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Beginning of the Formation of Japanese School of Finsler Geometry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 형성의 시작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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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for History of Mathematics http://dx.doi.org/10.14477/jhm.2021.34.2.055 Vol. 34 No. 2 (Apr. 2021), 55–74 On the beginning of the formation of Japanese School of Finsler Geometry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 형성의 시작에 관하여 Won Dae Yeon 원대연 Matsumoto Makoto is regarded as founding father of the Japanese school of Finsler geometry because he established the Japanese Society of Finsler Geometry in 1968 and organized the Symposium every year since then. In this paper, we investigate how Matsumoto initiated the study of this topic leaping over geographical limit and how Yano Kentaro and Kawaguchi Akitsugu had affected Matsumoto in the formation of the Japanese school of Finsler geometry. We also take a view of the role of É. Cartan who invented the concept of the connection in early 20th century in this regard. Keywords: K. Yano, A. Kawaguchi, M. Matsumoto, É. Cartan, connection, Finsler geometry; 야노 겐타로, 가와구치 아키쭈구, 마쭈모토 마코토, 엘리 카르탕, 접속, 핀슬러 기하학. MSC: 01A55, 01A60 ZDM: A30 1 서론 20세기 초반 기하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엘리 카르탕(Élie Cartan)을 집중 연구하 여 리만 기하학의 발전 역사를 조망한 김영욱과 Yuzi Jin의 [20]과 고전적인 구면 정리에 서 시작하여 최신의 구면정리로 발전하는 과정과 이에 관련된 미해결 문제에 대한 역사를 기술한 조민식의 [10]에 영향을 받아 저자는 핀슬러 기하학의 형성 과정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31]에서 리만의 취임강연 [25]부터 핀슬러의 박사학위 논문 [16]에 이르는 괴팅겐에서 핀슬러 기하학이 탄생하게된 계기를 연구하여 단순히 논문 지도교수와 학생과의 가계도를 통하여 학문의 대물림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의 참고문헌을 역 추적하는 방법으로 각 논문의 형성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 바를 고려하여 핀슬러 기하 학의 형성에 관여한 인물들의 학술적인 혈통을 파악하였다. Won Dae Yeon: Dept. of Math. of Duksung Women’s Univ. E-mail: [email protected] Received on Feb. 28, 2021, revised on Apr. 1, 2021, accepted on Apr. 2, 2021. 56 On the beginning of the formation of Japanese School of Finsler Geometry 저자가 [33]에서 단절기(hiatus)라고 명명한 핀슬러의 [16] 이후 1992년 천의 [9]까지는 핀슬러 기하학의 연구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격는 등의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매우 독특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헝가리의 데브레첸, 루마니아의 이아시 그리고 일본에서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핀슬러 기하학을 발전시켜 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저자는 [32]에서 베어왈트에서 시작된 헝가리 데브레첸 핀슬러 기하학파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였고,[33]에 서 이아시를 중심으로 한 루마니아 핀슬러 기하학파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여 레비-치비타, 힐버트, 카르탕 등이 이들 학파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밝혔다. 이 논문에서는 앞의 두 논문에서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단절기에 일본에서 어떻게 핀 슬러 기하학을 수용하게 되었는지를 외부자의 입장에서 밝혀본다. 수학 계보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도교수 중심의 형식적인 학맥 관계도를 만들어 보는 것도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의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이 작업은 이 학파에 속한 내부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자는 2021년까지 약 60년에 걸친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의 발전 과정을 다른 논문에서 다룬다.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의 전통은 마쭈모토 마코토(Matsumoto Makoto)에 의해 시작되 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마쭈모토는 1968년 일본 핀슬러 기하학회를 창립하고 연 례적인 핀슬러 기하학 학술토론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개인적인 소규모 세미나 그룹을 운 영하고 있었지만 그가 핀슬러 기하학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는 루마니아와 헝가리의 핀슬러 기하학파와 함께 삼각 체제 를 이루고 있는데 루마니아의 핀슬러 기하학파는 라두 미론(Radu Miron, 1927–현재), 헝 가리 핀슬러 기하학파는 오토 바르가(1927–62, Ottó Varga)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저자는 [33]과 [32]에서 루마니아와 헝가리의 핀슬러 기하학파의 탄생은 적어도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보였다.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가 마쭈모토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면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의 탄 생은 1960년대로 이보다 훨씬 후의 일이고 일본의 전통은 그들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이미 핀슬러 기하학 연구에 기반을 완성하였던 루마니아나 헝가리 학자들과의 교류로 얻은 산 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쭈모토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패전국의 멍에를 뒤 집어 쓰게 되는 시기에 대학 교육을 받은 세대이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해외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핀슬러 기하학을 접하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마쭈모토 이전에 일본에서 핀슬러 기하학을 연구하고 그에게 영향을 미친 학자들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에 마쭈모토 이전 세대인 수학자 중 그에게 핀슬러 기하학에 관해서 연구하도록 영향을 미쳤을 만한 기하학자를 찾아 이들이 쓴 논문들의 관계를 조사하여 이들의 역할을 고찰해 보게되었다. 어떤 학문이든지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학문적으로 학 Won Dae Yeon 57 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이다. 3.3절에서 상 술하듯이 마쭈모토의 교토 대학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였던 가니타니의 역할이 전혀 없 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니타니에게서 직접 핀슬러 기하에 대해서 배우거나 어떤 전통을 내려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본인의 주장처럼 이 분야에 관한 논문이나 책을 독학 하여 스스로 대가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마쭈모토에 한 세대 앞서는 야노와 가와구치가 여러 가지 면에서 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루마니아 핀슬러 기하학파와 헝가리 핀슬러 기하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학문적 가계도가 선형일 뿐 아니라 그 영향이 직접적이어서 논문의 내용이나 참고 문헌을 통하여 수학적 가계도가 명확하게 나타나지만 일본 학자들은 대체로 참고 문헌을 인용하는 데 인 색하여 수학적 가계도를 그려보려면 논문의 내용들을 다 확인해 보아야 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기 전에는 일본 학자들이 일본어로 논문을 쓰기도 하였고 프랑스어나 독일어로도 논문을 썼기 때문에 논문을 조사하여 결과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1969년 마쭈모토에 의해서 시작된 일본 핀슬러 기하학회의 학술토론회는 전세계적인 코 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학술토론회를 열지 못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었다. 2021년 1월에는 2020년 학술토론회를 갈음하여 Zoom을 이용한 비대면 학술토론회를 진 행하였는데 시간과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핀슬러 기학학자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국가의 학자들까지 다수 참가하여 핀슬러 기하학 연구가 더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50여년에 걸친 일본 핀슬러 기하학회의 학술토론회의 역사는 일본 핀슬러 기하학 발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 핀슬러 공간의 접속에 대한 연구 에서 시작하여 점차 고계 기하로 관심이 이동하였고 특별한 핀슬러 공간에 대한 연구로 발 전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학술토론회에 참가하거나 발표하였던 학자들의 면면을 보면 핀슬러 기하학이 지난 50여년 동안 어떻게 흘러 갔는지를 알 수 있다. 시작 초기에는 일본 핀슬러 기하학회의 학술토론회가 마쭈모토의 개인 스터디 그룹의 성격을 띄고 있었는데 점차 참가하는 일본 학자들의 수가 늘어 났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학회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렇지만 외국인 학자들은 주로 헝가리나 루마니아 핀슬러 기하학파와 관계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본 핀슬러 기하학회의 50여년의 역사는 핀슬러 기하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50여년의 세월만큼 자료도 방대하기 때문에 이에 관한 논문도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의 탄생에 관한 본 논문과 별도로 가치 있는 논문이 될 것이다. 미국수학회(American Mathematical Society)의 지원과 클레이 수학 연구소(Clay Math- ematics Institute)의 보조금으로 노스 다코타 주립대학(North Dakota State University) 에서 제공하는 수학 계보 프로젝트(Mathematics Genealogy Project) [35]를 이용하여 등장하는 인물들의 계보를 확인하였고 인물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 (Wikipedia) [38]과 맥튜터 수학사 기록 보관소(The MacTutor History of Mathemat- 58 On the beginning of the formation of Japanese School of Finsler Geometry ics Archive) [37]을 참조하였지만 일본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었다. 기본적인 논문의 연 관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논문은 미국수학회의 수학넷(MathSciNet)의 데이터 베이스 [36] 을 이용하여 찾았다. 논문을 인용할 때는 참고 문헌에 기록하고 번호로 인용하였지만 문장 중간에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제목만이 필요한 경우 거듭인용표 《 ·》를 사용하여 책을 인용하였다. 이 논문에서 지명과 인명 등은 가능하면 원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되 그 발음이 알려져 있지 않을 때는 영어 발음을 사용하였고 각주에서는 학위를 받은 대학과 학위 논문의 제목 등을 해당 원어로 표기하였다. 외국어로 된 이름이나 지명 등이 처음 나왔을 때 한 번만 괄 호 안에 관련된 모국어 표기를 덧붙였다. 일본 학자들의 이름은 영어 표기한 것도 익숙하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거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였다. 일본 지명도 영어나 일본어로 병기하되 한글로 표기할 때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되 위키백과 (Wikipedia)를 참조하였다.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동양 사람인 경우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성이 이름 앞에 오도록 하였다. 감사의 글 저자가 2018년과 2019년 여름 두 주씩 홋카이도를 방문한 것이 일본 핀슬러 기하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일본 핀슬러 기하학파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2020년에는 계획되어 있던 일본 방문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취소되어 본 논문과 관련된 추가 조사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논문이 매끄럽게 되도록 사소한 오류도 지적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좀 더 폭넓은 범위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라는 심사위원들의 조언이 이 논문을 더 읽기 편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본 연구는 덕성여자대학교 2020 년도 교내연구비 지원에 의해 수행되었다. 2 선행 연구 핀슬러 기하학은 미분기하학의 한 분야로 리만 기하학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지만 핀 슬러 (P. Finsler)가 카라테오도리 (C. Carathéodory) 의 지도 아래 1919년 괴팅겐 대학 의 졸업 논문 [16] 으로 《Curves and surfaces in general spaces (Über Kurven und Flächen in allgemeinen Räumen)》를 제출하기까지 미분기하학자들의 관심권에서 벋어 나 있던 분야이다. 사실 핀슬러 기하학의 역사는 리만 기하학의 역사만큼 오래 되었다. 리만 기하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854년 리만 (B. Riemann) 의 취임강연 (Habili- tationsvortrag) 의 제목은 《On the hypotheses which underlie geometry (Über die Hypothesen welche der Geometrie zu Grunde liegen)》이었는데 여기서 2차 형식 X 2 i j ds = gij(x)dx dx i;j Won Dae Yeon 59 로 정의되는 리만 계량과 이것에 의해 정의되는 리만 곡률을 소개하였다. 리만은 더 나아가 선소 (line element) ds로 4차 형식의 네제곱근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핀슬러 계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1). 리만은 계량이 양의 정부호인 것과 동차 성질을 갖는다는 사실만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리만은 더 나아가 핀슬러 계량이 기하 학적으로 리만 계량과 다를 바 없고 단지 계산의 복잡성만 더할 뿐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핀슬러 계량은 다루지 않는다고 하였다. [31]에서 저자는 리만에 의한 핀슬러 기하학의 탄생(1854년 리만의 취임강연)에서부터 핀슬러가 1919년 괴팅겐 대학 졸업 논문 [16]을 쓰기 전까지 기간을 동면기(hibernation) 라고 하였다. 테일러(J. Taylor)는 동면기에서 막 깨어난 시기에 핀슬러 기하학에 공헌한 미 분기하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핀슬러의 [16]에 영향을 받아 테일러는 1925년 당시 유행하고 있던 변분법2)을 이용하여 핀슬러 공간에서 정의되는 평행에 관한 논문 [28]을 미국수학회의 트란섹션스(Transections of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에 게재하였고 1927년 수학 연보(Annals of Mathematics Studies)에 게재한 [29]에서 핀슬러 계량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저자는 핀슬러의 [16] 이후 1992년 천(S. S. Chern)의 [9]로리만기하학분야의주류수 학자들에게 그 중요성이 알려지기까지를 단절기(hiatus)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