 논 문 도가 높은 경우, 노령화 사회에 진입한 경우로 각각 나누어 살펴보는 이 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World Bank, 1994: 255∼292). 노령화의 정도나 속도는 출산율, 사망률(혹은 평균수명), 이민정책 에 따라 결정된다(S. H. Altman & D. I. Shactman, 2002: 8). 그렇지만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거나 크게 완화시킬 만한 국가는 소수의 선진대국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국가에 서 노령화는 평균수명의 증가와 출산율의 감소로 설명될 것이므로, 그 현실적인 해법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실 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그러한 방안을 확보했다 고 해도 그 효과가 먼 미래에나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 금개혁은 대부분 출산율을 높이려는 방안과 함께 다양한 대안이 모색 되고 있는데, 후자는 크게 연금체계를 조정하거나 전환하는 방법과 고 용구조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구분된다. 연금체계를 조정하거나 전환하는 방법은 급여세(혹은 연금보험)를 인상하거나 연금급여를 인하하는 방안,2) 또는 부과방식과 확정급여 중 심의 연금체계를 전부(혹은 일부) 적립방식(pre-funding)이나 확정기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197 여(defined contribution) 중심으로 전환하거나 연금운용에 시장원리 를 도입하거나 이를 다원화하는 방안으로 나타난다. 세계은행의 3층 체계 안이 대표적이다. 고용구조와 관련된 방법은 다양한 고용촉진(특 히 여성취업) 방안이나 퇴직연령의 상향조정으로 나타나는데, OECD 의 ‘활동적인 노년을 위한 개혁(active ageing reform)’ 안이 대표적이다 (OECD, 1998).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두 가지 방법이 모두 인구변화 나 성장률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급여세를 인상 하거나 연금급여를 인하하는 방법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연금재정의 위기 가능성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노령화 추세가 지속되는 한 계속적 인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므로 장기적인 효과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방법은 흔히 연금체계를 전환하는 방법과 함께 고려되고 있 으며, 그 중요성 또한 후자가 훨씬 커 보인다. 연금개혁과 관련된 논쟁 이 대부분 확정급여 대 확정기여, 부과방식 대 적립방식, 공적 연금 대 사적 연금, 강제적인 연금체계 대 자율적인 연금체계의 대립을 중심으 로 전개되기 때문이다(W. McGillivray, 2000). 확정기여나 적립방식의 도입은 대부분 연금체계의 다층화를 전제 하며, 이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기존 연금체계의 (전부 혹은 부분적인) 민영화 혹은 시장화를 동반한다. 여기에는 연금체계가 민영화, 시장화 될 경우 연금재정 운용의 효율성이 높아짐으로써 연금체계의 지속가능 성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이 놓여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 논리에 따 를 경우, 이러한 판단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판단의 타당성은 시장실패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 국한되는데, 아쉽게도 연 금을 포함해서 모든 사회보험 영역은 정보문제에서 비롯된 시장실패에 서 자유롭지 않다(N. Barr, 1992).3) 또한 연금체계는 운용의 효율성에 못지않게 연대 혹은 평등이라는 기준도 중요한데, 시장화나 민영화는 그 속성상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

198 동향과 전망 87호 성이 높다. 그래서 연금체계에 민영화나 시장화가 도입될 경우 젊은 시 절의 불평등이 노년시절에도 그대로 이어지거나, 연기금 투자의 수익 성에 따른 불평등이 새롭게 나타날 수도 있다.4) 연금체계의 다층화는 대체로 연금체계의 일부에만 민영화나 시장 화 논리를 적용할 뿐만 아니라 연대나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5)도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비판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6) 연금체계를 적절히 조정할 경우, 효율성과 평등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 는 상황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연금체계가 확보될 수 있다고 해도, 이 체계의 지속가능성은 궁극적으로 성장률에 일 반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연기금 투자의 수익률이 장기적으로 논 문 성장률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의 경제구조나 성장방 식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분배상태나 복지수준은 대체로 성장률에 의 존할 것이며, 연금과 관련된 평등 혹은 연대의 기준의 충족 여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연금체계의 변화는, 비교적 높은 성장률 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만, 효율성과 평등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 는 셈이다. 이러한 조건은 고용구조를 변화시키는 방법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 된다. 이 방법은 주로 실업률을 낮추거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방 식, 또는 퇴직연령을 상향조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연금납부 자 대비 연금수령자의 비율, 즉 부양률(dependency rate)7)을 하락시킴 으로써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이나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을 상승시킬 필요가 있는데, 앞서 언 급했던 OECD의 ‘활동적인 노년을 위한 개혁’이나 ‘일과 노동의 조화 (work-family life balance; J. Fagnani, 2011)’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를 통해 현직 노동자 규모를 노인인구가 증가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은 약화되지 않을 수 있다.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199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부양률을 낮추기는 쉽지 않다. 실업률(경제활동참가율)은 대체로 경제성장률에 반비례(비례)한 다. 그러므로 실업률(경제활동참가율)을 하락(상승)시킴으로써 연금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수적 이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실업률(경제할동참가율)을 하락(상 승)시키기는 어렵다. 이는 퇴직연령을 상향조정해서 노년층의 고용을 확대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 지 않는 한, 노년층의 고용확대가 청년실업이라는 또 다른 실업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년층과 청장년층의 일자리를 분명 하게 구분할 수 있다면, 노년층의 고용확대가 청년실업을 유발하지 않 을 수도 있겠지만, 성장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일자리를 연령별로 분 명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으며, 설령 부분적으로 가능하다고해도 청 년실업을 유발할 가능성이 완전히 부정되기는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확립된 복지제도는 대 체로 성별분업을 전제하며, 1950∼1960년대 황금기의 완전고용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G. Esping-Andersen, 1999: 24∼29). 이는 곧 비교 적 높은 성장률에 힘입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한, 여성의 취업이 실 업률을 상승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1970∼ 80년대 스웨덴처럼 공공부분의 고용확대를 통해 여성취업 욕구를 수용 할 경우, 성장률이 높지 않더라도 여성의 취업문제와 실업문제가 동시 에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방안은 재정위기라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G. Esping-Andersen, 1996: 10∼15). 그러므로 부양률 을 낮추기 위해 여성의 고용확대를 유도하는 방안은, 노인의 고용을 확 대하는 방안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높은 성장률이 지속되어야만 현실 적으로 가능한 대안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서, 일과 가정의 조화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여성의 취

200 동향과 전망 87호 <표 1> OECD 주요회원국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추이(1970∼2010년)

OECD 독일 캐나다 핀란드 덴마크 미국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프랑스 평균

1970 2.03 2.33 2.67 1.83 1.95 2.45 2.50 1.94 2.43 2.48

1995 1.25 1.62 1.69 1.81 1.81 1.98 1.87 1.74 1.70 1.71

2010 1.39 1.67 1.74 1.87 1.88 1.93 1.95 1.98 1.98 1.99

주1: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명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지칭. 자료: OECD Family Database (http://www.oecd.org/statistics/)

일 업률 상승이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 반 논 다. 오늘날 북유럽국가들은 여성의 취업률과 출산율이 모두 높게 나타 문 나는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 이면에는 일과 가정의 조화를 위한 정책이 놓여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취업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의 도입과 함께 육아나 탁아와 관련된 복지제도의 확충이 필수적이다(OECD, 2008). 다만 이러한 정책이나 제도의 도입 또는 확충은 북유럽국가들 에서조차 출산율을 상승시키기보다는 그 하락세를 제어하거나 완화하 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표 1> 참조). 이는 곧 일과 가정의 조화를 위한 정책이 노령화 추세를 제거하거나 역전시키기보다는 이 추세를 완화하거나 억제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일과 가정 의 조화를 위해 복지제도를 도입하거나 확충할 경우 그에 따른 재정 부 담을 피하기 어렵다.8) 이것이 심각한 재정문제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서는 비교적 높은 성장률이 거의 필수적이다. 성장과 복지의 상관성에 변화가 없는 한, 복지제도의 지속적인 확충은 분명 성장의 함수일 가능 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연금체계의 조정이나 변화, 혹은 고용구조의 변화 를 통해 이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큰 효과를 기대하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01 기 힘들다. 노령화 때문에 연금체계의 계속적인 조정이 요구되거나, 이 체계의 중요한 목적인 연대 혹은 평등이라는 기준을 위배하기 쉽다. 설 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위와 같은 시도는 대체로 지속적인 성장, 그것 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성장이 확보되어야만 현실성을 지닐 수 있다. 일과 가정의 조화를 통해 여성의 취업을 유도하는 방안 또한 예외가 아 니다. 성장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육아나 탁아 관련 복지제 도를 마련하거나 확충하기 힘들며, 그래서 여성의 취업률 상승이 출산 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피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 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은, 연대 혹은 평등이라는 기준을 간과하지 않으 면서, 인구의 노령화를 해결하고 성장의 지속가능성까지 확보해야 하 는 문제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다양한 대안을 적절히 결합할 수 있다면, 노령 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해결되거나 적어도 완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대부분의 연금개 혁안은 특정 대안을 강조하기보다 다양한 대안의 결합을 모색한다. 이 를 통해 실업문제나 연금운용의 비효율성 문제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연대(혹은 평등)이라는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 성 문제는 분명 상당부분 완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노령화가 던지 는 질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연금개혁안이 지속 가능한 성장, 그것도 비교적 높은 성장률이 지속되는 상황을 전제해야 만 현실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여전히 유효한 듯 보인다.

202 동향과 전망 87호 3. 지속가능성과 두 가지 인구문제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이 궁극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고 비교적 높은 성 장률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로 집약된다면, 이 두 가지 과제를 동 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그것도 연대와 평등이라는 기 준까지 동시에 충족하거나 적어도 약화시키지 않을 만한 방법이 존재 하는가? 현실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 으며, 찾아낸다고 해도 그 효과는 상당히 먼 미래에나 현실화될 수 있 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계속 노력하되, 적어도 일 반 중단기적으로는 미흡하나마 (연대 혹은 평등이라는 기준을 무시하지 논 문 않으면서)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통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 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노령화가 성장의 지속가능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다. 그렇다면 기술진보가 새로운 축적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한, 노령화 사회에서 비교적 높은 성장률이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H. Siebert, 2002). 이는 곧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두 조건, 즉 출 산율 상승과 성장의 지속가능성이 서로 독립된 사안이라기보다는 오히 려 후자가 전자에 크게 의존하는 것일 수 있음을 함축한다. 또한 기술 진보가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연금체계의 지속가능 성이 자동적으로 확보되지는 않는다. 기술진보는 고용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실업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기존 연금체계는 대체로 고용과 연 계되어 있으므로 기술진보가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기 위해 서는 고용증대효과가 고용감소효과보다 반드시 커야 한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기술진보의 고용증대효과가 고용감소효과보다 컸을지 몰라 도, 최근에는 종종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될 정도로 그 관계가 역전되 었을 수도 있다.9) 그렇다면 오늘날 기술진보가 성장의 지속가능성은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03 몰라도,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까지 보장한다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은 셈이다.10) 흥미로운 사실은 인구의 노령화가 기존의 성장방식과 무관하지 않 다는 점이다. 노령화는 평균수명의 상승과 출산율의 하락으로 설명되 는데, 이 중에서 후자는 기존의 성장방식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기 때문 이다. 익히 알다시피, 경제발전론에서는 인구규모가 후진국의 빈곤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요인으로 취급되며, 그래서 산아제한이 후진국의 경제성장 전략에서 성장과 풍요를 위한 이론적·정책적 과제로 제시된 다(G. M. Meier, 1984: 569∼583). 또한 개인과 사회의 소득결정에서 인적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출산의 기회비용이 상승하기 쉽 다. 그래서 경제가 성장할수록 출산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11) 이렇 게 본다면, 노령화는 기존의 성장방식의 산물이거나 적어도 이와 무관 하지 않은 사안이면서 오늘날에는 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전환된,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의 복지제도는 대체로 성장을 전제한다. 그래서 성장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경우, 고용만이 아니 라 분배 측면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육아나 탁아 관련 복지제도의 도입이나 확충을 통해 여성의 취업이 출 산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해도, 노령화로 성장 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사회에서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령화는 연금체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복지, 성장, 고용 등 거시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인 셈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이 노령 화 문제를 성장과 분배의 상관성 측면에서 언급하면서 출산율 상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G. Esping-Andersen, 1996: 24∼27). 그렇다고 해서 노령화 문제의 해결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이나

204 동향과 전망 87호 복지와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존의 연금체계가 어떤 식으로든 성장·고용과 연결된다고 해서, 경 기침체나 실업이 모두 노령화 문제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출산율 상 승이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연금체 계의 지속가능성만이 아니라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까지 악화되기 쉽 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출산율 상승은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은 대체로 출산율 상승 이 높은 성장률로 이어지거나 고도성장과 동시에 나타날 때 비로소 확 보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곧 연금체계와 관련된 노령화 문제의 일 반 해법이 1950∼1960년대 황금기와 같은 성장-고용-분배의 선순환을 논 문 확보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12) 차이가 있다면, 이러한 선 순환이 출산율 상승과 함께 나타나야 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1950∼1960년대는 고도성장과 완전고용의 시기이기 도 하지만, 환경문제가 심각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자연환경이 파괴되 면 인간의 경제활동은 물론이고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으므로, 환경 친화적인 경제는 인류의 생존과 경제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조 건에 가깝다. 더구나 환경문제는 대체로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이 인 간에게 보복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성장방식 의 변화 혹은 이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1970년대 이후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브룬틀란트 보고서에 따르면, 과도한 환경파괴를 동반하는 성장방 식은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지속불가 능한 것일 뿐더러 현세대의 풍요로움을 위해 미래세대를 희생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지속가능한 개발은 성장과 환경의 조화를 통 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함께 세대 간 형평성을 보장해 준다(WCED, 1987: 43). 이렇게 볼 때, 환경문제는 외형상 노령화 문제와 너무도 비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05 슷하다. 두 문제 모두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이자 지속가능성의 문제이 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다. 노 령화 문제는 1950∼1960년대처럼 성장률이 높을수록, 그래서 고용창 출능력이 클수록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이 (1950∼ 60년대처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지속불가능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또 다른 지속불 가능성을 야기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령화 문제의 해법은 단순히 성장 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성장은 출산율 상승을 동 반하는,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해서 출산율 상승을 통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출산율은 높을수록 좋다. 그런데 브룬틀란트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규모가 생태계의 생산역량과 일치하는 수준에서 안정될 때, 지속 가능한 개발이 한층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WCED, 1987: 56). 이 는 곧 환경과 성장의 조화, 즉 ‘지속가능한 개발’이 인구와 환경의 조화 를 전제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이를 부인할 수 없다면, 지속가능성과 인구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노령화 문제가 주로 인구구조(연령별 분포) 와 관련된다면, 환경문제는 주로 인구규모(절대적 크기)와 관련된다. 그래서 전자는 가급적 높은 출산율을 요구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높은 출산율은 인구규모가 ‘생태계의 생산역량과 일치하는 수준에서 안정’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중적인 인구문제는 딜레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 다.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인다면 연금체계의 지속 가능성이나 성장과 복지의 지속가능성은 확보될지 몰라도 ‘지속불가능 한 개발’이 초래될 수 있다. 이와 달리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 와 환경의 조화를 강조할 경우, ‘지속가능한 개발’은 확보될지 몰라도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206 동향과 전망 87호 하나의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또 다른 인구문제를 초래하 는, 즉 하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또 다른 지속불가능성을 초래 하는 역설에 직면하기 쉽다. 물론 성장이나 인구증가가 언제나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 다. 일인당 자원소비량을 감소시키고 오염문제까지 완화하거나 해결 하는 방법이나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면, 성장과 인구증가가 환경문제 를 유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이러한 방법은 흔히 성장의 산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이 환경보전에 유리한 조건일 수도 있다. 그렇 지만 과거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 일 반 다. 일인당 자원소비량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해도 그것이 논 문 자원고갈의 가능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힘들 뿐더러, 자연환경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환경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하려는 방법이나 기술이 또 다른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 문이다. 그렇다면 노령화는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 다. 직접적으로는 성장의 지속가능성에서부터 고용·분배 문제까지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문제까지 얽 혀 있다. 물론 노령화와 관련된 연금 문제가 환경문제보다 심각하므로, 인구문제의 딜레마를 인정하더라도 좀 더 심각한 문제부터 해결할 필 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또한 노령화는 기본적으로 인구와 관련 된 문제이지만, 환경문제는 인구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으며 인구증가의 영향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영향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 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령화와 환경의 상관성이 부정될 수는 없 다. 인구문제의 딜레마를 무시할 수 없는 한,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지속불가능한 개발로 이어지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연금 체계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07 다. 이는 곧 연금문제를 환경문제와 분리시켜 접근할 경우, 단기적으로 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역효과의 가능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암 시한다. 따라서 노령화와 관련된 연금 문제는,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 을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환경문제와 연결시켜 살펴볼 필요가 있 는 셈이다.

4. 인구문제의 딜레마와 지속가능성

노령화 문제의 해법이 출산율 상승과 함께, 아니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확보하는데 있다면, 이것이 환경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가능 성은 인구문제의 딜레마를 해결함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개발’을 확보 하는 데 있다. 과연 이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을까? 맬더스주의자들 (Neo-Malthusian)의 견해를 수용할 경우,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 은 유한한 자연환경 때문에 성장이 무한히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이 점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할 경우, 지나친 환경파괴로 더 이 상 성장이 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환경문제다.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개발은 유한한 자연환경에 맞추어 성장률을 조정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이러한 견해는 환경주의자들 사이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만 맬더스주의자들은 환경문제의 가장 중요한 혹은 유 일한 원인으로 인구증가를 꼽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G. Hardin, 1968). 브룬틀란트 보고서는 인구증가를 환경문제의 가장 중요하거나 유 일한 원인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보고서는 빈곤이나 분배 문제까 지 환경문제의 원인으로 거론할 정도로(WCED, 1987: 40∼41), 이 문제 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한다. 이를 수용할 경우, 맬더스주의처럼 주로

208 동향과 전망 87호 인구증가에서 환경문제의 원인을 찾는 견해는 너무도 단순한, 그래서 틀릴 수도 있는 견해에 가깝다. 그렇지만 환경문제의 원인이 아무리 다 양할지라도, 인구와 환경의 관계에 관한 한 맬더스주의자들의 판단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브룬틀란트 보고서에서 조차,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는 ‘인구규모가 생태계의 생산역량과 일치하는 수준에 서 안정’될 필요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을 정도다.13) 사정이 이러하다면, 지속가능한 개발은 ‘생태계의 생산역량’에 맞추 어 성장률과 함께 인구규모까지 조절해야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이렇 듯 인구와 환경의 조화가 지속가능한 개발의 유일한 조건은 아닐지라 일 반 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면, 지속가능성 문제가 인구문제의 딜레마를 논 문 피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되는데, ‘생태계의 생산 역량’에 맞추어 성장률과 인구규모를 조절하면서 연금체계의 지속가능 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그 하나라면, 비교적 높은 성장률과 인구증가율 을 보이면서도 지속가능한 개발을 확보하는 방법이 다른 하나다. 첫 번째 가능성부터 살펴보자. 자연환경이나 생태계가 가용자원을 무한히 공급할 수 없는 한, 생태계의 생산역량에 맞추어 성장률을 조절 할 경우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은 부정되기 쉽다. 그렇지만 무한한 성장 의 가능성이 부정된다고 해서, 실업 혹은 분배 문제가 필연적으로 나타 날 만한 이유는 없다. 적절한 복지제도가 존재한다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무한한 성 장이나 인구증가의 위험성이 강조될 경우 성장률은 낮아지겠지만, 적 절한 복지제도가 존재한다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은 약화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성장의 지속가능성보다 적절한 복지제도가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더 필요한 조건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실 업 혹은 분배 문제가 주로 성장률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이 크게 변하지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09 않는 한, 성장률이 낮은데도 적절한 복지제도를 통해 연금체계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되는 상황을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두 번째 가능성은 자연환경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할 경우,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구와 환경의 조화가 무시되는 것도 아니다. 자연환경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 용함으로써 1인당 자원소비량이 줄어든다면, 인구가 증가하더라도 총 자원소비량은 오히려 감소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구문제의 딜레마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높은 성장률과 인구증가율이 지속 가능한 개발과 공존함으로써 인구구조에서 비롯된 연금문제와 인구규 모에서 비롯된 환경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 능성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외부효과의 내부화’ 방법에서 가장 잘 드러 난다. 익히 알다시피,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환경문제는 ‘외부효과’로 정의 된다. 이 효과는 자연환경에 사유 재산권이 설정되지 않아서 가격 메커 니즘이 적용되지 못한 결과로서, 비효율성의 문제다. 이는 곧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환경문제의 대안임을 함축한다. 여기서 ‘외부효과의 내부 화’는 맬더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구증가와 ‘지속가능한 개발’의 공존 가능성까지 입증해 주는 중요한 근거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은 환경 과 성장의 조화에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여기서는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이 부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환경이 무한하다고 보 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환경의 유한성이 ‘희소성’ 제약조건과 다르지 않으며, 설령 다르다 해도 환경자원과 인공자원의 대체가능성을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판단할 뿐이다(R. Solow, 1974). 이러한 진단 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면, 연금문제의 해법과 환경문제의 해법이 충 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인구문제의 딜레마도 더 이상 문제되지 않 는다.

210 동향과 전망 87호 이에 대해 환경주의자들(맬더스주의자를 포함해서)은 자연환경을 희소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해도 그 희소성은 인공자원의 희소성과 다르 다고 주장한다. 인공자원과 달리, 환경자원은 고갈가능성(exhaustibility) 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경우, 환경자원 과 인공자원은 대체가능하지 않으며,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부분적이다(N. Georgescu-Roegen, 1986: 250∼252). 이는 곧 ‘외부효 과의 내부화’를 이용해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은 비용과 편익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일 반 전제한다. 그런데 외부효과의 내부화는 시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진행 논 문 되므로 비용과 편익에 대해 ‘추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오류를 피하기 어 렵다(N. Hanley & C. L. Spash, 1993: 58∼89). 여기에 자연환경은 너 무도 복잡해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주어진 환경과 관련된 비용이나 편익을 정확히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외부효과의 내부화’에 이용되는 효율성 논리 가 근본적으로 자연환경이나 생태계의 특성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점 이다. 효율성 논리는 양적 판단이며 시간에 대해 가역적이지만, 자연환 경이나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비가역적이다. 비가역성은 질적 변화를 동반한다. 파괴된 자연환경에 대해 완전한 보상이 불가능 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연환경을 양적 기준으로 환 원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러한 질적 변화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외부효과의 내부화가 환경 관련 기술의 발달을 유도함으로써 환경문제 의 해결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연환경의 복잡성과 비가 역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기술발달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힘들 뿐더러, 또 다른 환경문제를 유발할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11 다.14) 그렇다면 효율성 논리로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불충분할뿐 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과거보다 환경·생태친화적인 내용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높은 성장률과 인구증가율을 유지하면서도 환경보전 이 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은 너무도 순진한 믿음에 가깝다. 그런데도 신고전파 경제학은 기존의 효율성 논리를 거의 그대로 자연환경이나 생태계에 적용하면 환경문제가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 서 성장문제와 환경문제는 모두 효율성의 문제라는 점에서 서로 구별 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믿을 경우, 성장 혹은 이와 관련된 효율성 논리 는 지속가능성을 판가름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흥 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한계가 결코 우연의 산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 서 지적했듯이, 기존의 성장방식에서 성장 혹은 효율성 논리는 언제나 거의 모든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신고전파 경제 학(을 중심으로 한 거의 모든 경제학)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않으며, 그 렇기 때문에 경제의 효율화가 성장·고용·분배 문제만이 아니라 환경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이해한다.15) 이러한 접근은 문제의 원인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언제나 문제의 원 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지속가능한 개발’ 은 기존의 성장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런데 이러한 반성은 단순히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에 국한되 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출산율 이 상승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일과 가정의 조화를 위한 복지 제도의 도입이나 확충이 요구된다. 그런데 기존의 성장방식이 지배하 는 한, 노령화로 성장률의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출산과 육아를 위

212 동향과 전망 87호 한 복지제도가 도입되거나 확충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는 어 렵다. 이는 곧 기존의 성장방식에 대한 반성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 에도 기여할 수 있는 조건임을 암시한다. 기존의 성장방식의 변화나 이에 대한 반성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 니다. 성장률에 따라 고용과 복지 수준이 결정되던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기존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인구추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노령화에 따른 저성장은 이미 미래의 필연적인 모습에 가깝다. 이는 곧 성장-고용-분배에 관한 기존의 결정방식이 앞으로는 점점 더 유지되 일 반 기 힘들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장 중심의 경제구 논 문 조를 고집하는 것은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성장의 지속가능성조차 확보하기 힘든 선택일 수 있다. 성장률의 하락이 실업 률의 상승과 복지축소로 이어질 것이며, 이와 함께 출산과 육아에 관한 복지제도까지 축소된다면 출산율이 더 떨어지면서 성장률을 더욱 떨어 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인구의 노령화는 성장을 통해 고용·분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 능성과 함께 인구증가에 따른 환경문제의 발생 가능성까지 떨어뜨렸다 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장방식에 대한 반성이 인구문제의 딜 레마보다 훨씬 더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 아니 좀 더 심하게 표현하자 면, 인구문제의 딜레마 자체가 이미 기존의 성장방식에서 비롯된 사안 일지도 모른다. 앞서 보았듯이, (맬더스주의를 수용해서) 저성장과 산 아제한을 선택하더라도 빈곤 혹은 고용 문제를 해결해주는 적절한 복 지제도가 존재한다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지만, 이 러한 방법을 현실화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기존의 성장방식에 있기 때 문이다. 이는 결국 연금과 환경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겉으로는 인구문제의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13 딜레마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성장방식 또는 성장 중 심의 경제구조에 관한 문제로 집약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어쩌면 노령화 문제나 환경문제가 모두 기존의 성장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론일 수도 있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도 쉽지 않다면, 성장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 복지와 환경에 대 해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인구의 노령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지 속가능성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 겠다.16) 이는 분명 쉽지 않은 과제이며, 자동적으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성장방식이 지배하는 한, 인구가 감소하거나 성장률이 낮아지 는 상황에서도 환경파괴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아울러 성장-고용 -분배의 선순환이 작동되던 1950∼1960년대에 상당히 심각한 환경문 제가 나타났음을 감안할 때, 복지제도가 언제나 환경친화적인 것도 아 니다. 그렇다면 연금과 환경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성장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 고용과 분배, 출산과 육아를 위한 복지제도를 도입· 확충하되, 이에 따른 경제구조가 ‘생태계의 생산역량’에 부합되는데서 그 해답을 찾아야 것이다. 그래서 성장과 복지만이 아니라, 환경까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경제구조를 확보하는 데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 이다.

5. 결론

노령화가 성장과 복지의 지속가능성에서부터 ‘지속가능한 개발’까지 연결된 사안이라면, 여기서 주로 연금개혁의 필요성만을 추론하려는 시도는 너무 단순하며,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시도는 인구

214 동향과 전망 87호 문제의 딜레마에 직면하기 쉬우며, 그래서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 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금문제와 환경문제를 지속가능 성 차원에서 동시에 고려하는 것은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 도 반드시 필요한 접근일 수 있다. 연금문제와 환경문제를 동시에 고려할 때, 인구와 환경의 조화가 인구증가의 억제를 전제한다면 인구문제의 딜레마는 거의 필연에 가깝 다. 그렇지만 고용문제나 분배문제를 해결해 주는 복지제도가 존재한 다면, 인구증가가 억제되어 성장률이 낮아질지라도 연금체계나 복지제 일 반 도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것이 다시 성장 논 문 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곧 맬더스주의처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산아제한을 강조한다고 해도,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수도 있음을 함축한다. 다만 여기서는 출산장려를 허용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비해 좀 더 많은 복지비용이 수반될 수도 있으므로, 인구문제 의 딜레마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기는 쉽지 않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성 장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되면서 연금체계나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설령 기술혁신이 새로운 성장의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것이 고용이나 분배 문제까지 완전히 해결할 수 있 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출산율의 상승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 황에서, 지속가능성의 해법을 성장에서만 찾는 것은 위험하다. 아니 복 지제도가 출산율을 높여주지는 못할지라도 그 하락추세 만큼은 막아주 거나 완화시킬 수 있다면, 기존의 성장방식에 대한 반성은 노령화 문제 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곧 출산율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인구문제의 딜레마보다 오히려 기존의 성장방 식 혹은 성장 중심의 경제구조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음을 함축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15 한다. 성장의 필요성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복지비용 때문에 어느 정 도의 성장은 불가피한 것일 수 있지만, 성장이 거의 모든 사회경제문제 의 해법일 수 있다는 판단은 위험하다. 성장과 환경의 조화는 결코 간 과될 수 없는 조건이며, 빈곤·분배·고용 문제가 언제나 성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노령화 사회에서 그 러한 성장은 더 이상 현실화되기 어렵다. 기술혁신이 새로운 성장가능 성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고용감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한, 지속가능성의 해법을 성장에서 찾는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노령화는 우리에게 복지와 환경 측 면에서 기존의 성장방식에 대한 좀 더 철저한 재검토 혹은 반성을 요구 하는 사안에 해당된다. 이러한 재검토 혹은 반성은 단순히 1950∼1960년대의 황금기와 같 은, 성장과 고용 혹은 분배의 호순환을 확보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령화 시대에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복지제도 의 보완 혹은 조정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개발’ 또한 성장 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결코 간과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사회경제구조의 필요성이야말로 노령화 사회가 우리에게 던지 는 가장 큰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점에서 고령화는 우리에게 저 성장 기조 아래서도 고용과 복지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그래서 연금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이 동시에 보장되는 사회경제구조를 새롭게 확보하 는 과제를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2. 08. 31 접수/ 2012. 11. 23 심사/ 2012. 12. 26 채택

216 동향과 전망 87호 주석

1) 노령화 문제가 제기된 후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 또한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논의의 효율성을 위해, 이 개념을 환경문제의 대안을 지칭하는 의미로만 사용할 것이다.

2) 참여정부 시절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쟁이나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역사적 의미나 특징에 대해서는 오건호(2007)를 참조하라.

3) 연기금의 지배구조 문제까지 고려하면, 연금체계의 시장화나 민영화는 훨씬 더 일 반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다(전창환, 2006). 논 문 4) 기존의 연금체계가 평등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고소득자가 저소득 자에 비해 평균수명이 높다는 점에서, 기존의 연금체계는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일 수 있다. 이는 곧 연대나 평등을 위해서라도 연금체계에 민영화나 시장 화 논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E. James, 1997). 그렇지만 이러한 불평 등은 조세기반을 확대하거나 조세체계를 변화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 으므로(C. Gillion, 2000), 민영화나 시장화의 도입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5) 참여정부 시절에 국민연금법 개정과 함께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이 여기에 해당된다.

6) 스티글리츠와 오르짜그는 훨씬 더 가혹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에 따르 면, 연금체계의 민영화나 시장화는 개념상의 오류를 안고 있으며, 그래서 이러한 개 혁안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은 신화나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 R. Orszag & J. E. Stiglitz, 1999).

7)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생산활동이 가능한 인구(15∼64세) 대비 아동(15세 미만) 과 노인(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지칭하지만, 이 글에서는 노인 인구에 국한된 의 미로 사용될 것이다.

8) 예를 들어, 프랑스는 합계 출산율이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93년 에 1.63명으로까지 떨어졌다가 1994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GDP 대비 가족지원 정책의 지출 비중이 OECD 최고수준인 3.08%(2005년 현재) 에 이른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안종범, 2010: 61∼62). 또한 덴마크와 스웨덴은 일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17 과 가정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모범적인 사례에 속하지만, 높은 조세부담률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두 국가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OECD, 2008: 5).

9) 피어슨은 오늘날 복지축소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에 서 찾는데, 그 이유는 고용문제에 있다(P. Pierson, 2001: 81∼89).

10) 노령화가 노동력 부족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는 기술진보가 실업을 유발 하는 가능성보다 인력부족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기술변화 추세가 변하지 않는 한, 향후 인력부족 문제는 주로 적합한 기술인력 의 부족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것이 임금과 고용의 질에서의 격차 확대로 이어질 것 이다. 이는 향후 기술진보에 입각한 성장이 연금체계의 지속가성을 위한 또 다른 기 준인 연대와 평등을 위배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문 제들이 기존의 성장주도형 분배체계나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적 복지제도만으로는 해 결되기 힘들다는 점이다(전병유, 2006).

11) 루카스(R. E. Lucas)에 따르면, 내생적인 인적자본 증가가 성장의 주요 원천일 경우 경제성장이 출산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좀 더 많은 자원 과 시간을 투입하기 위해 자녀수를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최경수·문형 표·신인석·한진희 편, 2003: 39∼40).

12) 그렇다고 해서 1950∼60년대와 같은 경직적인 고용구조까지 강조할 필요는 없 다. 일과 가정의 조화를 위해서라도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 지만 지나친 유연화는 ‘노동 빈곤층(working poor)’을 양산해서(G. Myles, 1996: 131∼134), 연금체계의 또 다른 목적인 연대와 평등에 위배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과 가정의 조화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적절한 복지제도와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동반하는, 그래서 평생고용과 소득안정을 동시에 추구하 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3)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맬더스주의를 비판하 면서 환경문제의 주요 원인을 분배 불평등에서 찾는다(J. Martinez-Alier, 2012). 그렇지만 이들도 환경문제의 주요 원인에 대해서는 맬더스주의를 비판하지만, 인구 증가가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14) 조금 더 심하게 말하자면, 성장논리나 이와 관련된 과학기술은 환경문제의 대안 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원인에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E. F. Schumacher, 1993; B. Commoner, 1971).

15) 이는 기존의 경제구조나 경제학이 대체로 성장 중심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다

218 동향과 전망 87호 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16) 현재의 인구변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한 목표일 수 있 으며, 그래서 앞으로는 저성장 상황에서 고용 및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확보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일부 생태주의 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탈성장(degrowth)’ 개념은 매우 흥미롭다. 이 개념은 성장 중심의 논리나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전제하는데, 이것의 구체적인 의미와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M. Bonaiuti(2012)를 참조하라.

일 반 논 문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19 참고문헌

안종법(2010). 󰡔저출산·고령화시대의 재정정책 과제󰡕. 서울: 국제무역경영연구원. 오건호(2007). 국민연금법 개정안 평가 및 연금정치. 󰡔동향과 전망󰡕, 71호, 190∼ 204. 전병유(2006). 고용의 위기와 고용전략의 모색. 󰡔동향과 전망󰡕, 66호, 32∼62. 전창환(2006). 연금지배구조의 정치경제학: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 󰡔동향과 전망󰡕, 66호, 211∼239. 최경수·문형표·신인석·한진희 편(2003). 󰡔인구구조 고령화의 경제적 영향과 대 응과제(Ⅰ)󰡕, 서울: 한국개발원.

Altman, S. H. & Shactman, D. I.(2002). Overview: Issues and Options for an Aging Population. S. H. Altman & D. I. Shactman(ed.), Policies for An Aging Society. The Johns Hopkins Univ. Bar, N.(1992). Economic Theory and the Welfare State: A and Interpretation.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XXX, 741∼803. Bonaiuti, M.(2012). Degrowth: Tools for a Complex Analysis of the Multidimensional Crisis. Nature Socialism, 23(1), 30∼50. Commoner, B.(1971). The Closing Circle. 송상용 역(1982). 󰡔원은 닫혀야 한다󰡕. 서울: 전파과학사. Esping-Andersen, G.(1996). After the Golden Age? Welfare State Dilemmas in a Global Economy; in G. Esping-Andersen(ed.), Welfare State in Transition. London: Sage. Esping-Andersen, G.(1999). Social Foundations of Postindustrial Economies. Oxford Univ. Fagnani, J.(2011). Work/Family Life Balance: Future Trends and Challenges. OECD/IFP Project on the “Future of Families to 2030”. Paris: OECD. Georgescu-Roegen, N.(1986). Man and Production; in M. Baranzini & R. Scazzieri(ed.), Foundations of Economics-Structures of Inquiry and Economic Theory. Oxford: Basil Blackwell. Gillion, C.(2001). The development and reform of social security pension: The Approach of the International Labor Office. International Social Security Review, 53(1), 35∼63.

220 동향과 전망 87호 Hanley, N. & Spash, C. L.(1993). Cost-Benefit Analysis and the Environment. Hants & Verment: Edward Elgar Hardin, G.(1968). The Tragedy of the Commons. Science, 162, 38∼59. James, E.(1997). Pension Reform: Is There An Efficiency-Equity Trade-Off?,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s, 1767. Martinez-Alier, J.(2012). Environmental Justice and Economic Degrowth: An Alliance between Two Movements, Capitalism Nature Socialism, 23(1), 51∼73. McGillivray, W.(2000). Pension reform: Where are we now?. International Social Security Review, 53(1), 3∼10 Meier, G. M.(1984). Leading Issues in Economic Development, 4th(ed.), Oxford Univ. 일 반 Myles, G.(1996). Markets Fails: Social Welfare in Canada and the United 논 States; in G. Esping-Andersen(ed.), Welfare State in Transition. Sage, 문 London. Myles, J. & Pierson, P.(2001). The Comparative Political Economy of Pension Reform; in P. Pierson(ed.), The New Politics of the Welfare State. Oxford Univ. OECD(1998). Maintaining Prosperity in an Ageing Society. OECD, Paris OECD(2008). Matching Family and Work Committment. http://www.oecd.org/els/familiesandchildren/39689983.pdf Orszag, P. R. & Stiglitz, J. E.(1999). Rethinking Pension Reform: Ten Myths About Social Security Systems, World Bank Conference, Sept, 14∼15. Pierson, P.(2001). Post-Industrial Pressures on the Mature Welfare States; in P. Pierson(ed.), The New Politics of the Welfare State. Oxford Univ. Schumacher, E. F.(1993). Small Is Beautiful. London: Vintage Books. Siebert, H.(2002). Economic perspectives for Aging Societies, H. Siebert(ed.), Economic policiy for Aging Societies, Berlin: Springer. Solow, R.(1974). The Economics of Resources or the Resources of Economics. American Economic Review, 64(2), 1∼21. WCED(1987). Our Common Future. Oxford Univ. World Bank(1994). Averting the Old Age Crisis. Oxford Univ.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21 초록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인구문제의 딜레마를 중심으로

이상호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노령화는 환경문제와 비슷하지만, 인구와 관련된 해법은 서로 상충된다. 노령화 문제는 연금체계나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출산장려 와 높은 성장률을 요구하지만, 환경문제의 경우 이러한 해법은 ‘지속불가능한 개 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노령화를 환경문제와 분리시켜 접근할 경우, 인구 문제의 딜레마에 빠짐으로써 연금체계나 성장의 지속가능성 마저 보장할 수 없 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금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지 속가능한 개발 기준을 충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환경에 맞추어 성 장률과 출산율을 조절하면서 적절한 복지제도를 통해 실업문제와 분배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이 가장 적절한데, 이러한 방법은 거의 모든 사회경제문제의 해법 을 성장에서 찾던 기존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야만 현실화될 수 있다.

주제어 ∙ 노령화, 지속가능성, 인구문제의 딜레마

222 동향과 전망 87호 Abstract

Aging and Sustainability

Focused on The Dilemma of Population Problem

Sang-Ho Lee 일 반 논 문

This essay studies on the relation of aging problem and sustainability and is intended to the danger of the approach that aging is mainly the problem of pension system. aging problem is related not only to the crisis of pension system, but also to crisis of Growth and Welfare in general, Sustainable Development. therefore, aging is the problem that requires the reflection on the relation of population, growth, welfare, environment. without respect to this point, discources of the aging problem are limited to crisis of pension system is very dangerous. because sustainability of pension system requires encouragement of childbirth, but sustainable development does not. Therefore discourses of the aging problem are limited to crisis of pension system is got into dilemma of population problem, or is resulted in the un- sustainable development by valuing growth above everything else, and more likely not to guarantee the sustainability of pension system.

Key words ∙ Aging, Sustainability, dilemma of population problem

노령화와 지속가능성 223 일반논문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와 연속성?*

1)2)

조효래**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머리말

이명박 정부 집권 5년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민주주의의 후퇴, 경제적 양극화, 남북관계의 경색에 대해서 많은 논란 과 비판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당시에는 자유주의적 정부 10년 만에 복귀한 보수정권이라는 점에서, 노동정책의 변화가 클 것으로 예 측되었고, 노사관계의 퇴행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IMF이후 10년의 기 간 동안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쳤고, ‘민주’정부하의 1997년 노 동체제가 노동시장의 분절과 사회적 양극화를 특징으로 하는 체제였다 는 점에서, 노동정책에서만은 변화보다는 연속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 이 우세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수적 정권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폭과 강도가 얼마나 확대될 것이며, 사용자 편향적인 반노동적인 노사 관계로의 재편이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

* 이 논문은 2011년 창원대학교 학술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 [email protected]

224 동향과 전망 87호 중되었고 우려가 팽배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반노동적인 성격과 권위주의적 정책집행을 특징으로 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축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이라는 기조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용자 편향성과 노동에 대한 배제, 억압의 강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점에서 과거 권위주의체제의 노동정책으로 퇴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노동정책은 효 과적으로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사 관계는 안정되고 있으며,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법적, 제도적 틀은 현장 일 반 노사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장수준에서 노사 간 권력 논 문 관계는 크게 변화되었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제 도와 규칙들이 새롭게 도입되고 있다. 자유주의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 해 격렬히 저항했던 노동조합들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별 다른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침묵하거나 각개격파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유주의 정부 하에서 타협과 절충을 시도했던 노동정책이 노동조 합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던 반면, 더 권위적이고 더 억압적인 노동정 책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면서 노사관계와 노동시 장을 재편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에서는 적극적인 갈등조정 과 사회통합 노력이 없었고 오히려 노동 억압과 권위주의적 정책개입 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가 안정화되고 노사관계를 규 율하는 법적 제도화는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 능했는가? 이전 정부의 노동정책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 변 화의 함의는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시장주의적 정책기조와 권위주의적 정책집행 이라는 특성이 두드러진다. 자유주의정부 하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25 이 광범위하게 추진되었고, 노동쟁의에 대한 물리적 억압이 이루어졌 다는 점만으로 정책의 연속성만을 강조하기에는 정책의 추진과정이나 노동에 미치는 효과, 노사관계 환경의 새로운 제도화라는 점에서 상당 한 차이가 있다. 이는 이전 정부의 노동정책과 비교해 신자유주의적 노 동정책의 연속성, 권위주의적 억압의 강화라는 차별성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글은 먼저, 노동정책에 대한 기존연구들을 정리하고 문제를 보 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의 기조와 구체적 내 용을 검토하고, 이전과 비교하여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노동배제적 정책이 상대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한다.

2. 기존연구 검토와 문제를 보는 관점

1997년 이후 노동정책의 성격에 대한 기존연구들은 주로 제솝의 전략 관계국가론에 기대어 헤게모니프로젝트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해왔 다.1) 한종희·하재룡(2005)은 정부의 노동정책이 1987∼1989년의 국 민통합 헤게모니전략, 1990∼1996년까지 국민분리 헤게모니프로젝트 로의 전환,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담론에 힘입어 국민분리 헤게모니전략에 기초한 시장순응적 노동정책으로 변화했다고 평가하 고 있다. 노중기(2010) 역시 1997년 이후 노동정책의 변화를 조직노동 일부를 포섭하는 민주화프로젝트와 노동시장 유연화와 법치주의 강화 를 핵심으로 하는 선진화프로젝트라는 두 개의 국가프로젝트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동시적으로 진행된 이 두 프로젝트가 법치주의 를 통해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2) 그는 헤게모니 통제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민주정부의 연속성에 주목해야 하

226 동향과 전망 87호 며,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1987년 노동체제의 종결과 종속적 신자 유주의 노동체제의 제도적 완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하고 있 다.(노중기, 2006; 노중기·전병유, 2010) 조돈문(2006)은 노동정책이 축적체제의 효율적 가동과 안정적 재 생산을 위해 사회경제주체들의 행위양식을 규제하는 조절양식의 한 부 분이기 때문에,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의 제도적 상보성을 위해서는 노 무현 정부에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가 폐기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 다. 김성희(2008) 역시 민주화 이후 노동정책을 개혁의 포기와 유연화 강화의 일관된 흐름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특히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 일 반 책을 개혁적 의제설정과 비개혁적, 반개혁적 실현으로 요약하고 있다. 논 문 박태주(2008)도 노무현 정부가 노사관계 개선을 법제도의 개선으로 축 소시킴으로써 노동정책에서의 타협모델을 법치주의로 전환시켰고, 무 분별한 신자유주의 수용과 노동배제적 노동정책으로 귀결되었다고 평 가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대체로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모순적 성격과 반노 동적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축적체제하에서 노무 현 정부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가 반노동적인 노동정책으로 변화된 이 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축적체제와의 조응성이나 노동체제의 연속 성과 같은 구조적 요인을 강조하는 입장(조돈문, 2006; 노중기, 2010) 과 행위자들의 구조화된 성향이나 전략선택을 강조하는 입장(신원철, 2004; 박태주, 2008)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의 입장이 주로 축적체제 와 조절양식의 조응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1997년 이후 신자유주 의노동체제의 연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정권교체에 따른 노동정 책의 변화와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 인다. 때문에 노중기(2010) 역시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개혁의제의 소 멸, 참여·합의적 노동정책의 중단, 사회복지 확대의 폐기 등 질적인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27 차별성이 있다고 지적하지만, 그 차이는 우연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포착할 것을 강조 하거나, 신자유주의의 상이한 시대와 국면을 구분하려는 논의가 보다 유용해 보인다(윤상우, 2008; 임운택, 2010).3) 윤상우에 따르면, 신자 유주의체제는 폭넓은 스펙트럼과 유연성을 지니면서 시기별로 그 특성 과 내용을 조정하면서 진화해 왔고, 공간적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보인 다.4) 신자유주의가 이처럼 다양한 경로와 정책조합을 낳는 것은 국가 행위자의 역할, 제도와 관행의 경로의존성, 국내외 이익집단의 입장과 행위양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임운택 역시 신자 유주의의 목표와 수단, 헤게모니블록의 범위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발 전유형을 보수적-교조적 신자유주의, 사민주의적 신자유주의, 탈시민 적 신자유주의(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를 구분하고 있고, 이를 세계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의 변화와 1997년 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에 대 응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신자유주의가 그 전개국면과 정치적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하위유형으로 분화될 수 있고, 국가정책에서 동의와 억 압의 결합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노동정책에서도 변화와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1997년 이후 노동정 책의 연속성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축적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 의 연속성과 함께 계급권력 회복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서 신자유 주의의 하위유형을 구분하는 방식이 유용하다. 축적체제로서의 신자 유주의,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형성과 확대에 상응하는 조절양식으로서 노동정책의 연속성을 파악하는 한편, 이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계급투 쟁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계급적, 정치적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라 정책 패키지의 변화나 노동정책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역사적, 제도적 지형 속에서 노사정 행위자들의 권력관계와

228 동향과 전망 87호 전략 선택의 산물로서 노동정책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 정 시기 노동정책의 결정과 집행에는 전략적 행위자들의 권력관계 및 전략 선택, 경제 환경의 변화나 축적상의 위기, 정권의 이념적 성격과 정치적 연합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민주화와 권력관 계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노동기본권 및 노사관계 제도 개혁을 둘러싼 각축, 새로운 축적전략을 둘러싼 각축, 노동시장 유연화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둘러싼 각축이 정치변동에 따른 권력관계의 변화 와 해당 시기 노사정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어떻게 매개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 반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정책이 노사관계의 역사적, 제도적 특성에 주 논 문 목하는 시각이 보다 유용할 수 있다(신원철, 2004). 노사관계의 역사적, 제도적 특성을 강조하는 시각은 노동정책의 연속성과 경로의존성. 특 정시기의 노동정책을 그 이전 시기 노동정책과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노동정책은 노사정간의 투쟁과 협상과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데, 행위자들의 목표와 수 단 선택은 이전 시기에 제도화된 법과 제도, 관행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 다. 각 시기 노동정책은 이전 시기 권력관계와 전략선택의 산물인 법 제도, 관행의 지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역시 노사관계 법제도의 유산, 계급적 정 치적 권력관계의 변화, 노사정 행위자의 전략 선택이라는 시각에서 접 근할 수 있다. 이 글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민주화 국면에서 약화된 ‘계급권력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1987년 노동체제 하에서 계급권력 회복을 위한 자본의 요구가 1997년 노동법을 통해 그 윤곽을 드러냈고, 축적체제 전환이 분명해진 민주정부 10년간의 노사 각축은 노동정책의 모순적 성격과 노동배제적 유연화 정책으로 귀결된 반면,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계급권력관계의 변화를 기반으로 일관되게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29 노동조합의 무력화와 노동시장의 전면적 유연화를 추진했던 것이다.

3.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의 전개와 주요내용

2008년 3월의 노동부 업무보고는 이명박 정부의 노동관련 국정과제로 ① 노사관계 선진화, ② 활력 있는 노동시장, ③ 따뜻한 노동행정을 제시 하고, 이중에서 ‘노사관계 선진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법·제도와 관련하여, ① 복수노조·노조 전임자 관련 정부 입법 추진, ②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파견 허용업무 확대, 사내하도급 대책 마련, 차별시정제도 개선 등 비정규직법의 보완 추진, ③ 노동조합 설 립, 부당노동행위, 각종 신고의무 관련 제도개선 등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위한 제도 개선을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제시했다. 또한 정부는 노사관계 갈등에 대한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이를 ‘노사관 계 법치화’로 개념화 했다. 그것은 곧 “법과 원칙에 대한 준수 관행을 확 립하는 것으로, 법을 지키는 노사 간 자율협상을 유도하되 기업의 불투 명한 경영행위 및 불법 노사분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법을 집행한다 는 정책기조”라고 정의했다. 노동시장과 관련해서는 연공 중심에서 직 무·성과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임금, 근 로시간, 고용의 유연화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행정의 규제 개혁 으로 최저임금제 합리화와 근로시간의 탄력성 제고, 비정규직 제도 개 선, 산업안전 보건기준의 합리적 조정과 행정부담 감축, 민간 직업소개 사업 규제 완화, 직업훈련 시장의 진입장벽 제거와 같은 내용을 두루 포 괄하고 있다. 정부 부처들의 추진과제에 나타난 노동정책의 핵심기조는 ① 협력 적 노사관계의 정착을 위한 법 제도 개선, ② 노동쟁의에 대한 강경대응

230 동향과 전망 87호 을 포함하는 노사관계 법치화, ③ 임금, 근로시간, 고용 등 노동시장 유 연화를 확대하는 근로관계 법률과 제도의 개편으로 요약된다. 특히 노 사관계 ‘선진화’는 사용자의 경영권 보장과 노동조합의 준법 관행 확립, 협력적 노사관계의 정착을 목표로 ‘불법적’ 노동쟁의에 대한 엄격한 법 적 대응 및 노조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법 제도 확립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노사관계의 안정’을 넘어 사용자 우위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법제도의 안정적 정착’, 사용자의 권력을 위협하는 ‘불합리한 노사문화, 관행의 개선’이 곧 노사관계 선진화인 것이다. 일 반 논 1) 노사관계정책의 전개 문 집권 5년 동안 노동정책의 전개과정을 보면, 촛불시위와 금융위기의 충 격이 컸던 2008년에는 공공부문을 제외하고 기존의 노사관계 구도를 변화시키려는 적극적 노력이 없었던 반면, 2009년 2기 윤증현 경제팀 의 출범이후 노동정책의 주요 내용들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했 다. 여기에는 촛불위기 이후의 정국안정과 금융위기로부터의 회복이 라는 정세의 변화와 함께, 비정규직 법 시행 2년과 복수노조 유예기간 만료라는 시기적 특성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시기적 특성을 새로운 노사관계 재편을 위한 계기로 활용해 적극 개입하기 시 작했다. 그리하여 2009년 봄부터 비정규법 개정 시도, 쌍용차 공권력 투입, 시국선언에 대한 공무원· 교원 탄압, 철도파업에 대한 강경대응,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입법의 원안 처리 등 노사관계에서 공세적 전 환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에서 가장 강력하게 추진된 것은 ‘공공부문 선 진화’정책이었다. 2008년 8월 발표한 1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은 27개 기관을 민영화하고 12개 기관의 비핵심사업을 매각하는 등 민영화와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31 통폐합, 기능조정, 정원 감축을 포함했다. 각 기관별로 평균 12%의 정 원을 일괄적으로 감원했고, 계약직 근로자 29,000명의 무기계약 전환 이 폐기되었다. 2009년 11월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은 공공부문 선진화 를 노사관계 선진화, 책임경영시스템 정착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 다. 특히 노사관계 선진화와 관련해, 불합리한 노사관행 개선, 법과 원 칙에 입각한 노사관계 정립을 주장하며, 단체협약을 분석하고 이를 공 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할 것임을 강조했다. 공공부문 노사관계 재편의 첫 번째 조치로 정부는 인사·경영권 침 해조항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개정토록 하고, 단체협약과 복리후생 등 노사관계 항목을 공시하게 하였다.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는 노사관계 협력 정도, 단체협약 합리성 여부 등을 기관장 평가에 반영해 기관장 책 임 하에 불합리한 단체협약과 노사관계를 개선하도록 강제했다. 2009 년 한 해 동안 약 100여 개 공공기관이 단체협약을 개정하였고, 유급휴 일 축소, 연봉제 도입, 노조활동 축소를 포함하는 단체협약 개편은 수 많은 공공부문에서 노사갈등을 초래했다. 많은 기관에서 단체협약이 해지되고 무단협 상태의 공공기관이 급증했다. 2009년 11월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은 공공부문의 노사관계 재편을 노린 전형적 사례였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 대 응이 중요한 것은 공공부문의 가장 강력한 대기업노조를 상대로 단체협 약 해지와 사실상의 파업 유도를 통해 노조를 무력화시키고자 했고, 합 법파업을 불법으로 몰아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이 다.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은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에 대한 제재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2009년 9월 공무원노조들의 통합 과 민주노총 가입투표 이후 행정안전부는 노조간부 18명을 파면 또는 해임했고 노동부는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 노조설립 신고를 취소 하고 공무원 노조들의 규약과 단체협약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

232 동향과 전망 87호 공부문 노조에 대한 탄압은 2009년 전교조의 시국선언과 공무원 노조의 신문광고를 계기로 교사와 노조간부에 대한 중징계와 형사고발로 이어 졌다. 법적 타당성과 무관하게 모든 행정적 개입수단을 통해 노조의 권 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공세적 대응이 이루어졌다. 노사관계 개편이라는 측면에서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편 2010년 1월 발효된 노동조합법 개정은 1997년 노동법 개정 이 후 13년간 유보되었던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교섭창구 단일화제도와 근로시간 면제제도라는 형태로 법 제화한 것이다. 이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금지해 대기업노 일 반 조의 활동력을 약화시키려는 사용자의 요구와 기업단위에서의 자주적 논 문 단결권 요구를 상호교환이라는 방식으로 묶어놓은 것이다. 행위자들 의 입장으로 보면, 현행법 강행을 주장하는 정부와 사회적 타협을 요구 하는 한국노총의 입장이 충돌한 반면, 복수노조 허용 및 자율교섭을 요 구하는 민주노총과 복수노조에 대한 입장이 분열되어 있던 재계는 어 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새로운 노조법 협상과정에서 노동부의 강경입 장과 한국노총의 입장 선회는 결정적이었다. 정부는 현행법 시행의 강 한 의지를 고수했으며, 노총이 요구하는 사회적 대화 형식은 수용했지 만 그것은 사실상 한국노총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과정이었다. 민주노 총의 동원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한국노총의 교섭력 역시 무력화될 수 밖에 없었고, 한국노총은 정부와 재계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노사정 합의에 성공하자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의회에서 야당을 압박해 강행처리를 밀어붙였다. 2010년 노조법 개정은 1997년 이후 진행된 사용자 우위의 노사관 계 재편을 마무리 짓는 과정이었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근로시간 면 제의 최대한도를 설정하여 이를 초과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노조에 대한 강력한 규제효과를 가져왔고, 복수노조 교섭창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33 구단일화제도 역시 산별노조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고, 기업별 교섭을 사실상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더욱이 이는 사용자의 교섭비용 을 최소화하면서 노조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소수노조의 교섭권 여부 를 사용자 권한으로 위임함으로써 복수노조 설립을 사실상 노조통제의 기제로 변질시켰다. 이후 노사관계정책은 2010년 7월 시행된 근로시간 면제제도와 2011 년 7월 시행된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안착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노동부는 모든 행정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현장의 반발을 무력화해야 했다. 노동부는 근로시간 면제제도 매뉴얼을 통해 현재의 유급전임자 수준을 유지하는 노사합의 를 하거나 타임오프 한도보다 사용인원이 많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부당 노동행위로 처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노동부는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는 노사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자율시정 권고, 노동위원 회 의결을 통한 시정명령, 사법조치라는 수순으로 압박을 가했다. 2011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의 시행에서도 노동부의 행 정적 압박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5) 교섭창구단일화가 강제되면서, 일부 무노조기업에서 회사노조를 설립해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선점 하고 신규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하는가 하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를 밟지 않은 산별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을 부정하는 일이 발생했다. 뿐 만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현격한 근로조 건의 차이나 고용형태, 교섭관행”을 고려한 교섭단위 분리신청 역시 사 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로 산별파업 역시 어려워졌다. 산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려면 산하 사업장 모두에 서 교섭대표권을 확보한 뒤에야 쟁의행위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234 동향과 전망 87호 2) 노동시장정책의 전개 이미 취임초기부터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노동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환경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정책적 목표를 분명히 했 다. 2008년 12월말 노동부는 고용창출을 저해하는 주요한 장벽이 노동 시장의 경직성이기 때문에, 기간제·파견근로자의 고용기간을 연장하 고, 기간제한 적용 예외를 확대하며, 파견 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등 고 용촉진을 위한 법 제도의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는 2009년 6월부터 비정규노동자 100만 해고대란설을 조직적으로 유 포하면서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을 3∼4년으로 연장하는 비 일 반 정규직 법 개정을 시도했다.6) 노동부는 2009년 7월부터 이 법이 적용 논 문 되는 근로자 수가 매월 4만 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정규 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리를 이용해 비정규직법 개악의 명분을 확 보하려 했던 것이다. 정부는 국회에 개정 법안을 제출하였으나, 국회 처리과정에서 강력한 반대와 저항으로 무산되었다. 정부는 2010년 7월 노동부의 명칭을 고용노동부로 변경하면서, 업 무중심을 노사갈등관리에서 일자리 문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10월 발표된 “국가고용전략 2020”은 고용률을 2020년 7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고용친화적 경제·산업 정책, 공정하고 역동적인 일터 조성, 취약인력의 활용과 직업능력개발 강화, 근로유인형 사회안 전망 개편이라는 4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고용전략 2020”은 정 부가 고용문제를 국가 최우선과제로 선정하고 고용전략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계 를 안고 있었다(정이환, 2010).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근로시간 유연화 와 고용규제 합리화를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계획을 명확히 하고 있다 는 점이다. 특히 고용규제 합리화는 현행 32개인 파견 허용업종을 확대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35 하고 청소·경비 업무를 포함해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2년) 제한의 예외대상을 확대해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또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한 것 과 ‘근로시간저축휴가제’는 초과근로에 대해 수당을 주지 않거나 근로 조건을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되었다.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시 간제근로자 고용촉진 방안 역시 시간비례 균등대우와 고용안정에 대한 대책은 포함하지 않았다. “국가고용전략 2020”은 2010년 하반기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정부는 2010년 11월 ‘근로시간 저축휴가제도의 도입과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의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2011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7) 노동계는 이 제도가 초과근로에 대해 할증임금을 주지 않고 작업물량이 적을 때 휴가를 강제하거나 노동 강도를 강화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둘째, 파견허용 업무 확대는 이미 2009년 5월 서비스산업 선진화 민 관합동회의와 2009년 12월 대통령 합동업무보고에서 계속 확인된 방 침이었다. 정부는 32개 파견허용 업무를 최대 49개로 늘리겠다는 의지 를 밝혔다.8) 노동부는 단순노무종사자의 범위를 확대해 제조업 관련 단 순노무종사자와 택시 운전기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셋째, 정부는 2010년 11월 직업안정법을 고용서비스 활성화에 관 한 법률로 바꾸고 민간고용서비스를 전문화, 대형화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고용중개회사들이 취업알선과 직업정보 제공, 직업훈련, 근로자 파견 사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문화, 대형화된 종합인력회사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모집과 파견을 같이하는 것이 불법파견의 확산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노동계의 반발로 시행되지 못했다. 넷째, 2011년 9월 고용노동부는 20개 기능 57개 사무를 지방으로

236 동향과 전망 87호 이양하는 내용의 현황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주된 지방이양 사무들 이 근로기준법 관련 사무들과 감독, 규제, 취약계층 보호와 관련한 것 들이란 점에서, 전문성이나 근로감독 의지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다섯째,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2011년 5월 기 획재정부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상대로 신규채용인원의 10% 이상 을 40시간미만 단시간근로자로 채용할 것을 권고하고, 이를 경영평가 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무원노조는 이 제도가 공직사회를 정규직 업무와 비정규직 업무로 양극화시키고, 여성의 직무를 비정규 일 반 직 업무로 고착화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논 문 한편, 2011년 이후 고용정책에서는 비정규직 보호와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주요한 의제로 부각되었다. 2011년 9월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 대책은 “비정규직 활용은 불가피하지만, 불합리한 차별과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누락이 문제”라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은 영세사업장 저임금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이나 근로감독관에 대한 차별시정 지도감독권 부여, 차별시정 신청기간 연 장에 그쳤고, 불법파견 시 사용기간에 관계없이 직접고용을 의무화했 으나 상용형 파견에 대해서는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였다. 2011년 11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대책 역시 상시·지속적 업무종사자는 원 칙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채용하지만, 근무실적과 능력, 태도 등 을 평가하여 전환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전체적으로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 활용을 제한하거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저임금을 개선하기 보다, 비정규직 보호를 불합리한 차별이나 사회안전망 문제로 좁히는 수준에 머물러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정부는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제도 개선을 주요한 정책과제 로 추진했고, 여기에는 노동계의 오랜 요구와 함께 노동시간 단축이 고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37 용창출에 긍정적이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고용노동부는 2010년 12월 장시간 근로개선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2012년에는 교대제 개편 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2012년 5월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리면서 근로기 준법 개정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이처럼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위 한 핵심적 사항인 비정규직 대책이나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법제도 의 개선은 알맹이가 빠진 채 추진되거나 좌초하고 말았다.

4.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의 특징: 연속성과 변화

1997년 이후 모든 정부의 노동정책은 그 목표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 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확립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연속성과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노동시장 분절과 노사관계 불안 정이 대기업노조의 전투성에 기인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 나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보 완하기 위한 사회적 보호의 의제가 대단히 약화되었다는 점과 노사관 계에서 사회적 대화와 노사자율의 원칙이 후퇴하고 행정적 개입이 강 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노동정책이 노동시장 유연화,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경제정책에 종속되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다.

1) 경제정책에의 종속과 경제부처의 주도권 강화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노동기본권이나 갈등 조 정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대신에, 선진화 담론을 매개로 노동시장 유연 화나 규제 완화와 같은 시장주의 논리가 전면화되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노동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화되었고, 노동정책에

238 동향과 전망 87호 대한 경제부처의 주도권이 크게 확대되었다. 노동정책의 중심축은 노 사관계로부터 고용·노동시장으로 이동하였고, 노동정책은 사회정책 이라기보다 사실상 경제정책의 하위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이명박 정 부에서 노동정책은 경제정책 운용의 부차적 변수였을 뿐만 아니라, 고 용정책 역시 오로지 유연성 강화를 통한 단기적 일자리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노사갈등은 집단이기주의의 표출이거나 불법적 집단 행동으로 법치 원리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식을 넘어서지 않았다. 이러 한 인식은 사회정책으로서 노동정책의 독자적인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용정책이 국정의 우선과제로 부각되었지만, 노동정책은 일 반 경제부처에 의해 기획되고 노동부가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수직적 분 논 문 업관계에 가까웠다. 기획재정부는 노동시장정책의 기조와 추진속도를 결정하고 노사 관계정책에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쳤다. 공공부문 노사관계 개편 은 기획재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의 일부였으며, 인원감 축과 단체협약 개정, 임금삭감과 같은 조치들은 기획재정부의 지침과 경영평가에 의해 직접 영향을 받았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재부 장관은 세세한 노동조건까지 규제했으며, 기재부의 ‘공공 기관 예산편성지침’은 임금협상의 기준이 되었다. 또한 기획재정부는 단체협약과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지침을 통해 개입했다. 기 획재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인사경영권 확립과 불합리한 노조 활동 관행 개선 실적을 주요 지표로 제시했다. 이는 공공기관의 개별 경영자들에 대한 평가와 압박을 통해 노조무력화를 경영능력 평가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2)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와 사회적 보호의 약화 노동시장 유연화가 다방면에 걸쳐서 공세적으로 추진되었던 데 반해,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39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조치는 크게 약화되었다. 가장 대 표적인 것이 노동시장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률의 하락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2000년대 들어 매년 10% 수준으로 인상 되었던 데 비해,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하락하여 5.1∼6.1% 수준을 보 였고 2010년에는 2.75% 인상에 머물렀다. 최저임금 수혜를 받는 대상 자 비율인 최저임금 영향률 역시 2000년에서 2008년까지 1.8∼13.8% 까지 꾸준히 상승해 오다가 2011년 이후에는 하락하는 양상을 보여주 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역시 2008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은 2007년까지 61.3∼67.1% 수준을 유지했으나, 2008년 60.9% 수준으로 하락한 이후 54.6∼56.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근로자의 상대적 임금 하락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 1> 최저임금 추이

일급 적용년도 시간급 인상률 영향률 미만률 (8시간기준)

2012. 1.- 2012. 12. 4,580 36,640 6.0 13.7 - 2011. 1.- 2011. 12. 4,320 34,560 5.1 14.2 - 2010. 1.- 2010. 12. 4,110 32,880 2.75 15.9 11.5 2009. 1.- 2009. 12. 4,000 32,000 6.1 13.1 12.8

2008. 1.- 2008. 12. 3,770 30,160 8.3 13.8 10.8 2007. 1.- 2007. 12. 3,480 27,840 12.3 11.9 11.9 2005. 9.- 2006. 12. 3,100 24,800 9.2 10.3 9.4 2004. 9.- 2005. 08. 2,840 22,720 13.1 8.8 8.1 2003. 9.- 2004. 08. 2,510 20,080 10.3 7.6 5.8

2002. 9.- 2003. 08. 2,275 18,200 8.3 6.4 4.9 2001. 9.- 2002. 08. 2,100 16,800 12.6 2.8 4.9 2000. 9.- 2001. 08. 1,865 14,920 16.6 1.8 4.3

영향률: 수혜근로자/적용근로자*100 미만률: 미만근로자수/임금근로자수(각 연도 8월 기준) 출처: 최저임금위원회, http://www.minimumwage.go.kr/

240 동향과 전망 87호 <표 2> 고용형태별 월평균 상대임금 추이

한시적 반복 일일 구분 정규직 비정규직 기간제 비전형 파견 용역 특고 시간제 근로 갱신 근로

2002 100 67.1 71.3 72.5 79.9 67.0 78.9 59.2 82.3 54.2 34.3

2003 100 61.3 65.1 64.5 88.1 58.2 65.8 51.9 75.8 48.0 29.8

2004 100 65.0 69.5 67.0 96.2 60.3 71.8 52.1 78.5 47.2 30.4

2005 100 62.7 67.2 68.2 91.7 58.5 71.3 51.4 77.1 46.6 28.3

2006 100 62.8 68.8 67.7 93.0 54.8 66.1 48.9 69.3 45.7 28.9

2007 100 63.5 71.7 70.6 97.0 55.4 66.8 51.0 70.8 44.4 27.9

2008 100 60.9 68.5 70.0 87.1 56.3 69.3 50.9 73.0 46.2 27.0

2009 100 54.6 59.1 59.6 87.7 54.1 64.3 50.5 69.5 43.3 24.3 일 반 2010 100 54.8 61.0 59.3 98.6 54.4 61.5 51.2 71.0 45.3 24.6 논 문 2011 100 56.4 62.9 61.3 92.2 55.3 63.8 51.3 75.0 44.2 25.3

출처: 노동연구원, KLI 비정규직 노동통계

취약계층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근로감독 기능 역시 크게 약화 되었다. 노동부의 근로감독에 따른 사법처리 건수는 2008년 92건, 2009 년 66건, 2010년 120건으로 전체 노동법 위반건수의 0.1%에도 못 미치 며, 2011년에만 168개 업체 249건으로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2010년 전체 법 위반 건수 77,685건(15,608곳)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수치로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관대하게 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매일노 동뉴스󰡕, 2012. 2. 6). <표 3> 사내하도급 점검 및 불법파견 조치현황 추이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근로감독의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내하도급업체 중 불법파견으로 적발된 건수는 2007년 이후 급격히 하락하여 불법파 견에 대해 사실상의 면죄부가 주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불법파견 조치 현황을 보면, 2007년에서 2010년까지 4년간 정부가 적발한 사내하 도급 불법파견 업체는 총 24곳에 불과하고 이중 사법처리된 업체는 8곳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41 <표 3> 사내하도급 점검 및 불법파견 조치현황

대상(개소) 점검결과(개소) 불법파견조치현황(건수)

직접 사법 도급 파견 구분 계 원청 하청 적법 불법 기타 채용 조치 전환 전환

합계 7,288 2,288 5,000 6,531 757 133 3,466 356 52 18 283

2003 55 23 32 6 49 9 155 10 6116

2004 677 139 538 409 268 38 927 168 11 3 104

2005 876 245 631 705 171 17 596 30 16 4 124

2006 1,167 316 851 1,099 68 7 333 55 816

2007 369 87 282 367 2 11- --1

2008 439 99 340 437 2 12- 1--

2009 531 195 336 523 8 1132 --8

2010 985 410 575 973 12 5 350 4 -13

2011 2,177 753 1,364 2,004 113 46 501 47 162

출처: 고용노동백서, 2012

에 불과하다. 이는 2004년 268곳, 2005년 171건, 2006년 68곳이 불법파 견으로 적발되어 3년간 총 253건이 사법처리된 것과 크게 비교되는 결 과이다. 다만 사내하도급에 대한 법원 판결의 여파로 사업장 점검을 대 폭 강화한 2011년에 와서야 불법파견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또한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노동위원회에서 구제받 는 비율 역시 크게 떨어졌다. 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은 2004년 19.7%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하락하다가 노동조합법 개정 직후인 2010년과 2011년에는 3.3%와 3.5%까지 급속히 하락하였 다. 부당해고 인정률 역시 2007년 44.4%에서 32.1%로 급격히 하 락했다. 이처럼 2009년 이후 최약계층 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담당해야할 노동부와 노동위원회 등 국가기구에 의한 근로감독 및 법 적 제재가 크게 약화되었고, 법적 조치 역시 사용자 편향적인 경향이

242 동향과 전망 87호 <표 4> 노동위원회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판정 현황

부당노동행위 판정 및 구제명령 부당해고 등에 관한 판정 및 구제명령

처리건수 인정률(%) 처리건수 인정률(%)

중노위 중노위 중노위 중노위 지노위 지노위 지노위 지노위 포함 포함 포함 포함

2003 824 1,082 16.1 19.1 3,599 4,419 48.5 45.8 2004 716 964 19.7 20.4 4,190 5,092 48.0 45.2 2005 795 1,033 16.2 17.5 4,518 5,487 48.8 44.7 2006 992 1,351 15.6 14.1 4,525 5,835 42.0 38.8 2007 765 1,090 10.4 10.1 5,597 6,750 44.4 43.3

2008 828 1,138 15.4 13.9 7,506 8,693 39.5 39.5 2009 983 1,217 12.0 12.6 8,212 9,292 35.2 35.1 일 2010 1,567 1,807 3.3 4.3 8,480 9,582 28.8 28.8 반 2011 795 1,361 3.5 2.6 8,345 9,845 32.1 31.0 논 문 출처: 고용노동백서, 2012

강화되었다.

3) 행정적 개입의 강화와 노사자율의 후퇴 단체협약에 대한 정부의 행정적 개입이 늘어나고 노사자율에 의한 교 섭이 크게 위축되었다. 노사관계에서 합법과 불법에 대한 판정이 집합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행정부가 법률을 노동통제의 도구로 활용 하는 경향이 크게 증대하였으며, 법률에 대한 일방적 해석을 근거로 행 정적 개입을 강화하거나 물리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사례가 늘었다. 불 법파견 문제, 근로시간 면제제도나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준수 여부에 대한 법적, 행정적 판단이 노사관계의 주요쟁점이 되었고, 노사 역관계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는 단체협약에 대해, 행정부가 시정 명령을 내리거나 단체협약 해지를 종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단 체협약 시정명령은, 2009년부터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의 단체협약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43 에 대해 내려지기 시작했고, 근로시간면제제도 및 교섭창구 단일화제 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주요사업장을 표적 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단체협약 시정명령 접수건수는 2008년 까지 5건 내외였던 데 반해 2009년 35건, 2010년 94건, 2011년 42건으 로 급속히 늘어났다. 이에 대해 노동위원회는 대부분 노동부의 단체협 약 시정명령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공부문의 경우, 일상적 인 조합 활동 보장 조항이나 복리후생기금 조항 등에 대해서도 시정명 령이 행해지고 있어, 주요 사업장에 대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은 사실 상 새로운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행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단체협약에 대한 노동부의 시정명령 권고나 노동위원회의 시정명 령 의결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정부는 공공부문에 대해 단체협약과 규약에 대한 시정 지침을 내리고 시정 여부를 기관장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인사경영권, 노조활동, 임금 복리후생 등 위법 부당한 단체협약이나 불합리한 노사 관행에 대해 단체협약 개정을 일관되게 요구했고, 노조가 반발하는 경 우 단협 해지 통보로 대응했다.9) 행정적 개입은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

<표 5> 단체협약 시정명령 의결사건 처리현황

접수 처리내역 연도 진행 건수 계 전부인정 일부인정 기각 각하 취하 화해

2004 3 3 1 - - 1 - 1 - 2005 5 1 - - - - 1 - 4 2006 9 7 5 - - - 2 - - 2007 5 5 3 - 1 1 - - - 2008 3 3 2 1 - - - - - 2009 35 35 12 21 2 - - - - 2010 94 89 64 22 1 - 2 - 5 2011 42 34 20 3 4 - 7 - 8

출처: 고용노동백서, 2012

244 동향과 전망 87호 <표 6> 불합리한 노사문화·관행 개선실적

위법한 인사 과도한 부당노동 불법폭력 무노동 민형사상 산별파업, 합계 단체협약 경영권 노조 기타 행위 정치파업 무임금 책임면제 이중파업 노조규약 제약 전임자

2011 1,926 691 78 133 2 774 29 7 0 212

2010 2,275 755 8 229 1 844 39 14 0 385

출처: 고용노동백서, 2012

명령 뿐만 아니라 노조설립신고 반려, 업무매뉴얼을 근거로 한 개별 노 사관계에 대한 개입, 행정적 지도감독의 강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 일 반 어졌다. 논 문 정부의 노사관계에 대한 행정적 개입과 노사자율에 대한 침해는 근 로시간 면제제도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논란과 노동부의 업무매뉴얼에 근거한 불법규정, 시정지시, 지도감독에서 절 정에 이르렀다. 특히 2010년 12월의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업무매뉴얼 은 복수노조와 관련한 모든 법조항을 강행규정으로 해석해 노사합의에 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하면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노동부 에 의한 ‘불합리한 노사관행’ 지도감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문제 는 불합리한 노사관행 개선의 내용이다. 고용노동부의 “노사문화 관행 개선실적”을 보면, 대부분 과도한 노조전임자, 유일교섭조항이나 노조 운영비 원조, 파견전임자 무급처리, 해고자 조합원자격 등 위법한 단체 협약 및 노조 규약, 인사경영권 제약, 무노동 무임금 등 노동조합이 확 보해왔던 권리를 무력화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부당노동행위 역시 자 판기 매점 수익권 회수, 전임자급여 회수, 면제한도를 초과한 급여지급 등 노동조합을 압박하는 내용들이고, 기타 불합리한 노사관행 역시 과 도한 휴가일수 정비, 무교섭 타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진행 등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45 4)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용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규모 노동쟁의가 적었기 때문에 쌍용자동차 파업 을 제외하고 공권력 투입의 필요성은 감소되었고 구속노동자 수도 감 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반면, 직장폐쇄나 업무방해죄, 손해배상 가압 류, 필수유지업무제도 등 사용자의 제도적 대항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쟁의 발생건수가 줄어든 데 반해, 직장폐쇄 비율은 크게 늘어났다. 2005∼2007년간 540건의 쟁의가 발생했고 88 건의 직장폐쇄가 이루어져 쟁의대비 직장폐쇄 발생비율이 16.3%였던 반면, 2008∼2010년 3년간 315건의 쟁의에 대해 71건의 직장폐쇄가 단 행되어 그 비율은 22.5%로 증가했다. 이 비율은 2008년 27.8%, 2009년 17.4%, 2010년 23.2%, 2011년 상반기 30.8%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매일노동뉴스󰡕, 2011.6.8). 노동쟁의에 대해 사용자의 직장폐쇄와 용역폭력, 복수노조 설립 등 사용자의 공세적 대응이 크게 확대되었고, 많은 경우 정부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나 불법행동에 대해 묵인하거나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성기업, 현대자동차, KEC 쟁의, 만도와 SJM 노동쟁의에서와 같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컨설팅, 용역폭력을 동원한 공격적 직장폐쇄, 복 수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고립화가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사측의 불법행위에 대해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모 습을 보였다. 많은 쟁의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은 단협 해지, 직장폐쇄, 손배 가압 류, 복수노조 설립과 같은 제도적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조합원들 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노조를 고립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10) 또한 2008년 1월부터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시행되면서, 철도, 병원, 지 하철, 발전 등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양상이 달라졌다. 필수유지업무 협정에 따라 노조의 합법파업이 가능해진 대신, 사측도 업무가 마비되

246 동향과 전망 87호 지 않으면서 대체인력 투입을 통해 사실상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 노사정위원회의 무력화와 사회적 합의의 유실 노동정책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중 하나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이 저하되고 사회적 합의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이 명박 정부에게 사회적 합의는 정책결정을 지연시키는 비효율적이고 불 필요한 절차였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거나 정당화하는 역할을 벗어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정책은 경제부처가 결정했고 여기 일 반 서 제시된 자본의 요구사항을 노동부가 실행하는 수직적 의사결정과 논 문 집행의 양상을 보였다. 2009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합의문을 채택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제별 위원회는 별다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지 못했고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도 선언적 내용에 불과했다. 특히 공익 위원이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면서 사실상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역할 을 상실하고 정부정책의 들러리기구로 전락했다. 노사정위원장이 대 통령을 만나 자문을 하거나 직접 보고한 적이 없으며, 정부 관료들이 노 사정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원장을 비롯해 의제별 위원 회 위원장들의 이념적 편향성이 논란을 빚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 사정위원회 위원장이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취임당시 충성서약 서를 제출했다는 보도가 논란이 될 정도로 그 위상이 추락하였다. 특 히 2010년 노동조합법 개정 협상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정부가 노사 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는 점이다. 노사정 위원회를 통한 갈등 조정은 사실상 포기되고 노사정위원회는 한국노 총을 압박하고 정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 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로 갈수록 사회적 대화의 위상과 기능은 더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47 욱 위축되었고, 노사정위원회 역시 사실상 관료기구의 지배를 받는 기 구로 그 위상과 기능이 위축되었다. 노사정 어느 쪽도 사회적 합의기 구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5. 전체적 평가와 변화의 요인

그렇다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원회 무력화, 경제부처의 주도권 강화와 사회적 보호의 약화, 행정적 개입과 법치주의의 강화, 사용자 폭력의 방조와 같은 변화가 갖는 함의는 무엇 인가? 그것은 사회정책의 영역이 실종됨과 동시에 국가기구의 개입주 의와 권위주의적 특성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하고, 신자유주의노동체제 는 제도적으로 완성되고 그 권위주의적 성격이 분명해졌다.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갖는 권위주의적 성격과 관련해서, 영 국 대처리즘에 대한 홀과 제솝의 분석이 시사적이다. 스튜어트 홀은 영 국의 대처주의를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대처리 즘 국가가 시장과 경제에서는 탈규제와 자유주의를 추구하지만 이데올 로기 부문에서는 가족, 국가, 명예, 가부장주의와 질서 등 개입주의적 양면성을 띠는 특징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 이 국가형태는 파시즘과 달리 공식적인 대의기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대중적 동의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11) 이에 대해 제솝은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의 용어 자체가 모호하여,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개념이 상이한 내포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제솝 외, 1995: 119∼20). 이러한 논의에 서 보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은 민주적 계급지배의 외형을 유지하면 서도 사회적 규율과 국가통제의 강화, 민주주의 이념과 운동, 제도의 급격한 쇠퇴, 공식적 자유의 위축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248 동향과 전망 87호 한 유형적 특징을 포착하는 개념일 수 있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신자 유주의에서는 경제성장 이외에 보수적 의제에 대한 대중적 동원이나 포퓰리즘적 요소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처리즘과 구분된다, 임운택(2010)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서구에서 나타난 ‘신 자유주의의 사민주의적 변형’과 유사하며, 사회정책을 통해 사회적 양 극화를 해결하면서 축적체제에 조응하는 안정적인 사회질서를 부여하 려는 수동혁명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불만을 우파가 흡수해 권위주의적, 탈시민적 신자유주의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사민주의적 신자유 일 반 주의’인가하는 논란과는 별도로, 노동정책에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논 문 복지서비스의 측면에서 사회적 합의와 유연안정성 등 경쟁적 코포라티 즘의 환경을 창출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12) 정권 초기의 이러한 시도가 노사 양측의 반발에 의해 좌절되자, 신자유주의 는 법치주의와 위로부터 합의의 강제라는 형태로 추진되었지만, 헤게 모니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신자유주의는 양 극화의 심화 속에서 헤게모니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우파는 이를 신자 유주의의 불철저함에 기인한 것으로 돌리고 철저한 신자유주의화와 전 면적 유연화, 권위주의적 사회통제의 강화로 돌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신자유주의는 오직 성장을 통한 복지라는 수동적인 합의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중적 동원의 요소를 결여하고 있고, 오직 사 회적 규율과 국가통제의 강화,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의 급격한 쇠퇴 에 의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권위주의적 유형으로 지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와 그에 조응하는 경쟁적 코포라티즘의 조절 양식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정책 및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협력적 노사관계가 불가피하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49 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정부 10년의 노동정책은 축적체제의 요구로부 터 비롯되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확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정책, 협력적 노사관계를 제도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시도, 노조의 쟁의 행위에 대한 법적 규율들이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정권 초기에 는 노동시장의 측면에서 유연안정성, 즉 유연화와 사회적 보호, 복지의 결합,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국제기준의 법제도에 준거한 타협과 절충 을 통해 경쟁적 코포라티즘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러나 노 동의 저항과 자본의 비타협성에 직면할 때마다, 노동정책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희생하거나, 노조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게 되자 대기업노조의 권력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회귀했다. 이러 한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정책기조의 비일관성, 의도와 행 위의 불일치, 목표와 수단의 불일치 등 모순적이고 비일관성을 특징으 로 한 것이었다.13)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역시 축적체제에 조응하는 노동시장 유연 화와 협력적 노사관계의 확립이라는 기조에서는 이전 정부들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전제로 한 노동시장의 전면적 유연화 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정책추진의 의지와 방식은 많이 달랐다. 노동시 장 유연화는 사회적 보호에 대한 고려가 없이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했 고, 노조의 무력화를 통해 사용자의 배타적 경영권을 보장하고 협조적 노사관계를 안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는 불필요했다. 정책 의 추진방식 역시 경제부처 주도의 법률 개정과 공공부문 경영평가나 행정해석 등 행정적 개입에 주로 의존했다. 노동정책은 유연성 확대를 통한 단기적 일자리 창출, 사용자 우위의 노사관계 재편을 위한 법 제도 개혁, 노동조합의 무력화와 계급권력 회복을 위한 행정적 개입이 주된 축을 이루었다. 정부는 노사관계 영역에서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통한 배타적 경영권의 보장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드러냈고, 노동시장에서 단

250 동향과 전망 87호 기적 일자리의 대량창출을 위해 전면적 유연화와 규제 완화를 추진했 다. 이명박 정부에 와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구조조정과 고용 확대, 사회적 합의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 정책들 간의 긴장은 해소되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와 자유주의정부에서 나타난 노동정책의 연 속성과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한편으로 신자유주 의 축적체제의 확립에 따른 신자유주의노동체제의 공고화, 1997∼1998 년 노동법의 경로제약성,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의 역전, 계급권력 강화 와 공고화를 위한 프로젝트로서 신자유주의가 취하는 형태 변화를 지 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일 반 먼저, 1997∼1998년 노동법 개정과 경제위기를 계기로 확립된 신자 논 문 유주의노동체제는 이후 노동정책의 내용을 직접 규정했다. 1987년 이 후 보수적 민주화의 결과로 노사관계 민주화의 지체현상과 함께, 1996 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협상에서 노동시장유연화가 정치적 교환의 의 제로 제시되면서, 노개위 협상은 새로운 노동체제의 윤곽과 주요 요소 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1997년 개정노동법은 1년여에 걸친 노사정 협 상과 총파업, 여야 정당의 합의를 거쳐 이루어진, 민주화 이후 투쟁과 타협의 제도적 결과물이자 불균형한 권력관계의 산물이었다. 더욱이 경제위기 이후 1998년 민주정부 주도의 사회협약과 그에 따른 개정노 동법은 이후 노사관계 규칙들이 제도화되는 협상과정에서 기준선으로 기능했다. 1997∼1998년 노동법은 민주노조운동이 동원력의 최대치를 보여준 국면에서 이루어진 노사정 대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후 노 사정간의 협상 과정에서 기본적인 한계선으로 작용했다.14) 사회적 합 의의 방식으로 노사관계 제도화와 노동시장 개혁을 추구할 때, 신자유 주의적 축적체제가 유지되는 한 노사관계의 민주적 제도화는 그 상한 선을 넘어설 수 없었고, 노동운동의 동원력이 붕괴되지 않는 한 유연화 의 확대나 노조에 대한 규제 역시 그 하한선 밑으로 내려가기 어려웠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51 노사정 권력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없고 노사관계 제도화가 협상의 틀 을 벗어나지 않는 한, 노사정 행위자들 모두 이 한계선으로부터 벗어나 기 어려웠다. 이것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 용이 13년간이나 유예를 거듭하고 기간제 및 파견근로에 대한 노사 양 측의 불만이 계속되었던 이유였다.15) 1997∼1998년 노동법은 한편으 로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를 확립한 계기이지만,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의 동원과 규제력에 의해 그 범위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동원력이 약화됨에 따라서 자본에게 유리한 조항들의 하한선은 더욱 내려갔다. 1997∼1998년 노동법은 이후 노동조합의 권력을 규율하고, 사용자 의 대항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완되었다. 노사정 협상이 민주노총 의 불참과 한국노총을 상대로 한 지루한 힘겨루기 양상으로 진행되면 서, 노동계의 요구는 오직 민주노총의 동원능력에 의해서만 뒷받침되 는 허약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제도적 수준의 노사정 협상은 기울어진 축구장에서의 경기와 같은 성격을 지녔다. ‘국제적 수준’의 관행과 기준 은 사용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활용되었다. 이는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1987년 노동체제’에 대한 자본의 계급투쟁, 계급권력 회 복 프로젝트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권력관계의 불균형과 교착상태에서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은 모순적이고 비일관적 인 특성을 보여주었고,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는 헤게모니를 확립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보수적 정권교체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는 ‘1987 년 노동체제’의 핵심요소였던 노동조합의 무력화하고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행정적 개입과 법적 규율로 대체함으로써 자본의 계급권력을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노동정책의 변화에 있어 노사 간의 권력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특 히 1997년 경제위기는 노사 간의 권력관계 변화에 중요한 계기였다.

252 동향과 전망 87호 IMF에 대한 재벌책임론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독점은 더 욱 심화되었고 국가-재벌-국제금융자본의 정치적 동맹구조는 더욱 공고화되었다(윤상우, 2009; 이병천, 2005). 양극화가 심화되고 국민경 제의 불안정성이 악화될수록 재벌과 금융자본의 지배력은 더욱 공고화 되고, 사회에 대한 시장의 권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재벌과 금융자본의 요구는 경제관료를 통해 국가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반영되었다. 제 도정치의 측면에서도 의회의 보수성과 조합주의정치의 취약성은 명확 했다. 의회는 항상 보수적 다수파로 구성되어 있었고, 의회는 조합주의 적 합의를 왜곡하거나 자본편향적 정책을 일방적 입법을 통해 기정사 일 반 실화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하에서 여당은 압도적 논 문 과반의석을 점유했고, 야당은 무기력했으며 진보정당은 분열되었다. 정부는 의회를 통한 입법화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며, 언론을 통한 이데올로기 공세나 법률에 근거한 행정적 개입은 효과적이었다. 정반대로 1997년 이후 노동운동의 위기는 심화되었고 갈수록 증폭 되는 양상을 보였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시장 의 분절을 초래했고, 조직노동의 계급대표성을 크게 약화시켰다. 조직 노동은 소수 대기업의 정규직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점 점 배부른 이익집단으로 고립화되었다. 그나마 참여정부 하에서 노동 운동은 여전히 상당한 동원능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정치적 개방의 효 과로 집합행동의 비용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민주노총의 투쟁과 동원, 이를 매개로 한 한국노총의 제도적 협상력은 노동정책 추진에 상 당한 변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시장과 정치에서 조직노동의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되었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꾸준히 하락했고, 작업장 수준 에서는 조합원의 고령화와 개별화, 비정규직노동자의 소외, 집합행동 에 따른 경제적 부담 증가, 현장조직력의 약화 등으로 노동조합의 동원 능력 역시 크게 손상되었다. 노동조합의 관료화가 심화되고 조직노동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53 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조직노동의 반발이라는 제약으로부터 자 유로울 수 있었고, 정치적 압박과 행정적 개입을 통해 정책을 일방적으 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산별노조나 민주노총은 현장 동원 력이 소진되면서 적극적인 반대전선을 펼칠 수 없었다. 쌍용자동차 파 업이나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투쟁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 킨 경우에도 노동조합의 전국적 연대투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노동 조합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쟁점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은 사업장별로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의 노동정책 에서 법적 규율과 제도적 억압, 사용자의 물리적, 경제적 폭력은 개별 노동조합의 투쟁을 고립화하고 무력화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처럼 노사 간 권력관계의 변화와 보수정권으로의 정권교체와 함 께,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는 보다 철저한 탈규제와 전면적 유연 화, 권위주의화로 나아가게 되었다. 민주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체제 는 국민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 시킴으로써 대중의 삶을 악화시켰다. 민주정부의 성과에 대한 대중의 실망에 대해 우파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불철저함에 기인한 것으로 돌 리고 철저한 신자유주의화와 전면적 유연화, 권위주의적 사회통제의 강화로 돌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 의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사회를 통제하며, 축적체제의 정당성은 수출을 통한 성장이라는 포퓰리즘적 목표를 통 해 정당화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양극화를 봉합하고 안정적인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노동운동의 동원 력이 취약해진 조건에서, 이명박 정부는 사회적 합의의 절차를 폐기했 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부담을 벗어버리면서 노동시장의

254 동향과 전망 87호 전면적 유연화, 노사관계 법치화를 강하게 추구할 의지와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에게 헤게모니 프로젝트로서 의 노동정책은 필요하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것은 노동조 합과 시민사회의 무력화를 향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명박 정권 하에서 신자유주의는 노동배제의 계급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권위주의적 신 자유주의로 퇴행했다.

일 6. 맺음말 반 논 문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발전국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선 택된 축적체제의 전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압박으로부터 자본의 계급권력을 공고히 하는 정치적 프로젝트였고, 노사관계의 민 주적 제도화를 요구하는 민주화 프로젝트와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민 주정부 10년의 노동정책은 축적체제의 요구로부터 비롯되는 노동시장 유연화, 유연안정성과 사회적 합의와 같은 ‘경쟁적 코포라티즘’의 조절 양식을 창출하려는 노력, 노동기본권 확대와 노조행동에 대한 법적 규 율과 물리적 억압, 이데올로기적 고립화 등이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있 었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정책기조의 비일관성, 정치적 수사와 실제 정책의 불일치, 목표와 수단의 괴리 등 모순적이고 비일관성을 특 징으로 한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과 퇴행은 민주적 개혁에 대한 기대와 요구, 신자유주의축적체제의 공고화와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저항이 결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2008년 보수적 정권교체 이후 신자유주의는 ‘1987년 노동체제’의 핵심요소였던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행정적 개 입과 법적 규율로 대체함으로써 자본의 계급권력을 공고화하는 방향으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55 로 전개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민주적 계급지배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규율과 국가통제의 강화, 민주주의 원리와 제도 의 급격한 쇠퇴,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과 시민적 자유의 위축을 포함하 는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의 구체적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조합 의 무력화를 겨냥한 법 제도의 개편,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대한 전면적 공격, 조합원의 시민적 권리에 대한 불관용, 민간부분 노동쟁의에 대한 사적 폭력의 용인, 사회적 합의의 포기, 노동시장 유연화를 확대하는 법제도의 정비, 비정규직과 근로빈곤층에 대한 무관심과 같은 특징들 은 대처정부 하에서 추진되었던 것과 같이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의 전 면전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과 시민사회의 무력화를 목표로 하는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로 퇴행했다. 1997년 시장자유주의노동체제의 성립이후, 민주정부 10년의 모순과 변형을 거쳐,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권위주의적 버전이 완성된 것이다.

2012. 10. 16 접수/ 2012. 11. 13 심사/ 2012. 12. 03 채택

256 동향과 전망 87호 주석

1) 그에 따르면, 특정한 경제성장 모델로 정의되는 축적전략의 성공을 위해 ‘그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사회적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국가의 의도적이고 체계적 인 활동’으로서 헤게모니프로젝트가 출현한다. 이는 물질적 양보와 상징적 보상 을 통해 전체 인구의 지지를 동원하는 국민통합 헤게모니프로젝트와 전체 인구 중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분의 지지만을 동원하고 이 프로젝트의 비용을 여타 부 분에 전가하는 국민 분리 헤게모니프로젝트로 구분된다. 헤게모니프로젝트에 대한 합의는 국가기구의 상대적 통일성과 응집성의 이데올로기적, 물질적 토대 를 제공하며, 이때 제도적 총체로서의 국가 내부의 통일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일 반 계기가 국가프로젝트다. 논 문 2)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민주화프로젝트에 대한 지배계급의 반격이 신자유주 의 프로젝트로 나타난 것이며, 두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동등한 위상으로 추진 된 것이 아니라 민주화프로젝트에서 선진화프로젝트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었고, 이는 계급권력의 회복이라는 자본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1993년 신노동정책의 좌절이후 1996년 노개위협상은 이미 국면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 는 것이었다. 민주화프로젝트는 시민사회로부터의 압박에 의존했고 그 강도는 계속 약화되었던 반면, 선진화프로젝트는 민주화프로젝트의 역전, 혹은 이를 대 체할 프로젝트의 특성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이후 개발국가 자본주 의의 종언과 경제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체제의 확립은 개발국가 이후의 대 안적 자본주의모델을 둘러싼 각축에서 민주화프로젝트의 패배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3) 하비(Harvey, 2007) 역시 신자유주의를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엘 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해석하며, 국가별 다양성과 차 이를 강조한다.

4)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이며, 대 외개방과 자유화, 규제완화를 중심축으로 하면서, 케인즈주의적이거나 발전국 가적 개입정책, 사민주의적 정책으로 보완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5) 이와 관련하여 공동교섭단을 구성할 경우, 규모가 전체 조합원의 1/10 이하인 노조는 공동교섭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특정노조의 쟁의 행위 시 전체노조 원의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과반수 찬성을 얻도록 한 것은 사실상 소수노조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57 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한한 것이고,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강행규 정으로 간주해 이를 지키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도록 한 것, 현격한 근무조건의 차이나 고용형태, 교섭관행을 감안해 교섭단위를 분리할 때, 기준이 모호해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으며, 교섭단위 분리를 노사합의가 아니라 노동 위원회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한 것. 초기업별 노조의 유일교섭단체 조항을 부 당노동행위로 간주해 교섭창구단일화 강제하는 문제, 교섭 대표노조와 사용자 에 의한 불합리한 차별의 판단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 등이 논란이 되었다(󰡔매 일노동뉴스󰡕, 2011.1.3).

6)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에 대해 노동부는 3년 연장, 지식경제부는 4년 연장을 주 장했고, 파견법과 관련하여 노동부는 파견 허용업무 확대, 지식경제부는 사용기 간 연장 및 네거티브 리스트 전환을 제시했다.

7) 근로시간저축휴가제도는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 초과근로나 연차휴가를 근로 시간으로 환산해 저축한 뒤 필요할 때 사용하거나, 미리 휴가를 사용하고 나중 에 초과근로로 보충할 수 있는 제도이다. 탄력근로시간제는 단위기간인 2주나 3 개월을 평균해 주당 근무시간이 40시간을 넘지 않으면 특정 주에 초과근로수당 없이 40시간 이상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8) 이러한 정책방향은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했을 때 추가고용이 발생할 것이며, 불 법파견 소지가 있는 노무도급을 파견제로 유도해 양성화할 수 있고, 파견보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임시일용직이 다수인 업무가 파견으로 되면 노동조건이 개 선될 것이라는 논리를 깔고 있다.

9) 단체협약 해지는 공공부문에서 시작되어 민간부문에 까지 크게 확대되었다. 2009년 한국노동연구원, 발전, 가스, 철도 등에서 줄줄이 단체협약을 해지하면 서 무단협 상태에 놓인 공공기관이 급증했고, 사측은 단협이 실효되자마자 전임 자 현장복귀, 노조사무실 폐쇄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2011년 9월 고용노동부 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노조에 단협 해지를 통보한 공공기관은 2009년에는 14곳, 2010년 4곳, 2011년 16곳으로 나타났다(󰡔매일 노동뉴스󰡕, 2011.09.21).

10)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2008년 52억 원에서 2009년 148억 원, 2010년 121억으로 증가했고, 2011년 상반기에만 700억 원 으로 5배 급증하고 있다. 특히 2011년에는 가압류가 160억 원으로 증가해 노동 자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1년 5월 현재 민주노총 사업 장에 청구된 손해배상 액은 철도공사 120억 원, 쌍용차 387억 원, KEC 301억

258 동향과 전망 87호 원, 한진중공업 202억 원, 현대자동차 206억 원, 민주노총 28억 원 등 총 1,582 억 7천만 원에 달하고 있다(민주노총 이슈페이퍼, 2011. 6).

11) 그가 의존하고 있는 풀란차스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는 모든 생활 영역에 대한 국가 통제의 강화, 정치적 민주주의제도의 급격한 쇠퇴, 공식적 자유들의 위축 등이 결합된 것을 의미했다.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는 민주적 계급지배의 외형은 건드리지 않고 유지하면서도, 스펙트럼에서 강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강제/ 동의의 새로운 조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12) 여기서 경쟁적 코포라티즘은 조합주의적 협상과 타협의 형태를 구축하여 자본 의 논리와 한계 안에서 노사정의 동반자관계를 확립하려는 것으로, 조합주의 전 략을 통해 계급투쟁을 길들이고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일 반 논 13) 애초 노무현 정부의 초기 노동정책 방향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였지만 점차 대 문 기업노조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과 남용을 억제한다는 방침은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귀결되었고, 노사관계제도 선진화방안 역시 노조의 쟁의권을 규제하고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는 방향으 로 귀결되었다.

14) 모든 사회변동에는 변동의 경로를 설정하는 최초의 시기가 존재한다. 이러한 측 면에서 구조적 제약, 최초의 경로를 설정하는 결정적 국면(critical juncture)이 중요하다. 결정적 국면이란 노동포섭의 특정한 방향이 형성되고 이후 장기적으 로 그 유산과 영향이 확장되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를 의미한다. 이는 특정시 기에 형성된 제도적, 조직적 체계의 장기적 영향을 포착하는 개념이다(Collier, 1989). 1997∼1998년 개정노동법은 1987년 이후 노사관계 행위자들의 투쟁 과 타협, 권력관계의 제도적 결과물이었고, 이후 노사정간의 갈등과 협상의 출 발점을 이루고 있다. 이후 노사정의 각축이 1997∼1998년 개정 노동법의 틀 내에서 그 변형을 위한 과정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1997∼1998년 노동법개 정 과정은 이후 노동체제 전개에 결정적 국면(critical juncture)의 역할을 수행 했다.

15) 노조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사용사유제한, 파견근로의 고용의제 및 간접고용 규제를 요구한 반면, 자본은 기간제 근로자의 기간제한 연장, 파견근로의 포지 티브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59 참고문헌

김성희(2008). 유연성 우위의 노무현정부 노동정책. 󰡔양극화 시대의 한국경제󰡕. 후 마니타스. 노동부(2008). 노동 분야 국정과제 세부실천계획. 2008. 3. 13. 고용노동부. 주요업무 추진계획. 2010, 2011, 2012.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백서󰡕. 2010, 2011, 2012.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2008). 참여정부 정책보고서. 노중기(2006). 노무현정부의 노동정책: 평가와 전망. 󰡔산업노동연구󰡕, 12권 2호. 노중기(2009).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의 노동정책. 󰡔경제와 사회󰡕, 봄호 81호. 노중기(2011). 한국노동정치와 국가프로젝트 변동. 󰡔산업노동연구󰡕, 16권 2호. 노중기·전병유(2011). 시장친화와 노조파괴·노동억압정책. 󰡔독단과 퇴행, 이명박 정부 3년 백서󰡕. 메이데이. 박태주(2008). 노동정책, 사회통합을 위한 노동개혁의 실종. 󰡔노무현시대의 좌절󰡕. 창비. 신원철(2004).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의 평가와 전망.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통권 6호. 윤상우(2009).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화. 󰡔경제와 사회󰡕, 83호. 임영일(2003).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체제 전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운동: 1997-2001󰡕. 한울 임운택(2010.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발전단계와 헤게모니 전략에 대한 이념형 적 분석. 󰡔경제와 사회󰡕, 88호. 장홍근(1999). 한국노동체제의 전환과정에 관한 연구, 1987-1997.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정이환(2010). 현 정부 고용정책 평가. 민주노총 고용전략 심포지엄 발표문. 조돈문(2006). 자유 시장경제 모델로의 이행과 노무현정권의 노동정책.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통권10호. 최영기 외(2000). 󰡔한국의 노동법개정과 노사관계󰡕. 한국노동연구원. 한종희·하재룡(2005). 이중적 성찰성과 전략적 선택성의 관점에서 본 국가능력과 정책변화: 노동정책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행정학보󰡕, 39권 1호.

260 동향과 전망 87호 Hall, Stuart(1988). The Hard Road to Renewal: That cherism and the Crisis of the Left 2007. Verso Books. 임영호 옮김(2007).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한나래. Harvey, David(2005).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최병두 옮김(2009). 󰡔신 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한울아카데미. Jessop, B., Bonnett, K., Bromley, S., & Ling, T.(1984). Authoritarian populism, two nations, and Thatcherism. New Left Review. ‘권위주의 적 민중주의, 두 국민 그리고 대처주의’, 김호기 엮음(1995). 󰡔포스트포드주 의와 신보수주의의 미래󰡕. 한울아카데미. Jessop, Bob(1991). State theory: Putting the Capitalist State in Its Place. 유범 상 옮김(2000). 󰡔전략관계적 국가이론󰡕. 한울아카데미.

일 반 논 문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61 초록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와 연속성?

조효래

이 글은 이명박 정부 노동정책의 주요내용과 특징을 검토하고, 이러한 정책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한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통한 배타적 경영권 보장, 유연화의 전면적 확대 를 통한 단기적 일자리의 대량창출로 요약된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 책이 정책기조의 비일관성, 정치적 수사와 실제 정책의 불일치 등 모순 적이고 비일관성을 특징으로 한 것이었다면, 2008년 보수적 정권교체 이후 신자유주의는 ‘1987년 노동체제’의 핵심요소였던 노동조합을 무 력화하고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행정적 개입과 법적 규율로 대체함으 로써 자본의 계급권력을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명박 정 부의 노동정책은 사회적 규율과 국가통제의 강화, 민주주의 원리와 제 도의 급격한 쇠퇴, 시민적 자유의 위축을 포함하는 권위주의적 신자유 주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노동정책의 변화와 상대적 성 공에는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확립에 따른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공 고화, 1997∼1998년 노동법의 경로제약성, 노사 간 권력관계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주제어 ∙ 노동정책, 이명박 정부, 노동조합, 노사관계, 유연화

262 동향과 전망 87호 Abstract

Labor Policy of Lee Government

Change or Continuity?

Hyo Rae Cho

일 반 논 문

This study analyzes the characteristics of labor policy of Lee Myung-bak government in the development of neo-liberalist labor regime in South Korea. Neoliberal nature of labor policy has been reinforced under the con- servative Lee government than the former governments. While all of the la- bor policies of three governments after 1997 have focused on cooperative labor relations and labor market flexibility, they were different in many aspects. The labor policy of Lee government can be largely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 drive for reforms of public sector industrial relations has strengthened under the name of advancement of public sector, which is strong intervention in industrial relations to weaken labor unions and to pro- tect the employer’s corporate control. Second, the bills introducing multiple trade unions in an enterprise and prohibiting payment to full-time union of- ficials have taken effect to weaken the power of large enterprise unions and industrial unions. Third, the attempt to enact the Labor Market Flexibility has continued. But these policies didn’t include the effort to improve the fundamental rights of laborers, social protection of contingent workers which compliment labor market flexibility, and social dialogue system such as Tripartite Commission.

Key words ∙ Labor Policy, Industrial Relations, Trade Unions, Labor Market Flexibility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 263 일반논문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1) 이성로* 안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사회과학연구소장

어떤 글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조지 오웰) 민족은 운명이다. 아무도 민족의 범위에서 초탈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이광수)

1. 들어가는 말

2010년 말 북한의 연평도포격은 햇볕정책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으로 말미암아 전혀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 북 한에 ‘퍼주기’를 했고 그 결과 핵폭탄으로 되돌아왔다고 목소리를 높이 며 남·북 관계 파탄의 책임을 과거 정부 탓으로 돌렸다. 연평도포격 직후 이명박 정부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김대중 노무현 민주당정 부 10년간 추진된 대북포용 정책의 잔영을 완전히 청산할 것이라는 선 언하였다.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정권에서 10년 동안 햇볕정

* [email protected]

264 동향과 전망 87호 책을 하며 북한도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 결과는 미사일, 핵· 폭탄이 돼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에 대해서 주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등 보수 세력은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미 김대중 정부 기간 중인 1999년 6월, 서해 연 평도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으로 인한 제1연평 해전이 발발 했을 때, 햇볕정책의 실질적 성과에 대한 논란이 생겼다. 이때부터 보 수세력은 포용정책의 폐기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특히, 2009년 북한 의 핵실험을 계기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일부 전문가 단체에서는 이른 바 “햇볕정책 책임론”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9년, 한나라당은 일 반 “북한 핵 문제는 애초부터 북이 핵을 포기할 것이며, 협상으로 그렇게 논 문 유도할 수 있다고 믿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판단 착오”라고 말했다. 협상 의지가 없는 북한을 상대로 협상을 시도한 것 자체가 북한에 핵개 발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벌어준 셈이란 것이다.1) 반면에 민주당 등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시각에서는 그 정책의 효과 는 이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 동안에 입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민주당정부 10년 동안 착실히 남·북 관계를 우호와 협력의 관계로 만들어 왔다. 국민의 정부 동안에 발생했던 1, 2 차 연평해전에서 양측에서 수 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 고 전쟁을 걱정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결과로 남·북은 해방 후 6·25를 거치며 이어오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두 번에 걸친 양국 정상회담을 이끌어내었으며, 이어서 비무장지대 등 접 경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상호교류와 무역을 증가시키고 있었으며, 금강산관광에 이어 개성관광도 실현하고, 노무현 정부 말기 에는 서해에 평화구역 설정에 합의하는 10·4선언을 이끌어내었는데 어떻게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한 정책을 놓고 서로 상이한 평가를 내리게 하는 요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65 인은 무엇일까? 사실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영역인데 이것은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정당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서로 자기 당에 유리한 평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즉, 햇볕정책은 정책 평가의 이해관계자들이 현재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거나, 되찾으려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평가의 타당성이다. 적어도 어느 한 쪽은 잘못된 평가방법을 채택했거나, 측정도구에 문제가 있거나, 객관적 평 가를 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연구는 햇볕정책에 대한 분석을 평가의 타당성에 초점을 맞추어 실시함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란을 정리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 즉, 이 연구는 햇볕정책이 공공정책으로서 과연 잘 만들어진 정책이었 나를 밝혀내는데 주요 연구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네 개의 질문을 던 진다. ① 햇볕정책은 이론적 논리적으로 잘 구성된 정책이었나? ② 햇 볕정책은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남·북이 화해하는데 도움이 되 었나? ③ 햇볕정책은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끌고 있었나? 북한체 제를 변화시키고 있었나? ④ 햇볕정책은 남·북통일을 위하여 도움이 되었나? 이 연구에서 이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으로 나타났 으며 그러한 논의 연장선에서 현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대북정책의 궤 도 수정을 권유한다. 햇볕정책은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며, 전 국 민이 보다 굳건히 공유할 수 있는 실용, 평화 패러다임의 정착 차원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발전적 재구조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참혹한 전쟁 을 겪은 한반도에서의 뒤늦게나마 탈냉전 시대의 도래가 가지는 의미 가 결코 적지 않다.

266 동향과 전망 87호 2. 햇볕정책 평가를 위한 시각과 고려할 점들

햇볕정책은 대북한 외교정책으로 하나의 국가 공공정책이기 때문에 일 반적 정책분석 혹 정책평가의 틀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책학자 들에 의하면, 정책평가란 ‘일반적으로 정부가 공공이익의 실현을 위해 서 정부가 직접적으로 선택하거나 간접적으로 간여하는 활동이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정책의 당위성, 정책집행의 결과로 어떤 결과가 나타 나게 되었는가 하는 정책의 영향과 효과, 정책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달성하였는가에 대한 목표달성 정도, 그러한 결과에 이르기 위해 더 나 일 반 은 방법은 없었는가에 대한 정책대안 등에 대한 일련의 판단’을 말한다 논 문 (정주택 외, 2007: 3). 노화준(2006: 4)은 정책평가를 ‘정책의 내용, 집 행 및 집행의 결과와 그 영향 등을 추정하거나 사정 또는 평정하기 위하 여 체계적 연구방법을 응용하는 것으로써 어떤 한 정책의 과정이나 결 과를 이해하고, 그 값어치를 판단하는 사회적인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정책을 어떤 직관이나 선입견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며, 어 떤 체계적인 방법의 적용을 통한 증거의 수집과정을 뜻한다. 이 연구에 서는 정책평가를 정책분석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정책학의 아버지 라스웰(Lasswell, 1951)은 정책평가를 인간의 존 엄성이 좀 더 충실히 실현되는 인간다운 사회의 건설하는 데 있으며, 우 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문제의 해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문제를 실제의 공간적 정치적, 역사적, 그리고 윤리 적 맥락 속에 놓고 접근하는 맥락지향성을 파악한다. 라스웰(Lasswell) 의 말처럼, 어떠한 문제도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전체일 수는 없으 며, 그 문제는 언제나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더 큰 것의 일부분에 지나 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바르게 진단 처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서는 그 문제와 관련된 공간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것이다.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67 다음으로, ‘퍼주기’란 담론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 것을 고려할 때, 햇볕정책을 평가하는 데는 비용편익분석은 매우 유용하다. 비용편익 측면에서 정책분석은 기업차원의 재무적 분석과는 달리 사회적 관점 또는 국민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비용과 편익을 파악하며, 정책을 추진 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될 것으로 기대되는 모든 비용과 편익을 단기적 시각이 아니라 장기적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정 책분석은 실증적인 접근방법보다는 규범적 접근방법이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를 규명하는 가치판단이 내포된다 (김동건, 2008: 2). 비용편익분석의 시각에서, 햇볕정책은 하나의 공공정책으로서 그 목적을 달성한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제적 생산성을 증 대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편익과 함께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간 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정책이란 결코 만병통치가 아니다. 어떤 정책도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할 수는 없고 다만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점진적 인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빈곤퇴치를 위해 특정사업을 실 행했는데 빈곤이 완전히 퇴치되지 못했으므로 그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과연 햇볕정책은 북한에 ‘퍼주기’만 한 것인가, 실제 비용 은 얼마나 들었으며, 그 산출은 없었나 하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어 햇볕 정책을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책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가의 타당성이다. 이는 정책실행 을 통하여 정책대상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이 정책의 순 결과였는지 아 닌지 하는 측정의 타당성 문제이다. 즉 정책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왔는 가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 그 목표를 달성했느냐 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정책평가의 타당성은 정책평가의 핵심개념이다. 햇볕정책 평가의 타당성과 관련하여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허위적 (spurious relation) 인과관계의 존재여부다. 허위적 관계란 제3의 변수

268 동향과 전망 87호 에 의해 설명할 수 없는 두 변수 간의 연관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유 명한 소방정책에 관한 연구 결과,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차 및 소방관 의 수와 화재로 인한 피해액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도, 소방차나 소방관의 수가 피해액수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허위적 관계에 기초한 평가가 있다면 그 평가는 분명 잘못된 평가가 될 것이다. 햇볕정책이 남·북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또는 북한의 핵개발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햇볕정책 평가에 매우 중요한 핵심 문제다. 정책평가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간프레임이 설 정되어야 한다. 즉 어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적절한 시간 범위 내에서 일 반 이루어져야 하며, 정책이 종료되고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어 평가대상 논 문 의 속성이 변화하고 난 이후의 새로운 상태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간 단히 말해서, 햇볕정책이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혀 내기 위해서는 햇볕정책을 시작하기 이전과 햇볕정책 실행 이후의 남· 북 관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2008년 민주당정부가 퇴진하고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에 따라 바뀐 대북 정책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햇볕정책의 효과로 보는 것은 오류다. 물론 그 사이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다양한 외생변수나 개입변 수의 효과를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3. 햇볕정책의 당위성과 국제 국내정치적 환경

1) 햇볕정책의 당위성 역사, 언어, 문화, 피부색 등 한민족이 서로 싸우지 않고 어려울 때 서로 돕고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여 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달라도, 아무리 부정하고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69 싶어도 같은 민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춘원 이광수 (1981)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족은 운명이다. 아무도 민족의 범위에서 초탈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 다… 그의 피에 흐르는 선천적, 유전적 조선 민족적인 성격은 조물주도 변역하고 좌우할 힘이 없는 것이다. 유태족을 보라. 그들은 국가 생활을 잃은 지 이미 이천년이 되어, 이래로 이민족 간에 섞여 살아 제 말과 풍습 조처 잊어버린 이가 많건마는 그들은 언제까지든지 유태인이 아니냐. 아 라사의 유태인, 독일의 유태인, 이 모양으로 야속하게도 이민족으로부터 특수한 단일체인 대우를 받고 있지 아니한가. 이 모양으로 정치형태는 변한다 하더라도 민족의 본질은 인류의 기록에서 보는 한에서는 불변이 라 할 것이다.

이러한 당위성은 남한이 북한 동포와의 관계에서 자비심과 인내심 을 잃지 않으며 최대한 후덕하게 상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대북정책도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화적이고 유연한 정책수단을 쓰 며 반대로 강압적이고 폭력적 수단은 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은유적 표현으로 ‘겨울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라는 이솝우화를 인용하였다. 햇 볕정책은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상호신뢰 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첫째, 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도발 불용의 원칙. 둘째, 흡수통일 배제의 원칙. 셋째, 화해·협력 적극 추진의 원칙’이라는 ‘대 북정책 3대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 아래, 국민의 정부는 보다 많은 접촉과 보다 많은 대화, 보다 많은 협력을 추구했으며, 정경분리 원칙 에 따른 경제 교류를 활성화했고,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과 이

270 동향과 전망 87호 산가족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2) 햇볕정책의 국제정치적 환경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한 남한의 대북정책이지만 이는 다른 국내 정책 처럼 단순히 남한 스스로 결정 집행할 수 있는 그리 단순한 정책이 아니 다. 대북정책으로서 햇볕정책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일·중· 러 등 4대 강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있어 그들과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 을 미치며 묵시적 명시적 동의가 필요하다.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패권 국인 미국의 세계전략과 역사적으로 끈질기게 대륙진출을 노리는 일본 일 반 등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패권세력과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세력이 충 논 문 돌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1) 미국 2차 대전 이후 소련과 중국 두 공산주의 국가의 세력팽창을 봉쇄하는 것은 미국의 가장 큰 세계전략이 되어 왔다. 냉전이 끝나고서도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지배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의 한반도 정책은 동북아에서 이 공산주의 세력의 봉쇄정책이라는 커 다란 틀 속에서 수립되어 왔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한국인의 의 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한국을 분단하였고 남한을 반공의 보루로 활용 하려는 전략을 수립 강행하여 왔다. 최근 중국이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하여 결국 동아 시아 지역의 패권국가로 등장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그 경 우 한국은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을 봉쇄하는 동아시아의 전진 기지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71 (2) 일본 임진왜란과 청일전쟁 등 역사에서 보듯이, 역사적으로 대륙진출을 노 려왔던 일본은 지역강국으로서 중국과 경쟁하여 왔다. 일본은 한반도 를 그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매우 주요한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는 근대 이전에는 중국과 한국의 선진 문명을 입 수하기 위한 문명의 수입 창구로, 그리고 근대 이후 태평양 전쟁 패전까 지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하고 중국 등 대륙 침략을 위한 전초기 지로서 사용하였다. 일본은 중국이 그들을 사정거리 안에 둔 핵과 미사일 무기를 개발 하였고 공군을 현대화하는 동시에 해양활동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점을 중시한다.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과 대포동 미사일 발사시험이 그 들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국익을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 다. 따라서 한반도를 자국안보의 전략적 요충지로 판단하고 있으며 한 반도에 그들을 적대하는 세력의 득세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3) 중국 역사적으로 수많은 변방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려왔던 중국은 그 변방 에 그들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출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 고 있다. 그들은 불과 100여 년 전 어떻게 서구 식민제국열강이 그들의 영토를 분할하여 유린했으며, 그 후 만주에서 일본제국주의의 괴뢰정 부가 그들의 황제를 옹립하고 본토를 도륙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히 기 억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그들을 대상으로 봉쇄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중국은 NATO의 팽창, 미국의 중앙아시아 정책, 미국의 태 평양 정책 등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미국의 주도하에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 분리, 속박하려는 일관된 정책의 산물로 여기고 있다. 미국은 아

272 동향과 전망 87호 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행동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자신 의 전략적인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탄에 미 군기지가 들어서고 카자흐스탄과 타지키스탄에 미군기가 착륙권을 얻 었다. 미국의 봉쇄에 대항해서 중국은 그 국경 변방 국가를 지원해왔다. 중국은 그 동북 변방국가인 북한이 어려운 고비마다 경제적 원조를 해 왔으며, 북한의 체제유지를 강력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미 잘 알려 진 대로, 중국은 6·25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싸운 영웅적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에 30 일 반 만 대군을 보내 참전했고, 1994년 이래 매년 10만 톤 이상의 식량과 상 논 문 당량의 원유를 무상 유상으로 제공하고 있다(조성렬, 2012).

(4) 러시아 러시아인들 역시 역사적으로 자국의 안보를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 중 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인들은 얼마나 무자비하게 나폴레옹과 히틀러 의 군대가 그들의 심장부를 짓밟고, 또 일본의 관동군이 어떻게 시베리 아에서 그들의 국토를 유린하고 있었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러시 아는 극동 및 시베리아 지역의 안보를 위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 과 평화 유지를 우선적인 국가목표로 추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 아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독자적인 세력 균형자, 조정자로서 역할을 제고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개발, 나아가 아시아의 안전보장공동체 구축 등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에게는 한반도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한국과는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과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여 한반 도 전역이 전통적 적대국인 미국과 일본의 영향권으로 완전히 떨어지 는 것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다(홍완석, 2006).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73 3) 국내정치적 환경 국내적으로 대북정책은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있는 정치세력 사이에 서 매우 격렬한 정치적 논쟁과 투쟁의 장을 제공하는 특별한 정책영역 이다. 6·25라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생생히 기억하는 노년층을 중 심으로 하는 이른바 보수세력은 전후 반공이데올로기를 대체로 합리적 정책노선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북한은 구 소련과 중국공산당의 괴뢰정권이 통치하는 공산집단이며 분단 이후 북 한은 끝없이 적화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을 기 본적으로 멸망시켜야할 ‘주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국내 보수세력은 햇볕정책을 완벽히 실패한 최악의 정책으로 평가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햇볕정책이 김정일 체제만 강화하였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존재하는 ‘혁명화구역, 완전통제구 역’이라 불리는 최악의 인권학살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인민들은 외면 하며, 수천만 북한 인민이 1인 독재체제의 감시와 억압 속에 죽어 가는 데 그것에 대해서도 침묵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세력들은 햇볕정책과 6·15 선언은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 키는데 실패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묻는다. 햇볕정책 실행기간 동 안 수 억 달러를 김정일과 인민군에게 퍼다 주고 산 평화가 진정한 평화 인가? 햇볕정책을 주장하는 진보세력은 민족주의, 평화주의를 외치면 서 왜 북한의 절대다수 인민의 고통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이 들에게 햇볕정책은 주적에게 자금과 물자를 지원하는 이적행위라는 것 이다. 반면에 주로 진보세력 등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햇볕정책이야말 로 민족분단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본 다.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남·북 문제는 우리 자신의 삶과 민족의 장 래에 직결되는 문제로서 당연히 우리 7천만 겨레의 뜻을 바탕으로 남·

274 동향과 전망 87호 북 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남·북 문제 의 해결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발전은 없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햇볕정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은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 형성, 즉 통일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이것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 을 동원하여 점진적으로 실현하려는 정책이다. 보수세력의 비판에 대한 햇볕정책 옹호론은 크게 두세 가지로 요약 될 수 있다. 첫째, 햇볕정책은 힘의 논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모든 문제 를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하겠다는 과도한 이상주의적 정책이 아니다. 즉, 햇볕정책은 안보를 소홀히 하는 단순한 유화정책이 아니다. 이는 일 반 과도기적 상황의 이중성을 고려한 복합적 접근이며 평화를 만들어가는 논 문 억제와 협력의 이중성을 띠고 있다. 남측이 북측을 지원하는 것은 결코 ‘짝사랑’이 아니라 남측이 필요한 정책이 북측에도 유리한 것일 뿐이다 (구영록, 2000). 햇볕정책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현상 유지적’ 목 표와 통일이라는 ‘현상 변경적’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려는 이중적 성격 을 갖고 있는데(김근식, 2000), 이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 며 장시간 동안의 인내를 요한다. 서독의 동방에 대한 동방정책이 효과 를 볼 때까지는 장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보수세력은 햇볕정책을 탈냉전시대의 지구적 시대 조류를 반영한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으로 보기보다는 김대중이라는 정 치인과 그 지지세력의 정권적 부산물로 본다는 것이다. 즉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이 정책 자체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기보다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정치적 차원의 선호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근식, 2000).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75 4. 네 가지 질문으로 본 햇볕정책의 평가

이러한 논란을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게 분명하게 해결하는 것은 사 실 불가능하다. 이 연구는 다만 그 범위를 좁혀서 햇볕정책이 과연 잘 만들어진 정책이었나, 그리고 정책목표를 달성했는가 하는 문제를 검 증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들을 던진다.

1) 햇볕정책은 이론적 논리적으로 잘 구성된 정책이었나? 2) 햇볕정책은 평화를 유지하고 화해를 할 수 있었나? 3) 햇볕정책은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끌고 있었나, 체제를 변화시 키고 있었나? 4) 햇볕정책은 앞으로 언젠가 다가올 남·북 통일을 위하여 도움이 되 었나?

1) 햇볕정책은 이론적 논리적으로 잘 구성된 정책이었나? 나그네는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보다는 햇볕이 따갑게 비출 때 스스로 옷 을 벗을 것이라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환경론자의 논리다. 환경론이란 인간의 행동과 사회 구조는 신의 계시나 타고난 목적(텔로스)이 있는 것처럼 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자연 사회 경제 환경에 의하여 대부 분 정해진다는 의미다. 이 중 자연적 즉 지리적 환경에 중점을 두고 이 것이 인간 내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지리적환경론의 견해 는 일찍부터 존재했다. 히포크라테스·헤로도토스 등 초기 역사학자 들은 일찍이 인간의 행동이나 역사를 생리적·직접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환경론은 신학적·목적론적인 세계관의 지배를 받던 중 세에는 잠시 모습을 감췄으나, 르네상스 이후 합리적 사고의 부흥과 더

276 동향과 전망 87호 불어 부활했다. 먼저 보댕, 몽테스키외가 국가 및 사회의 발전이 지리 적 환경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설을 제기했다. 이런 견해는 인간의 정신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환경결정론은 하나 의 문명사관으로까지 발전했는데 물론 매우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다. 그런데 21세기 초 한국과 미국이 다시 중세로 돌아갔는지 이 환경 론은 거부당하고 있는 듯하다.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체제는 원래부 터 사악한 ‘악의 축’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 국가들과 사회가 외 부환경과 아무런 상호작용도 없고 영향을 받지도 않고 오직 악을 행하 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체제는 본 일 반 래 신이 내린 것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 논 문 니다. 그것은 2차 대전 후 동서 냉전체제와 한반도의 특수성이 만들어 낸 하나의 산물이다. 북한은 분명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이긴 하나 별천지에 있는 국가는 아니다. 세계는 상호 관련되어 있는 하나의 전체이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부단히 운동·변화하고 발전하는 존재이며 북한은 엄연히 그 한 부분 이다. 북한주민과 집권층의 세계에 대한 인식 역시, 그 기초는 물질적 지리적 역사적 환경의 산물로 파악할 수 있다. 북한체제와 그 주민들이 독특한 정신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 경제적 환경이 변한다면 체제와 주민 모두가 변할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이러한 환경론자의 논리가 타당하다면 햇볕정책은 이론적 논리적으로 잘 고안된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기능주의 시각에서는 사회의 복잡성 증가로 발생하는 보편적 스트레스와 욕구에 대한 집합적 반응으로 정치제도들이 만들어지고 변 화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집합적 반응으로서의 사회제도는 그 사 회의 목표달성을 위한 성원들의 합의의 결과라고 본다(Parsons, 1902). 다른 모든 유기체들처럼 사회도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늘 정상상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77 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homeostasis)을 가진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적 목표이기 때문에 항상성을 위협하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되면 유기체는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적응을 시도한다. 적응을 위 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며, 에너지는 유기체 내부의 자원을 소모함으 로써 얻어진다. 사회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한 자원은 경제성장을 통하여 얻어지며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은 그 필연적 결과다. 햇볕정책은 북한도 항상성 유지를 필요로 하는 체제로 인정하고 환 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조건을 형 성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햇볕정책이 지속되어 자본과 동시에 새 로운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유입되면 북한 주민들의 사고도 변할 수밖 에 없을 것이며 이는 북한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이어질 것이고, 이 것은 결국 자연스럽게 체제의 개혁과 개방으로 연결될 것이다. 구조기능주의 시각에서는 또 햇볕정책이 권위주의 체제의 변화 내 지는 궁극적 붕괴를 앞당길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모 든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공통적인 특징은, 독립적인 조직체를 용인할 수 없고 용인하지 않는다. 체제의 구성원은 어떤 집합적인 대안이 존재 하지 않는 한 그 체제에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대안이 존재하 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나약함과 무기력에 굴복한다(Weber, 1968). 권위주의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정당성의 붕괴와 대항 헤게모니의 출현이다. 햇볕정책이 불러들여 올 자본과 일정한 풍요는 기존 북한체 제의 정당성을 상당부분 훼손시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북한 주민 에게는 삶의 시각과 방식을 제공하며, 결국 개방과 개혁이 집단적인 대 안으로 기능할 것이고 개인들은 정치적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 미다.

278 동향과 전망 87호 2) 햇볕정책으로 남·북은 평화를 유지하고 화해 할 수 있었나? 햇볕정책은 ‘평화·화해·협력’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를 분 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 햇볕정책은 그 목표를 달성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이 화해를 하고 평화를 회복하였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양자 사이에 협력은 이루어졌는가? 하는 단순화된 두 개의 질문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앞의 질문이 상대방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살얼음과 같은 평화를 회복하는 소극적 화해를 반영 한다면, 뒤의 질문은 적대행위 중지를 넘어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협 력을 통한 평화를 공고히 하는 적극적 화해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일 반 논 문 (1) 소극적 화해: 적대행위의 중지 휴전 이후 크고 작은 북한의 도발은 계속되어 왔지만, 햇볕정책을 분 기점으로 북한의 도발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그 성격은 본질적으로 변하였다. 햇볕정책 실행 이전 북한은 1968년 1·21청와대 습격사건 이나 아웅산테러와 같이 무장 군인을 파견하여 대통령이나 국무위원 등에 대한 살상을 목적으로 하거나 민간 항공기를 공중에서 폭파하고, 어선을 격침 납북시키는 등 극단적 적대행위를 표출하던 도발을 감행 하였다. 그러나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출범되고 햇볕정책이 본격적으 로 가동된 이후에는 이러한 종류의 군사적 적대행위는 중지되었고 NLL 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등 현상타파를 위한 문제제기 형으로 변하였 다. 결과적으로 이전에 언제 발생할지 모르던 정부요인에 대한 테러행 위나 무장공비침투를 통한 민간인에 대한 살상과 납북, 휴전선에서 총 격사건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또 상호비방을 목적으로 하는 대남 대북 방송이 중지되었고, 휴전선에서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과 전단지 살포 가 중지되었다. 사실상 남·북 간 무력충돌이나 적대적 행위가 전면 중 지되었다.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79 또 햇볕정책 기간 중 1999년 1차, 2002년 2차 연평해전이 발발했지 만 그것은 화해의 국면에서 평화로 가는 일종의 진통이라고 볼 수 있었 다. 중요한 것은 해전이 발발했을 때에도 전쟁의 공포로 떠는 국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2010년 말 발발한 북한에 의한 연평도 포격 도발이 대다수 국민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사실 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2)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햇볕정책이 그 가시적 효과가 나타난 것은 노무현 정부 기간이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남·북 관 계는 단 한차례의 무력충돌도 없었다. 개성공단이 가동되고 금강산관 광에 이어 개성관광이 시작되었으며 서해상에서 무력충돌을 항구적으 로 예방할 10·4 선언이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적극적 화해와 협력 군사도발중단이 소극적 화해라면 평화를 위한 남·북 간의 정상회담, 경제 사회 문화 교류와 협력 등 적극적 화해도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 부 시절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2000 남·북정상회담과 여기에서 합의한 ‘6·15선언’은 햇볕정책이 빚어낸 하나의 결과였다. 이 선언으로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이 과거의 대결에서 평화공존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이산가족 상봉 등 다양한 종류의 회담이 정례화 되었고 각종 교류가 활성화되어 한반도에서 냉전이 종 식되는 단계로 진입하였다. 남·북 경협을 비롯한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여려 교류와 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남·북 장관급회담은 남·북 정상 간의 합의에 의해 성사된 당국 간 회담으로 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 남·북 화해 협력 관계를 이끌어 가는 중심협의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남·북장관급회담은 남·북국

280 동향과 전망 87호 방장관회담, 경제협력추진위원회, 금강산관광당국회담, 등 분야별로 다양한 회담을 출범시켰다. 이 회담은 경의선 및 금강산 육로연결, 개 성공단 건설, 이산가족문제해결 등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구체 적 합의를 도출하였다. 그 결과, 판문점 연락사무소 업무가 재개되고, 이산가족의 상봉 및 생사, 주소 확인이 이루어지는 등 남·북 간에 막혔던 물꼬들이 트이기 시작하였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에 평화를 향한 노력이 이루 어지고 있음을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 사례가 군사 분야의 남·북 대화 이다. 2000년 9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군 최고 당국자가 마주 일 반 앉은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쌍방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에 따 논 문 른 군사문제 해결에 적극 협력하기로 하는 한편, 전쟁위험 제거를 위 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후 군사실무회담에서는 비무장지대 내 남·북 관리구역 설정문제와 경의선 철도 연결 및 도로 개설에 따르는 군사적 보장문제를 협의하였다. 남·북은 6·15 공동선언에 따라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이를 위하여 남·북은 기반시 설의 연결 필요성에 공감하고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였다. 임진 강 수해방지 사업은 남·북이 함께 힘을 모아 홍수 등 재해를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공유하천을 평화적으로 이용해 나가기 위한 치수사업이다. 2000년 현대와 북측 아태 사이에 개성공단 조성에 대한 합의서가 체결 된 후 공단이 조성됨에 따라 북측은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부족 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남측은 신발 섬유 등 사양산업이 활로를 찾고 국 제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표 1>은 연도별 남·북 간 교역 금액을 보여주고 있는데 햇볕정책 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2000년 이후부터 교역량이 대폭 증가하고 있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81 <표 1> 연도별 남·북 간 교역금액 현황

음을 알 수 있다. 개성공단에는 2004년 6월 시범단지에 15개사가 입주계약을 체결하 고 2005년 18개사가 입주한 이래, 2010년 121개사가 입주하여 기업 활 동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사업여건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 고 2008년 이후 2010년 6월 말까지 28개사가 증가하였다. 생산액도 급 격히 증가하여 2005년 1,400만 달러에서 2008년에는 2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근로자 수는 2005년 6,020명에서 2008년 4만 명에 이르렀다. 남·북을 왕래한 인원도 급격히 증가하여 (금강산관광 개성관광 인원 을 제외하고도) 1989년부터 1999년 사이 10년 동안 12,000명 수준에서 2007년 한 해 동안에만 160,000명에 이르렀다.

282 동향과 전망 87호 <표 2> 개성공단 가동 기업 수 및 생산액 현황

자료: 통일부, 2010

<표 3> 개성공단 근로자 현황

일 반 논 문

자료: 통일부, 2010

3) 햇볕정책은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끌고 있었나? 즉, 햇볕정책은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고 있었나? 햇볕정책이 진정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있었나에 대해서 역시 진보와 보수 진영 간에 논란이 뜨겁다. 보수진영은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데 햇볕정책은 ‘퍼주기’만 했을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단순히 퍼주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시 모든 상황과 정보를 종합해볼 때, 북한이 미약하나마 개혁과 개방 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에서는 이미 햇 볕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이전에 수령제라고 불리는 그 특유의 사회주의적 색깔이 퇴색하고 있었다. 1990년 구 소련체제의 붕괴로부 터 시작된 탈냉전의 바람은 극단적 폐쇄적인 북한체제가 더 이상 버티 지 못하고 중앙계획경제가 이완, 침식되고 이에 따라 계획경제의 분권 화 과정을 통해 비록 제한적이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83 작한 것이다(정세진, 2002: 227). 햇볕정책은 이미 시작되고 있던 북한 체제의 개혁 개방 속도를 가 속화하였다. 북한 체제가 대내적으로는 ‘고난의 행군’을 유지하고 있지 만, 대외적으로는 개혁 개방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2000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데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와 중국 을 방문하여 정상외교를 펼쳤으며, 그 후 서방국가를 중심으로 17개 나라와 외교관계를 열었다. 유럽연합과는 15개 회원국 중 13개 나라 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다. 북한은 2001년 경제 부흥을 제일의 국가과제로 선정하면서 이른바 ‘개방적 자력갱생’ 노선을 채택하였는데 이에 따라 외화 획득 및 첨단 산업기술 도입을 적극 추진하였다. 김정일 위원장 자신이 중국 경제성 장의 상징인 상하이를 방문하여 첨단산업시설을 시찰하고 있는 당시 언로보도는 학계는 물론이고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햇볕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을 전후로 북 한은 그때까지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전환하기 위하여 다양한 사회 경 제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우선 ‘장마당’이라 불리는 농민시장을 포 함한 사적 시장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교의 리동구 교수는 1999년 2월 ‘구식 농민시장은 보조적이고 부차적이며 시대에 뒤 진 것으로 전제한 뒤 정부는 그런 구식시장을 인민들의 생활수준 향상 을 위해 올바르게 활용해야 함’을 주장하였다(Wehrfritz, 1999, 정세진 에서 재인용 2002: 292). 2000년을 전후로 북한의 경제는 실제적인 사회 경제적 현실을 놓고 볼 때, 이미 혼합경제로 나아가고 있었다. 구사회주의 국가와의 차이점 은 점진적 개혁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경제난 식량난이 가져다 준 의도 하지 않는 결과로 볼 수 있지만 햇볕정책은 개혁과 개방의 길을 가속화 할 가능성이 높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당시의 북한체제가 스웨덴식 경

284 동향과 전망 87호 제모델이나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 1980년대 중국처 럼 시장부문을 지닌 혼합경제로 개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이종훈, 2000; 서의동, 2002). 실제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빈번히 중국을 방문하여 개혁 개방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6년 김위원장이 2001년 방문한 적 이 있는 상하이를 다시 찾은 것은 북한의 경제개혁을 염두에 둔 경제적 목적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었다. 당시 김정일은 회담에서 ‘상해는 천지 개벽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이제훈, 2006). 2010년 이후 김정일 의 연이은 중국방문 또한 북한체제의 개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일 반 있다. 논 문

4) 햇볕정책은 남·북 통일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정책인가? 아직 통일이 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햇볕정책이 통일을 위하여 얼 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기본적 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평가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 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 질문은 ‘햇볕정책이 평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나?’로 치환되어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남·북 통일에 이르는 길은, 전쟁의 길을 제외한다면, 남·북이 합의를 통해서 평화적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독일 통일의 경우와 같이, 남·북 당국 간 국내적 합의와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먼저 국내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 상호 간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하고, 그 관계가 상당기간 안정화되어 야 하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 미에서 햇볕정책이 평화의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천명한 것은 적절했 다. 김대중은 1970년대부터 평화, 자유, 민주를 통일의 기본원칙으로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85 주장하였는데 이 중 평화는 우리에게 지상명령이라고 주창한 바 있다. 평화원칙은 3단계통일론의 첫 번째인 남·북 연합 단계에서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 등 통일의 3원칙으로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아태 평화재단 2009).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평화공존이라고 밝혔다. ‘햇볕정책은 한마디로 남·북한이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를 이 룩하자는 정책’이며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를 통해 나중에 ‘서로가 안심 할 수 있게 될 때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햇볕정책은 ‘당장 통 일을 추구하기 보다 우선 평화를 중시하는 남·북한 공존·공영의 정 책’임을 천명하고 있다. 통일 전이라도 남·북의 경제적 문화적 격차를 좁혀놓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즉, 당장 통일은 아니더라도 남·북 간의 적대행위라도 끝내 고 화해하고 통일에 대비해 준비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이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을 변화시키고 주민을 한민족으로서 동질성을 유지 회복시키고, 통일을 위한 여건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유다. 햇볕정책 실행기간 동안 남한은 북한에 대한 다양한 정부와 민 간차원의 지원사업과 인도적 지원사업을 통해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 는 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햇볕정책은 국제사회에서 남·북한 모두에게 국가적 자 율성을 높여주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데 어 느 정도 기여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햇볕정책으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해소하고 긴장완화를 달성한 것이 사실이고 이는 남·북 모두를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앞 서 본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국제정치적으로 미국, 일본, 중 국, 러시아 등 4강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런 상황 에서 남·북한이 강대국의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들에 얽매여 있다면 한민족은 또다시 우리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분단이 지속

286 동향과 전망 87호 될 것이고 6·25와 같은 전쟁터로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통일이 되려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4대 초강대국 사이에 명시 적 묵시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만일 그 어느 쪽도 통일된 한국이 그들 의 국익에 불리할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들은 남·북이 통일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남한이 지나치게 미국이나 일본과 밀착되 어 있다면, 이는 미국과 경쟁 또는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을 불러들여 결국 한반도 통일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3) 물 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만일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지나치게 밀착 되어 있다면, 유사시 북한체제가 붕괴되더라도 남한에 의한 통일은 어 일 반 려울 것이다. 만일 남한이나 북한이 미국이나 중국의 꼭두각시로 남아 논 문 있다면, 설사 북한체제가 붕괴한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남한이 북 한을 흡수 통일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 햇볕정책의 비용과 효과

햇볕정책은 하나의 국책사업으로 당연히 그에 따른 비용이 지출된다. 보통 국가의 어지간한 국책사업이 수 십 조의 사업비가 소요되듯이 (예 를 들어, 새만금사업비 21조 원, 4대강 사업 25조 원) 햇볕정책의 사업 비도 상당한 금액이 들어갔는데, 문제는 그 금액이 비판론자들이 말하 듯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숫자이며 ‘퍼주기’만 하고 돌아오는 것은 없는 가하는 것이다.

1) 햇볕정책의 비용 비록 햇볕정책이란 이름은 붙이지 않았으나, 북한에 대한 남한의 대북 지원은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던 김영삼 정부 집권 3년 차인 1995년 인도주의와 동포애적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정부 차원의 지원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87 은 1995년 6월 쌀 15만 톤 지원으로 시작된 이후 유상지원(식량차관) 및 무상지원 (긴급구호 및 재해복구)이 지속되었다(1996∼1998년은 북 경 쌀회담 결렬(1995.9)로 당국 직접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제기구 를 통해 지원되었다.) 2008년 이후로는 남·북 관계 경색으로 정부 차 원의 지원은 추진되지 못했었으나 최근 천암함 사건 때까지 민간단체 및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지속되고 있었다. 햇볕정책의 비용은 북한에 준 금전적 비금전적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금전적 지원을 보면 다음과 같다. 통일부(2010)의 통계에 따르면, 김대중 노무현 민주당정권 (1998∼2008) 10년간 정부차원 의 무상지원은 1조가 조금 넘는다. 그리고 민간기금과 식량차관, 그리 고 순수한 민간지원을 포함하면 2조 7천억 원이 조금 넘는다. 주목할 것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 것 중에는 현금이 없다는 것이 다. 전통일부장관 정세현(2010)에 의하면, 햇볕정책 10년 동안 북으로 간 액수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수조 원의 현금이 갔다고 주장하나 이것 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일단 정부차원에서 남·북협력 기금이 현금으로 북으로 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쌀과 비료를 산 돈은 남·북협력기금인데 그건 전부 현물로 전달되었다(2010 국회 상임위 보고). 햇볕정책 기간 동안 대북지원으로 비료나 쌀이 가기 시작한 건 1999년부터인데, 총 20억 달러 정도가 현물로 지원되었다. 민간차원에서 보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서 북으로 지 불된 돈은 전부 현대 돈이었는데, 현대가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7대 대북사업을 독점 개발하는 권리를 보장받으려고 선수금으로 4억 5천만 달러를 지불한다. 현대아산은 98년 11월부터 2009년 7월까지 10 여 년간 금강산관광 대금으로 준 돈이 4억 8600만 달러였다. 개성공단 건설과정에서 약간의 비용이 발생했다. 개성공단은 인건 비, 공장부지, 땅값 때문에 중국 베트남으로 나가는 우리 중소기업들을

288 동향과 전망 87호 <표 4> 대북지원현황

일 반 논 문

자료: 통일부 2010

위해서 시작한 것인데 공단건설 비용으로 1단계 100만 평에 7,329억 원 이 들어갔다. 이 돈은 토지공사, 한전 한국통신 등을 통해서 공단건설 비용으로 충당되었다. 또 일인당 50∼60달러로 알려진 공단 근로자 임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89 금으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500만 달러 지불되었다. 이 모든 것 을 합계하면 총 37억 3,000만 달러 정도 (3조 7,000억 원)된다. 그 중에 서 현금은 현대가 준 사업선수금과 금강산 관광대가, 공단 임금 등으로 지불된 10억 달러 즉 1조 원이다. 이와 같은 금전적 비용 이외, 햇볕정책은 비금전적 비용을 수반한 다. 즉, 햇볕정책으로 일정 기간 동안 남·북이 공존하는 현상을 유지해 야하고, 그 사이 분단상태를 지속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분단 의 고착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제공된 약간 의 물질적 지원이 직접 간접적으로 핵개발에 사용될 수 있으며, 햇볕 정책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북한의 개혁 개방을 지체시킬 수도 있다. 햇볕정책의 가장 큰 비용은 남쪽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북쪽에 서 발생한다. 즉 햇볕정책이 북한의 반인권 체제 속에서 억압받는 동포 의 신음소리를 외면한다는 비판에서 보듯이, 햇볕정책은 특히, 북한에 서 정치적 탄압을 받는 집단에게는 어두운 먹구름으로 비쳐질 수 있겠 다. 바꾸어 말하면, 햇볕정책의 결과로서 북한체제가 변할 때까지는 일 부 북한 동포는 계속하여 자유를 억압당할 것이며 희생당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 적대적 대결정책을 쓴다고 해서 북한에서 억압받는 집단에게 더 좋을 것은 없다. 오히려 모든 독재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으 로 내부의 경쟁상대를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외부의 적을 만들어 위기를 조성하는 것처럼, 북한체제가 불안할 때마다 북한 권력엘리트들은 남쪽 에 적을 만들어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을 더욱 탄압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체제가 언제 변하는가 하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어느 정 책이 그 시기를 앞당길 것인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에서도 분단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대결정책 하에서도 역시 발생하는 비용이므로 따로 계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분단비용은 어떤 정책을 선택하더라도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비

290 동향과 전망 87호 용이다. 분단비용에 대해서 어떤 전문가도 정확한 근사치를 예측할 수 없는데 그것은 분단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 기간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단기간 동안은 분단으로 인한 과도한 국방비 지출 과 분단으로 인한 한반도의 안보불안으로 야기될 불확실성은 우리 경 제의 부담으로 작용하며 이것을 제거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핵심이다.

2) 햇볕정책의 효과 (1) 국방비 절감 만일, 남·북이 내일이라도 평화통일을 이룬다면 남·북이 대치하고 있 일 반 는 현재 보다는 막대한 군사비의 지출을 상당부분 절약할 수 있을 것 논 문 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이 통일했을 경우는 물론이고, 서로 화해하고 평화롭게 자유로운 교류만 하고 있어도 국방지출의 상 당부분은 절약할 수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작된 남·북 관계 경색과 이어진 군사적 긴장 그리고 군비증강에 의 해서 여실히 증명된다. 이명박 정부와 동시에 시작된 남·북 관계의 경색은 결국 2010년 말 북한의 연평도 포격전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원래 예산보다 수 천억 원 안팎의 국방예산이 증액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2011년 국방예산(31조 2,795억 원)을 전년보다 5.8% 증액했다. 또, 우리 국방부는 2010년 말 NLL 수호와 서해 5개 섬 방어를 위해 서해방위 사령부를 창설하는 등 서북 도서를 조기에 요새화하기로 하였고, 가장 최근에는 최첨단 스텔스전투기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필요한 전 체 사업비는 수십조 원을 넘는다(정욱식, 2011). 이 군비증강을 위하여 외국에 지출되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은 남· 북이 서로 사이좋게 산다면 상당부분 절약할 수 있는 돈이며, 이 돈을 경제개발, 주민복지, 그리고 문화창달에 쓴다면 우리나라는 보다 빨리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91 문화·경제·복지 강국이 될 것이다. 햇볕정책이 실행된다면 당장 통일 은 어렵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예방되는 전쟁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것도 없이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는 상상할 수 없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햇볕정책이 전쟁을 완전히 방지하여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을 대폭 낮추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서로 화해와 협력, 그리고 상호 신뢰 하는 관계 속에서도 충돌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갈등과 대결 그리고 상 호불신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햇볕정책으로 전쟁이 예방되어 절약되는 금전적 이득을 요약한다면, 우선 전쟁에 들어가는 직접비용이 있을 것이며, 거 기에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시설의 복구비용이 절약될 것이고, 전쟁을 우리가 승리한다고 가정했을 때 추가로 흡수통일비용이 절약된다. 물 론, 전쟁은 수많은 인명피해가 추가될 것이며, 잔학행위, 남·북 남남 북북 상호간의 불신과 증오심은 통일 이후에도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이명박 정부의 기대대로, 당장 북한체제가 붕괴하여 독일식 흡 수통일을 할 경우, 우리는 최소 15년 이상 GDP의 10%이상을 지불 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80조 이상을 지불해야 하며 이럴 경우 우리 의 여력으로 5년을 버티기 힘들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북한을 좀 더 개방시켜 북한 사회 스스로가 시장주의 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체 질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우리 경제의 부담을 최소화 하면서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안이다. 통일 당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독일조차도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10여 년간 고통을 받아 왔다. 하 물며 경제 규모에서는 독일에 미치지 못하며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 가 동서독의 격차보다 훨씬 큰 우리의 경우에 흡수통일에 대한 비용은 우리가 감당하기엔 벅찰 것이다.

292 동향과 전망 87호 <그림 1> 군 복무기간 추이(자료: 연합통신, 2010.12.6)

일 반 논 문

따라서 북한 스스로가 시장경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체질개선을 유 도하고,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해 상호간에 신뢰와 이해의 폭을 점차 증 가시켜 민족 동질성 회복을 통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햇볕정책이 상당한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2) ‘군대문제’의 해결 만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면 지금 우리나라 모든 청소년의 어깨 를 짓누르고 있는 ‘군대문제’도 점차 해결될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징집제를 실행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나 이스라엘 등 몇 나라에 불 과한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면, 물론 군에 따라 다 르지만, 모든 청소년들이 국방의무를 다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고, 따라 서 그들이 군에서 보내는 약 2년여의 젊은 시절을 중단 없이 교육과 훈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93 련을 축적하여 산업생산력을 높이고 경제발전과 더 나아가서 국가발전 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체육 등 일부 산업분야에 국한되어 병역특례의 혜택을 받는 청년들은 소수이지만 이것이 전 산업분야에 걸쳐 대폭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도상 단계에 있던 과거 우리나라 청소년이 국방의무 기간 동안 청년들이 사회에서 받을 수 없었던 교육을 받고, 산업기술획득이나 사 회화 경험을 군에서 축적하여 국가발전의 동력이 되었지만, 이제 본격 적으로 산업화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는 군경력이 더 이상 국가발 전의 주요한 동력이 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남·북 간의 화해무드와 대북지원은 우리나라 젊은 남성의 군복무 기간 단축으로 나타났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젊은 남 성은 1960년대에는 36개월을 19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30개월을 군복 무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군복무기간은 남·북이 화해하기 시작한 1990년 중반 이후에는 26개월을, 그리고 햇볕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21개월로 대폭 줄어들었다.

(3) 자원 노동 상품시장 확보와 한반도 경제부흥 햇볕정책으로 평화가 정착된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경제공동체가 탄생 할 분명하다. 그것은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결 합되어 그야말로 ‘한국자본주의의 마지막 비상구’가 열리게 되기 때문 이다. 사실 지금도 개성공단에서 언뜻 보이는 바, 남한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배려를 넘어 그 자본주의 발전을 한 단계 높이는 큰 기회 를 제공한다. 2010년 말 한국의 대기업은 매출액 300조가 넘고 현금만 50조 가까이 보유하고 있지만 투자할 곳을 못 찾고 있다. 북한은 무진 장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는 자원부국이다. 북한 광물 매장량의 잠재 가치가 7천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

294 동향과 전망 87호 다. 통계청(2011)의 북한 주요 통계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기준 북한의 광물 매장량의 잠재가치는 약 7천조 원으로 남한의 289조 원보 다 24.1배 컸다. 북한은 물론 우리 기업에게 저렴한 노동력시장과 상품시장을 제공 할 수 있는 보고이다. 경제학자 우석훈(2008) 의하면 2008년 현재 한국 자본의 입장에서는 ‘북한이라는 넓은 경제적 잠재성은 하늘이 준 기회 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북한은 이미 한·중·일을 포함한 세계 자본들의 각축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 다. 경의선과 경평선을 축으로 하는 전면적 북한 개발 계획에 어느 나 일 반 라가 먼저 주도권을 쥐느냐는 운명을 가르는 분기점에 접근하고 있다 논 문 고 보았다. 사실상 전무상태에 불과한 북한의 기간망과 기초 산업들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의 기업들은 ‘스탠바이’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관광과는 달리,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등 험난했던 남·북 관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이 아직 살아있는 것은 그것이 남·북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국의 자본은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지금 북한을 지 목하고 있다’(우석훈, 2008: 124). 햇볕정책이 지속되어 남·북이 화해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 면, 비록 정치적 통합은 아니라 할지라도, 남한은 현재의 영토를 2배 이 상 늘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남한은 육로가 없는 섬나라에 불과하다. 육로로 대륙과 연결하는 모든 도로가 차단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화해하고 교류한다면, 북한 을 통해 대륙을 넘어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는 육로가 확보된다.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95 6. 나가면서

지금까지 이글은 햇볕정책을 평가하기 위하여 네 가지의 질문을 던지 고 그 대답을 구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대답은 매우 긍정적이었 다. 햇볕정책이 실행되기 이전 남·북 관계는 서로 무장병력을 파견하 여 상대 주요 요인이나 국민을 살상하고 납치하는 등 적대적 관계였다 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햇볕정책이 한창 실행 중인 김대중 정 부 기간 남·북 사이에는 동해의 잠수함 침투사건과 서해 교전 등 국지 적인 군사적 긴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대 적 관계에서 평화공존 관계 내지는 우호적 관계로 이행하는 화해국면 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통으로 볼 수 있으며 이후 양측의 교류와 안정 된 관계로 남·북한 사이에는 상호신뢰가 구축되어 갔다. 그 결과 노무 현 정부 기간에는 남·북 간 단 한차례의 무력충돌도 없었으며 개성공 단이 가동되고 금강산에 이어 개성관광이 이루어졌다. 햇볕정책의 반대자들은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간 햇볕정책의 결과 돌아온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먼저 이 주장은 그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먼저 경쟁가설을 배제할 수 있는가를 검증해야 한다. 여기서 경쟁가설 은 ‘북한은 햇볕정책이 나오기 이전부터 미사일과 핵폭탄을 만들고 있 었다.’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문제는 햇볕정책 이전부터 북한이 외교 카드로 써먹어 오던 것이었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대미억지력 내지는 협상용으로 핵실험을 하고 있었다. 북한은 93년 5월 이미 중거리 미사 일을 시험 발사했고, 98년 8월 장거리미사일을 또 시험하였다. 이 미사 일은 북한의 주요 수출품으로서 연간 10억 달러 정도를 벌고 있는데 그 걸 못하게 하려면 보상하라고 요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국무장관 올브라이트와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차수가 만나 미사일 발사를

296 동향과 전망 87호 유예하고 이에 보상한다는 것에 합의하였다. 미국은 현금 대신 3년간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2003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는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취임하고 미·북 간의 합의가 이행되지 않자 북한은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수출을 재개하였다 (정세현, 2010). 2006년 10월 16일자 󰡔뉴욕타임즈󰡕는 북한 핵폭탄의 원 료는 우라늄이 아니라 플루토늄이라고 보도하였다. 클린턴행정부 때 미국과 북한이 맺은 협정에 의해서 수조 속으로 들어갔던 폐연료봉이 부시 정부의 적대정책으로 밖으로 나와 폭탄이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거기에는 햇볕정책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정세현, 2010: 55). 일 반 그리고 대북지원은 우리나라만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이 가장 큰 규 논 문 모로 지원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미국도 우리보다는 많다. 미국은 약 200만 톤의 쌀을 제공했는데 이 양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준 쌀의 양과 비슷하다. 그밖에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한반도와 큰 이해관계가 없는 전 세계의 각국들이 UN을 통해 대북지원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다른 나라의 지원은 모두 다른 곳에 사용하고 있지만 김·노정부가 지원한 자금만 따로 떼어 서 핵을 개발 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정세현, 2010).4) 결론적으로 말해, 어떤 정책이든지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으며 단계적이며 점진주의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햇볕정책이 남·북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상당한 수준의 신뢰를 구축한 것은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악화하고 무력충돌이 발생하자 한반도 주변 열강이 한국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자국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 서면서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들의 정치’로 변질됐고, 남한 정부는 주도 권을 상실했다고 진단했다(백학순, 2011).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97 무현 정부가 화해협력 및 평화번영 구축을 위해 키워온 주도권을 지속 적으로 상실해 왔다. 그 결과 남·북 관계는 사라지고 구한말처럼 한반 도는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독재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자유와 개방이다. 세습왕조로 상 징되는 북한의 독재체제가 가장 무서워 한 것은 바로 자유와 개방을 몰 고 오는 햇볕정책이었으며, 역으로 가장 목마르게 기다린 것이 남쪽의 적대정책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금 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을 그처럼 신속하게 중지시킨 이유인 것이다. 햇 볕정책은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우선 추구하고 있으며,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명시적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개방되고 개혁된 북한에 서 독재체제는 지속될 수 없다. 여기에 햇볕정책의 역동성이 숨겨져 있 다. 햇볕정책은 표면적으로 남·북한의 평화 공존을 목표로 하고 있으 나 실제로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가고 있 었으며 이것을 가로막고 방해한 세력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었다.

2012. 11. 01 접수/ 2012. 11. 28 심사/ 2012. 12. 31 채택

298 동향과 전망 87호 주석

1) 2009. 6. 15. 한나라당 북핵특위에서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교수 발언.

2) 특히, 군에 자식과 가족을 둔 부모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특히 주미동포들은 “전시상황 같은 느낌이 들어 하루 종일 한국의 친정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 부를 물었다. 이러다 정말 전쟁이 날까봐 무섭다.”고 불안함을 토로했다(한국일 보 뉴욕, 2010. 11. 24).

3) 2010년 천안암사건과 연평도포격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는 더욱 미국과 군 사동맹을 강화하고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선단을 동원하여 한·미연합군사 일 반 훈련을 동해와 서해에서 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북한과 중국은 대응군사훈련을 논 실시하여 한반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바 있다. 문

4) 노태우 정권 시절…구소련에 30억달러 지원(2010 시세로 60억 달러 이상, 7조 원 이상)했다. 김영삼 시절 북한 경수로건설 지원 금액은 32.2억 달러(3조 2천 200억 원)였다.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299 참고문헌

구영록 (2000). 󰡔한국과 햇볕정책: 기능주의와 남북한관계󰡕. 법문사. 권만학(2000). 󰡔분단과 통일의 변증법󰡕. 양지. 김근식(2000). 햇볕정책 2년: 평가와 전망’ 󰡔통일시론󰡕, 3권 2호, 6월호, 152∼167. 김동건(2008). 󰡔비용 편익분석󰡕. 제3판. 박영사. 김주환(2010).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동향과 전망󰡕, 79호, 315∼351. 노화준(2006). 󰡔정책평가론󰡕. 제4판. 법문사. 백학순(2011). ‘남북관계 전환을 위한 진보개혁진영의 선택’ 토론회 발제문. 아태평화재단(2009).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 남북연합을 중심으로󰡕. 서의동(2002. 8. 22). 북 계획+시장 혼합체제로, 경제관리조치 현황. 󰡔문화일보󰡕. 우석훈(2008). 󰡔촌놈들의 제국주의󰡕. 개마고원. 이광수(1981). 󰡔민족개조론󰡕. 춘원의 명작 시리즈. 우신사. 이제훈(2006. 1. 11). 김정일위원장, 천지개벽 상하이 먼저 찾은 이유는?. 쿠키뉴스. 이종훈(2000. 10. 30). 북선호 스웨덴식 경제 모델은?. 󰡔동아일보󰡕. 정세진(2002).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한반도󰡕. 한울아카데미. 정세현(2010). 󰡔정세현의 정세토크󰡕. 서해문집. 정욱식(2011. 5. 31). 서해의 안보딜레마를 어찌할꼬?. 프레시안. 조성렬 (2012).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정주택 외 5인(2007). 󰡔정책평가론󰡕. 법문사. 통계청(2011).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 통일부(2010). 󰡔통일백서󰡕. 홍완석(2005). 푸틴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한반도 정책. 󰡔현대 러시아 국가체제와 세 계전략󰡕. 한울.

Lasswell, Harold D.(1951). Policy Orientation. Lerner, D. and Lasswell, H.(ed.). Policy Scienc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Parsons, W.(1902). Social Systems and the Evolution of Action Theory. N.Y:

300 동향과 전망 87호 Free Press. Weber, Max(1968). Economy and Society. G. Rothe & C. Wittich(ed.).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Wehrfritz, George(1999. 5. 5). 북한땅에 시장경제의 싹 돋아나고 있다. (한국어판), 37쪽.

일 반 논 문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301 초록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이성로

햇볕정책은 진보와 보수 사이에 치열한 정치논쟁의 영역이다. 이 연구는 공공정 책 평가의 시각을 활용하여 이 정치공방에 하나의 해답을 추구한다. 햇볕정책은 과연 잘 만들어진 정책이었나, 그리고 소기의 정책목표를 달성했는가 하는 문제 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들을 던진다. ① 햇볕정책은 이 론적 논리적으로 잘 구성된 정책이었나? ② 햇볕정책은 평화를 유지하고 화해를 할 수 있었나? ③ 햇볕정책은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끌고 있었나, 체제 를 변화시키고 있었나? ④ 햇볕정책은 앞으로 언젠가 다가올 남·북 통일을 위하 여 도움이 되었나? 특히, 이 연구는 햇볕정책은 하나의 공공정책으로써 그 목적 을 달성한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제적 생산성을 증대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편익과 함께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 한다.

주제어 ∙ 햇볕정책, 대북포용정책, 대북화해, 퍼주기

302 동향과 전망 87호 Abstract

An Evaluation of The Sunshine Policy as A Public Policy

Sung Roe Lee

일 반 논 문 This study is designed to evaluate the ‘Sunshine Policy’ during the Democratic Party governments from 1997 to 2007 in ROK trying to end the controversies over the issue of Sunshine policy. It asks four questions-- Was the sunshine policy a theoretically and logically well-made policy? Was the sunshine policy serving well to preserve and maintain the vulnerable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Was the sunshine policy changing the North Korea leading her to open door policy and reformation? In general, the an- swers to these questions are positive.

Key words ∙ the sunshine policy, the engagement policy, the policy of reconciliation with North Korea

공공정책으로서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303 일반논문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1)

2)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

“우리가 마지못해 모든 것을 비축하고, 모든 것을 기록하며, 모든 것을 보 존하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무가치한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가치하락이 일어난다. 우리가 끝도 없이 쌓는 것은 가치의 기준이 더 이상 없기 때문 인가, 아니면 우리가 비축하고, 축적하며, 현실을 현실에, 그리고 정보를 정보에 추가시키기 때문에 가치가 모호해지고 불분명해지는 것인가? 이 것 자체도 불분명하다.” (Baudrillard, 1997/2001,13)

1. 빅데이터의 문제 위상

1990년대 이후 인터넷 사용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공물(artifact)’ 의 범위는 물질 생산물을 넘어 형체가 없는 지적 생산물로 확대되었다.

* 이 연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내 학술연구비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 ** * [email protected]

304 동향과 전망 87호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웹 2.0의 보급으로 이용자 생산 콘텐츠(UGC : User Generated Contents)가 대량으로 만들어지면서 인터넷에는 방대 한 양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인 IDC가 발표한 ‘디지털 유니버스 보고서(IDC Digital Universe Study)’에 따르 면 2011년 전 세계에서 생성되는 디지털 정보량은 ‘1.8 제타바이트’에 달하고, 전 세계 디지털 정보의 양은 매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한 다. 그렇다면 전체 빅데이터의 반 이상이 지난 2년 내에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이것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스마트폰이 결합하면서 빗어낸 결과로 보인다. 이는 이용자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데이터가 빅데이 일 반 터의 주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논 문 한국에서의 빅데이터에 관한 논의는 빅데이터의 생산 방식보다는 빅데이터의 추후적 활용과 그에서 비롯되는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산 업계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최적화된 경영과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 인터넷 대중화 초기에 유행하던 인터넷 대박의 신화가 ‘빅데이터 빅비즈니스’로 재현되고 있다. 이런 논의에서는 웹페이지 방문, 검색, 위치정보, 소셜미디어 이용 데이터 등의 형태로 자동 축적되는 ‘빅데이 터’를 활용하여 미래 트랜드를 예측하거나(송길영, 2012), 경영관리와 예측의 최적치를 찾아내어(함유근·채승병, 2012) 생산성 향상과 경쟁 력 확보로 연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빅데이터는 기업 경 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각되면서 ‘빅 비즈니스’(송민정, 2012)라는 꿈으 로 채색된다. 이런 현상은 기업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정보 산업의 최종 종착지로 콘텐츠의 데이터 단위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공공부문도 새로운 사업 분야로서 빅데이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1년 11월 7일 국가정보전략위원회(2011)는 ‘정책 프로세스 혁신’과 ‘국가지식정보 플랫폼 구축’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에서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05 는 스마트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공공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확대하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축적되는 대용량 데이터의 활용 하는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 위원회는 개방형 국가지식정보 플랫폼 구 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공공 지식정보 1,068종 가운데 민간 공개 대상 정보를 현재 13종에서 2013년에는 351종으로 확대 제공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빅데이터 분석이 도입되면 재난 감시, 구제역 예방 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실용적인 입장은 빅데이터의 존재를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가에 관심을 쏟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빅데이터 에 대한 비판 또한 빅데이터를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 의 활용이 가져올 부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에게 익숙한 빅데이터 비판은 그것을 활용할 때 발생하는 프라이버시 침해와 감시 및 통제에 관한 것이다. 이는 빅데이터를 ‘빅브라더’라는 감시의 문제 영역에서 다 루는 방식으로서 국가나 기업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과 그 결과 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감시사회나 정치적 통 제의 차원에서 다루는 이러한 연구(Lyon, 2001)는 인터넷 초기부터 많 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전자감시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감시를 비판하는 수 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빅데이터가 프라이버시의 사회적 위상을 변 화시키고 있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Fuchs, 2012). 정보 서비스 회사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개인의 식별정보와 행위정보를 결 합하여 타겟 마켓팅을 운영하거나, 자사의 서비스를 대가로 수집된 데 이터를 기반으로 광고에 응용하거나, 데이터 자체를 상업적으로 판매 하기도 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사회구성원을 범주화된 단위로 분 류하여 특정한 사회 집단을 대상으로 통제를 시행할 경우 개인 차원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아니라 집단 프라이버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306 동향과 전망 87호 런 경우 데이터의 생성 주체인 개개인은 전체로 융합된 빅데이터에서 하나의 부분으로 소외되는 동시에 집합적인 분류를 통해 다양한 목적 으로 통제되기 때문에 고도화된 상시적 통제체제의 위험에 처하게 된 다. 사회정치적인 통제와 조절의 강화와 더불어 빅데이터를 마켓팅에 활용하는 경우 빅데이터의 ‘경제적 감시(economic surveillance)’ 문제 가 제기된다(Allmer, 2012). 이미 만들어진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방법을 찾거나,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 는 이러한 흐름은 빅데이터를 사후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일 반 위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빅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빅데이터 논 문 자체가 갖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위상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분석하지 않는다. 빅데이터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은 빅데이터가 만들어지는 방 식, 만들어진 빅데이터가 경제적으로 전유되는 차원을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빅데이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빅데이터의 추후적 활용에 서 생겨나는 문제보다는 빅데이터의 생산과정을 분석에 우선적인 관심 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빅데이터를 한편으로는 이용자 활동의 전 유라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동시에 ‘빅캐피털(Big Capital)’과 데이터 독점의 형성을 비판하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접근에서는 빅데이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용자가 생산한 가 치(user-generated value)’의 행방이 어떻게 되는지를 가치증식과정의 틀 안에서 추적하거나(Andrejevic, 2012), 이용자 활동을 포획하는 기 계(Pasquenelli, 2009)와 플랫폼의 특성을 밝히는 작업(백욱인, 2011) 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이론적 분석은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차 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이 자신이 만든 활동 결과 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과 그에 대한 실천적 대안은 ‘기본소득(basic income)’ 혹은 사회적 수입에 대한 요구로 제시되기도 한다(Bawens,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07 2008; Fumagalli, 2006). 인터넷으로 연결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람들의 활동 결과물 은 산업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된다. 빅데이터의 활용과 관 련해서는 프라이버시와 감시문제가 눈에 띄게 바깥으로 드러나지만 빅 데이터의 형성과정은 가치의 영역을 은폐하면서 이용자 활동의 가치를 숨겨버린다. 빅데이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을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빅데이터로 이전하고, 그것을 배타적으로 전 유하는 방식을 드러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빅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기술적 기반과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빅데이터’의 축적 과 전유라는 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① 빅데이터의 특 성, ② 빅데이터의 형성 방식, ③ 빅데이터의 가치 전유 방식과 형태, 그 리고 ④ 그것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을 살펴볼 것이다.

2. 디지털 아카이브, 빅데이터, 데이터센터

1)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빅데이터로 빅데이터는 국가나 공공부문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 논문에서는 사적 부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빅데이터를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자 한다. 빅데이터에 대한 다양한 정의1)가 가능하지만 인터넷에 존재 하는 웹페이지 자체가 빅데이터의 기반이자 가장 큰 빅데이터임을 부 정할 수 없다. 구글의 검색 서비스는 인터넷의 방대한 웹페이지를 색인 화하고 그들 간의 링크와 연결관계를 분석하여 이용자가 찾는 웹페이 지 목록을 제공하였다. 인터넷 검색은 인터넷 웹페이지라는 빅데이터 를 활용한 범용 서비스의 대표가 되었고, 초기 인터넷 포털 업체는 대부 분 인터넷 빅데이터 검색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2)

308 동향과 전망 87호 인터넷 검색은 인터넷을 통해 접근 가능한 모든 웹페이지들을 모집 단으로 하는 빅데이터 마이닝이다. 구글은 검색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 하여 이용자를 끌어 모으는 동시에 이용자의 검색 행위와 전체 웹페이 지를 결합하는 알고리듬을 활용하여 빅데이터를 축적한다. 구글의 페 이지랭크(PageRank)라는 검색 알고리듬은 전체 인터넷 웹페이지를 활 용한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빅데이터 성공 사례다. 구글은 이차적으 로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이용자의 검색 활동 결과물들을 자체 데이터 베이스에 또 다른 형태의 빅데이터로 축적하고 이를 다시 검색 행위 결 과와 결합하여 광고(Adsence, Adworks) 서비스로 활용하였다. 파스퀴 일 반 넬리(Pasquinelli, 2009)는 구글이 페이지랭크를 통해 공동체적 생산물 논 문 을 전유하여 구글식 독점체제를 형성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는 구글 페 이지랭크를 인지자본주의의 핵심 부속물로 본다. 그에 따르면 페이지 랭크라는 알고리듬은 이용자의 살아있는 활동(노동)을 포획하는 기계 이고 ‘공동지식(common intellect)’과 ‘네트워크가치(network value)’ 를 전유하는 기계다(Pasquinelli, 2011). 2000년대 중반 이후 웹 2.0의 등장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의 활성화로 인터 넷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검색 서비스를 넘어 유 튜브를 흡수통합하고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을 수익 창출의 기반으로 활용하여 인터넷 업체 가운데 대표적 지위를 확보하였다. 2000년대 중 반 이후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대중화 및 위 키피디아(Wikipedia)의 성공은 ‘이용자협력생산(common based peer production)’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Benkler, 2006), 이용자 활동의 집합적 결과물을 확보하는 서비스 플랫폼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급기 야 2010년 󰡔와이어드󰡕는 표지 기사를 통해 ‘웹사망선언’을 내리기도 했 다. 웹사망선언의 배후에는 인터넷에 산재해있던 디지털 아카이브가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09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거대 기업의 빅데이터 체제에 의해 잠식되 는 현상이 놓여 있었다. 수평적인 연결을 통해 존재하던 웹페이지 기반 디지털 아카이브가 거대 플랫폼 제공 서비스 업체의 빅데이터로 점차 전환되면서 데이터의 독점과 거대 축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통일된 플랫폼을 활용하여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자사의 데이터 저장고에 자동으로 저장한다. 소 셜네트워크서비스는 플랫폼과 이용자 활동을 결합하여 자동적으로 빅 데이터를 생산하고 전유하는 대표적인 형태다. 이들은 API(Application Platform Interface)를 공개하여 다양한 부가적 서비스 회사를 외곽에 거느리면서 인터넷 안에 독점적인 생태계를 형성한다. API를 통한 플 랫폼의 개방과 서드파티의 다양한 참여를 촉진하는 이러한 방식이 인 터넷 생태계를 다양하게 만든다고 보는 입장도 존재하지만 거대 서비 스 업체의 독점적인 지위와 불평등한 관계로 이루어지는 독점 생태계 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개별 아카이브나 개인 블로그 등 독립된 위상을 갖는 개체와 활동들이 위축된다. 물론 개별 아카이브 와 개인 블로그는 외부 링크나 추천을 통해 거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와 연결될 수 있지만 한곳에 집중되는 데이터의 집적과 집중은 인터넷 의 수평적인 연결구조를 과거 PC통신 시대의 수직적 연결구조로 되돌 린다. 인터넷 공간의 수직적 분할과 독점이 강화되면서 빅데이터의 배 타성과 상업성이 강화되고 다수의 독립 디지털 아카이브가 소수의 거 대 빅데이터로 흡수되고 통합되거나 수직적 위계 관계로 재편되고 있 다.3) 그러나 아직까지 인터넷에 존재하는 가장 광대한 빅데이터는 이용 자들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용자들의 생각과 활 동 결과물을 담아놓은 이용자들의 개별 컴퓨터 네트워크는 P2P를 통해 연결되고 공유된다. P2P 생산과 공유는 거대 인터넷 서비스 기업의 빅

310 동향과 전망 87호 데이터 생산 및 축적 체계에서도 활용되지만 이용자들의 개별적인 나 눔과 공유의 용도로 활용하는 비중과 의미가 중요하다. 이용자들은 기 존의 미디어 관련 회사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 상품을 디지털로 전환하 고 다른 콘텐츠와 결합하여 새로운 창작물로 변형시킨다. 이용자들은 자발적인 협업을 통해 대량의 비트 생산물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사 회적 공유물로 전환하기도 한다. 이용자들의 P2P를 활용한 공유에 대응하여 자본이 클라우드 컴퓨 팅을 통해 크라우드 소싱(P2P 생산)의 결과물을 데이터센터로 가져가 겠다는 구상은 데이터의 이용과 관리 축적 및 접근을 통제하려는 의도 일 반 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저장고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P2P의 근 논 문 거 기반을 파괴하는 것과도 같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데이터의 ‘중층적 소유관계’를 ‘배타적 소유관계’로 일원화하기 위한 하부 토대의 형성 과 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클라우딩 컴퓨팅과 데이터센터를 통 한 독점화와 관련된다.

2) 데이터센터와 독점 데이터의 생산과 집적은 플랫폼을 통해 대수 대중의 협력 생산 (crowdsourcing)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것의 전체적 집적물은 데이 터센터로 옮겨져 배타적으로 소유되는(cloud computing) 인지자본주 의의 독특한 독점 형성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크라우드 소싱은 현재의 빅데이터를 구성하는 두 가지 주요한 기술적 사회적 요소이다. 빅데이터는 이용자 대중의 데이터 생산과 관련된 ‘크 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 데이터의 대량 보관을 담당하는 ‘클라 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과 결합되면서 만들어진다. 빅데이터 는 크라우드 소싱이나 ‘P2P 협력 생산’을 통해 만들어진 이용자 생산 콘 텐츠가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서비스 제공업체의 데이터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11 센터에 집적된 결과물이다. 빅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내용물이 축적되는 동시에 사용되는 시공 간압축의 저장고이다. 그것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올 린 말과 생각, 의견과 감정이 쌓이는 실시간 저장고다. 이용자가 올려 놓은 디지털 콘텐츠는 그것이 저장되는 물리적 장소에 상관없이 네트 워크 안에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동일한 가상의 공간 안에 축적된다. 빅데이터라는 실체(substance)는 가상공간과 실제공간을 연결하여 두 가지 다른 존재양식(mode)을 통일한다. 빅데이터는 현실의 활동을 통 해 만들어지고, 현실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 순수 가상공간의 산 물이 아니다. 이용자 활동과 서비스 플랫폼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결 합되지만 그들의 활동이 만든 결과물은 데이터센터라는 실제 공간의 물리적 장소에 축적된다. 가상공간의 클라우드소싱과 실제공간의 크 라우드 컴퓨팅을 통한한 결과로서의 빅데이터는 인지자본주의의 대표 적 산물이 갖는 모순체이자 대립물의 통일체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개별적인 서버와 함께 개별적인 장소에 존재할 때 가장 독립적이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개별적 디지털 아 카이브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훼손한다. 데이터의 물리적 저장고인 데 이터센터는 최근 클라우드 컴퓨팅의 활성화와 더불어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이용자 활동을 근간 으로 삼는 거대 기업의 데이터센터는 서비스 플랫폼 뒤에 숨어 있는 물 리적 실체이며, 데이터 창고이자 공장인 동시에 시장이다. 빅데이터는 인터넷 시대 거대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지탱하는 구체적 실체이자 특 정한 장소(place)에 거주하는 존재자다. 빅데이터는 클라우드 컴퓨팅 을 통해 물리적 장소의 의미를 탈각시키지만 바로 그런 클라우드 컴퓨 팅의 최종 종착지로서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장소에 설립된다는 이중 성을 지닌다. 거대 인터넷 기업의 서비스 플랫폼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312 동향과 전망 87호 이용자들의 집합적 활동과 협업의 결과물을 크라우드 소싱이란 틀로 자동 축적한다. 서비스 플랫폼은 개별 이용자의 활동 시간을 적분하여 생명의 활동 시간을 기계의 시간으로 저장한다.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빅데이터는 과거 현재 미래의 통상적 시간 흐름에 변화를 가져온다. 실 시간으로 축적되는 정보와 실시간으로 조회되어 재현되는 축적된 정보 간의 관계는 항시 현재적이다.4) 구글의 유튜브(Youtube)는 구글 검색과 더불어 이용자들이 만든 빅데이터를 흡수하는 가장 유력한 기계장치다. 이용자 활동으로 만들 어지는 내용물 말고도 대중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기존의 내용물들이 일 반 디지털로 형태 전환되어 특정 플랫폼을 통해 특정한 저장소에 축적된 논 문 다. 유튜브에는 이용자가 만든 저작물 이외에 기존 미디어 업계에서 제 작한 저작물이 리핑(ripping)되어 축적된다. 일단 디지털화되어 유튜 브로 옮겨진 디지털 콘텐츠는 저작권의 적용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 로워진다. 이용자의 활동을 통해 비트로 바뀐 문화 콘텐츠들이 유튜브 안으로 축적되면 그러한 저작물은 배타적 소유권인 지적재산권의 영역 에서 멀어지면서 탈상품화된다. 그것은 다른 이용자들에 의해 새로운 원료로 활용되거나 다른 내용물과 연결되어 새로운 부분-전체의 관계 를 만들면서 이전과는 다른 질을 갖게 된다. 양질의 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유튜브는 기존 미디어 콘텐츠의 저작권을 희석하고 무력화시 키는 동시에 그 결과물들을 빅데이터로 활용하는 독특한 전유 플랫폼 이다. 유튜브는 이용자들이 기존의 문화 콘텐츠를 디지털로 전환한 각종 비트들을 축적한다. 빅데이터로서의 유튜브는 축적과 이용의 모순과 통일, 새로운 선택과 배열의 교차, 부분과 전체의 결합, 양과 질의 전화 등을 보여준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채 기존의 저작권을 무력화시키 는 한편 협업을 통한 축적을 가능하게 만들고 다양한 이용자들의 개입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13 과 활용을 통한 ‘큐레이션’의 새로운 영역을 제공한다(Gehl, 2009). 빅 데이터로서의 유튜브의 위상은 매우 모순적이고 복합적이다. 그것은 기존 미디어 콘텐츠 소유기업과 이용자, 그리고 플랫폼 소유자, 빅데이 터의 소유자, 콘텐츠의 생산자, 콘텐츠의 이용자 간에 중층적인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단일한 지적재산권의 행사가 불가능해지거나 어 려워진다. 서로 다른 이해 당사자 간의 합종연횡이 언제라도 가능하고, 서비스 제공자의 사업 전략 변화나 법적인 규제나 법적인 강제 집행에 따라서도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크라우드 소싱과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현실화되는 빅데이터는 뇌의 집합적 외화다. 집합적 뇌활동의 결과물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 해 데이터센터로 이전된다. 인간의 시간감각은 미리 짜여진 알고리듬 프로그램의 기계시간에 의해 포섭되며, 클라우드와 연결을 상실한 개 체의 시간은 의미 없는 혹은 가치 없는 시간으로 전락한다. 집합적 뇌 활동의 산물은 인간시간의 범주와는 다른 기계시간에 의해서만 측정될 수 있다. 빅데이터는 외화된 집합적 뇌 활동의 양적인 등가물인 동시에 물질화된 저장물이다. 그것은 자동으로 수집된 정보들이 프로그램에 의해 결합된 지식이기 때문에 물신화된 축적물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3. 이용자 활동과 플랫폼: 빅데이터의 형성

이 절에서는 빅데이터 자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빅 데이터는 서비스 제공 기업의 플랫폼과 이용자 활동이 결합하는 과정 에서 만들어진다. 먼저 플랫폼 기술이 이용자의 활동을 어떻게 전유하 고 있으며(백욱인, 2011), 그러한 전유의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검토하고 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들을 살펴보자.

314 동향과 전망 87호 빅데이터는 서비스 플랫폼을 통한 비트 수집을 통해 만들어진다. 서 비스 플랫폼은 이용자가 접속해 들어오는 통로이자, 이용자의 활동 결 과물을 포획하는 코드들인 동시에 아키텍처이며 그들의 총체(system) 다.5) 플랫폼은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상품인 동시에 이용자 활 동을 전유하고 축적하면서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수단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생산수단으로서의 플랫폼 혹은 체제로서의 서비스 기계는 자본 과 노동이 아니라 서비스와 이용자 활동을 연결한다. 그것이 이루어지 는 장소도 공장이란 제한된 장소가 아니라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불특정 공간으로 바뀐다. 가치증식의 공간이 사회생활공간으로 확대되고 사 일 반 이버스페이스란 가상공간으로 대체된다. 공장에서의 기계에 의한 노 논 문 동자의 ‘실질적 포섭’은 생활공간에서는 플랫폼에 의한 ‘이용자 활동의 포섭’으로 대체된다.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하면서 이루어지던 가치증식과정은 실시간 이용자 활동으로 바뀌고 가치증식 에서의 시간(노동시간)이 갖는 의미를 희석시킨다. 그 결과 가치증식 과정과 가치실현과정의 시공간적 분리가 가속화되고 공장 밖 활동을 플랫폼과 지속적으로 결합하는 축적 모델이 인지자본주의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과 살아있는 이용자의 활동을 유도하 고 포획하는 플랫폼은 자본과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플랫폼이 구상되고 개발되는 과정은 전통적인 자본-노동관계에 의해 연구개발 과 코딩, 서비스 개발이라는 틀로 진행된다. 서비스 상품체제로서의 플 랫폼은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일단 완성된 서비스 플랫폼이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의 활동을 포 획하는 기기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생산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하던 과거 공장노동체제와는 다른 기제로 운영된다. 이런 기제를 해명하려면 구글의 검색엔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플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15 랫폼 아키텍처 등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플랫폼 서비스의 특성과 운영 방식, 그리고 그것이 이용자들의 활동을 전유하는 방식, 전유된 이용자 들의 활동 결과물이 서비스 제공자의 데이터 레이어로 축적되어 자본 의 비트로 전환되는 방식을 분석해야 한다. 플랫폼과 결합된 인터넷 이용자들의 살아있는 활동은 비트로 전환 되어 ‘구름 저너머’의 데이터센터에 죽은 활동의 결과물로 축적된다. 상 대 홈페이지에 링크를 걸고, 검색을 하고, 친구들의 글에 응답을 하고, ‘좋아요’로 호감을 표시하는 행위들 하나하나가 비트로 바뀌어 빅데이 터의 구성 부분으로 전환된다. 이용자 활동이 비트로 전환되는 그 시 점에서 이용자는 비트의 생산자인 동시에 살아 있는 활동의 주체다. 그 러나 이용과 동시에 비트로 전환된 비트는 더 이상 이용자의 수중에 있 지 않고 서비스 제공자의 서버로 이동되어 다른 비트들과 섞이거나 그 들과 함께 축적된다. 이용자의 산 활동이 만든 데이터들은 필요한 경우 언제라도 자신이 만든 비트를 다시 불러오거나 변경할 수 있지만 자신 만의 배타적 이용 영역을 떠나 언제든지 다른 방식을 통해 다른 용도로 전유될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자본의 빅데이터로 전환되는 것이다. 주류 학계에서 이용자 활동에 대한 논의는 벤클러(Benkler, 2006) 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비트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주목 하여 ‘이용자 협력 생산’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사회자본론’을 계승하 는 이들은 이용자들의 연결망이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공유물을 ‘사회자본’이란 틀로 접근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에서는 빅데이터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6) 이러한 주류 학계의 논의와 대비되는 흐름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인 지자본주의’ 비판자들을 중심으로 이용자 활동에 대해 정치경제학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지자본주의의 접근에는 이탈리아 자율주 의, 프랑스 규제주의, 전통 마르크시즘의 정치경제학 등 다양한 조류가

316 동향과 전망 87호 섞여 있다. 자율주의 흐름에서 이용자 활동에 관한 논의는 ‘비물질노 동론(Lazzarato,1996)’과 ‘사회공장론(Terranova, 2000)’ 등으로 전개되 었다. 프랑스 규제주의 경향에 서있는 베르첼로네(Vercellone, 2007)는 ‘형식적 포섭’-‘실질적 포섭’-‘일반지성’의 자본주의 삼단계설로 인지 자본주의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베르첼로네는 노동분업의 발전에 주 목하는 정치경제학적 입장과 더불어 단계론적 이행론의 시각을 규제주 의의의 분석틀과 연결하고 있다. 베르첼로네(Vercellone, 2007)는 ‘포 섭(subsumption)’의 관점에서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였 일 반 다. 그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산업자본주의 단계의 형식적 포섭, 포디즘 논 문 단계의 실질적 포섭, 그리고 일반지성의 전유로 이루어지는 인지자본 주의 단계로 나누어 자본-노동 관계, 노동분업, 권력/지식관계의 변동 을 분석하고 있다. 카펜치스(Caffentzis, 2007)는 전통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인지자본 주의론의 특정 분파에서 주장하는 기계적 잉여가치나 가치론의 기각에 대해 원론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한편 치아노스와 파파도풀로스 (Tsianos & Papadopoulos, 2006)는 ‘육화된 자본주의(embodied capitalism)’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인지자본주의론’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육화된 자본주의가 후기 포디즘적 규제의 효율적인 조직 형태로서 ‘비정규성(precarity)’을 규제장치로 이용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인지자본주의론의 주장처럼 협동하는 두뇌들이 아니라 인간 육 체와 기계, 사물간의 협동이 생산을 주도한다고 본다. 그들은 또한 육 화된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노동자의 살, 개별 노동자의 몸을 핵심적 착 취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육화된 경험 을 잉여가치 창출과 착취가 이루어지는 핵심 영역으로 파악한다. 이러 한 육화된 자본주의론은 하층 비정규노동의 빈곤과 특정 부문에 종사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17 하는 상층 고소득자층이 모순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인지자본주의의 구 조를 밝히는 데 나름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대자본주의의 가치창출기제를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인지자본 주의론과 육화된 자본주의론의 결합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7)

4. 이용자 활동의 전유와 잉여가치

인터넷 초창기의 사업은 이용자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존의 문화 콘텐츠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비트로 바꾸어 사이버스페이스 안에 콘 텐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2000년대 중반 웹 2.0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서비스업체들은 이용자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유하려는 움직임으로 진화하였다. 이와는 달리 콘텐츠 의 양을 하드웨어-소프트웨어와 다시 통합하여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잃 어버린 콘텐츠의 가치실현을 도모하려는 애플식의 사업방식으로 강화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기업과 이용자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는 어떤 성격을 띠는가? 자본은 어떻게 이용자활동으로 부터 잉여가치를 전유하는가? 이용자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비트는 미리 짜인 알고리듬을 통해 자 동으로 처리된다. 선별, 배열, 가공, 재가공의 연결과 자동처리로 서비 스 제공자의 데이터는 더 두터워지고 더 많은 잠재적 가치를 획득한다. 이것이 과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불변자본이 담당했던 역할을 대신한 다. ‘기계잉여가치’는 플랫폼과 알고리듬이 이용자 대중에 의해 만들어 진 비트 원료를 사용하여 만드는 잉여가치다. 기계가 잉여가치를 생산 한다는 네그리의 ‘기계잉여가치’8)론과 이에 대한 정치경제학 원칙주의 자간의 비판이 전개되고 있지만 지금 요구되는 작업은 기계가 잉여가

318 동향과 전망 87호 치를 생산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훈고학적 주해와 편의적 해석이 아니 라 데이터 흡수와 전유, 가공 처리에 의한 가치 창출기제와 가치실현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파스퀴넬리(Pasquinelli, 2011)는 플랫폼과 이용자 활동이 결합될 때 ‘네트워크 잉여가치’가 창출된다고 본다. 그는 네트워크 잉여가치의 창출 기제를 자연과 인간, 기계의 연 관관계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에너지와 정보가 기계에서 통합되 며 정보를 인간이 아니라 네트워크 기계가 코드화된 언어를 통해 자동 으로 실행할 때 ‘네트워크 잉여가치’가 창출된다고 본다. 디지털 코드가 정보를 가치로 바꾸기 때문에 ‘기계적 잉여가치’, ‘코드기반 잉여가치’, 일 반 ‘자동화된 잉여가치’, ‘노동자 없이 만들어지는 잉여가치’, ‘노동시간이 논 문 결여된 잉여가치’ 개념이 출현한다. “현대자본주의는 직접적 생산과정 의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를 채집하고 생산하는 장치에 투자한다. 사이버네틱 기계는 공장을 벗어나서 사회적 협력과 커뮤니케이션 자체 를 생산력으로 전환한다(Pasquinelli, 2011, 19).” 그래서 이용자가 만 든 비트들이 플랫폼으로 흡수되고 가공되고 재배열되고 편집되는 이런 공정은 새로운 잉여가치가 창출되는 자동화된 ‘사회공장’(Terranova, 2000)으로 비유된다. 사회공장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회공 장은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구체화된다. 구글의 검색 엔진,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웹 2.0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공 장이다. 이용자가 이들 플랫폼에 접속하여 아이디를 만들고 약관에 동 의하고 이들 서비스를 활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사회공장에 포 섭된다. 플랫폼은 이용자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비정형 데 이터를 실시간으로 축적하고 가공한다. 자본은 빅데이터를 형성하는 과정과 형성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두 개의 단계를 통합하면서 가치 증식을 도모한다. 자본은 이용자 노동과 노동 결과물을 전유한 후에 그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19 것을 노동대상 혹은 원료로 이용한다. 이를 통해 자본은 또 다른 제삼 의 잉여가치를 창출한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인지자본주의론이 하나의 이 론으로 확립되려면 ‘비물질노동’ 혹은 이용자 활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과 잉여가치를 확보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 지자본주의론의 핵심 과제는 가치론에 대한 새로운 설명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는 ‘생 산과정’에 대한 분석과 개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빅데이터가 만들 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착취가 일어나는 시간과 가치가 증식되는 시 간의 동시성을 찾아내기 힘들다. 가치증식과정인 생산과정에서 착취 가 행해지고 그것이 잉여가치를 낳는 산업자본주의와 달리 인지자본주 의의 선봉에 선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서는 필요노동시간 이상의 잉여 노동 착취를 통한 가치증식이 일어나는 구조와 현상을 명확하게 찾아 내기 힘들다. 두 번째로는 착취가 일어나는 장소와 가치가 증식되는 장 소의 일치성도 분별해 내기 힘들다. 그래서 가치가 증식되는 공간을 ‘사 회공장(social factory)’이라 부르지만 착취가 행해지는 공간은 플랫폼 과 아키텍처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이버스페이스로 확장된다. 한편 가치실현의 방식도 시장을 경유하지 않는 우회적 방식으로 다 양화된다. P2P를 활용한 공유와 탈상업화로 인해 사용가치의 교환가치 에 대한 실질적 우위, 혹은 비상관성이 증대함에 따라 자본 입장에서는 탈상품화에 대한 대책을 추구한다. 디지털 복제물의 풍부함에 근거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우선성을 강제하는 인위적 법률 간의 대립에서 사용가치의 자유로운 전유가 이길 수밖에 없는 사회기술적인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자본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모델이 존재한다. 하나는 사용자의 자유로운 전유를 기술적인 차원에서 제어 하는 방법(애플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한계비용이 0에 가까운 제품과

320 동향과 전망 87호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적극적인 차원에서 공짜(Benefit)로 제공하는 반면 사용자들의 활동결과물을 전유하여 이윤(profit)으로 전환하는 방 법(구글모델)이다. 전자와 후자 모두 새로운 이용자-소비자 결합을 혼 용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기반으로 그들을 고객으로 만 듦과 동시에 소비자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자본-노동관계에서 형성되는 노동자라는 단일한 정체성 대신에 ‘이용자(user)’-‘소비자(consumer)’ -‘고객(client)’의 삼위일체형 통일체가 만들어진다. 이용자 활동은 교환가치 없는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자본은 사용가 치만을 갖는 공유물을 전유하여 교환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전화하고 일 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9) 이러한 구글식 자본주의가 인지자본주의의 논 문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용자의 온라인 활동은 자본의 노동과 정에 포섭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자본이 제공한 툴과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은 자본의 플랫폼 디자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고, 활동 결과물 또한 자본에게 손쉽게 전유될 수 있 다. 결국 이용자 활동은 가치를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플랫폼에 의해 강제되고, 최종 결과물로부터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5. 빅데이터의 전유를 둘러싼 갈등

빅데이터의 전유를 둘러싼 이해 대립은 법률적인 차원에서는 ‘지적 재 산권’의 문제로, 경제적 차원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익 창출과 공 적 활용간의 대립으로 전개되고 있다. 막대한 양으로 축적되는 비정형 데이터를 누가, 무엇을 위해 전유하는가에 따라 ‘빅데이터’의 사회경제 적 위상은 달라진다. 그런데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의 분배는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과 지적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21 지식의 상업화와 상품화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지식에 대한 접근권은 경제적인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지적 재산권의 법적 확보를 통해 지적 생산물은 특정 집단에 의해 전유되지만 빅데이터에 대한 배타적 소유 를 주장하기는 매우 힘들다. 빅데이터를 둘러싼 전유는 이용자, 생산 자, 소비자를 한 축으로 하고 콘텐츠 제작자를 다른 한 축으로 하며, 마 지막으로 서비스 플랫폼 제공자를 한축으로 하는 복잡한 다층적 레이 어로 형성된다. 빅데이터는 이러한 축들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산 물이기에 그것은 중층적 권리의 결집물일 수밖에 없고, 그를 둘러싼 갈 등도 다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상이한 주체간의 복합적 권리와 전유와는 별개로 데이터는 개개인에 의해 지적으로 전유될 때만 최종적 심급에서 의미를 지닌다. 빅데이터에 대한 법적 소유권과 그에 기반을 둔 상업적 전유권을 갖고 있다 하여도 지적 생산물은 최종적으로 인식 주체에 의해 지적으로 전 유될 때 그 사용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여러 가지 미디어를 통해 쏟 아지는 복제 문화 생산물은 그 축적 양에서 이미 개개인의 평생 소비능 력을 압도한다. 각종 복제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정보와 지식의 엄청난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전유 능력은 반대로 쇠퇴하고 있 다.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모든 것을 전유하였던 과거의 수 도사와 달리 이제 현대인들은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자 신의 것으로 전유하지는 못하는’ 형국으로 바뀌고 있다(Featherstone, 2000). 빅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자동으로 축적되거나, 이들 데이 터가 서로 결합될 때 만들어진다. 그런데 빅데이터를 만든 주체와 소유 하는 주체, 그리고 이것을 이용하는 주체는 동일하지도 않고, 서로 다 른 이해관계로 대립과 갈등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이들이 빅데이터에 대해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역량과 능력도 불균등하다. 빅데이터의 활

322 동향과 전망 87호 용방식 및 활용 범위, 목적은 데이터의 성격과 이용 주체에 따라 다양하 게 나타난다. 빅데이터를 공개하여 다양한 주체가 그것에 접근하도록 개방하느냐, 아니면 특정한 대상에게 특정한 방법을 통해 제한적으로 공개하느냐, 아니면 특정 주체에게만 무제한으로 활용을 열어주느냐에 따라서도 빅데이터의 성격은 달라진다. 빅데이터는 정치적인 차원에 서는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고,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이 윤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는 공 유와 나눔의 과정이자 결과일 수도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빅데이터는 기존의 불평등한 힘 관계에 따라 비대칭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질 소지 일 반 를 안고 있다. 논 문 이상에서 빅데이터의 형성에는 이용자의 자발적 활동이 큰 몫을 차 지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회공장론이나 자유노동(free labour)의 실천적인 함의는 자본-노동관계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을 자본이 전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용 자들의 사회적인 요구를 결집하는 데 있다. 빅데이터 형성과 관련된 첫 번째 실천적인 대안은 이용자 활동과 관련하여 ‘기본수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노동의 상시적 관계에 기반한 임금의 의미 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나 실업 계층에게 임금은 의미가 없다. 기술 혁신과 자동화로 생산성은 향상되지만 일자리가 없 어지면 임금으로 살 수 있는 계층은 더욱 줄어든다. 게다가 공장과 사 무실 바깥으로 몰린 사람들은 자영업이나 불안정 불완전 고용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공동 활동을 통해 부의 축 적에 기여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구성원을 전부 자본가로 만들자는 ‘인민 자본주의’의 주장에서부터 전통적 사회복지 차원에서 제기되는 기본임금론을 거쳐, 초기 공산주의적 주장을 하는 기본임금 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작업장 노동과정 안에서 종사하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23 는 구성원의 비율이 줄어들고, 노동시간보다 사회활동이나 여가 시간 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포디즘적 생산체제보다 포스트 포디즘 적인 생산 단위들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아질수록 기본소득 요구의 설득력은 높아질 것이다. 인지자본주의론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 치적 대안으로 연결되는 논리적 근거는 분명하다. 인지자본주의는 사 회관계의 변화와 생산양식의 전환에 주목하면 임노동의 쇠퇴와 자본- 노동관계 바깥에서 축적되는 새로운 부의 축적체제에 관심을 갖게 되 는 데, 그럴 경우 부의 새로운 분배방식으로 임금이 아닌 대안적 분배체 제를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빅데이터의 형성과정에 참여한 다수의 이용자에 대한 사회 적 보상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인지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Bawens, 2008; Fumagalli, 2006). 보웬스는 자연 자원 의 유한성을 ‘거짓 풍부함(pseudo-abundance)’으로 대치하고 비물질 세계의 풍부함은 ‘거짓 희소성(pseudo-scarcities)’로 위장하는 자본주 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물질 영역의 희소함과 비물질 영역의 풍요로움 에 걸맞은 P2P의 실천을 주장한다. 그는 P2P가 시장과 교환에 입각한 상보성의 틀을 벗어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자유로운 창조와 공유의 탈 자본주의 세계로 들어서는 출입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는 인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P2P 모델이 ‘자본의 개입 없이 사용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는 탈금전적이고 탈자본주의적인 가치생산과 교환의 대안적 틀을 P2P에 서 찾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나 P2P 공유 생산자의 수입과 생 계유지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고 술회하면서 ‘기본소득 (basic income)’을 대안으로 제시한다(Bauwens, 2008: 8∼9). 두 번째 실천적인 대안은 빅데이터 문제를 반독점운동과 데이터 공 유 운동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먼저 독점화되고 있는 플랫폼 서비스나

324 동향과 전망 87호 빅데이터 축적에 대해서는 반독점운동의 틀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 다. 기업이 보유하고 관리하는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형성된 빅데이터 에 대해서는 기업에 대항하는 이용자 단체(노동조합의 등치물)를 만들 어 잠정 동시 탈퇴(파업), 이용거부(태업)의 반독점 운동방식을 전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주어진 시기의 빅데이터의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조직체 유형과 운동방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빅데이터의 독 점적 활용에 대한 거부운동은 곧바로 데이터 공개운동과 연결된다. 빅 데이터를 오픈 데이터의 요구로 연결해내고, 감시와 통제를 최소화하 고, 정부가 갖고 있는 공공정보의 공개 요구로 연결하는 한편 거대 포털 일 반 업체와 서비스 업체의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에 쌓여 있는 빅데이터를 논 문 공동체를 위한 활용으로 연결시키는 ‘데이터 공개(open data)’ 운동10) 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토렌트 같은 공유 기술은 지속적으로 자 본의 배타적 소유권 영역을 허무는 한편 재산권에 입각한 배타적 가치 실현의 기반을 허무는 기술적인 물리적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기술 적인 기반과 이용자들의 행동을 정치적으로 옹호하고 보호하는 ‘해적 당’(Hausler, 2011) 같은 정당이나 단체도 대안 중의 하나로 떠오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실천적 모색을 통해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이며 크 라우드 소싱의 소산인 빅데이터를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천적 방안은 빅데이터의 사회경제적 위상에 대한 면밀 한 분석이 이루어질 때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2. 12. 01 접수/ 2012. 12. 20 심사/ 2013. 01. 02 채택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25 주석

1) 시장조사 컨설팅업체인 가트너(Gartner)는 빅데이터를 양(volume), 다양성 (variety), 속도(velocity)의 세 가지 차원에서 ‘3V’로 정의하고 있다. 데이터의 양적 규모, 데이터의 비정형성, 데이터 축적 및 활용의 실시간 주기가 빅데이터 의 필요조건으로 꼽힌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P2P를 통한 생산과 나눔(복제) 도 빅데이터 생산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인터넷 트래픽에서 P2P가 차지하 는 비율은 웹 이용이 차지하는 비율보다 여전히 높다. 웹, 앱, P2P 트래픽 비율 변화를 근거로 와이어드지가 2010년에 “웹은 죽었다”라는 글을 실었는데, 그것 은 P2P의 중요성을 간과하였고 앱의 성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담고 있었다. http://www.morganstanley.com/institutional/techresearch/pdfs/msi2 1500.pdf

2) 물질을 선별하여 보관하는 현실세계의 아카이브에서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전 시를 위한 배열이 중요하다. 물질 아카이브는 특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고 선택 된 공간에 맞는 선택과 배열을 통해 아카이브의 윤곽이 결정된다. 이에 반하여 디지털 아카이브는 저장되는 양이 거의 무한정에 가깝고 실시간으로 지속적인 축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리자에 의한 선택과 배열보다는 이용자에 의한 검 색과 활용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는 검색이 다른 어떤 서비스보 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3) 이러한 진단을 증명할 수 있는 실증적인 자료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증명하려 면 양적인 척도를 이용하여 이용자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시간을 측정하면 된다. 개별 이용자가 하루에 머무르는 서비스 플랫폼별 시간 변화 추이를 추적 하면 이런 현상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인터넷에서 하루에 만 들어지는 전체 비트의 양에서 거대 서비스 회사가 차지하는 비트의 양을 계산하 는 방식이다. 다른 한편 거대 서비스회사의 빅데이터와 개별 디지털 아카이브, 혹 은 개인 블로그 간의 관계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실증적인 방법도 찾아야 한다.

4) 디지털 아카이브의 정보는 아날로그 아카이브의 물질과 달리 시간의 흐름에 따 른 소멸의 일시성을 갖지 않는다. 디지털 정보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닳 거나 낡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 어느 때라도 조회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상태 로 디지털 아카이브에 축적된다.

5) 소프트웨어와 프로토콜이 어떻게 ‘통제(control)’와 ‘시행(execute)’을 담당하

326 동향과 전망 87호 는지에 대해서는 Galloway(2004: 82) 참조. “프로토콜은 삶 자체를 통제하는 감응적이고 미학적인 힘이다. 프로토콜은 권력이다.”

6) 디지털 데이터의 생산 및 축적 방식과 전유에 대한 접근은 주류 학계의 정보자 본주의나 지식자본주의론의 흐름, 레식(Lessig), 벤클러(Benkler) 등의 자유주 의적 비판론, 그리고 인지자본주의 비판 진영의 세 갈래로 갈라 볼 수 있다. 주 류 정보자본주의에 대한 인지자본주의 입장에서의 비판은 부탕(Boutang, 2012, 38∼46) 참조.

7) 카펜치스(Caffentzis, 2011)는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나라 간, 부문 간에서 이 루어지는 잉여가치의 흐름에 대한 분석을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애플 아이 폰과 중국 팍스콘 공장의 결합관계와 잉여의 유출 방식, 첨단 IT회사의 정규노 동자와 육체를 이용하는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결합으로 이 일 반 루어지는 인지자본주의의 절충적 구조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논 문 8) 인지자본주의론의 ‘가치론’에 대해서는 세심하고 구체적인 검토와 비판이 요구 된다. ‘기계잉여가치’에 대한 전통 마르크시즘 입장에서의 원론적인 비판으로는 Caffentzis(2007) 참조.

9) 인지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용자 활동을 통해 기존의 저 작권을 갖던 콘텐츠들이 널리 공유되거나 이용자 협력생산을 통해 콘텐츠가 공 유되는 현상에 주목하면 인지자본주의의 ‘탈자본주의’적인 양태가 눈에 띄게 된 다. 보웬스(Bawens, 2008)는 이런 지점을 강조하여 인지자본주의 안에서 새 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찾는다. 반면 인지자본주의는 플랫폼을 통해 이용자 활동 을 수집하여 빅데이터로 전환함으로써 이용자 활동 결과물을 무단으로 전유한 다. 이는 ‘전자본주의’의 지대 갈취와 유사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베를첼 로네(Vercellone, 2008)는 지대 범주를 동원하기도 한다.

10)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Open, Linked-Data for a Global Community’라는 말로 정부가 갖고 있는 공적 데이터의 공개와 활용을 주장하 고 있다. 정부 보유의 공적 데이터에 대해서는 이러한 데이터 공개운동이 의미 를 지닌다.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27 참고문헌

국가정보전략위원회(2011). 󰡔국가지식정보의 신가치 창출을 위한 중장기 국가지식 정보자원 관리계획󰡕. 백욱인(2011). 인터넷의 변화와 비트 전유에 관한 연구. 󰡔동향과 전망󰡕, 통권 81호. 송길영(2012).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서울: 쌤앤파커스. 송민정(2012). 󰡔빅데이터가 만드는 비즈니스 미래지도󰡕. 서울: 한스미디어. 함유근·채승병(2012).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Allmer, T.(2012). Critical Internet Surveillance Studies and Economic Surveillance. in. Fuchs, C.(2012). Andrejevic, M.(2012). Exploitation in the Data Mine. in. Fuchs, C.(2012) Baudrillard, J. (1997). Le paroxyste indifferent: Entretiens avec. Philippe Petit. 이은민 옮김(2001). 󰡔무관심의 절정󰡕. 동문선. Bauwens, M.(2008). The Political Implication of the Peer to Peer Revolution. Knowledge Politics Quarterly, 1(2). Benkler, Y.(2006). The Wealth of Networks. Yale University Press Bolter, J.& Grusin, R.(1999). Remediation. The MIT Press. Boutang, Y.(2012). Cognitive Capitalism. Cambridge : Polity. Bruns, A.(2006). Blogs, Wikipedia, second Life, and Beyond: From Production to Produsage. Peter Lang. Caffentzis, G.(2007). Crystals and Analytic Engines : Historical and Conceptual preliminaries to a New Theory of Machines. Ephemera, 7(1). Caffentzis,G.(2011). A Critique of Cognitive Capitalism. in Michael, A.(ed), Cognitive Capitalism, Education and Digital Labor. Peter Lang Publishing, Inc. Featherstone, M.(2000). Archiving Cultures.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51(1), 161∼184. Fuchs, C.(2012). Internet and Surveillance : The Challenges of Web 2.0 and Social Media. NY : Routledge. Fumagalli, A. & Lucarelli, S.(2006). Basic income sustainability and

328 동향과 전망 87호 productivity growth. in Cognitive Capitalism: A first theoretical framework. http://mpra.ub.uni-muenchen.de/27987/ Galloway, A.(2004). Protocol : How Control Exists after Decentralization. The MIT Press. Gehl, R.(2009). YouTube as Achive : Who Will Curate This Digital Wunderkammer?. International Journal of Culural Studie, 12(1). Hausler,M.(2011). Die Piratenpartei. 장혜경 옮김(2012). 󰡔해적당󰡕. 로도스. IDC Digital Universe Study http://chucksblog.emc.com/chucks_blog/2011/06/2011-idc-digital-un iverse-study-big-data-is-here-now-what.html Lazzarato, M(1996). Immaterial Labour. P. Virno and M. Hardt(eds). Radical Thought in Italy: A Potential Politics. Minneapolis: University of 일 Minnesota Press. 반 논 Lyon, D.(2001). Surveillance society: Monitoring Everyday Life. Buckingham 문 : Open University Press. Pasquinelli, Matteo(2009). Google’s PageRank Algorithm: A Diagram of the Cognitive Capitalism and the Rentier of the Common Intellect. http://matteopasquinelli.com/docs/Pasquinelli_PageRank.pdf Pasquinelli, Matteo(2011). Machinic Capitalism and Network Surplus Value: Note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Turing Machine. Terranova, T.(2000). Free Labor : Producing Culture for the Digital Economy. Social Text, 18(2). Tsianos, V., & Papadopoulos, D.(2006). Precarity: A savage journey to the heart of embodied capitalism. Transversal Journal. http://www.thefreeuniversity.net/ImmaterialLabour/index.html Vercellone, C.(2007). From Formal Subsumption to General Intellect: Elements for a Marxist Reading of the Thesis of Cognitive Capitalism. Historical Materialism, 15, 13∼36. Vercellone, C.(2008). The new articulation of wages, rent and profit in cognitive capitalism. http://halshs.archives-ouvertes.fr/halshs-00265584/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29 초록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백욱인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빅데이터에 관한 실용적인 논의는 빅데이터의 생산 방식 보다는 빅데이터의 추후적 활용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실용적인 접근은 이미 만들어진 빅데이터를 어떻게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할 것인가를 추구한다. 그래 서 빅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그것이 갖는 사회적인 위상을 분석하지 않 는다. 빅데이터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은 빅데이터가 만들어지는 방식, 만들어진 빅데이터가 활용되는 방식 두 가지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다. 빅데이터에 관한 비판적인 논의는 빅데이터의 활용과 관련하여 프라이버시와 통제에 집중되고 있지만 빅데이터의 중요한 문제 지형은 이용자 활동의 전유와 관련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빅데이터에 관한 푸코주의의 감시사회론에 관 한 논의 지평을 넘어 현실 정보 사회의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는 빅데이터 형성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해명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는 빅데이터 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용자가 생산한 가치(user-generated value)’의 행방이 어떻게 되는지를 추적하고, 이용자 활동을 포획하는 기계로서의 플랫폼이 어떤 위상을 갖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그 결과 이용자들이 자신이 만든 활동 결과물로 부터 소외되는 현상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basic income)’의 논 리적 의미를 제시하고자 한다.

주제어 ∙ 빅데이터, 플랫폼, 전유, 인지자본주의, 이용자 협력생산, 기본소득

330 동향과 전망 87호 Abstract

The Critique of Big Data Formation and Appropriation System

Wook Inn Paik

일 반 논 문 The issue on big data is in now on the mode. The practical approaches on big data is centered on how to make profit out of it. On the other hand the crit- ical approach emphasizes the privacy problem and the becoming of big brother. These approaches have common aspects dealing the results of big data. Comparing to these approaches this paper would concentrate on the formation of big data and appropriation of it by big internet service compa- nies like Google and Facebook. They appropriate user generated contents and users activities(peer production) with their platform automatically. The big companies take the results of users activities and have monopolistic right on the big data. This paper will provide the analysis about the process of big data formation and the surplus appropriation by the big companies. The wealth accumulated by the appropriation of big data would be redistributed by basic income and anti-monopoly movement by the users.

Key Words ∙ Big Data, platform, appropriation, cognitive capitalism, peer production, basic income

빅데이터의 형성과 전유체제 비판 331 일반논문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파견노동의 규제 방식 및 효과를 중심으로* 1)

2)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머리말

스페인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여 다양한 정책대안들을 실험했으며 정책 효과들에 대한 심층연구들도 상당정도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비 정규직 관련 연구들은 주로 임시직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간접고용 에 대한 연구들은 거의 수행되지 않았고1) 간접고용 관련 연구들도 주 로 파견노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심층적인 인과적 분석보다는 거 의 모두 법개정 내용을 정리·분석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2) 스페인 통계청과 노동부는 간접고용의 전체 규모 대신 파견노동에 대한 통계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파견노동은 전체 피고용자 규모의 1% 에 조금 미달하는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임시직 비율이 30% 안팎을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간접고용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12) 가운데 필자 가 집필한 부분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수정 게재를 허락해준 국가인권위원회에 감사를 드린다. 아울 러 좋은 논평을 주신 익명의 심사위원들과 조교 김직수께 고마움을 표한다. ** [email protected]

332 동향과 전망 87호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견노동의 규모는 대단히 작은 것이 며, 임시직 비율이 유럽연합 평균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반면 파견노동 비율은 유럽연합 평균 수준에 해당된다. 이처럼 파견노동 비율이 임시 직 비율에 비해 매우 낮은 탓으로 정책대안들과 학술연구들이 주로 파 견노동 등 간접고용 문제보다 임시직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 것 이다. 하지만, 왜 파견노동 비율이 그렇게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 그 렇게 작은 파견노동 규모는 파견노동에 대한 효과적 규제의 결과를 의 미하는 것인지, 어떤 정책수단들이 파견노동을 포함한 간접고용 사용 일 반 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되고 있는지, 그러한 정책수단들 가운데 어떤 것 논 문 이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인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본 연구는 파견노동을 포함한 간접고 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들을 법제도와 단체협약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그러한 파견노동 규제 장치들의 정책효과에 대해서도 함께 검토한다.

2. 간접고용 사용 관련 법적 규제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는 법적 규제와 단체협약 에 의한 규제로 나뉘는데, 법적 규제는 임시직 중심의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노동법(Eatatuto de los Trabajadores)의 규제 장치들에 기초하여 파견업법(Ley de Empresas de Trabajo Temporal)을 통해 파견노동을 중심으로 간접고용 사용을 규제하며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33 1) 노동시장 정책과 비정규직 사용 규제 스페인은 정규직 보호 및 비정규직 사용 규제 문제를 둘러싸고 규제 강 화와 탈규제를 반복하며 일련의 노동시장 개혁 조치들을 단행해왔다 (<표 1> 참조). 스페인의 노동시장 정책과 노동시장 개혁은 두 가지 정 책과제를 겨냥해 왔는데, 그것은 실업율과 임시직비율이다. 스페인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 었는데, 1984년 임시직 사용 사유 제한 원칙을 우회하는 고용촉진계약 제(FE, Contrato Temporal de Fomento del Empleo)를 도입하여 실업 률 문제는 제어할 수 있었으나 임시직 규모를 급격히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임시직 비율의 급상승 추세를 제어하기 위해 1997년 임시직 사용 사유 제한 원칙을 강화하는 한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해 사회보 장기여금 감면 등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을 도입하여, 임시 직 비율을 유의미하게 하락시키지는 못했으나 임시직 비율의 급증 추 세는 제어할 수 있었다. 임시직 비율이 부침하며 상승 조짐을 보이자 2006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해 3년간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적 극적 정책 개입을 추진하면서 임시직 비율은 감소추세로 돌아서게 되 었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발발과 함께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 환 대신 비정규직 중심 인력 감축을 전개하게 되었고, 정부는 2010년 양대노총 CCOO(Confederación Sindical de Comisiones Obreras)와 UGT(Unión General de Trabajadores)의 공동 총파업 투쟁에도 불구 하고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단행했으며 이러한 정책 기조는 2012년 에도 지속되고 있다. 1997년과 2006년 노동시장 개혁 조치의 효과에서 확인했듯이, 비 정규직 사용 규제를 위해 시도된 다양한 정책수단들 가운데 사용 사유 제한 정책이 비정규직 사용 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334 동향과 전망 87호 <표 1> 스페인 노동시장 개혁과 법제도 변화

법제화 정규직 비정규직 계약(임시직 중심)

∙ 해고 판정 범주별 해고수당: ∙ 임시직 사용 사유 제한(5가지): 특수한 서비스· * 불공정해고: 근속년당 45일분 임금(최대 42개월 업무/ 초과 수요/ 대체노동/ 고용촉진 예외/ 무기 1980 분), 소송기간 임금 계약 직무 단속적 수행 (노동법) * 공정해고: 근속년당 20일분 임금(최대 12개월분), ∙ 정규직과 임시직 모두 동일직무 동일임금 소송기간 임금

∙ FE(고용촉진계약) 도입: * 모든 직무에 허용 1984. 8. 2 * 최단 6개월 최장 3년 (법32) * 해고수당 근속년당 12일 분 임금. 고용주 제소 불허 일 반 1992. 7. 30 ∙ 정규직 고용 시 사회보장기여금 환불 ∙ FE 최단 12개월, 최장 4년으로 조정(특정 조건에 논 (법22) 한정) 문

1994. 5. 19 ∙ 집단적 해고 재정의 ∙ FE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45세 이상 장기실업 (법10) ∙ 공정해고 정의 확대 자와 장애인에 한정 허용

∙ CFCI(정규직촉진계약) 도입: ∙ 임시직 계약 시 사용사유제한 원칙 강화 * 불공정해고 수당 근속년당 33일분 임금(최대 24 ∙ 정규직 채용과 임시직 정규직 전환 시 사회 1997. 12. 26 개월분) 보장기여금 40∼90% 인하 (법63) * 사회보장기여금 2년간 감면 * 취업 어려운 표적 집단에 한정함 * 향후 4년간 허용

2001. 7. 9 ∙ CFCI 사용 연장, 확대 적용 ∙ 해고수당 근속년당 8일분 임금(일부 임시직) (법12) ∙ 실업자의 공공·비영리부문 임시직 채용 허용

2002. 12. 12 ∙ 급행해고제(despido exprés) 도입 (법45) ∙ 불공정 해고 소송기간 임금지급제 폐지

∙ CFCI 사용 2007년 말까지 연장, 환급금 지급 대상 ∙ 동일업체 동일직무 임시직 고용계약 반복 갱신 확대 금지(30개월 기간 동안 24개월 이상 동일 직무 ∙ 취업 어려운 표적 집단 정규직 고용 시 사회보장기 근무하면 자동적으로 정규직 전환) 여금 감면 ∙ 동일 직무 임시직 노동자 순환 금지 2006. 12. 29 ∙ 2006.12.31 이전 임시직의 정규직 전환 시 최장 (법43) 3년간 보조금 지원 ∙ 실업자의 공공·비영리부문 임시직 채용 제도 폐지 ∙ 노동조합의 하청노동 관련 정보 접근·공유권 ∙ 장애인 고용 위한 임시직 채용 허용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35 법제화 정규직 비정규직 계약(임시직 중심)

∙ 해고 정당화하는 기업의 경제적 이유 포괄적 정의 ∙ 임시직 고용계약 최장 3년(단협으로 1년 추가 연 도입 장 가능) ∙ 기업은 초기업 단위 단협 수정 가능함 ∙ 임시직 해고수당 단계적 증액(근속년당 8일분에서 2010. 9. 17 ∙ CFCI 고용영역 확대 매년 1일 분씩 증액하여 2015년부터 12일 분이 되 (법35) 도록 함) ∙ 16∼31세 실업자, 45세 이상 실업자, 대체근로 직무의 정규직화 세제혜택

∙ 50인 미만 사업장 사회보장기여금 삭감 정규직 계 약 도입(3년 무기계약 가운데 1년은 검증기간) ∙ 부당해고 해고수당 근속년당 45일에서 33일로 삭 감하고 상한은 24개월 2012. 7. 6 ∙ 기업재정 악화 시 초기업단위 단협 적용 유보 허용 (법3) ∙ 단협은 유효기간 종료후 1년 경과하면 무효화됨 (효력 자동 연장제 폐지) ∙ ERE는 노동당국에 의해 승인될 필요 없음(노사합 의 불필요)

자료: 조돈문(2012a: 279)을 수정·보완했음

스페인은 1980년 임시직 사용 사유를 특수한 서비스와 업무, 초과 수요, 대체 노동, 고용촉진 예외, 무기계약 직무 단속적 수행 등 5가지 로 한정하고, 동일직무 동일임금을 법제화했다. 하지만 고실업율 문제 를 해소하기 위해 1984년 3년 한도로 사용 사유와 무관하게 고용촉진 계약 형태로 임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 사유 제한 규제를 해제했 다. 사용사유 해제 이후 임시직이 급증하게 되자 1994년 사용 사유 제 한제를 다시 회복하여 45세 이상 장기 실업자와 장애인을 적용 대상에 서 제외했다. 임시직 사용 사유 제한 관련 규정은 수차례 개정되었는데, 현재 노 동법 제15조 제1항에서 네 가지 사유로 제한하고 있다. 첫째, 노동자가 사업 내에서 한시적으로 자율성과 자신의 내용을 가지고 특정 직무 혹은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하여 고용될 때.

336 동향과 전망 87호 둘째, 기업의 통상적인 활동에 해당되더라도 시장 상황, 업무의 누 적 혹은 주문 과다로 일시적 고용이 필요한 때. 셋째, 특정 직무에 대해 보유권을 지닌 노동자들을 한시적으로 대 체할 때. 넷째, 고용사무소에 등록된 실업자를 직무 경험을 획득하여 고용가 능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 혹은 비영리 기구에서 고용할 때.

2) 파견업 합법화와 정부의 규제 스페인은 1994년 파견업법을 제정하며 파견업을 합법화했고, 이후 <표 일 반 2>에서 보듯이 1999년과 2010년에 대폭 개정했다.3) 1999년 국민당 정 논 문 부 주도로 추진된 파견업법 개정은 합법화 이후 급격하게 팽창하는 파 견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파견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졌다. 한편, 2010년 사회당 정부가 주도하여 경제위기 하에서 양대노총

<표 2> 스페인 간접고용 사용 규제 법제도 변화

법제화 간접고용 사용 규제

∙ 파견업체 합법화 1994. 6. 1(Ley 14/1994) ∙ 파견업허가제 ∙ 파견사용사유: 특정 서비스나 업무, 일시적 시장수요, 대체노동

∙ 파견사용사유 조항 삭제, 노동법 제15조(임시직 사용사유 제한)로 대체 ∙ 파견업체가 채용, 훈련, 보상 책임(매년 월임금 1%를 훈련기금으로 1999. 7. 16(Ley 29/1999) 적립) ∙ 근무년당 12일분 계약종료수당 ∙ 사용업체 직고와 동등처우

2006. 12. 29(Ley 43/2006) ∙ 불법파견 판정 기준 도입: 4가지 요소

∙ 파견업 대상 부문 확대: 공공부문 및 위험부문(건설업 포함) 대상 2010. 9. 17(Ley 35/2010) 파견업 허용

∙ 영리법인 파견업체는 공적고용서비스기금으로부터 재정의 2010. 12. 31(Ley 1796/2010) 60%까지 충당할 수 있고, 비영리법인은 90% 까지 충당 가능함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37 의 총파업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법 개정을 강행 하는 가운데 파견업 대상 부문을 확대하여 파견노동 사용규제를 완화 했다. 스페인은 파견업을 합법화하되 허가제를 채택함으로써 정부가 직 접적으로 개입하여 규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파견업체는 파견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노동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파견업 행정허가의 유 효기간은 1년으로서 유효기간 만료 3개월 전에 갱신 신청을 해야 한다. 파견업체는 파견업 허가를 발급받은 뒤 2년 연속 행정허가를 갱신해야 하며 파견업을 3년 수행한 기업은 영구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파견업법은 행정허가제를 규정하며 제2조와 제3조에서 파견업체 는 행정허가를 취득·갱신하기 위해 노무제공자들을 선발하여 훈련할 수 있는 역량을 담보할 조직적 구조를 갖추고 안정적 노무제공을 위해 최소 12명 이상의 노무제공자를 고용하며, 공적기구에 소정의 보증금 을 예치하는 등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또한 파견업법은 제5조 에서 파견업체는 행정허가를 발급한 정부당국에 노동법 제8조 제3항에 서 지정한 고용계약서 사본들과 함께 소유권 변동, 사무실의 개소 및 폐 쇄 활동의 종료 등에 대해 보고하도록 했다. 파견업법은 파견노동을 합법화하며 특정 사유들에 대해 노동자 파 견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방식으로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 있다. 파견 노동 사용 사유 제한 규정은 1994년 파견업법이 제정될 때 도입되었으 며 제정 당시 제7조에서 파견노동 사용 사유를 세 가지로 제한했다. 첫 째, 한시적으로 특정한 서비스나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 둘째, 일시적 시장수요를 충당하거나 주문 과잉 혹은 누적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 셋째, 일시적으로 자리를 비운 정규직 노동자 같은 직무 보유권 을 지닌 노동자들을 대체하여 한시적으로 노동하는 경우. 1999년 개정법안은 제7조의 세 가지 사용 사유 규정을 삭제하고 노

338 동향과 전망 87호 동법 제15조의 임시직 사용 사유 제한 조항을 파견노동자 고용에도 적 용하도록 했다. 그 결과 현재 파견노동자 사용이 허용되는 사유는 일반 적 임시직 고용과 같이 한시적으로 특정 직무 혹은 서비스를 수행하는 경우, 일시적 시장상황이나 업무 누적 혹은 주문 과다로 필요성이 발생 한 경우, 특정 직무에 대해 보유권을 지닌 노동자들 한시적으로 대체할 경우, 직무경험을 통해 고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기관 혹은 비영 리기구가 실업자를 고용할 때 등 네 가지로 되었다. 파견업법에 의한 파견노동자 사용 사유의 추가적 제한 규정은 삭제 되었지만 파견노동자 금지 사유 규정(제8조)은 여전히 남아 있다. 파견 일 반 노동자 사용 금지 규정은 사용업체에 의한 파견노동의 오·남용을 방 논 문 지하며 사용업체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파견노동이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네 가지 사유는 사용업체의 파 업 중인 노동자들을 대체하는 경우, 법규정 혹은 단체협약에서 규정된 안전과 보건에 특별히 위험한 과제나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 사용업체 가 부당해고 혹은 노동법 제50∼52조에서 규정된 경제적 사유로 인한 집합적 해고 등의 과정을 통해 확보한 일자리를 12개월 이내에 채우려 는 경우, 다른 파견업체에 노무제공자를 대여하는 경우다.

3) 사용업체 및 파견업체 규제 파견업법은 노동법과 함께 사용업체와 파견업체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와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다. 파견노동 관련 사용업체 규제는 주로 사용업체의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 되지만,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도 구비하고 있는데, 세 가 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불법파견 판정 기준 및 파견업체·사용업체 연대 책임의 명 문화다. 2006년 12월 파견노동의 남용을 차단하기 위해 불법파견을 합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39 법도급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불법파견 판정기준을 도입했다(CCP, 2007: 4). 이때 개정된 노동법 제43조는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 는데, 노동자 파견은 합법적 파견업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제45조 의 2에서 불법파견으로 판정할 수 있는 기준 네 가지를 제시하여 그 가 운데 하나라도 해당되면 불법파견으로 판정하도록 한다. ① 노동력 공 급업체가 사용업체에 노동자를 제공하는 것이 두 기업 간 서비스 계약 의 유일한 목적인 경우, ② 노동력 공급업체가 자신의 고유하고 안정적 인 사업 혹은 조직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 ③ 노동력 공급업체가 자신 의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 ④ 노동력 공급업체가 사업자로서 지니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경우. 이러한 불법파견 당사자인 노동력 공급업체와 사용업체에 대해 노 동법 제45조의 3과 4는 연대책임을 부과하고, 해당 노동자는 노동력 공 급업체 혹은 사용업체 가운데 당사자가 원하는 업체의 정규직으로 전 환될 권리를 지니며 해당 업체에서 동종 혹은 유사한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와 동등한 노동조건을 부여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둘째는 사용업체 규제를 통한 파견노동자 보호 장치다. 파견업법 (제9조)은 사용업체가 파견노동 사용 계약을 체결할 경우 열흘 이내에 체결된 계약별로 해당 일자리와 사용 사유를 사용업체의 직접고용 노 동자 대표들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사용업체는 노무 계약서 와 파견노동자의 담당 직무의 내역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또한 동 법 (제16조)은 사용업체가 파견노동자에게 담당하는 직무의 위험과 보 호·예방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줘야 하며 사회보장 부담금뿐만 아니라 작업 중 안전과 보건에 대한 책임도 지도록 하고 있다. 파견업법(제17조)은 파견노동자들이 사용업체 내에서 지니는 권리 도 규정하고 있다. 파견노동자들은 직무 수행 조건과 관련한 요구사항 들을 사용업체 직접고용 노동자 대표자들을 통해서 사용업체에 제시할

340 동향과 전망 87호 권리를 지닌다. 또한 파견노동자들은 사용업체 파견 계약 기간 동안 교 통, 식당, 보육 서비스들과 기타 사용업체에서 집합적으로 공유되고 있 는 여타 서비스들도 직접고용 노동자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사용할 권 리를 지닌다. 한편 사용업체는 구인 일자리가 있을 경우 파견노동자들 에게도 통보하여 직접고용 노동자들과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는 파견업체 규제를 통한 파견노동자 보호 장치다. 파견업법은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업체 뿐만 아니라 파견업체도 규제하 고 있다. 파견업법은 제10조에서 파견업체가 노무제공자를 정규직 혹 일 반 은 기간제4)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여 파견업체에 직무의 성격에 따라 논 문 고용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한편, 제10∼12조에서 파 견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업체를 규제하는 장치들도 수립하고 있다. ① 파견노동자는 파견기간 동안 사용업체에서 수행하는 직무와 동 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용업체의 직접고용 노동자들과 임금, 노동시 간, 초과근무, 휴식시간, 야근, 휴가와 휴일 등에서 동등한 처우를 받 는다. ② 파견업체는 업무 수행 관련 자격조건과 직무경험을 고려하여 필 요한 이론적·실천적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부족할 경우 적절한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파견업체는 매년 임금의 1%를 파견노동자 의 훈련비용으로 적립해야 한다. ③ 파견업체는 선발, 훈련, 채용과 관련하여 노무제공자에게 어떠 한 비용도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 ④ 파견업체와의 고용계약이 종료될 때 노무제공자는 근속년당 12 일 임금분을 재정적 보상으로 받을 권리를 지닌다. 2010년 사회당 정부는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견업 활동이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41 금지되었던 공공부문과 건설업 등 위험 작업 부문 영역들에도 파견업 을 허용하는 파견업법 개정을 포함한 노동관계법 개정을 단행했다 (Pastor, 2010). CCOO와 UGT는 정부의 일방적 노동관계법 개악 시도 를 비판하며 2010년 9월 28일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면서 영리 파견업 의 확대가 아니라 공적 노동시장 중개 서비스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CCOO, 2010b, 2010c; CCOO-UGT, 2010a). 노동계는 총파업 투쟁과 함께 노동관계법 재개정을 촉구하며 대안적 개정안을 제시했는데, 이 개정안은 공적 고용서비스 기구와 비영리 노동중개기구들의 활동을 강 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우선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건설업을 포 함한 위험 작업 부문들에 대해서도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고 파견계약 은 6개월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되 연장 혹은 갱신도 금지할 것을 요 구했다(CCOO-UGT, 2010a, 2010b).

3. 파견업 단체협약과 파견노동자 보호

1) 합법화 이후 파견업 성장 파견노동은 1994년 파견업 합법화 이후 주로 서비스부문 비숙련 직무 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여 파견노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수에 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었다(<표 3> 참조). 파견업체 숫자는 합법화 이듬해인 1995년에 300개를 넘어서며 급 팽창하여 1998년 435개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하락하며 부침하다가 2011년 현재 304개로 1995년 이래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파 견노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수가 꾸준히 확대되는 가운데 파견업체 숫자가 300개 수준으로 감소한 것은 파견업체의 대형화와 함께 파견업 시장의 독과점화가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342 동향과 전망 87호 파견노동자 규모도 파견업 합법화 초기 급팽창하여 1998년 최고치 를 기록한 다음 2000년까지 정체하다가 2001년에 급격하게 하락했고,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7년 최고수준을 기록한 다음 2008년 일시 적 급락했지만 이듬해부터 증가세를 회복하여 2011년 현재 11만 1,989

<표 3> 파견노동 관련 지표들의 변화 추이, 1994∼2011

파견계약 임시직 파견 임시직 파견 파견 한시적 피고용자 노동자 노동자 한시적 구분 노동자 노동자 업체 특정 일시적 과도기적 (천명) 비율 비율 대체 일 (천명) (명) (개) 합계(건) 직무- 인력수요 고용 (%) (%) 고용 서비스 (%) 과정(%) 반 (%) (%) 논 문 1994 9136.4 3151.6 34.5 86

1995 9412.5 3252.8 34.6 31812 .338 316 44123 37.70 55.34 6.21 0.75

1996 9886.1 3318.8 33.6 57975 .586 399 77892 33.12 58.54 7.63 0.72

1997 10404.1 3438.6 33.1 84329 .811 428 121850 28.97 63.64 6.52 0.87

1998 10958.7 3560.7 32.5 106201 .969 435 155207 33.22 60.25 5.63 0.90

1999 11860.2 3880.4 32.7 102044 .860 410 149507 42.83 51.56 4.56 1.05

2000 12640.9 4051.7 32.1 100742 .797 364 177322 38.97 57.15 3.20 0.68

2001 13148.0 4239.1 32.2 95974 .730 346 138576 41.96 51.88 5.39 0.77

2002 13698.8 4337.7 31.7 98144 .716 335 141578 41.71 52.03 5.52 0.74

2003 14293.1 4578.5 32.0 109324 .765 326 163830 43.17 50.84 5.36 0.64

2004 15022.4 4948.7 32.9 116914 .778 342 173078 44.53 49.88 4.95 0.64

2005 15841.6 5350.4 33.8 130331 .823 346 195316 42.91 51.64 4.53 0.92

2006 16466.2 5568.7 33.8 130877 .795 350 189854 41.88 52.67 4.61 0.84

2007 16876.5 5218.4 30.9 140109 .830 368 207605 41.93 51.59 4.56 1.92

2008 16308.2 4554.3 27.9 93848 .575 363 145344 44.57 48.58 5.54 1.31

2009 15492.6 3886.2 25.1 101024 .652 334 160813 44.72 49.84 5.14 0.30

2010 15314.2 3800.3 24.8 115926 .757 314 184571 46.82 48.51 4.45 0.21

2011 15179.4 3950.4 26.0 111989 .738 304 172858 45.14 49.83 4.88 0.15

주1 : 각 년도 4/4분기 혹은 12월 기준. 자료: 스페인 노동이민부(http://www.mtin.es/), 통계청(http://www.ine.es/).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43 명을 기록하고 있다. 파견계약 건수도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는 가운 데 2000년 최고치를 기록한 다음 이듬해에 급락했다가 증가추세를 회 복한 뒤 2007년 정점에 달한 다음 이듬해에 급락했고, 다시 증가추세를 회복하여 2011년 현재 17만 2,858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파견노 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수는 꾸준한 증가추세 속에서 2001년과 2008 년에 급락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각각 2000년 12월과 2007년 12월에 파견업 전국협약을 체결한 직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인과적 연 관성을 추정하게 한다. 각 년도 파견계약 건수가 파견노동자 숫자보다 더 많은 것은 동일 파견노동자가 한 건 이상의 파견계약을 사용업체들과 체결하기 때문이 며, 대체로 파견노동자 1인당 한 해 평균 1.5건 내외의 파견계약을 체결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계약의 구성을 보면 사용업체가 파견노동 자를 사용하는 사유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시적 인 력수요로서 2011년 현재 전체 파견계약의 절반에 해당하는 50%로 나 타났다. 그 뒤를 잇는 것은 특정 직무·서비스 담당이며 2011년 현재 45%로 일시적 인력수요와 함께 파견노동자 사용사유의 거의 모두를 설명하는 반면, 다른 사용사유들은 합산해도 5% 수준에 불과하여 그 비중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파견노동자가 전체 피고용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최고 수 준에 달했던 1998년에도 0.97%로서 1%에도 못 미쳤으며, 2011년 현재 0.74%를 기록하고 있다. 임시직 비율이 2006년 33.8%에 달한 바 있고 이후 정규직 전환 재정지원 정책과 경제위기 하 임시직 중심 구조조정 으로 인해 크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현재 여전히 유럽연합 평균치의 2배 수준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파견노동자 비율 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스페인 기업들은 주로 직접고용 임시 직 노동을 수량적 유연성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파견노동은 극

344 동향과 전망 87호 히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동등처우 등 파견노동 사 용 규제 장치들의 효과로 인해 파견노동 사용의 인센티브가 최소화되 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2) 파견업 조직화와 단체협약 체결 파견업 합법화가 여타 유럽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이루어진 탓으로 AGETT(Asociación de Grandes Empresas de Trabajo Temporal)에 소속된 6대 파견업체들이 전체 파견계약의 47%를 점유하는 등 파견업 시장은 대형 파견업체들에 의한 독과점 양상을 보이고 있다(Villarejo, 일 반 2008). 파견업체들은 업체 규모별로 별도의 연합체들로 조직되어 있 논 문 는데 주로 대형 파견업체들은 AGETT, 중소형 파견업체들은 AETT (Asociación Estatal de Trabajo Temporal), 소형 파견업체들은 FEDETT (Asociación de Empresas de Trabajo Temporal)에 결합되어 있다. 한편, 파견노동자 조직화는 주로 CCOO 산하 재정행정서비스연맹 Comfia(Federación de Servicios Financieros y Administrativos de CCOO)와 UGT 산하 서비스연맹 FeS(La Federación de Servicios de la Unión General de Trabajadores)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두 연맹 은 파견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용형태의 비정규직들을 주요 조 직 대상으로 삼고 있다. Comfia는 파견업뿐만 아니라 재정, 행정, 정보 통신, 텔레마케팅과 기타 행정서비스 부문 종사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고, FeS는 금융, 그래픽·편집, 통신과 문화, 환경미화, 경비업 부문 을 조직하고 있다. 파견업은 노사를 대표하는 전국적 조직체들이 체결하는 전국 수준 의 단체협약에 의해 주로 규제되며, 개별 파견업체 수준에서 체결되는 기업협약도 있지만 거의 유명무실하다. 합법화 이듬해인 1995년 2월 전국 수준의 파견업 단체협약이 최초로 양대 노총과 파견업체협회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45 GEESTA(Asociación Española de Empresas de Trabajo Temporal)에 의해 체결된 이래 현재까지 모두 다섯 차례 체결되어 왔다.5) 현재 제5차 전국협약은 2006년 1월 1일에 발효하여 2010년 12월 30 일로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지만,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노동관계법 개안 이 추진되며 노동계는 연이어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파견업협회들은 단체교섭을 기피하거나 단체협약의 개악을 추진함으로써 단체교섭이 난항을 겪어 왔으며 아직 제6차 전국협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제5차 전 국협약의 서명 주체들은 파견업체의 전국조직체들인 AGETT, AETT, FEDETT와 양대노총에서 파견노동자들을 대변하는 CCOO의 Comfia 와 UGT의 FeS였다.

3) 제5차 전국 단체협약과 파견노동자 보호 제5차 협약은 제16조와 제17조에서 파견업체와 파견노동자 사이의 고 용계약은 서면으로 작성되어야 하고 파견업체는 노무제공자를 무기 혹 은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동 협약은 제14조 2항에서 파 견노동자가 파견기간 동안 사용업체의 교통수단, 식당, 카페, 의료시설 등 집합적 서비스 시설들을 이용할 자격을 지닌다고 명시하고, 사용업 체의 노동조합을 통해 직무수행 조건에 대한 요구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며 파견노동자 보호를 위해 사용업체를 규제한다. 또한, 동 협약은 제49조에서 파견노동자가 담당하게 될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파견업체는 파견노동자가 담당할 직무에 필요한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그 훈련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매년 파견업법에 규정된 월 임금의 1%를 적립하도록 하는 한편 산업재해 예 방과 보건 관련 훈련을 위해서도 임금의 0.25%를 추가로 적립해야 한 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파견업 전국 단체협약은 파견업법이 규정하는 파견업체 규

346 동향과 전망 87호 제와 파견노동자 보호 수준을 넘어서는 조항들은 거의 포함하지 않으 며, 주로 파견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 및 노동시간 조정 등 사회경제적 조건 변화에 상응하는 수준에서 파견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조항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파견업의 단체협약이 주로 법적 권리 를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지만,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조항처 럼 법규정 수준을 넘어서는 강력한 규제장치도 예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이 처음 도입된 것은 제3차 파견업 전국협약 (2000∼2002)인데, 2000년 12월 체결된 동 협약은 제45조에서 파견업 일 반 체는 고용한 노무제공자의 50% 이상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으 논 문 로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BOE, 2000). 한편 2007년 12월 체결된 제5차 파견업 전국협약(2006∼2010)은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을 50%에 서 65%로 상향조정했다(BOE, 2008). 제5차 전국협약 제51조는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을 65%로 설정하며 상근노동자 노동시간의 50% 미만에 해당하는 단시간노동 계약들은 정규직 고용 비율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65%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파견 노동자를 총 18개월 기간 동안 12개월 한도 내에서 임시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 동 협약 제17조의 적용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한편 고용 기간이 6개월을 초과하면 해당 파견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으 로 간주한다. 이처럼 강력한 부정적 제재를 통해 파견업체가 정규직 의 무고용비율을 준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47 4. 제6차 단체협약과 단체교섭 과정

1) 제6차 단체협약 교섭의 지체된 시작 제5차 파견업 전국 단체협약은 2010년 12월로 만료되었지만 파견업 노 사대표들은 제6차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시작하지도 않은 채 2010년 체납임금분 지급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5차 전국 단체협약(제27조)은 2010년 임금 인상률을 실제 소 비자물가 인상률에 0.75%를 더하여 산정하고 실질 소비자물가 인상률 추정치 1%에 기초하여 임금 인상률 1.75%를 기준으로 임금을 우선 지 급하되 실제 해당년도의 소비자물가 인상률이 확인되면 체납임금분을 산정·지급하도록 했다(BOE, 2008). 2010년의 실제 소비자물가 인상 률이 3%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2011년 3월 21일 개최된 파견업 노사공 동위원회(Comisión Paritaria Sectorial)는 2010년 임금 인상률을 3.75% 로 조정하고 2%에 해당하는 차액을 체납임금으로 파견업체가 노동자 들에게 지급하도록 했다(Comfia, 2011a). 노동부는 노사공동위원회가 합의한 2010년 임금 체납분의 구체적 액수를 사실로 확인한 다음 5월 23일 관보를 통해 공표했다. 하지만 파 견업 협회들은 소속 파견업체들에 대한 체납임금분 지급 지시를 거부 했다. 그것은 단체협약에 2010년 체납임금분을 2011년 1/4분기 내에 지급하도록 되어있음에도 지급액수가 5월에 공표됨으로써 1/4분기 내 지급하도록 규정한 조항은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체납임금분을 지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였다(Comfia, 2011b, 2011c). 체납임금분 산정이 지체된 것은 실질 소비자물가 인상률 발표가 늦 어진 탓이며 노동조합은 이미 3월 중에 체납임금분을 지급할 것을 요청 한 바 있어 사측의 논리가 설득력을 지닐 수 없음은 자명했다. 이처럼 사측이 억지 논리를 펼치며 노사갈등 국면을 조성한 것은 제6차 단체협

348 동향과 전망 87호 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을 기피하기 위한 의도였다. 2011년 4월 15일 제6차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노사양측 대표들이 회동하여 노사 양측은 각각 12명씩의 교섭대표들을 지명하여 단체교섭 을 시작하기로 합의하고 의장은 노측 대표가 맡고 서기는 사측 대표가 맡기로 했다(FeS, 2011b; Comfia, 2011b). 노측은 CCOO의 Comfia와 UGT의 FeS가 각각 6명씩 대표를 지명하기로 했지만, 사측은 5월 20일, 6월 16일, 7월 14일 거듭된 노사 회동에서 AGETT, AETT, FEDETT 등 세 단체가 사측 교섭대표 12명의 배분에 합의하지 못한 탓으로 실질적 인 노사교섭이 시작될 수 없었다. 마침내 7월 14일 회의에서는 사측 교 일 반 섭대표 배분 문제를 노동부의 중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논 문 (Comfia, 2011d; FeS, 2011d, 2011e). 노동부 중재위원회가 11월 7일 사측 교섭대표 12명을 AGETT에 6 명, AETT에 3명, FEDETT에 3명으로 배분한다는 중재결정을 내리자 (BOE, 2011: 125302, 125315), 비로소 12월 2일 파견업 노사대표들은 공식적인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다(FeS, 2011f). 이렇게 제6차 단 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은 제5차 단체협약이 만료된 지 1년 만에 시작되었고, 사측의 교섭대표 배분 논란이 단체교섭 시작을 지연시키 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노측의 우려는 사실로 되었다.

2) 단체협약 교섭과 노사 대립 제6차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단체교섭은 사측의 교섭대표 배분 문 제 등 불성실한 교섭태도로 인해 난항을 겪으면서 제5차 단체협약이 2010년 말 만료된 뒤 2년이 경과하도록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노사 는 핵심 쟁점들에서 정면 대립하며 접점을 찾지 못한 탓으로 협약의 조 속한 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Comfia와 FeS는 단체협약 요구안을 작성하여 2011년 2월 회동에서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49 사측에 전달했는데 그 핵심은 임금정책, 노동시간, 고용안정성, 직무범 주 계층 재조정 등이었다(FeS, 2011a, 2011c; Comfia, 2011b). 노동시간 관련하여 노측은 연 최대 노동시간을 1,744시간으로 단축 하고, 출근 후 작업시작과 퇴근 전 작업 종료를 위해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노동시간을 하루 1시간씩 배정하며, 유급휴가를 연 24 노동일 로 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휴가일을 이틀 배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질병과 경조 및 성평등 관련 휴일제도 관련하여 본인의 질병·사 고 혹은 입원 시 4일의 휴가를 주고, 배우자 및 직계가족의 사망 시 5일 의 휴가를 주며, 육아를 돕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노동과 생활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할 것도 요구했다. 임금인상 관련하여 노측은 임금 인상률을 실제 소비자물가 인상률 에 2011년에는 1.5%를, 2012년에는 2.5%를 더하여 산정하도록 하며, 매년 1월 1일 합의된 추정 소비자물가 인상률에 기초하여 임금을 지급 하되 차년도에 실제 소비자물가 인상률이 확인된 뒤 차액을 지급할 것 을 요구했다. 또한 야간 근무에 대해 시간당 임금의 40%를 추가 수당으 로 지급하고, 초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당 임금에 20%의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동시에 휴식 시간도 20%를 추가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고용안정 관련하여 노측은 파견업체들의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을 65%에서 80%로 상향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현재 직접고용 정규 직 노동자들이 퇴직연령 도달 전에 퇴직하여 임금보전을 받으며 해당 일자리에 청년 노동자를 채용하도록 하는 부분퇴직 대체고용(contrato de relevo) 제도를 도입할 것도 요구했다. 그 밖에도 직업범주를 노동자들의 학력 수준을 인정하고 기술개발 에 적합한 방식으로 조정하고, 임금계층들을 다른 부문들의 비슷한 학 력과 기술자격의 임금계층에 상응하도록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노동조합의 권리와 관련하여 사측은 노동조합에 단체협약을 실행하기

350 동향과 전망 87호 위해 필요한 자원과 정보를 제공하고, 노동조합 대표를 포함한 노동자 대표들이 유급 노조활동권 시간을 축적하여 노조활동에 사용할 수 있 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노측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5 년에서 2년으로 단축할 것도 요구했다. 노동부의 중재 판정으로 사측의 교섭대표 배분 문제가 해결되고 2011년 12월 노사 간의 단체교섭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다음 노측은 이듬 해 2월 23일 노사교섭에서 노동 측 입장을 전달했다(FeS, 2012b). 노측 입장은 노사관계와 노동조건은 부문협약을 골간으로 하며 사업장 단위 협약들과 적용 우선권 문제의 다툼 없이 경제사회적 필요성에 따라 동일 일 반 한 노동조건을 적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측은 노동시간 문제를 논 문 노사교섭의 핵심적 의제로 간주하고 있었다(Comfia, 2012a, 2012b). 노사교섭이 진행되는 가운데 3월 29일 CCOO와 UGT의 총파업 연 대투쟁이 전개되었고, 사측은 교섭일정을 잡기 어렵다며 노사교섭을 미루던 가운데 5월 24일 노사교섭 석상에서 노측 요구안에 대한 사측 협상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FeS, 2012c). 하지만 사측이 협상안 을 최초로 제출한 것은 9월 13일 노사교섭에서였으며, 이는 노측이 2월 교섭에서 요구안을 제출한 이래 7개월이나 경과한 뒤였다(FeS, 2012d; Comfia, 2012c). 사측 협상안은 2017년까지 향후 7년간 임금을 동결하 고, 노동시간을 매년 68시간씩 증대하며, 휴가 시점은 사측이 선택하 고, 노동시간은 사측의 필요에 따라 조정하며, 질병, 상조, 성평등 관련 휴일 등 모든 노동-생활 조화를 위한 개선조치들을 제거하고, 노사공 동위원회를 통한 노동조합의 모든 대표권과 정보청구권을 폐지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Comfia와 FeS는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거부하고 노동법과 단체협약에 보장된 노동기본권과 노동조건을 개악하는 행위 로서 자본의 “참모습(verdadera cara)”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며 비판했다.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51 3) 노사 대립과 교섭 전략 노측 대표들은 이어진 10월 1일 협상에서 사측 협상안을 단호히 거부하 며 노측의 수정 요구안을 제출했고, 11월 22일 차기협상에 이어 개최된 11월 26일의 후속협상에서 노측의 최종 협상안을 제출했다(Comfia- FeS, 2012; FeS, 2012e, 2012f; Comfia, 2012d). 노측 최종 협상안은 <표 4>에서 보듯이 2011년 초 제시했던 요구안에서 상당 정도 후퇴한 내용으로서 수정·제안된 부분의 핵심은 단체협약 유효기간과 임금 인 상률 관련 요구였고,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상향조정을 포함한 고용안 정 관련 요구 등은 철회되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당초 요구안은 5년을 2년으로 단축하는 상대 적으로 공세적 요구였는데, 이를 다시 4년으로 연장하는 것이었다. 이 는 제5차 단체협약이 체결된 것도 제4차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만료 되고 2년이 지난 뒤였고, 제5차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이래 2 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와 함께,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만 료된 뒤에도 차기 단체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효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요구안도 포함했다. 노측의 임금인상 관련 수정안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통제한 2011 년과 2012년의 실질임금 인상률을 각각 1.5%에서 1%로, 2.5% 에서 0.5%로 하향조정했다. 또한 추가된 2013∼2015년의 경우, 2013년은 0.6%로 낮게 책정했지만, 2014년과 2015년은 GDP 성장률에 상응하는 임금 인상률을 제시했다. 즉, GDP 성장률을 1% 미만, 1% 이상 2% 미 만, 2% 이상으로 범주화하여 그에 상응하는 해당 년도의 실질임금 인 상률을 각각 0.6%, 1%, 2%로 설정하자는 것이었다. 한편 노동시간 단 축 요구안도 연 최대노동시간 1,744시간에서 1,788시간(2013∼2014) 과 1,786시간(2015∼2016)으로 크게 후퇴했고,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352 동향과 전망 87호 <표 4> 제6차 단체협약 교섭과정의 쟁점

노동 측 최초 요구안 노동 측 수정 요구안 자본 측 협상안 (2011. 2) (2012. 11) (2012. 9)

<단협 유효기간>

단협 유효기간 2년 4년 -

단협 기간 만료후 적용 - 차기 단협 서명시점까지 -

<노동시간>

연 최대 노동시간 연 최대 노동시간을 연 총 노동시간 1788시간(2013∼2014), 매년 68시간 증대 1744시간으로 단축 1786시간(2015∼2016)

작업시작과 종료를 위한 일 노동시간 -- 유연성 1시간 배정 일 반 작업시간 설정 - - 사측 필요에 따라 설정함 논 휴가 24노동일, 2자유사용일 - - 문

휴가시기 노동자의 선택 - 사측이 선택함

4일(심각한 질병·사고), 질병, 상조, 성평등 관련 질병, 경조, 성평등 관련 5일(직계사망), 육아 - 휴일 관련 모든 개선조치 휴일 제도 노동시간 단축 삭제

<임금>

실질임금 인상률: 실질임금 인상률: 1%(2011), 2017년까지 7년간 임금 인상률 1.5%(2011), 0.5%(2012), 임금동결 2.5%(2012) 0.6%(2013), 0.6/1/1.5%(2014∼2015)

야간근무 보상 40% 수당 추가 - -

초과근무 보상 20% 수당 추가 - -

<고용안정>

부분퇴직과 대체고용 제도 부분퇴직 -- 도입

정규직 의무고용 80% - -

<기타>

직업범주층화 현실에 맞게 재조정 현실에 맞게 재조정 -

단협 실행 위한 자원 노조에 제공/노조대표의 단협 실행 위한 유급노조 노사공동위원회 통한 노조권리 유급 노조활동권 시간 활동 시간 보장 대표권·정보권 중단 축적 사용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53 80% 상향조정 등 고용안정 요구와 함께 각종 추가 수당 및 휴가·휴일 관련 요구조건들은 철회되었다. 사측은 노동조건 개선 거부 및 개악 의지를 일관되게 견지하며 노 동을 압박하여 요구안을 후퇴시킨 것이다. 2011년 12월 7일 공식적으 로 시작된 노사교섭과 뒤이은 2012년 1월 19일 노사교섭 석상에서 사 측은 매출액과 수익이 40%나 하락한 사회경제적 여건 속에서 사측의 단체교섭 목표는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측의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FeS, 2011f; Comfia, 2012a). 실제 사측이 협상안을 제출한 9월 13일 단체교섭 직전 Valencia의 한 파견업체에서 사측의 전국협약 협상안이 그대로 명문화 되어 단체협약으로 체결된 바 있다는 사실(Comfia, 2012d)에서 사측의 노동조건 개악 입장이 대단히 확고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측이 단체교섭 과정에서 일정하게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사측의 단체교섭 전략이 주효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단체교섭 시작을 지연시키고 교섭을 해태하며 비타협적 개악안을 제출하여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함으로써 사측의 양보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사측은 2011년 초 2010년 체납임금분 지급 문제로 노사갈등을 야기하며 단체 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의 시작을 지연시켰고, 사측 교섭대표 숫자 배분 문제로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없게 했는데, 7월 중순 노동부에 중 재를 요청하여 11월 초 노동부의 중재 결정을 받은 뒤 12월 초에 비로 소 공식적 단체교섭이 시작될 수 있었다. 이렇게 1년을 소모한 다음 공 식적 단체교섭이 시작되어 노측은 2012년 2월에 단체협약 요구안을 정 식으로 제출했지만, 사측은 7개월 뒤인 9월 중순에야 노측 요구안을 정 면으로 거부하는 개악안을 협상안으로 제출하여 노측이 수용할 수 없 도록 했다. 이러한 사측의 고의적 단체교섭 지연·해태 행위로 인해 단 체교섭 과정은 2년을 허비하며 파행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354 동향과 전망 87호 이렇게 단체교섭을 기피하며 단체협약 개악 입장을 고수하는 사측 에 대해, 노측 대표들은 사측의 교섭 지연 및 비타협적 태도의 변화를 거듭 촉구하며 노동자들의 요구들은 정당한 것이라며 생산적 의지와 함께 진지하게 교섭할 것을 요구해 왔다.6) 노측이 노동시간 문제를 핵 심 의제로 설정한 것은 향후 전개될 노동시장 규제 제도 변화에 의해 별 로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인 동시에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노동시간 배분 방식은 노사가 모두 혜택을 받게 될 조직적 수단이라는 점 때문이 었다. 그와 함께 고용 문제란 노동자들에게 우선순위가 높은 의제일 수 밖에 없고, 임금 관련 요구는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구매력 증대 일 반 를 보장하기 위해 상응하는 임금 인상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논 문 사측 전략에 대해 Comfia와 FeS가 가장 우려하며 압박감을 느꼈던 부분은 단체협약 만료 후의 시간 경과였다. 2011년 사회당 정부가 노동 법 개정을 위한 노사정 협의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집권 사회당의 지지 도가 크게 하락하며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가단체들은 정권교체 후의 보다 친자본적 노동법 개정을 기대하며 사회적 대화를 기피하고 있었다(조돈문, 2012b). 당시 자본 가단체들의 주요한 노동법 개정 요구 가운데 하나가 단체협약의 유효 기간이 만료된 뒤에도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기존의 단 체협약이 여전히 효력을 유지한다는 노동법 규정을 삭제하는 것이었 다. 실제 2011년 말 조기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보수 국민당(PP)은 2012년 2월 10일 개정 법령(Real Decreto-ley 3/2012)을 발표했는데, 개정 법령은 제86조의 3에서 단체협약 효력 자동 연장 구절을 삭제하고 “기존 단협의 유효기간 만료 후 2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 결되지 않거나 중재결정이 없으면,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기존 단협은 효력을 상실한다.”로 개악했다.7) Comfia와 FeS는 사측이 단체협약 체결 시점을 최대한 늦춤으로써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55 만료 단체협약의 효력 관련 법규정이 개정되어 노측에 무단협 압박을 가하며 파견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훼손하고 임금 등 노동조건 을 개악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FeS, 2011f, 2012b; Comfia, 2011d). 한편으로는 CCOO와 UGT가 국민당 정 부의 긴축정책 및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관계법 개악 시도에 맞서 2012년 들어 3월 29일과 11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공동 총파업 투쟁을 전개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렇게 국민당 정부 하에서 노동관계법은 개악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더욱 급격하게 진전되는 가 운데 자본이 공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노측은 여타 산업부 문들과 마찬가지로 파견업 부문에서도 자본을 압박할 대안적 수단을 찾지 못한 채 자본의 무단협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5. 토론 및 맺음말

1) 사회적 규제의 파견노동자 보호 효과 파견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규제들 가운데 법적 규제 못지않게 단 체협약에 의한 규제도 큰 효과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1) 법적 규제 및 단체협약 규제 효과 파견업에 대한 법적 규제 정책의 변화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 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는 1994년 6월의 파견업 합법화, 1999년 7월의 계약만료 수당 도입 및 동등처우 보장, 2006년 12월의 불 법파견 판정 기준 도입, 2010년 9월과 12월의 파견대상 확대 및 파견업 체 지원 정책 도입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정책변화와 파견노동자

356 동향과 전망 87호 규모 및 파견계약 건수의 변화 추이를 비교 검토하면(<표 3> 참조), 1994년 6월 파견업 합법화로 파견업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래 법제화의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표 5> 참조). 1999년 7월 파견업체의 훈련 책임, 계약종료 수당 지급 및 동등처우 제도 도입 등 규제 강화 조치로 1998년 12월에 비해 1999년 12월 파견 노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수는 각각 3.91%와 3.67%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편 2006년 12월 불법파견 판정 기준 도입 이후 파견노동 규모는 증가했는데, 이는 불법파견 규제 강화가 파견노동의 감소를 가 져오거나 불법파견의 합법파견 전환을 가져왔다기보다 파견노동 규모 일 반 의 증가 추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탓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 논 문 면, 2010년 9/12월 파견업 규제 완화 조치는 예상과 달리 파견노동의 감소를 가져왔는데, 이는 경제위기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임시직과 마 찬가지로 파견노동의 경우도 신규채용을 통한 고용증대 현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표 5> 주요 사회적 규제 변화와 정책 효과

파견노동 규모 변화 변화 시점 규제 내용 예상 효과 실제 결과

<법개정>

1994. 6 합법화 증가 대폭 증가

1999. 7 계약종료수당 도입/ 동등처우/ 파견업체 훈련 책임 감소 소폭 감소

2006. 12 불법파견 판정 기준 도입 감소 증가 추세 유지

2010. 9/12 파견대상 확대/파견업체 지원 정책 증가 소폭 감소

<단체협약>

2000. 12(3차)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50% 감소 대폭 감소

2007. 12(5차)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65% 감소 대폭 감소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57 (2)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 효과 파견업의 법적 규제 변화와는 대조적으로, 단체협약을 통한 정규직 의 무고용비율제의 도입 및 강화는 파견노동 사용에 대해 유의미한 규제 효과를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12월에 체결된 제3차 단체협 약은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제도를 처음 도입하며 그 비율을 50%로 설 정했는데, 이듬해 파견노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수는 각각 4.73%와 21.85% 하락했다. 한편 2007년 12월 체결된 제5차 단체협약에서 정규 직 의무고용비율은 50%에서 65%로 상향조정되었는데, 이듬해 파견노 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수는 각각 33.02%와 29.99% 하락했다. 이처 럼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제도의 도입과 의무고용비율 상향조정 직후 파견노동 규모가 크게 감축된 것은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제도의 파견 노동자 사용 인센티브 억제 효과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2008년 파견노동 규모 하락에 대해서는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의 상 향조정 이외의 다른 외적 요인들이 작동한 결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그것은 2006년 말 임시직의 정규직 전환 적극지원 정책이 도입되었고 2007년 말 경제위기의 타격으로 임시직 노동 중심 인력감축이 대대적 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파견노동 규모가 하락하게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8) 이러한 외적 요인들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파견노동 자 규모 변화와 임시직 노동자 규모 변화 추이를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다. 2000∼2001년의 변화를 보면, 임시직 노동자 규모가 4.63% 증가한 반면 파견노동자 규모는 4.73% 감소하여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제도 도 입으로 인한 파견노동자 규모 감축 효과가 5∼9% 정도에 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2007∼2008년의 변화를 보면, 임시직 노동자 규 모는 12.7% 감소하여 정규직 전환 지원 정책과 경제위기 하 임시직 중 심 인력감축 효과를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같은 기간 파견노동자 규모

358 동향과 전망 87호 는 33.02%나 감소하여 임시직 규모 감소 정도에 비해 20.32% 포인트나 더 큰 폭으로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파견노동자 감소 비율과 임 시직 감소 비율의 차이는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의 상향조정 결과로 해 석할 수 있다. 이처럼 1994년 파견업 합법화 이후 파견노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 수가 꾸준한 증가추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2001년과 2008년 상대적으 로 큰 폭의 하락을 기록한 것은 어느 다른 규제 장치보다 정규직 의무고 용비율 제도의 파견노동 규제 효과가 월등히 강력하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일 반 논 문 (3) 파견노동과 임시직의 대체재 관계 파견노동은 파견업체에 의해 정규직으로 고용되기도 하지만 사용업체 의 입장에서는 한시적으로 사용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해당된다. 따라서 파견노동은 직접고용 임시직 및 비파견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여타의 임시직 고용 유형들과 대체재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특히 1999년 7월 파견법 개정으로 파견노동과 임시직이 동일한 사용사 유 제한 원칙을 적용받게 되면서 대체재 성격은 더욱 강화되었다. 파견노동의 사용사유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두 가지 사유는 일시 적 인력 수요와 특정 과제·서비스인데, 파견계약 건수의 변화 추세를 보면 정책효과에 따른 파견노동 규모 감축은 주로 일시적 인력수요 사 유에 따른 파견노동 사용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0∼ 2001년 기간과 2007∼2008년 기간, 특정 직무·서비스 사유의 파견계 약 건수가 각각 15.86%와 25.58%씩 감소한 반면, 일시적 인력수요 사 유의 파견계약 건수는 각각 29.06%와 34.07%씩 감소하여 감소폭이 훨 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일시적 인력수요 사유의 파견계약 건수가 급격하게 감소한 탓으로 2001년과 2008년에는 특정 직무·서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59 비스 사유의 파견계약 건수의 상대적 비중이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오 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직무·서비스 사유에 비해 일시적 인력 수요 사유는 덜 불요불급한 사용 사유로서 임시직과의 대체재 성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4) 파견노동 사용의 부정적 인센티브 대체재 관계에 있는 임시직 비율이 30% 정도에 달하는 반면 파견노동 비율은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처럼 파견노동 비율이 낮은 것은 임 시직과 여타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파견노동 사용에 대한 규제장 치가 잘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파견노동은 직접고용 노동자들과의 동등처우 보장 등 노동법에 의 한 보호에 더하여 직접고용 임시직이나 여타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비 해 파견업법과 파견업 단체협약에 의한 추가적 규제장치들의 보호를 받는다. 파견노동에 대한 현재의 법적 규제체제는 1999년 파견업법 개 정으로 기본 골격이 확립되었으며, 이때 도입된 사용업체 직접고용 노 동자들과의 동등처우, 파견업체의 교육훈련 책임, 근무년당 12일 임금 분의 계약종료수당 지급 제도들은 파견업 합법화 이후의 파견노동 급 팽창 추세를 제어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에 더하여 파견업 단체협약 에 의한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제도는 파견노동 사용이 인건비 절감 효 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파견업체와 사용업체에 고용안정 성 부담까지 안겨주게 되었다. 대체재 관계에 있는 파견노동과 임시직 사용 변화 양상은 서로 상 반된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파견노동 사용에 대한 효율적 규제는 파견 노동 사용을 억제하는 동시에 임시직 규모 감축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De la Calle, et al., 2008: 44∼47).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으로 지목되는 부정적 효과는 법적 보호와 단체협약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

360 동향과 전망 87호 는 새로운 변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유형을 확산하는 풍선효과다. 파 견업법과 파견업 단체협약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empresas integrales de servicios’ 혹은 ‘empresas multiservicios’라 불리는 종합서비스업체 들이 등장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들은 노무제공자들을 임시직으로 고용하여 사용업체에 한시적 노무 서비스를 제공한다.9) 동 업체들은 합법-비합법 영역을 넘나들며 직업소개업과 파견·용역업 을 겸업하는 가운데, 노무제공자들은 주로 중소영세 사업장들에 의해 사용되며 용역노동과 호출노동의 성격이 혼합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 로서 직접고용 임시직이나 파견노동에 비해 노동조건이 훨씬 더 열악 일 반 하며 그 규모가 확대일로에 있지만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논 문 있다.

2) 맺음말 (1) 간접고용 사용의 사회적 규제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는 노동법과 파견업법에 의한 법적 규제와 파견업 단체협약에 의한 규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 로 파견노동을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규제가 의도한 바는 파견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사용업체의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들 도 함께 보호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사용업체와 파견업체에 대한 규제 장치들을 구비하고 있다. 사용업체에 대해서는 파견노동자 사용에 있어 임시직과 동일한 사 용사유 규정을 적용하는 한편 파업노동자 대체 금지와 인력조정 후 1년 간 휴지기간 설정 등 사용 금지 사유들도 부과하고, 파견노동 계약 체 결 후 열흘 이내에 노동조합에 통보하도록 함으로써 정규직 노동자들 의 고용안정성을 담보하고자 한다. 또한 파견노동자들에게 파견기간 동안 임금 등 노동조건 및 교통수단과 식당 등 각종 편의·복지 서비스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61 이용에 있어 사용업체의 직접고용 노동자들과 동등한 처우를 받고, 사 용업체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조건 관련 요구사항을 제시할 권리를 부 여하고 있다. 파견업체에 대해서는 행정당국의 허가를 받아 설립한 다음 3년간 매년 허가를 갱신하고, 파견노동자에게 필요한 교육훈련을 제공하며 교 육훈련을 위한 소정비율로 기금을 별도로 조성하고, 고용계약이 종료될 때 근속년당 12일 임금분씩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규제에 더하여 파견업 단체협약은 파견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파견업체의 파견노동자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를 도입하고 있다.

(2) 파견노동 규제 효과와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 대체재 관계에 있는 임시직에 비해 파견노동의 비율이 월등히 낮은 것 은 파견업 규제체제가 파견업을 규제하고 파견노동을 보호하는 데 효 율적임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분명한 정책효과를 보인 것은 파 견업체의 파견노동자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였다. 의무고용비율은 2000년 12월 체결된 제3차 단체협약에 의한 도입 당시 50%였으나 2007년 12월 체결된 제5차 단체협약에서 65%로 상향 조정되었다. 파견업 합법화 이후 파견노동자 규모와 파견계약 건수가 가장 크게 감소한 2001년과 2008년이 제3차 단체협약과 제5차 단체협 약이 체결된 이듬해였다는 점은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가 파견노동자 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며 파견노동 사용을 규제하는데 큰 효과를 지 니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이 높아지면 파 견업체의 대기기간 재정부담이 커지고 사용업체의 파견노동 사용 비용 이 인상되기 때문에 파견노동을 통해 파견업체와 사용업체가 얻을 수 있는 편익은 최소화된다. 이러한 파견노동 인센티브 억제 효과를 중시하여 Comfia와 FeS는

362 동향과 전망 87호 제6차 단체협약 교섭에서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을 현행 65%에서 80% 로 상향조정할 것을 요구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사측의 비타협 적 입장을 고려하면 합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3) 노동과 자본의 전략 노동측이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고 파견노동자의 고용 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파견노동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강화를 추진하는 반면, 자본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탈규제를 추진한다. 이를 위한 자본의 전략은 제6차 단체교섭 과정에서 잘 나타 일 반 나고 있다. 자본은 파견노동 사용 관련 탈규제를 진전시키는 한편 파견 논 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저지하는 목표를 실 현하기 위해 단체교섭 과정의 지연과 파행을 통해 단체협약 유효기간 만료 후 경과시간의 장기화를 통해 노동 측에 무단협 압박을 가하는 전 략을 취했다. 이러한 전략이 주효하여 무단협 위기 속에서 노동 측 요 구조건은 후퇴했다. 한편, 자본이 법적 규제는 물론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규제를 수용 했다는 점은 제6차 단체협약 교섭과정에서 보인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자본은 제6차 단체교섭 이전부터 노동시장 유연화와 탈규제 추진을 전 략적 목표로 견지해 왔지만,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를 수용한 것은 파 견노동자의 교섭력이 아니라 CCOO와 UGT의 교섭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CCOO와 UGT뿐만 아니라 산하조직들인 Comfia와 FeS는 노 동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평가와 대안 제시 및 총파업투쟁을 공동으로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공동요구안을 작성하며 공 동보조를 취함으로써 노동 측의 교섭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한편,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는 여타 규제장치들과 마찬가지로 파견업의 수 익률을 억압하여 중소영세 파견업체의 난립을 방지함으로써 파견업의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63 독과점 상황을 보강하는 효과도 수반한다. 이처럼 사측 교섭대표의 절 반을 점하는 AGETT 소속 대형파견업체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는 점도 자본의 양보를 받아내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4) 한국사회에 대한 실천적 함의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 규제 방식은 우리 사회에 대해 몇 가지 실천적 함의를 지닌다. 스페인은 파견노동 사용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는 점에서 규제장치들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파견업체의 정규 직 의무고용비율제는 가장 분명한 규제효과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 선적으로 도입되어야 하며, 스웨덴처럼 파견업체가 모든 노무제공자들 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조돈문, 2012c)도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한편 파견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유형의 비정규직 노동 자들에 대해 제공되는 고용계약종료 수당제는 프랑스의 총임금 10%에 해당되는 고용불안정수당제(조임영, 2012)처럼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정성을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동시에 사용업체의 사용 편익에 대해 제 재를 가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규제장치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파견업체에 파견노동 사용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에 통보해야 하는 의 무를 부과하고, 파견노동자에게 사용업체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조건 관련 요구들을 제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파견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용업체 직접고용 노동자를 보호하는 한편 노동조합의 개입 력을 높여 생산현장에서 간접고용의 오·남용을 저지하는 데 유용한 장치다. 또한, 스페인 노동조합들이 요구하듯이 영리 파견업체 대신 공공 고용서비스 기구들에 의한 노동중개 및 교육훈련 서비스 제공 역할을 강화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 적절한 기술·기능을 매개로 구인 업체와 구직 노동자의 효과적 짝짓기(matching)를 이룸으

364 동향과 전망 87호 로써 불필요한 시행착오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사 용 인센티브를 최소화할 수 있다.

2012. 12. 04 접수/ 2012. 12. 21 심사/ 2012. 12. 31 채택

일 반 논 문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65 주석

1) 스페인의 비정규직 현황과 정책 대안 및 관련 연구들에 대해서는 조돈문 (2012a)을 참조할 것.

2) 간접고용 관련 연구는 Álvarez, et al(2011), Calvo, et al(2010), De la Calle, et al(2008), De Miguel(2011), Giménez(2008), Toharia & Malo (2000), Yagüe(2012) 등을 참조할 것.

3) 파견업법 제정을 통한 파견업 합법화와 이후 법개정 과정 및 내용에 대해서는 Toharia & Malo(2000), De Miguel(2011), Calvo, et al(2010), Yagüe (2012), CCOO(2010a), CCOO-UGT(2010a)를 참조할 것.

4) 노무제공자가 파견업체에 의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않고 기간제로 고용될 경우, 통상 사용업체의 파견기간은 파견업체의 고용기간과 일 치한다(Âlvarez & Moro, 2011: 16). 또한 사용업체가 파견노동자를 파견계 약 기간을 초과하여 사용할 경우 해당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 다(파견업법 제7조).

5) 파견업 단체협약의 체결 과정과 내용 변천에 대해서는 Pérez(2003), Villarejo (2008), BOE(2000, 2008)를 참조할 것.

6) 노측의 일관된 입장에 대해서는 FeS(2011d, 2011f)와 Comfia(2012a)를 참조 할 것.

7) 개정 법령은 CCOO와 UGT의 3월 29일 공동 총파업 투쟁에도 불구하고 단협 유효기간 규정 개정을 포함하여 2012년 7월 6일 입법화(Ley 3/2012)되었다. 이렇게 개정된 노동법 제86조의 3은 단체협약이 유효기간 만료 2년 후가 아니 라 1년 후 효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개정 법령을 수정하여 명문화함으로써 개정 법령보다 더 개악된 내용이었다(Cuatrecasas, 2012: 96∼98).

8) 스페인은 건설업, 관광산업, 유통업 등 경기변동에 취약한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어 여타 서구 국가들에 비해 세계경제위기의 타격을 크게 입었으며, 인력조정 은 주로 임시직 감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조돈문, 2012a). 임시직은 건설업 부문에서 가장 급격하게 감축된 반면, 파견노동은 건설업의 비중이 낮아서 주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감축되었으며 서비스업은 다소 완만한 감축추세를

366 동향과 전망 87호 보여주었다.

9) Alós 면담(2012), Lamas, et al.(2006), Pastor(2010)을 참조할 것.

일 반 논 문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67 참고문헌

조돈문(2012a). 스페인 비정규직 정책의 내용 및 성과 분석.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 략적 선택󰡕. 서울: 매일노동뉴스, 272∼310. 조돈문(2012b). 스페인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행위주체들의 전략. 󰡔비정규직 주체 형성과 전략적 선택󰡕. 서울: 매일노동뉴스, 311∼356. 조돈문(2012c). 스웨덴의 간접고용 사회적 규제와 “관리된 유연성”: 파견업 단체협약 을 중심으로. 󰡔산업노동연구󰡕, 18권 2호. 조임영(2012). 프랑스의 노동력 공급에 대한 규율.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간접고용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235∼255.

Alós-Moner, R.(2012). Centro de Estudios sobre la Vida Cotidiana y el Trabajo (QUIT) de la Universidad Autónoma de Barcelona, (Interview). 2012.10.24/11.25. Álvarez-Rodrigo, M. & Moro-Polo J. M.(2011).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https://docs.google.com/viewer?a=v&q=cache:SnHk2cTJsGkJ:wilfred osanguineti.files.wordpress.com/ BOE(2000). III Convenio Colectivo Estatal De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270, 2000.11.10. BOE(2008). V Convenio Colectivo Estatal de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Boletín Oficial del Estado, 34, 2008.2.8. BOE(2011). Boletín Oficial del Estado. 283(2011.11.24). Sec. III. 125302∼ 125318. CCOO(2010a). La Reforma Laboral es Regresiva y Socialmente Injusta. Gaceta Sindical, edición especial, 23, Julio 2010. CCOO(2010b). La Reforma Laboral es Regresiva y Socialmente Injusta. Gaceta Sindical, edición especial, 23, Julio 2010. CCOO(2010c). Razones para la Huelga. Gaceta Sindical, edición especial, 23, Julio 2010. CCOO-UGT(2010a). Valoración de la Ley 35/2010, de 17 de septiembre, de medidas urgentes para la reforma del mercado de trabajo. CCOO & UGT, 2010.9.21.

368 동향과 전망 87호 CCOO-UGT(2010b). Proposición de Ley de Iniciativa Legislativa Popular: Empleo Estable y con Derechos. CCOO & UGT, 2010.11.30. CCP(2007). Ley 43/2006, de 29 diciembre, para la mejora del crecimiento y del empleo. BOE de 30-12-06. Confederación de Cuadros y Profesionales. http://www.confcuadros.com/files/LEY%2043.pdf. Calvo-Gallego, F. J. & Royo M. C.(2010). Nuevas normas en materia de intermediación y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Temas laborales: Revista andaluza de trabajo y bienestar social, 107, 303∼335 Comfia(2011a). ETT: Acordada la actualización salarial de 2010. Comfia/CCOO, 2011.3.24. Comfia(2011b). Constituida la mesa de negociación del VI Convenio de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ETT. Comfia/CCOO, 2011.4.20. 일 Comfia(2011c). Ya no hay excusas: Publicacion en el BOE de la actualizacion 반 논 de tablas y atrasos del sector de ETT. Comfia/CCOO, 2011.5.24. 문 Comfia(2011d). La negociación del VI Convenio de ETT acude al arbitraje. Comfia/CCOO, 2011.7.18. Comfia(2012a). Convenio de ETT, propuesta sobre tiempo de trabajo. Comfia/CCOO, 2012.1.23. Comfia(2012b). ETT: Una apuesta por el Convenio Sectorial. Comfia/CCOO, 2012.3.8. Comfia(2012c). Comunicado conjunto CCOO-UGT: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Las patronales demuestran su verdadera cara con el personal. Comfia/CCOO, 2012.9.14. Comfia(2012d). ETT: exigimos a las patronales una apuesta clara por el convenio sectorial. Comfia/CCOO, 2012.10.25. Comfia-FeS(2012). Propuesta de redaccion definitiva del convenio. Comfia-FeS, 2012.11.26. Cuatrecasas, G. P.(2012). Modificaciones de la Ley 3/2012, de 6 de julio, de medidas urgentes para la reforma del mercado laboral. Cinco Dias. Julio de 2012. De la Calle Durán, María del Carmen, Marta Ortiz de Urbina Criado & Torre M. R.(2008). La gestión de la temporalidadel papel de las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Boletín económico de ICE, Información Comercial Española, 2942, 39∼52. De Miguel, P. S.(2011). Government endorses new measures to encourage growth and reduce deficit. EIRO, 2011.3.2.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69 Fes(2011a). Negociación VI Convenio Colectivo Estatal de ETT's. Fes/UGT, 2011.2.21. FeS(2011b). Constituida la Mesa Negociadora del VI Convenio Estatal de ETTs. Fes/UGT, 18 Abril 2011. FeS(2011c). .Plataforma de Negociación para el sector de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Fes/UGT, 17 Junio 2011. FeS(2011d). Continua bloqueada la constitución de la Mesa Negociadora del Convenio de ETTs. Fes/UGT, 27 Junio 2011. FeS(2011e). Principio de desbloqueo de la constitución de la Mesa Negociadora del Convenio de ETTs. Fes/UGT, 18 Julio 2011. FeS(2011f). Patronales de ETT's con nulo espíritu negociador. Fes/UGT, 7 Diciembre 2011. FeS(2012a). Propuestas de tiempo de trabajo: no a todo. Fes/UGT, 23 Enero 2012. FeS(2012b). Fes/UGT apuesta por el Convenio Sectorial de ETTs. ¿Las patronales también?. Fes/UGT, 15 Marzo 2012. FeS(2012c). Mal inicio de negociación en el Convenio Colectivo. Fes/UGT, 24 Abril 2012. FeS(2012d). Las patronales muestran su verdadera cara con su personal. Fes/UGT, 13 Septiembre 2012. FeS(2012e). Convenio de ETTs: ¡Avancemos!. Fes/UGT, 3 Octubre 2012. FeS(2012f). Negociación del VI Convenio Estatal: No a casi todo. Fes/UGT, 27 Noviembre 2012. Giménez, D. T.(2008). Reparto de obligaciones entre las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y sus clientes. Gestión práctica de riesgos laborales: Integración y desarrollo de la gestión de la prevención, 52, 48∼55. Lamas, J. R., Ángel Luis de Val Tena & J. Jesús de Val Arnal(2006). La negociación colectiva en el sector de empresas multiservicios. Madrid: Ministerio de Trabajo y Asuntos Sociales. Pastor, J. C.(2010). Las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tras la aprobación del Real Decreto-Ley 10/2010. Conchi Obispo, 2010.9.18. Pérez-Pérez, M.(2003). Contingent employment in Spain. Bergström, Ola & Donald Storrie. (eds.). Contingent Employment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Cheltenham, UK: Edward Elgar, 107∼135. Toharia-Cortés, L. & Ocaña M. A. M.(2000). The Spanish Experiment: Pros

370 동향과 전망 87호 and Cons of the Flexibility at the Margin. G. Esping-Andersen & M. Regini. eds. Why Deregulate Labor Market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307∼336. Villarejo, E.(2008). Spain: Temporary agency work and collective bargaining in the EU. European Industrial Relations Observatory, 19, December, 2008. Yagüe, P. M.(2012). Contratación administrativa y empresas de trabajo temporal. Revista General de Derecho del Trabajo y de la Seguridad Social, 28.

일 반 논 문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71 초록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파견노동의 규제 방식 및 효과를 중심으로

조돈문

스페인은 임시직 비율이 30% 수준으로서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높은 국가들 가 운데 하나인데 파견노동 비율은 1%에도 못 미친다. 비정규직 연구는 주로 임시 직 문제에 집중된 반면 파견노동에 대한 연구는 거의 수행되지 않았다. 스페인은 왜 파견노동 비율이 그렇게 낮은지, 파견노동 사용을 어떻게 규제하는지, 어떤 정책 수단들이 효과적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다.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는 법적 규제와 단체협약에 의한 규 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파견노동을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규제장 치들은 파견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 보호하고 있다. 사용업체에 대해서는 파견노동자 사용에 있어 임시직과 동일한 사용사유 제한 에 더하여 사용 금지 사유들도 부과하고 있고, 파견노동자는 직접고용 노동자들 과 동등한 처우를 받으며, 사용업체 노동조합을 통해서 노동조건 관련 요구조건 들을 제시할 권리도 부여받고 있다. 한편, 파견업체에 대해서는 행정당국의 허가 를 받아 설립하고, 파견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교육훈련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고 용계약이 종료될 때 근속년당 12일분씩 보상하도록 한다. 이러한 법적규제들에 더하여, 파견업 단체협약은 파견업체에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을 부과하고 있다.

372 동향과 전망 87호 파견노동자 비율이 임시직 비율에 비해 월등히 낮은 것은 파견노동 사용에 대한 규제장치들의 효과인 것으로 해석된다. 파견노동자의 동등처우, 파견업체의 교 육훈련 책임, 근무년당 12일 분씩의 계약종료수당 지급 제도 등으로 확립된 법적 규제체제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단체협약에 규정된 파견노동자의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다. 파견업 합법 화 이후 파견노동자 규모가 가장 크게 감소한 것은 2001년과 2008년인데, 2000 년 말 파견노동자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가 도입되었고, 2007년 말 동 비율이 50%에서 65%로 상향조정되었다는 점은 동 제도의 정책효과를 확인해 준다. 자본은 현재 진행 중인 제6차 단체협약 교섭과정에서 교섭의 지연과 파행을 통 일 해 노동 측에 무단협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동시장 반 논 유연화와 탈규제를 관철하기 위한 자본의 전형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 문 에서 자본이 정규직 의무고용비율제를 수용한 것은 양대노총의 적극적 연대활 동으로 극대화된 교섭력의 압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의무고용비율제 를 포함한 사회적 규제장치들이 파견업의 수익률을 억압하여 중소영세 파견업 체의 난립을 방지함으로써 독과점적 상황을 보강하는 효과가 사측 교섭단을 주 도하는 대형 파견업체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한 것도 또 다른 요인이라 지적될 수 있다.

주제어 ∙ 간접고용, 파견노동, 정규직, 비정규직, 임시직. 사용업체, 파견업체, 단 체협약, 정규직 의무고용비율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73 Abstract

Social Regulations on Indirect Employment in Spain

With a Special Reference to The Regulations and Their Effects Regarding Temporary Agency Work

Don Moon Cho

The proportion of temporary employment is 30% in Spain, the highest level within the European Union, but the proportion of temporary agency worker is less than 1%. Academic analyses of non-regular workers are concentrated on the question of temporary employment, while the temporary agency workers have been under-studied.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explain why the proportion of temporary workers is so low, how the temporary agency industry is regulated, and which policy measures are more effective than others. Social regulations on indirect employment in Spain are composed of legal regulations and collective agreements, mainly focused on temporary agency workers. These regulatory measures are designed to protect regular workers as well as temporary agency workers. In order to use temporary agency workers, the client firms should be equip- ped with the same reasons applicable to the usage of temporary workers, while temporary agency workers are entitled to receive equal treatment with directly employed workers and present their own demands through the la- bor union in the client firm. The staffing agency firm, on the other hand, is required to apply for a legal permission to run agency business, to provide dispatched workers with appropriate training free of charge, and to pay sev- erance payment with 12 days’ wage share per each seniority year. In addition

374 동향과 전망 87호 to these legal regulations, the collective agreements in the temporary agency industry impose a compulsory rate of permanent employment to the staffing agency firm. The far low proportion of temporary agency worker is attributable to the op- eration of effective regulatory measures. The regulatory regime built up with such measures as the equal treatment of agency workers, the responsibility of agency firm for education and training of agency workers, the severance payment at the time of contract termination take effects. The most effective of all is the compulsory rate of permanent employment. The size of tempo- rary agency workers fell dramatically in 2001 and 2008 right after the com- pulsory rate was introduced at the end of 2000 and was raised from 50% to 65% at the end of 2007, which confirms the effectiveness of the compulsory rate policy. 일 The staffing agencies keep pressuring labor unions by means of the no-con- 반 논 tract threat in the ongoing bargaining process for the 6the collective agree- 문 ment, which represents a typical capitalist strategy for the flexibilization and deregulation in the labor market. It was owing to the bargaining power of the two major union confederations in the staffing industry that the agency firms yield to the union demand for the compulsory rate of permanent employment. Besides, the fact that the effective regulatory regime tends to reinforce the oligopolistic market situation of the staffing industry could serve the material interests of big agency firms whose representatives used to lead the bargaining team for staffing agency firms in the collective bar- gaining process.

Key words ∙ indirectly employed worker, temporary agency worker, regular worker, non-regular worker, temporary worker, client firm, staffing agency, collective agreement, the compulsory proportion of permanent employment

스페인의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375 회원 안내

회원가입을 신청하실 때는 연구소로 전화나 팩스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입을 신청하시면 곧바로 지로용지를 보내드립니다.

구분 혜택 가입 자격 연감, 계간지, 연구소 발간물, 자료실 특별회원 1년:10만 원 이상 이용 계간 󰡔동향과 전망󰡕, 각종 행사 참여, 󰡔동향과 전망󰡕회원 1년:7만 5천 원 자료실 이용

은행계좌

국민 781-25-0007-957 우리 530-321015-01-001 조흥 332-03-006872 예금주:(사)한국사회과학연구회

한국사회과학연구회

(449-515)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 832 금호베스트빌 255-901 (사)한국사회과학연구회 전화 02) 502-5334 홈페이지 http://kssi.jinbo.net

376 동향과 전망 87호 󰡔 동향과 전망󰡕투고요령

논문 제출 방법 1. 󰡔동향과 전망󰡕은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로, 3인의 논문심사 위원의 심사 를 거쳐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논문은 다른 학술지에 출판되지 않은 원고로 한정해 수시로 편집위원장(표지 안쪽 참조)에게 제출한다. 논문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120매까지이며 그 이상의 원고에 대해서는 추가 게재료 를 부담하되 150매를 넘지 않도록 한다.

2. 논문과 함께 (1)저자 성명(국문, 영문). (2)논문제목(국문, 영문). (3)주제어 (3개 이상, 국문, 영문). (4)국문초록(500∼600자). (5)영문초록(100∼200 단어). (6)소속기관, 현직, 연락처, 전자우편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표지에 기재하여 제출한다.

논문 작성 방법 1. 서지 사항 및 초록

(1) 논문 제목, 필자 이름, 소속, 현직의 순으로 중앙정렬 방식으로 배치한다. 부제를 달 경우, 본제목과 부제목 사이에 콜론(:)을 넣는다.

(2) 연구 지원기관이나 감사의 말은 논문 제목 옆에 *표를 하여 각주로 기재한 다. 저자의 이메일 주소는 저자 이름 옆에 **표를 하여 각주로 처리한다.

(3) 국문, 영문 초록은 단락 구분 없이 작성한다. 초록은 제목 아래에 성명, 소 속과 직책을 함께 표기하고[예: Kil-Dong Hong(Professor, Hankook University)] 초록 내용 뒤에 주제어(Keyword)를 3개 이상 제시한다.

󰡔동향과 전망󰡕투고요령 377 2. 본문

(1) 본문 제목들의 번호는 상위제목부터 하위제목까지 다음의 용례를 따른다. 예) 1.→1) →(1)→①→가.

(2) 한자나 외국어(용어, 고유명사)를 쓸 경우, 먼저 한글로 적고 괄호 안에 한 자나 외국어를 병기한다. 본문에 한 번 사용한 외국어를 다시 쓸 때에는 한 글로만 표기한다.

(3) 각주는 본문 내용에 대한 부연이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 며, 인용이나 참고한 문헌의 출처는 각주로써 밝히지 않는다.

(4) 인용이나 참고한 문헌의 출처는 본문의 괄호 속에 저자의 이름과 출판연도, 쪽 번호만 밝힌다. 인용 또는 참고한 문헌이 되풀이될 때에도 같은 방식으 로 한다. 예) 윌리암스와 몰리는 “문화는 정치”라고 주장했다(Williams & Morley, 1990, 7∼8).

(5) 표와 그림은 < > 속에 별도의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표와 그림 위에 제목 을 붙인다. 표 제목은 해당 표의 위에, 그림 제목은 해당 그림의 밑에 위치시 킨다. 관련된 표와 그림을 본문에서 언급할 때도 < >를 붙인다. 예) <표 1> 국내 컴퓨터 보급현황

(6) 표·그림의 출처는 표·그림 밑에 참고문헌의 용례를 따라 적는다. 표·그림 에 대한 주는 일반주(주:). 개별주(a). b). c). 확률주(*p<.01, **p<.001). 출처 순으로 배열한다.

3. 참고문헌

(1) 참고문헌은 본문 다음에 ‘참고문헌’이라는 제목 아래 나열하되, 본문에서 인용하거나 언급한 문헌만을 제시한다.

(2) 한글문헌, 동양어 문헌(일본어, 중국어). 서양문헌 순으로 배열하되, 번역 서(예컨대, 한글로 번역된 영문서)는 해당 원어 문헌으로 분류한다. 한글·

378 동향과 전망 87호 한자·일본어로 된 저자명은 한자의 한글식 표기에 따라 가나다 순으로, 서 양 문헌 저자명은 알파벳 순으로 나열한다. 같은 저자의 문헌은 출판연도가 오래된 순서대로 배열하되, 같은 연도의 것이 두 편 이상일 때에는 연도 다 음에 a, b, c, … 등을 넣어 구별한다.

(3) 저자가 1∼5명인 문헌은 이름을 모두 밝히고, 저자가 6인 이상일 때는 ○○ ○ 외, ○○○, et al. 로 표기한다. 저자가 없는 문헌은 문헌 제목을 저자 위 치에 두고 그 다음에 발간연도를 밝힌다.

(4) 특히 단행본의 연도는 문헌이 인쇄된 연도가 아니라 저작권 표시(ⓒ)된 연 도를 쓴다. 발간연도가 불분명한 문헌은 (n.d.)라고 쓴다.

(5) 단행본, 논문, 번역서, 기사의 경우 다음의 예를 따른다.

홍길동(1990). 󰡔한국언론학사󰡕. 서울: 새나라. 홍길동·이몽룡(1990). 홍길동전과 춘향전의 비교연구. 󰡔한국고전 문학연구󰡕, 34권 2호, 123∼148. Knapp, M., Ellis, D., & Williams, B.(1980). Reliability of content analysis: The case of nominal scaling coding. Public Opinion Quarterly, 51(3), 79∼91. Seidman, S.(1998). Contested knowledge: Social theory in the post- modern era(2nd ed.). 박창호 역(1999). 󰡔지식논쟁: 포스트모던 시대 의 사회이론󰡕. 서울: 문예출판사. 홍길동(1990. 6. 28). 관료부패는 고질병인가. 󰡔한국일보󰡕, 5.

(6) 인터넷 자료를 참고한 경우, 실제 참고 자료의 이름과 주소를 모두 표기한 다. 맨 끝에 마침표는 찍지 않는다. Author(date). Title of article. Name of Periodical, 호수, Available: 웹 사 이트 주소

󰡔동향과 전망󰡕투고요령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