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Earthquake Charity Literature 아베 가즈시게 RIDE ON TIME 김훈아 옮김 WasedaBungaku 2012 RIDE ON TIME 오늘도 파도가 신통치 않다. 바람은 그저 차갑기만 할 뿐. 문 득 생각난 듯 타성처럼 일어서는 해산물집 포렴과 장대에 달아 놓은 깃발을 펄럭거리고 지나간다. 그리고 남는 건 기껏 바다 냄새와 모래 먼지의 잔상뿐이다. 오늘 것도 어제 것도 그리고 내일 것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특기할 사항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그런 파도들뿐. 그렇지만 실은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을 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우리가 이곳의 파도에 너무 익숙해져 자극이 엷어진 것 뿐이다. 오랫동안 이 해변에 눌러앉아 허구한 날 게팅 아웃⁽¹⁾ 을 하 는 동안, 이곳 특유의 풍랑에 완전히 익숙해져버린 우리는, 어 지간한 변화에는 놀라지 않게 된 것이다. 사치스럽게도 별이 달린 음식을 일상적으로 먹으면서 이런 게 아니라 더 나은 것, 하고 구름 위의 존재인 요리장에 욕설만 퍼붓고 있다. 기상청에다 화풀이하는 건 이미 지쳤기 때문에 굳이 시끄럽게 굴진 않는다. 둥지 속의 새끼들처럼 고개를 쳐들 고 그저 먹이를 받아먹고 있을 뿐. 먹이가 오기를 기다리다 이 따금 삑삑하고 울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자체가 지긋지긋한 지도 오래됐지만, 우리는 여전 히 이곳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오로지 그 파도가 다시 몰려 올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파도가 현실이었다는 것을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십 년 전을 마지막으로 아직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랜드 스웰(Grand Swell). (1) Getting out, 서퍼가 파도를 타고 라이딩을 시작하는 것 2 RIDE ON TIME 하늘을 뒤덮은 듯한 거대한 해룡의 날갯짓하던 모습을 떠올 리며, 우리는 그것이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한결같이 재도전의 기회를 노리는 베테랑이 있는가 하면, 파 도의 규모나 출현에도 반신반의인 루키도 있다. 어느 쪽이건 전 설과의 대치를 갈망하는 자들뿐이다. 이 북쪽해안에 자리를 잡고 변함없는 날들을 애써 즐기고 있는 서퍼들이란 나를 포함해 모두 그런 녀석들이다. 모두 자신의 이력은 잊어버렸지만, 아주 가끔은 자신을 객관 시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명소라도 오래 있다고 해서 좋은 것 이 아니다. 이윽고 다다르게 될 부식과 경직을 피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닷물에 절은 녹슨 머리카락에 색이 바랜 라글란 티셔츠와 어스 컬러로 염색한 화이트 데님, 그리고 고성능 편광 미러 선 글라스. 그것이 우리들의 원래 모습이다. 개중에는 돋보기를 놓지 못 하게 된 이도 있지만, 어느 한 세대에 치우쳐 있진 않다. 전체적 으로 그다지 신통치 않은 이들의 모임이지만, 그렇다고 늙다구 리 같은 녀석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너나없이 기다리는데 지쳐 모두 금방이라도 폭삭 무너질 것 같은 몰골이다. 나이가 어린 녀석들까지 각질처 럼 건조한 피부를 드러내고 종합비타민제를 우격우격 먹어대고 있다. 거듭되는 반복에 어떤 파도도 따분하다고 모두 한숨을 쉬지 만, 라이딩 자체에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러니저러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이 미 정복하고도 남은 방법으로 파도와 노는 것을 우리는 결코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그런 똑같은 상황에 묶여 있는 것에, 어느새 내심 안도조차 3 RIDE ON TIME 느끼기도 한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파도의 패턴조차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자부심까지 품고 있다. 그런 건 착각이라는 자각은 있으나, 새삼스럽게 태도를 바꿀 마음 같은 건 없이, 내일도 모레도 뻔한 것들뿐이라며 자만에 차 있다. 물론 그 상상을 초월한 그랜드 스웰을 맞는 것이 우리들의 최대 목표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솔직히 적당한 사이즈의 펀 웨이브에 이미 길들여 진 우리들이 그 괴물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다. ● 그러나 이번 주 금요일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금요일이 될 것이다. SNS 의 이메일. 오랫동안 기다리신 여러분 드디어 옵니다, 라는 통지다. 이번 주 금요일, 그 파도가 이 북쪽해안에 돌아오는 것은 틀 림없는 모양이다. 이번 건 제법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같다. 전설의 파도가 십 년 만에 온다고, 이름 난 서퍼들은 모두 곧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저 전해만 들어온 젊은 친구 들은 현실감 없는 얘기에 좀처럼 실감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정보수집에 여념이 없는지도 모른다. 또 지난번 참패를 맛 본 재도전자들은 양손에 전해지는 전율도 아랑곳 않고 보드의 왁 스칠에 온 정력을 쏟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파도 앞에서는 베테랑도 루키도 있을 수 없다. 어 떤 매뉴얼이나 테크닉도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4 RIDE ON TIME 몇몇 예상가들이 금요일의 발생 확률은 백 퍼센트에 가깝다 고 단언했다. 스마트폰의 파랑예보 어플도 이중으로 된 동그라미이고, 어 협 중진들도 같은 의견이다. 예측 정밀도가 더 없이 높고, 파도 평가에 엄격한 노감정사마저 레비아단⁽²⁾ 의 부활을 확실시하고 있다. 이 사실에 모두가 크게 흥분해 있다. 이런 파도는 십 년간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십 년 전의 라이딩에서는 모두가 처참하게 나가떨어졌었다. 나도 피크를 노리기는커녕 제대로 테이크 오프⁽³⁾ 조차 하지 못 하고 두터운 수프⁽⁴⁾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슈퍼 롱 라이드를 시도해 완전히 그 파도를 탄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 그러나 돌파할 수 있는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처음 찾은 서퍼가 주민들에게 처음 듣는 건 예전에 저 괴물에게 도전했다 목숨을 잃었다는 몇몇 선배들에 대한 이 야기다. 이른 봄철에 되살아나는 해룡은 사람을 집어삼키고 다시 몇 해 동안 종적을 감춘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똑같이 되풀이되어 온 참혹한 광경. 그 극명한 목격 증언을 이곳 사람들은 반드시 신참에게 들이대는 것이다. 들이대는 쪽이 극명할수록 그것은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진 다. 그 때 뇌리에 새겨진 것이 선명하면 할수록 선배의 죽음은 개죽음에서 멀어진다. (2) 성서에 나오는 바다 속 괴물 (3) take off, 파도의 속도에 맞춰 서프보드가 달리기 시작한 상태 (4) soup 물결이 인 후 기포가 섞여 하얗게 된 상태의 파도 5 RIDE ON TIME 왜냐하면 그 기억이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지면 공략의 단서 가 되어, 후진들의 희생을 절감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십 년 전의 라이딩에서 우리는 무참히 격침되었지만, 모두가 어떻게든 육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과거의 케이스를 하나하나 배워 온 덕이다. 즉 우리들은 대대로 전해오는 선배들의 경험 덕에 그 파도의 제압에 착실히 근접해가고 있다 할 수 있다. 어떤 매뉴얼이나 테크닉도 확실한 도움이 된다는 보증은 없 지만, 쌓아 온 역사가 지혜를 낳고 서서히 돌파구를 열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더욱 더 극복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다. 십 년간 잔잔했던 파도를 변명삼아 입들만 살아있는 얼간이 들로 전락하고 있지만, 그런 녀석들이라도 돌파구를 헤쳐 갈 지 극히 작은 힘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번 금요일에는 이 북쪽해안에 다시 그 파도가 덮쳐온다. 그 때 우리들은 여느 때처럼 드라이수트를 입고,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해변으로 나갈 것이다. 여느 때와 다른 것은 파도의 크기와 내 마음가짐뿐일지도 모 른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오십 미터 급의 초 그랜드 스웰로, 최악의 사태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결국은 모든 것이 여느 때와는 다르다. 여느 때와 전혀 다른 금요일을 맞이하기 위해, 우선은 스스 로의 컨디션을 조절해 둬야 한다. 컨디션을 조절하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여느 때와 전 혀 다른 금요일을 여느 때와 같은 금요일로 바꿀 수 있을지 모 른다. 6 RIDE ON TIME ● 이 북쪽해안 해변에는 지금 삼백여 명의 서퍼와 구경꾼들이 모여 있다. 그들 모두가 실체화된 전설을 직접 보고 있다. 대부분의 예상대로 라고는 하나, 십 년 만에 찾아온 파도의 엄청난 위력에 압도된 서퍼들과 예상가들, 감정사 모두가 한결 같이 망연자실해 있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푸른 바 다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수량과 장엄함마저 느끼게 하는 파도소리만이 일대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대로 모두가 괴물 같은 파도를 그저 지켜만 보다 하루를 보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침묵이 깨진 다. 보드를 안은 무리 속에서 한 명, 또 한 명이 튀어나와 과감하 게 바다로 튀어들어 패들링⁽⁵⁾ 을 시작한다. 그러나 해룡도 점점 본성을 드러내고 무모한 인간들을 맞아 치려고 날개를 펼치고 몰려들어 온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슈퍼 롱 라이드를 향해 물마루에서 활 강을 시도하지만, 안타깝게 모두 도중에 베일아웃⁽⁶⁾ 하고 만 다. 그래도 다시 무리 속에서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 게팅 아웃 의 연쇄가 끊이지 않는다. 이제 나도 저 거대한 파도의 정점에 서기 위해 바다로 나아 가려 한다. (5) paddling, 양손으로 물을 저어 보드를 전진시키는 것 (6) bailout, 긴급탈출 7 RIDE ON TIME 설령 다시 라이딩에 실패한다 한들, 그 모습이 삼백여 명이 나 되는 사람들 눈에 띈다면 어디선가 하나의 의미로 떠오를지 모른다. 하나의 의미가 어딘가에서 떠오른다면, 그것도 분명 돌파구 를 헤쳐 갈 힘의 일부로 거듭날 것이다. 그렇다면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금요일을, 여느 때와 똑같 은 금요일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믿고, 나는 이제 저 파도에 오르려 한다. 8 아베 가즈시게 1968년 야마가카현 출생. 일본영화학교 졸업. 1994년 《아메리카의 밤》으로 당시 일본 문학 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등이 뽑은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 이후 일본 문학계를 이끌어나갈 젊은 소설가로서 주 목을 받으며, 2004년 《신세미아》로 이토 세이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더블 수상, 2005년에는 《그랜 드 피날레》로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였 다. 2010년에는 최신작 《피스톨즈》로 다니자기 쥰이치로 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훈아 1963년 서울 출생. 한국의 성신여자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일본문 학을 연구하고, 센슈대학대학원에서 일본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 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재일 조선인 여성 문학론》이 있고, 일 본어 역서로는 한강《채식주의자》, 한국어 역서로는 쓰시마 유코 의 《웃는 늑대》등이 있으며, 신경숙과 쓰시마 유코의 《산이 있 는 집, 우물이 있는 집》를 양국언어로 번역하였다. Waseda Bungaku’s charity project: Japan Earthquake Charity Literature 여기에 한국어로 번역된 두 작품은, 2011년 3월 11일에 일어 난 동일본대지진 이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문예잡지 ≪와세다문 학≫의 WEB 사이트에 공개된 작품이다. 「RIDE ON TIME」은 1994년 데뷔 이후, 일본 현대문학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실력파 작가 아베 가즈시게의 작품이다. 이번 재해지와 큰 산맥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태 어나 성장기를 보내고, 지진 후에 수차례 재해지를 방문한 그는, 거 대한 파도가 오기 직전의 해안을 무대로 웬지 모를 불길한 예감을 조용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가렛은 심는다」는 가까운 미래에 큰 활약이 기대되는 신인 작가 마쓰다 아오코의 작품이다. 그녀도 일상적인 반복과 파탄을, 재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알레고리적으로 묘사하였다. 두 작품의 일본 국내 수익금은 다른 13인의 작가가 기고한 작 품의 수익금과 함께 전액 기부되었다. 동시에 영어 번역판이 기간 한정으로 무료공개되어, 일본 지진재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기부를 권장하기 위해 각 지역 에 작품을 배포하고 있다. *** 다운로드한 PDF 파일은 기간 한정으로 메일등으로의 링크, 복 제, 재배포를 허가합니다. (발행처와 저자 및 저자의 허가를 받은 이 이외의 제삼자를 통한 판매와 영리목적의 이용, 인쇄매체에의 전재는 금하고 있습니다. 내용의 변경 또한 금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신 분은 파일의 마지막에 쓰여있는 일본 적십자 사 은행계좌, 또는 각국의 적십자 등, 세계 각지에서 자연재해지역 을 지원하는 단체에 소정의 금액을 보내주십시오. 또 다른 사람에 게 파일을 제공하실 때는 이 내용도 함께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This story was written primarily for use in Waseda Bun- gaku’s charity project for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 of March 2011 and for distribution via the Waseda Bungaku website in PDF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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